https://arca.live/b/yandere/96623296  <- 생각보다 반응 좋아서 한번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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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활 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데. 나랑 한 번 겨뤄보지 않겠어?"


아마 내 기억상 그 말이 너에게 처음 걸었던 말이었을거다. 첫 만남은 몬스터 웨이브로 부터 한 도시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줄 아는 자들이 전부 한 곳에 모였을 때였다. 


그곳에서 만난 건 인간 남성인 한 용병. 활을 다루는 궁병이었다. 그렇다. 바로 너 얀붕.


그저 널리고 널린 용병이라면, 보통 때 같았으면 그냥 잠깐의 관심만 가지다가 헤어졌을 일이다. 얀붕이 네가 쳐들어 온 몬스터 70마리의 머리를 혼자 화살로 모조리 맞춰서 죽여버린 것을 직관하지만 않았다면.


"너랑 내가? 엘프와의 궁술 대결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자신없는데..."


거짓말은... 그렇게 말한 주제에 정작 5세트 즉, 15발을 모조리 과녁 한 가운데에 불스아이 시켜버려서 1점차이로 나한테 이겨버렸으면서. 


나는 떠돌이 엘프였다. 기나긴 수명을 자랑하는 엘프족 특유의 느긋한 자연친화적인 문화, 그리고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경제는 발전된 문명 생활을 동경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답답한 환경이었다. 그 성격때문에 고향땅에서도 동족들 사이에서 괴짜로 알려진 나는 어느날, 숲에서 혼자 나와서 나그네 신세로 다른 종족들의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던 상태였다.


엘프는 마치 신이 선물한 듯한 선천적인 활쏘기 재능이 유전자 단위로 새겨져 있었고, 남녀노소가 활쏘기를 놀이처럼 즐기는 문화가 있으니 가히 활잡이 종족이라고 할 만 했다. 아무리 나 자신이 엘프의 답답한 환경을 싫어해도 엘프족 특유의 활솜씨에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눈앞에 엘프인 나보다 활을 잘쏘는 다른 종족이 나타나다니,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그래서 나는 너를 따라다녔다. 열등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너의 궁술 자체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너와 나는 함께 떠돌이 용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본 너는 신궁이었다. 말을 타면서도 원하는 목표물이 있다면 어떤 자세든 어떤 날씨든 상관 없이 절대로 그 목표물을 놓치지 않았다. 희미하게 적이 보이는 장거리에서, 단단한 피부를 지녀서 창칼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를 화살로 눈을 관통시켜서 단번에 죽였을 때는 네가 인간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저렇게 활을 잘 쏠까. 어떻게 인간이 활 쏘기에 특화된 엘프족인 자신을 뛰어넘는 궁술을 지니게 된 것일까. 그러던 어느날, 그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너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 것이.


"히야악..! 너 뭐..뭐야///...!! 왜 갑자기 상의탈의를 하고 있는건데///!!"


"응? 아니 궁술 연습 좀 하다가 너무 더워서 잠깐 벗은 것 뿐인데? 땀도 많이 나고"


태연하게 지껄이는 너가 줄을 놓자 화살이 핑- 하고 날아가서 과녁 한 가운데에 박혔다. 너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얼굴을 붉히는 나만 괜히 의식해서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보다 얀순아. 너 이런거 신경쓰는 타입이었냐? 뭔가 의외네?"


"아니... 아무리 내가 엘프 치고는 개방적이라지만 갑자기 윗통을...어..어"


너의 말에 반박하다가 너의 등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아름답게 갈라진 노력의 흔적이 있었다. 살이 갈라지면서 생긴 균열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는 그 균열들은 놀랍도록 강인하면서도 고혹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바위에 조각을 한 것 같기도, 흙으로 빚은 것 같아보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예술적으로 조각한게 아닐까 싶은 등근육. 그래, 너의 등근육이었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을 때는 근육이 수축되어 올라온다. 그러면 너가 얼마나 활을 잘 쏘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너에게 직접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등근육은 재능으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이것이 바로 남성미인가. 아니 어쩌면 나는 네가 궁술을 위해 바쳐왔던 세월에 반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됐건 그 때부터 나는 너에게 동경을 느낌과 동시에 성적인 매력도 같이 느끼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너의 궁술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너라는 사람자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왜냐면 내가 너에게서 눈을 떼질 않았으니까. 그러려고 했으니까. 


너는 친절했다. 동시에 강인했다. 옷은 항상 단정히 차려입는다. 그러면서 활은 어느때나 챙기고 다닌다. 사람 돕기를 좋아해서 몬스터를 잡는 일보다는 사람들의 고심을 해치우는 일을 많이 맡는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너는 사람들에게서 인기가 많았다. 어찌보면 나와는 많이 달랐다. 


너는 착하다. 늘 오래 생각하고 살피려는 태도가 배어 있다. 함부로 말을 하지 않고 대답하기 전엔 항상 활짝 웃는다. 틱틱대기만 하고 솔직하지 못한 나하고는 달랐다. 내가 무례하고 기분나쁠만한 말을 해버려도 너는 상냥하게 받아준다. 


"나는 활을 쏠 때 바람을 계산하지는 않아. 그냥 느끼고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쏘거든."


가끔 보면 너는 나보다 훨씬 엘프같다. 자연친화적인 말을 하고 항상 느긋하다. 그러면서도 싸울 때는 결단이 빠르다. 그리고 항상 변함이 없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너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변함 없이 상냥하고 느긋할 것 같았다.


"숲 속에서 느긋하게 산책하는 것도 좋아해. 그래서인가 가끔 엘프들을 만났을 때도 금방 친해지거든."


원래 같았으면 싫어했을 취미였다.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너가 좋다고 하니 이제는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너가 좋아하는 것들이 좋아졌다. 그리고


너에 대해 알아가는게 좋았다. 나에게 웃어 주는 너가 좋았다. 상냥한 너가 좋았다. 느긋한 너가 좋았다. 같이 활을 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냥


너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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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음악, 자주하는 습관까지도.


너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계속해서 좋아하게 되니까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그게 기뻤다. 기호나 취미가 같아지니 대화 주제도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게 너무나 즐거워서, 점점 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졌다. 한시도, 1분 1초라도 빠짐없이 네가 내 곁에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가끔 너의 등근육을 볼 때마다 그것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실행하진 않는다. 아무리 그런거 신경 안 쓰는 너라고 해도 만지는 것 까지는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그 대신 다른 스킨십을 많이 한다. 어깨나 손을 잠깐 터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안마를 해주거나 싸우다 다친 상처를 내가 직접 치료해주거나. 


하지만 그런거에는 둔감한 너는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행동도 점점 더 대담해진다. 식사할 때 소스가 묻은 입가를 닦아준다던가 은근슬쩍 팔짱을 낀다던가.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랬다는 것처럼 내 가슴을 너에게 밀착시키면 그제서야 너는 어쩔줄 몰라한다.


색다른 너의 반응에 나는 즐거워한다. 동시에 너의 이런 모습을 나만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여자들에게 이런 너의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다른 여자들에게 너가 상냥하게 친절하게 웃어주는 것이 점점 싫어진다. 너를 나만의 것으로 하고싶다. 나만이 너의 미소를 보고싶어.


나는 점점 너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일까. 나름 외모에는 자신있었다. 당연히 자신은 엘프였으니. 하지만 만약 네가 나를 연애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어쩌지. 만약 내가 고백했는데 거절한다면.


그런건 참을 수 없었다. 그게 무서워서 차마 고백까지 하지는 못하는 상태에서 점점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이러다 네가 다른 여자한테 관심이 생기면 어떡하지 전전긍긍하며, 마침내 내가 두려움을 무릎쓰고 머잖아 고백을 하려 결심했을 때였다.


"얀순아"


"응?"


"이제와서 말하는 거긴 한데, 네 활 좀 특별해보여서..."


함께 궁술 연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얀붕이 너가 내 활에 관심을 보였다. 내 활은 오직 엘프들만이 심고 기를수 있는 특수한 강목으로 만들어진 활이었다. 당연히 어디가서 쉽게 볼 수 있는 활은 아니었다.


"한 번 써보고 싶어?"


"으...응? 그래도 돼?"


너라면 뭐든 괜찮았다. 어릴 때 부터 써오던 소중한 활이긴 했으나 네가 원한다면 그냥 너에게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끄-흡! 어라..."


"....어?"


"크으으읏...!! 아오 씨... 이거 되게 힘든데? 끝까지 당기는 것도 빡세고... 나는 못 쓰겠다."


".....어?"


"와오...씨 한 번 쏘기도 힘들겠네... 얀순아 너 보기보다 힘 세구나?"


"....어라"


당연히 자신보다 힘이 강할 거라고 생각했던 얀붕이가, 자신은 가볍게 다루는 엘프족 강목의 활을 다루지 못했다. 혹시 얀붕이는 나보다 힘이 약한 것일까?


그렇게 곧바로 충동적으로 너에게 팔씨름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결과는 나의 승리였다. 


"와 씨... 너 실압근이냐? 어우 팔이야... 이게 엘프인가"


"......"


그렇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조그마한 추악한 불씨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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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서 소설을 처음 써보긴 했는데 완전 생초보니까 필력은 기대하지 마십셔. 나도 걍 생각나는 데로 지른거라서 다음편이 언제 써질진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