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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왕이다. 비록 내게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멋대로 날 마왕이라고 부르지만.

난 줄곧 외롭게 성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인간놈들이 내게 용사라는 것을 보냈다는 소문이 들린다. 

난 그 미물(微物)들한테 피해를 준 적은 없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마계의 끝자락에서 마물들의 개체수가 줄어드는게 느껴지는군. 용사의 소행인가.

그렇다면 기다려 봐야겠다. 때마침 심심하던 참이니.

마침내 용사가 내 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 녀석은 나를 향해 칼을 내밀었다.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더니, 바로 칼을 집어넣고, "우리, 대화 좀 나누지 않을래?"라고 말했다.

대화, 대화라. 긴 시간동안 내게 아무도 그 '대화' 라는 것을 한 자는 없었다.

"그러하도록 하지."

심심하니, 유흥 삼아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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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고백 이후로, 나와 마왕은 서로 사귀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은 구하지 말걸 그랬구나. 인간들은 결혼하면 서로 한집에 산다고 들었으니."

"아직 결혼 안했잖아?"

그녀는 그 순간 몸을 내 쪽으로 가까이 하면서, 말했다.

"언젠가는 할 예정이니, 너무 걱정 말거라. 그대는 나의 소중한 지아비이니까."

"하하...."

그때 대화를 나눈 것이 시발점이 되어 이런 관계로 이끌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왜 내게 이리도 호감을 갖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으음, 그나저나 그대와 내가 가약을 맺게 되었으니, 이 세상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데이트'라는 걸 해보자꾸나."

"음? 데이트?"

"그래, 내가 고백하고, 그대가 받아주었으니, 이 경사스러운 날에 데이트를 하자는 것이다."

"좋아, 여기 근처에 놀거리가 많으니까 순회하면서 데이트를 즐기자."

"좋다,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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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내게 대화를 나누자고 했다.

나는 그에 응했다.

"그럼, 용사여, 무슨 대화를 해볼까."

"어... 우선 우리 인간들을 침공하는 걸 그만둘래?"

"난 애초에 너희 인간들을 침략한 적이 없다. 애초에 그 미물들한테 관심이 없기도 하고. 그리고 너희들을 침략할 의지도, 침략해서 얻을 이득도 없다."

"진짜?"

"그러하다. 애초에 난 이 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틀어박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간들을 공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왜 인간들이 널 마왕이라고 부르지?"

"이런, 생각을 해봐라. 그들은 인류 전체의 공공의 적을 만든 것이다."

"공공의 적?"

"그래, 내가 듣기로는, 인간은 공동체 내부의 적을 만나면 끊임없이 분열하고 약해진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자기네들의 결속을 위해 그렇게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지."

"그럼, 넌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인간들이 널 마왕이라고 부른 거야?"

"그래. 그리고 애초에 마왕이라는 명칭도 잘못됐다. 내게는 이름이 있으니 말이다."

"이름이 뭔데?"

"베리타스. 영광으로 생각해라. 내 이름을 듣는 존재는 너가 첫 번째이니."

"하하하... 그럼... 정말로 우리들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 이유도 없고, 이득도 없는 행위를 할 이유가 없지."

"음... 그래도 난 좀 미심쩍어. 여기서 잠시 며칠 동안 지내도 될까? 같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질 것 같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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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그럼 어디부터 가볼까... 혹시 생각해둔 건 있어? 마왕?"

"'마왕'이라는 칭호 대신 이름으로 불러다오."

"화영아, 어디 갈---"

"그 이름은 가명, 내겐 본명이 있지 않느냐."

"베리타스, 어디 가고 싶어?"

"나는 그대가 가는 대로 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대와 함께 돌아다니고 싶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두지 않았으니까."

"어... 그럼 근처 오락실에 먼저 가볼래? 거기에 재미있는 게임들이 많은데."

"음...좋다. 그대가 하자는 대로 가겠다."

나와 베리타스는 오락실에 도착했다.

"후... 오늘도 실력을 좀 내볼까. 같이 해보지 않을래?"

나는 사운드 볼텍스 기기 앞에 선 채로 마왕에게 물었다.

"흥미롭구나, 이 게임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플레이 도중에 하얀 노트들이 내려오면 위에 있는 4개의 버튼을 타이밍에 맞게 누르면 되고, 주황색 노트가 내려오면 밑에 있는 2개의 버튼을 타이밍에 맞게 누르먄 돼. 그리고, 파랑색 라인과 빨간색 라인이 내려오면 타이밍에 맞춰서 옆에 보이는 원형 손잡이를 돌리면 돼. 내가 먼저 해서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께."

나는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일부러 쉬운 난이도로 플레이를 했다.

"어때?"

"재미있어 보이는군. 어디, 나도 한 반 해보겠다."

그녀는 패기 좋게 기기 앞으로 달려가 난이도가 좀 높은 것을 선택했다.

"어... 괜찮겠어?"

"걱정 마라. 이래 보아도 난 마왕이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실력은 처참했고, 그 결과 TRACK CRASH(클리어 실패)가 떴다.

"그러니까 난이도 좀 낮은 걸 선택하지 그랬어."

"인간들은 대단하구나,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어, 몇몇 사람들만 그래. 인간들도 너처럼 처음부터 그런 고난이도의 곡을 하면 너처럼 결과가 잘 안 나오지."

"에잇! 재미 없다! 다른 걸 해보자꾸나."

"그럼 저기 있는 거 해볼래? 디스크를 저 손잡이가 달린 도구로 쳐서 상대편 구멍에 넣는 게임이야. 넣는 횟수만큼 점수가 오르지."

"흠, 저건 쉬워 보이는군. 좋다. 한 번 해 보지."

동전을 넣고, 게임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내쪽에서 먼저 디스크가 나왔다.

"자, 간다!"

나는 세게 디스크를 쳤고, 디스크는 빠르게 상대편 쪽으로 넘어갔다.

"핫!"

마왕은 그 공격을 보기 좋게 방어했고, 그와 동시에 다시 디스크가 내쪽으로 날아왔다.

"앗!"

난 디스크를 치지 못했고, 그대로 디스크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좀 하는데?"

"아까 그 게임이 어려운 것이지, 이런 쉬운 게임은 나에겐 껌이다."

"좋아, 봐주지 않겠어!"

나는 그녀를 얕잡아 본 것에 대해 반성하고, 제 실력을 발휘해 디스크를 쳤다.

몇 번의 공수교환 끝에, 내가 점수를 얻었다.

"후! 자 이제 디스크가 네 쪽에서 나올 거야. 다시 쳐봐."

"좋다."

그 후로 우리는 점수를 계속 주고 받았고, 제한 시간이 끝나 있었을 때에는 그녀가 1점 앞서 있었다.

"아, 졌다!"

"후훗, 이겼구나. 근데 설마 날 봐준 건 아니겠지?"

"아니, 난 본 실력대로 했어. 처음인데 왜 이렇게 잘하냐?"

"난 마왕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설마 중간중간 마법을 쓴 건 아니겠지?"

"(뜨끔)"

"어? 설마 썼어?"

"아아아니, 안 썼다!"

"근데 왜 점점 땀을 더 많이 흘리고 있어? 찔려? 흐으으음..."

"에, 에잇! 안 썼다! 난 마법따위 쓰지 않았다!"

"그래그래 믿어줄께."

"정말이다!"

"그래그래."

오락실에서 나온 후,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 세계의 음식은 정말 진미(珍味)로구나, 마계의 음식은 맛없었다. 정말 이 세계는 축복받은 세상이로구나."

"대체 얼마나 맛없었길래?"

"음, 마계의 음식은 그저 영양분을 채우는데 의의가 있다. 맛을 느낀다는 부가적인 요소를 만족시키지 못하지."

"마계는 대체 얼마나 비참한 세계인 거냐..."

"후훗, 전의 세계를 멸망시키고 이리로 온 것이 천만다행이로군, 이리도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거 참 다행이네..."

"그리고, 그대를 다시 만났으니 말이다."

아, 맞다. 마왕은 날 다시 만나기 위해 이리로 넘어온 거지...

"괜찮냐?"

"괜찮다. 다시 그대를 만났으니, 아쉬울 건 없다."

마왕은 눈물을 흘렸다.

"왜 울어?"

"아니, 전의 세계에서 그대가 죽은 것을 본 기억이 좀 떠올랐다. 이제 괜찮다."

"전의 세계는 잊어도 돼. 이제 우리 둘에게 남은 일은 이 세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거 뿐이니까.

"그래, 그대 말이 맞다. 미안하다. 걱정하게 해서."

"괜찮아."

식사를 다 하고 나서,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 잘 가! 내일 학교에서 보자."

"무슨 소리! 그대와 같이 집에서 부터 학교까지 같이 등교할 것이다!"

"알았어. 잘 가!"

"그대야 말로, 잘 가거라!"

그렇게, 나와 마왕의 첫 데이트는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