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되는대로 열심히 쓰겠읍니다 ㅠㅠ.


전편 : https://arca.live/b/yandere/9663329



용사(파논) 엘리사(성녀) 아르카(궁수) 아이샤(암살자) 이얀붕(마법사)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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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벌써 아침인가.

눈을 떠보니 보이는 낯선 천장이 어제 겪은 일들이 꿈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제는 정말 힘들었지...

용사가 나가니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성녀에

용사가 다른 여자랑 붙어 있으니 앞뒤안가리고 눈 돌아가버리는 엘프 궁수에

이제까지 살인이 안난게 참으로 용한 것 같다.




이불을 개고 씻은 뒤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입고 내려왔다.




-꼬르륵-




배고프다.

그러고보니 어제부터 뭔가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았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니 여러 식재료들이 많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음식 조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오지 않은 모양이다.




식당은 아주 깔끔했다.

식기이며 불을 지필 수 있는 공간까지 잘 마련되어있었다.

방 한쪽의 문을 열어보니 냉동고 비슷한 공간이 나왔다.

역시 용사 일행의 숙소. 식당부터 남 다르구만.




20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자취를 시작해서 간단한 요리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아침이니까 간단하게 먹자.'




계란 몇개랑 식빵처럼 보이는 빵을 들고 화덕 앞으로 갔다.

버터를 프라이팬에 잘 둘러주고 충분히 녹인 뒤 한 쪽에는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한 쪽에는 빵을 구웠다.




'음~ 냄새 죽인다.'




한창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용사놈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 밖에서 얼굴만 내민채로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는 모습에 평범하다는 생각에 더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소꿉친구라고 한 걸 보니 오랜 세월을 그 두 사람에게 휘둘려 보냈겠지.




"뭐냐 일어났냐?"




"안녕. 그 저 뭐하는거야?"




"뭐긴 아침 만들고 있지."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여기 오기 전에는 혼자 살았었어. 그래서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줄 알지."




대화가 오고가는 와중에, 용사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나도 만들어줘'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보였다.

에휴...

어제 일도 보았고, 딱한 마음도 들어서 1인분을 더 만들기로 했다.




"너도 만들어줄까?"




"오 진짜? 그러면 고맙지!"




조촐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누군가랑 아침을 같이 먹는다는게 약간 기뻤다.

식사를 하면서 용사랑 이것저것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용사와 엘리사 아르카는 꽤나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라고 한다.

용사는 제국 개국공신의 아들이고, 엘리사는 대대로 촉망받는 성직자 가문의 딸,

아르카는 용사네 부모님의 절친한 친구 딸이란다.

집안도 집안이기에 같은 또래 친구는 서로밖에 없었다고.




어려서부터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봐도 눈에 선하다.

이런 환경에서도 올바르게 자란 용사놈이 너무나 기특했다.

성격도 바람직해, 검술도 제국 최강, 잘생기기까지.

역시 용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는 중일 때

나는 무심코 쳐다본 문쪽에서 아이샤를 보았다.




봐버렸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그녀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문 뒤쪽으로 숨어버렸으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문 옆에는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아이샤가 있었다.

얜 또 왜이래.




"저기... 아이샤 맞지? 왜 그러고 있는거야?"




"미...미안해... 마치 몰래 훔쳐보다 걸린거 같아서..."




동료끼리 몰래 훔쳐보다 걸린다는건 또 뭐람.




"괜찮아. 너도 일찍 일어났나보네. 혹시 아침 먹었어? 안먹었으면 같이 먹지 않을래?"




"나....나도?....정말?!"




"그래그래. 마침 재료도 조금 남았고, 금방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달려."




나는 손을 뻗어 아이샤가 일어나는걸 도와주려했다.

하지만 아이샤는 내가 뻗은 손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머쓱하여 슬며시 손을 치우고 들어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샤는 파논 앞자리에 앉아줄래?"




"그...그래도 돼?"




"파논 괜찮지?"




"네, 괜찮아요."




파논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형 동생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의외로 친구만들기를 좋아하는걸 알았다.




그리고 사실 방금전, 아이샤가 나랑 이야기하고 있는 파논의 뒤를 계속 쳐다보던게 생각났다.

그녀도 파논한테 다가가고 싶었던거겠지.

물론 그의 옆에는 어마무시한 두 분이 계시니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또 없겠지.

또 식사자리만큼 서로 친해지기 쉬운 자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 완성이다. 별로 먹을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




"가...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샤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표정은 없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밥을 먹으면서 그녀는 파논과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스레 뿌듯했다.




가만히 보면 그녀도 은근 미소녀였다.

보라색 긴 머리에 165cm정도 되는 신장.

체격은 왜소했지만 암살자는 암살자인지 다부져보였다.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테이블 끝에 앉아 있었다.

여기없는 두 그녀들이 이 상황을 보면 어떤 참극이 일어날지 몰라서이다.

내가 있으면 어떻게 잘 무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준비를 끝내고 홀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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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여느 때보다 북적였다.

새로운 용사 일행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탓이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곳곳에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한 정보겠지.




우리는 그래도 우리를 호위하러 와준 병사들의 도움덕에 차질없이 황궁으로 갈 수 있었다.

가는 길 마다 여기저기 구경꾼들이 있었는데, 역시 용사를 보러 온 여성들도 많았다.




"꺅! 용사님 여기 좀 봐주세요!"

"용사님 너무 잘생겼어요!"




난리도 아니다 난리도.

혹시 일찍 죽고싶은 걸까 저 아가씨들은.

저렇게 용사한테 추파를 날리는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용사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또한 볼만 했다.




"어라~ 용사님. 제가 못 본 사이에 여기저기 꼬리를 치고 다니신건가요?"




표정없는 눈으로 파논을 바라보며 말하는 엘리사.

평소의 그녀는 누가 보기에도 성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만 파논과 관련된 일에서는 마치 질투의 화신 같았다.

특히 여자문제는.




"아...아니야 오해야 오해. 그냥 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응원하는거라고..."




"그럼 나중에 몰아서 싹~다 죽여버리면 되겠네~"

"해충을 박멸하는건 유익한 일이니까~"




그런 소리좀 웃으면서 하지마라.




"아르카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거 아냐. 내가 밖에서는 참아달라고 부탁했잖아."




"하...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두발 짝 뒤로 물러나 걷기 시작했다.

역시 저 두사람 무섭단 말이지.

아이샤도 역시나 뒤에 떨어져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샤 옆으로 가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늘 이렇게 혼자 걷는거야?"




"응... 이렇게 걸어도 괜찮아."

"얀붕이는 왜 뒤로 온거야?"

"파논이랑 붙어 걸어도 괜찮잖아..."




"으... 남자랑 붙어 걷는건 좀 별론데?"




"아니...그런게 아니고."




"그리고 이렇게 혼자 걷는건 좀 쓸쓸하잖아."




아이샤는 이 일행에 합류한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들었다.

그 몇 년동안 계속 이렇게 혼자 걸었을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저 사이코패스같은 두 여성분의 성격만 아니였어도 네 사람이서 같이 걸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렇게라도 응원해주고 싶었다.




"....히힛♥"




응? 누가 웃은거 같은 소리를 들은거 같은데...

기분탓인가.

혹시나해서 아이샤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인채로 걷고 있었다.

물론 입가 주위에는 안면 마스크같은 걸 끼고있어서 정확히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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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으로 도착한 우리는 메이드(?)처럼 보이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의장실로 갔다.

황제를 만나기 전에 먼저 격식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나 뭐라나.

나는 비교적 간단한 옷이였다. 검은색 단복에 안에는 흰색 셔츠같은 것을 입었다.

머리손질도 해줬는데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왠만한 미용실 사람들은 엄두도 못낼 것 같았다.

오랜만에 멋좀 내니 새삼스래 내가 진짜로 황궁에 왔다는걸 느꼈다.




"와.... 파논 너 진짜 꽃미남인데... 배우해도 되겠다."




"뭘 그렇게까지... 그나저나 배우는 뭐야?"




"어.... 그 뭐냐 연극의 등장인물 같은 건데 하였튼 잘생겼다고."




"어라. 얀붕씨 그렇게 안봤는데 혹시 성적 취향이 그쪽인건가요? 살짝 비호감이네요."




이게 무슨 개소리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줬다.

미친년인가 진짜로.

하여튼 저 년은 파논만 관련되면 남자도 견제한다 이건가.

이거 예상외로 험난하겠는걸...




의외로 다들 옷을 차려입으니 귀족집 자제들이란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파논은 깔끔한 흰색 단복에 휘장용 검을 차고 있었다.

엘리사는 흰색 성직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진짜 만화에서 나오는 성직자의 그 느낌 그대로였다.

우리 싹퉁바가지 엘프님도 흰색 드레스를 입고 정리 안되던 머리는 딸기머리(?)같은 머리로 깔끔하게 정리되있었다.

뭐 눈감고 보면 봐줄만한가.




아이샤는 보라색 머리에 잘 맞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머리도 긴 생머리에서 포니테일로 바뀌었다.




"오 아이샤 잘 어울린다."




"응...고마워."




그 순간




"...파.논?"




"파논, 나는? 나는? 내가 저년보단 훨씬 이쁘지?"




"야야 아르카, 같은 동료한테 저년이라니 그건좀..."




저 말을 하고나자 아르카가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여버릴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미친년....

아무리 파논이 좋아도 그렇지 이 정도면 파논 주위에 친구가 한 명도 없는게 이해가 간다.

완전 사람을 외톨이로 만들어 놓고 있다.

자라온 환경 때문에 이해는 간다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자자 다들 그만 싸우고 얼른 접견실로 가자 늦겠다."




나는 접견실로 가는 중에 아이샤와 눈이 마주 쳤을 때 엄지를 들어줬다.

한 방 잘 먹여줬다.




"저...저기 얀붕아..."




"응. 왜?"




"나...나 어때? 잘 어울려?"




"물론이지!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엘리사나 아르카도 긴장 좀 해야되겠는걸."




"아...그렇구나..."




뭐지? 이 미묘한 반응은. 내가 뭘 잘못했나.

그나저나 저 장갑은 드레스를 입어도 안 벗는구나.




"저기 아이샤. 그 장갑은 왜 안 벗는거야?"




"아!.... 저기... 그건..."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 뭐냐, 암살자들보면 자주 끼고 다니는 그런 장갑일려나. 소중한거겠지."




"응..."




으... 도대체 뭐라고 씨부리는거냐 나란놈은...

내가 생각해도 병신같다. 쪽팔리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접견실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