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좋지 않다는것쯤은 알고있었다.


하물며 상처를 주게 될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연인의 마음에 되돌릴 수 없는 못을 박을 예정이었다.


소라사키 히나.


그녀는 총명한 두뇌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리더쉽.


그리고 단신으로 군대에 필적할만한 힘을 지닌, 말하자면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그녀와 사귀고있는 입장에서 볼때는, 그다지 좋은 연인은 아니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자는 그만큼 많은 책임을 지녀야한다고했던가.


그녀는 학생시절부터 수많은 업무에 휘말렸으며.


그녀와 함께 제대로된 데이트를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만났을때는, 항상 또다른 트러블과 조우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로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을때는, 조금은 달라질거라고.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바다에도 다시한번 가는, 그런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거라고 믿었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은 절대로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녀를, 수많은 회사에서는 거금을 주어 스카웃 해가려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져가는 직급과 비례해, 그녀의 업무량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하여, 제대로 된 여행한번도 가지 못한채로 그녀와 교제하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났지만.


그녀와 간간히 만나는 사이에, 신기할정도로 관계는 조금씩 진전되고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가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혼인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갈 정도로.


제대로 얘기할 시간조차 없는 상대와 결혼이라니.


나에게 있어서 그건 정말로, 달갑지 않은 얘기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본심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몇시간전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수없이 지우고 쓰기를 반복한 장문의 문자.


이런 중요한 얘기를 문자로 하는것이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어짜피 이런 늦은 시간에도 얼굴을 보기는 커녕 전화하는것조차 힘들것이었기에.


그냥 전송 버튼을 누르려고 하던 찰나.


갑자기 저항할 수 없을정도의 피로가 돌연 몰려왔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똑똑.


샬레의 사무실 바깥에서 노크소리가 울렸다.


평소라면 발걸음 소리를 듣자마자 튀어나올 선생이었으나, 오늘은 어쩐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하면 체형이 자그마하고, 눈매가 무서운 백발의 미소녀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겼고.


샬레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선생님 들어갈게."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야에 비친것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서류와, 선생님.


아니, 지쳐버린탓인지 반쯤 기절해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오늘은 당번인 내가 도와준다고 했었는데도, 또 무리하고 있었구나.'


자기한테는 무리하지말라고 그렇게나 잔소리를 하던 사람이 이런 꼴이라니.


누가 누구보고 잔소리를 하는건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아, 오늘 해야할 업무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선생님과 함께 데이트... 아니, 휴식을 취할 시간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에서 엎드려서 잠을 자고있는 선생이 조금은 미워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는 자기한테 D.U 시라토리구에 새로 생긴 케이크집에 가자고 했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잠만 자고 있다니.


이래서야 언제 업무를 마치고 외출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과로를 하느라 피곤할 선생님을 깨우는것은 삼갔겠지만... 오늘은 조금 욕심을 내보기로 결정했다.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선생님을 깨우기 위해 그의 곁을 지나던 찰나.


그의 휴대폰의 잠금이 풀려있는것을 봐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분명히 수신인이 '소라사키 히나' 로 되어있는 모모톡을.


'이건... 나한테 보내는건가?'


프라이버시를 훔쳐보는건 문제가 되겠지만, 어짜피 자신에게 보내는건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약간의 죄책감을 뒤로한채로 문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나 헤어지자.]


소라사키 히나는 그자리에서 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헤어지자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아니, 애초에.


"... 사귀는 사이조차 아니잖아."


이전에 분명히 어른과 학생 사이에 연애는 문제가 있다고, 자신이 어른이 되고나서도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받아준다는 말과 함께 거절하지않았던가?


'동명이인?'


그렇다고 하기에는 프로필 사진이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쩐지 조금 더 성숙해보이는듯한 옷을 입은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쨋든 분명한것은 나에게 보내는 문자는 맞으리라.


'그렇다면 선생이 늘하던 질나쁜 장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지만, 그러기에는 장난의 도가 지나쳤다고 볼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문자의 내용은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디테일했고.


그의 슬픔과 고뇌,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섞여있었으니.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에.


[히나는 단 한번이라도 회사 일보다 나를 우선시 한적이 있었어?]


한문장, 한문장씩 읽어내려갈때마다 어쩐지 가슴이 아려 왔다.


"으음..."


하여, 그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히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전부 농담이라고, 깜짝 놀랐냐고.


사과의 의미로 케이크를 사줄테니까 밖으로 나가자고.


웃으면서 그런말을 해달라고.


"... 히나?"


제발.


"... 바쁠텐데 샬레에는 무슨일로 왔어."


그런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선생님."


"그렇게 부르는것도 오랜만이네. 간만에 샬레 오니깐 학생이라도 된 기분이 드는거야?"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하고싶은 말은 많을터인데, 이상하게도 입이 잘 움직이질 않았다.


농담은 그정도로 하라고.


어째서 그렇게 차갑게 말하는거냐고.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당신과 나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보네. 안색이 안좋아 보여."


도대체 어떤일이 있었냐고.


"히나야말로 오늘내로 마무리해야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지않았어?"


"... 그랬었지."


프로젝트니 뭐니, 그런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전까지는 쉽사리 진실을 밝힐 수가 없었기에.


언제 들킬지 모를 아슬아슬한 연기를 계속 해나가기로 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승부수를 던지기로했다.


"선생님 이거, 나한테 보내는 모모톡 맞아?"


그의 눈동자가 동요한것처럼 잠깐 흔들렸다.


아직 마음을 확실하게 정한것은 아니라면,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을것이다.


그의 오해를 풀고, 지금부터라도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들을 기회가.


"... 지금이라도 농담이라고 말해줘. 그럼 못본걸로 할게."


"아니."


하지만.


"이젠 전부 지쳤어."


그의 말은.


"나날이 높아져가는 히나의 직급과 연봉에 비교되는 타인의 시선도... 네가 바쁜탓에 연인간의 데이트 조차 한번 제대로 못하는 생활도."


나에게.


"전부 지긋지긋해."


그럴 기회는 없다는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결정적인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 그래. 그렇구나."


하여, 망설이지 않고 즉시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순식간에 선생님의 의자를 걷어찼다.


"무슨...!"


귀를 찌르는듯한 마찰음과 함께 그의 몸은 의자째로 벽에 쳐박혔다.


원래는 선생님에게 폭력을 사용하는것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문자를 본 순간부터.


그의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줄곧 이러고싶다고. 마음속 깊은곳 어딘가에서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히나... 이게 뭐하는."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뭐?"


고작 그런걸 묻기 위해 이런짓을 한거냐며,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너가 더 잘 알겠지. 우린 변변한 여행도 못갔잖아. 그걸 연인사이라고..."


"몰라."


"그런말을 해도 소용없어. 이미 결심한 일이니깐."


"모른다고."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할정도로 강렬한 여러감정들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왔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것은.


단연컨데 분노였다.


"나는 게헨나 학원 선도부 소속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야."


"뭐...?"


그제서야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것을 눈치챈 그였지만.


"미래의 선생님과 나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전부 설명해줘야겠어."


이미 평범하게 오해를 풀어갈 시간은 진작에 지났다.


만약 그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말하게 해줄게 당신."


그럴 마음도, 각오도 되어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