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각했어."
"..."

비참했다. 좌절했다. 절망했다.
기분이 시궁창에 틀어박히는 듯 했다.

"마셔. 여기 커피 꽤 맛있거든."

그녀의 말대로 이 카페의 카라멜 마끼아또는 꽤 맛있었다. 달짝지근하고.

"계약은 오늘부터 바로 시작되는거야. 너는 내 말을 듣고... 대신 난 너와 네 동생의 치료비를 내주는거지. 그것 말고도 추가로 더 줄수도 있고."

이미 알고있는 내용을 왜 굳이 한번 더 말해서 확인하는 걸까. 그 짧은 시간안에 내가 그것들을 잊었을 것이라 생각해서, 나를 배려하기 위해 말해주는 것일까.
...물론 그럴리 없다.
내가 용병이라는 직업에 몸을 담으며 만난 인간들 중, 그런 친절한 인간은 없었다. 밑바닥 인생들중 옥석을 찾으려 해봐야 운이 좋으면 짱돌을 찾을 뿐이다.

능력있고 재능있으며 전도유망한 인간이라면, 용병을 하고 있을것이 아니라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헌터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있거나, 아니면 이미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겠지.

그저 그녀는 내 기분을 안좋게 만들기 위해서 강조를 했을 뿐이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 뻔한 말에, 일일이 반응해줄 필요는 없겠지.

"...뭘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째려봐? 아직도 네 주제를 모르겠어? 물론 나는 그런 강한 남자도 좋아해. 근데... 너는 지금 내가 명령하면, 이 카페에서도 무릎을 꿇고 내 구두 밑창을 핥아야 하는 놈이야. 네 꼬라지를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죄송...합니다..."

역시 언론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업인 그리니 회장의 손녀인 이예연은 아름답고, 고귀하며, 품격있다, 같은 소리 지껄이네.

"그래. 이제야 좀 봐줄만하네."

적어도 지금 내가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좆같고, 개같고, 엿같을 뿐이였다.

"일어나. 시험은 해봐야지."
"계약서 썼으면 끝 아닙니까..? 뭘 더 시험한다고."
"큭큭, 너, 여자랑 손잡아본적은 있니? 말대꾸하지 말고 누나나 따라와."

그런 말을 하며 그녀가 나를 끌고간곳은, 그녀의 회사가 운영하는 호텔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