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난 거 같다. 

 


최근 직장 사람들끼리 뭔가 작당 모의를 시작한거 같다. 

옆 부서 여자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회사사람들한테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고 있는거 같은데, 나는 연애할 생각도 없고 비혼주의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여자는 진짜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보다 풍채도 좋고 몸무게도 더 나갈 거 같은데, 진지하게 싸우면 내가 질 거 같이 생겼다. 옆에서 가까이 볼 때 느끼는 건데 최소한의 자기 관리도 안 하시는거 같던데 솔직히 여자로도 안 보인다. 

 


이 미친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사람들이 우결병이라도 걸린건가 나랑 이 여자랑 엮기 시작했다. 노처녀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라도 시작한 건가? 

 

 

“ 얀붕씨 관리부 얀진씨 알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얀진씨 어떻게 생각해? ” 

 

 

“ 어 얀진씨요? 그냥 뭐 별생각 없는데요? 왜요? ” 

 

 

“ 아, 그래? 알았어 그냥 물어본 거야 ” 

 

 

이런 식으로 회사 사람들이 떠보기 시작했다. 

계속 애써 무시하고 있는데 지난주에 있던 회식 때 일이 터졌다. 모든 부서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일순간에 우리 부서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 받는거 같더니 분위기를 잡고

 

 

“ 얀진씨 많이 취한 거 같은데? 그만 들어가 보는 게 낮지 않겠어? ”



“ 그러네 얀진씨 취했네 그만 들어가 보세요. ” 

 

 

“ 근데 취한 여자를 혼자 보내기는 좀 그렇지 않나? 아 맞다 얀붕씨. 얀붕씨 얀챈동 살죠? 잘됐네에! 얀붕씨가 얀진씨 좀 데려다줘요. ” 

 

 

“ 네? 제가 왜...? ” 

 

 

“ 아이 남자가 그러면 안 되지~ 취한 사람 그냥 보낼 거야? 위험하게? ” 

 

 

“ (하아 씨발...)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 

 

 

얀붕이는 마지못해서 얀진이를 데리고 식당에서 나왔다. 

 

 

“ 얀진씨 집이 어디예요? 얀챈동 산다면서요 ” 

 

 

“ 저 은성아파트 살아요.... 근데 얀붕씨 좀 아쉬운데 저희끼리 한잔 더 할까요? ” 

 

 

“ 아니요 많이 취하신 거 같은데 그냥 들어가세요. ” 

 

 

“ 저 아직 멀쩡한 데에... 히 ” 

 

 

“ 아 저기 택시 지나가네요 택시이! ” 

 

 

“ 아 저 진짜 괜찮은데ㅔ! ”



얀붕이는 얀진이를 택시에 태우고 반 강제로 보내버렸다. 

 

 

이제는 이런 일까지 벌이네 제대로 설계에 말려 든 거 같다.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한다. 이제 어떻게 하지.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할까? 

 

 

다음날 회사 

 

 

“ 얀붕씨 어제 얀진씨 잘 데려다줬어? 둘이 좋아 보이던데? 둘이 한번 만나보는 건 어때? ” 

 

 

“ 그래요? 근데 저 저번에 소개팅 나가서 만나는 사람이 생겨서요. 아쉽네요. ” 

 

 

“ 에이 거짓말 내가 옆자리라서 아는데 얀붕씨 뭐 연락 주고받는 사람 없던데? 그리고 맨날 퇴근하면 집 가는 사람이 누굴 만났었을 시간이 어딨어? ”

 

 

그렇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7년이 조금 넘어가는데 생활패턴이 집 회사 집 회사 이러다 보니 이 말은 사람들이 전혀 안 믿었다. 이 방법은 실패한 거 같다. 그렇다면 그냥 아예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할까? 뭐, 실제로도 없긴 하지만. 

 

 

“ 근데 얀붕씨는 결혼 안 해? 낼 모래면 서른 중반인데 슬슬 준비해야지? ” 

 

 

“ 아 저는 혼자 사는게 편해서요. 저는 혼자가 좋아요. 결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 

 

 

“ 에이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평생 혼자 살다 늙어 죽게? 그럼 진짜 힘들다? 지금은 괜찮을지도 몰라도 나이 먹으면 얼마나 쓸쓸한데! 총무부 최부장 봐봐! 50살이 넘도록 결혼도 못해서 혼자 사는데 얼마나 비참해 보이는데! 더 나이 먹기 전에 빨리 하는 게 좋다고. ”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역시나 안 통했다. 대체 그 미친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닌 건지는 모르겠는데 회사사람들을 단단히 포섭시켜 놓은 거 같다. 더 늦기 전에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안 그러면 점점 선을 넘어와서 눈 깜짝할 순간 빼도 박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 이번에는 내가 빚이 많다고 할까? 

 

 

“ 저번에 말 못 드렸는데 제가 비혼주의인 이유가 사실 저 집안에 빚이 좀 많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말아 드셔서 빚을 많이 지셨는데 아직도 갚고 있는 중입니다. ” 

 

 

“ 아니 얀붕씨 그런 거였어? 정말 딱하네. ” 

 

 

“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전혀 몰랐네.... 힘들겠어. ” 

 

 

이번에는 먹혀든 건가? 나이스! 

 

 

“ 근데 얀붕씨 좀 나쁜 방법이긴 한테 그럼 돈 많은 여자한테 시집가서 빚 청산하는 게 어때? ” 

 

 

“ 아 그런 방법도 있긴 하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자주 쓰는 방법인데 남자라고 못할 법이 있나? ” 

 

 

“ 그거 알아? 이건 비밀인데 아니 글쎄 관리부 얀진씨 알지? 얀진씨 아빠가 여기 사장이라던데? ” 

 

 

“ 와 진짜요? 어쩐지 둘이 좀 닮은 거 같더니만! 얀붕씨 그럼 얀진씨 어때요? 이참에 취집 한번해서 인생 한번 펴봐요! ” 



“ 하하... ”

 

 

그 오크년이 여기 회사 사장 딸이었어? 

어쩐지 그러니까 살이 뒤룩뒤룩 쪄있지 사장새끼가 귀하다고 어릴 때부터 잔뜩 먹이면서 키웠나 보네 아이 씨이팔. 이번 방법도 실패다. 차라리 내 이미지 깎아 내리면서 막아볼까? 

 

 

얀붕이는 다음날 종이에다가 애니 캐릭터 사진을 인쇄해와서 자기 자리 파티션에다가 붙여 놨다. 

 

 

“ 선배 선배 이것 좀 봐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캬루인데 귀엽지 않아요? 정말 이런 여자라면 평생 같이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 

 

 

“ 어... 얀붕씨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처음 알았네..... ” 

 

 

“ 맞아요 저 이런 거 좋아해요! 캬루 꼬리가 정말 너무 귀여워요 캬루 고양이귀도 너무 사랑스러워요 캬루 볼따구 잡아당겨보고 싶어요 캬루랑 같이 랜드솔 여행 다니고 싶어요 캬루한테 벌레요리 먹여 보고 싶어요 캬루 머리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캬루랑 같이 햄버거 먹으러 가고 싶어요 캬루랑 같이 배신해보고 싶어요 캬루랑 같이... ” 

 

 

“ 얀붕씨가 이렇게 진심인 줄은 몰랐네... 이런게 그렇게 좋구나.... ” 

 

 

“ 얀붕씨 이거 서류 좀 부탁해요. 어 이게 뭐야? 뭔 여자예요? ” 

 

 

“ 아. 얀붕씨가 좋아하는 여자래. ” 

 

 

“ 아.... 얀붕씨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어 근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 이거 옆부서 얀진씨 닮지 않았어요? ”



“ 아 그러네! 좀 닮긴 했네. 나도 좀 익숙해 보였거든! 얀붕씨 이런 여자랑 같이 살고 싶다고 그랬죠? 굳이 멀리서 안 찾아봐도 되겠네요. 한번 가까이에서 잘 찾아봐요ㅎ. ” 

 

 

이런 시발 미친 새끼들 이게 어딜 봐서 그 오크년이랑 닮았다는 거냐? 두께 차이도 장난이 아닌데? 그년 얼굴 평수가 캬루 두 명이 그 오크년 얼굴에서 누워서 자도 평수가 남을 거 같은데? 아니 진지하게 이 새끼들 그 오크년 한테 돈 받았나?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얀붕이는 머리도 식힐 겸 퇴근 후 회사 근처 술집에 갔다.

 

 

이제 진짜 어떻게 하지....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본 거 같은데... 

차라리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해버려야 되나... 

그냥 회사를 그만둘까.... 

대체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내가 이 회사 들어올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하.. 

 

 

“ 걱정이 많아 보이네 얀붕아? 무슨 일 있어? ” 

 

 

“ 어 얀순이? 오랜만이네? ” 

 

 

얀순이는 내 직장 동기이다. 처음에 같은 부서로 발령을 받았었는데 나랑 나이도 같고 서로 의지해가면서 같이 버티며 친해졌던 그런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이 회사에서 7년 넘게 버틴 것도 어떻게 보면 다 얀순이 덕분이다. 얀순이는 나랑 다르게 일을 너무 잘해서 금방 승진해 다른 부서로 가버렸지만. 

 

 

“ 무슨 고민 있어? ” 



“ 아니야 별일 아니야. 요즘 총무부는 어때? ”

 

 

“ 맨날 똑같지 뭐. 근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데? ” 

 

 

“ 사실은 그게 말이지.. ” 

 

 

(얀붕이는 그동안의 일을 모두 다 말했다) 

 

 

“ 아니 너도 그런 일을 겪고 있었단 말이야? ” 

 

 

“ 너도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너도 그런 일을 겪은거야? ” 

 

 

“ 그 늙다리 새ㄲ 아 아니지 총무부 최부장 알지? 우리 부서에서도 나랑 그 최부장이랑 엮기 시작했어. 지금이라도 빨리 장가보내야 된다면서 아니 내가 왜 그런 똥차랑 엮이는 건데! 진짜 너무 힘들어 죽겠어. ” 

 

 

“ 하다 하다 최부장이랑 엮는건 선 넘었긴 했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래서 얀순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 

 

 

“ 음... 차라리 우리 둘이 만나고 있다고 하면 어때? 이러면 믿어주지 않을까? ” 

 

 

“ 너랑 내가? ” 

 

 

“ 이 방법밖에는 없는 거 같아 내가 봤을 때 지금은 어떤 방법도 안 통해. 어차피 얀붕이 너 비혼주의라며 그냥 적당히 둘러대고 대충 연기만 하고 서로 건드리지 말기로 하자 어때? ”



얀붕이는 천천히 생각해 봤는데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는 존재를 만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에 실존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데, 어떤 사람이 과연 태클을 걸까? 

 

 

“ 음 좋은 거 같은데! 그렇게 하자! ” 

 

 

“ 좋아! 회사사람들한테는 내가 먼저 티 낼게! ” 

 

 

얀붕이는 드디어 모든 산을 다 넘었다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 오크년이랑 엮일 일은 없겠지? 

이제 마음 놓고 회사 다닐 수 있는 거겠지? 

그동안 마음고생 너무 심했는데 역시 동기 좋다는 게 뭐야아! 이렇게 쉽게 해결될지는 몰랐네.  

 


얀붕이는 요 근래에 들어 가장 신나는 출근길이었다. 

 

 

“ 저 왔습니다! ” 

 

 

“ 아 얀붕씨 왔어요? 아니 얀붕씨 왜 그 동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 아 그거요? 끝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들켜 버렸네요. ” 

 

 

“ 진짜 처음에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얀순씨랑 결혼하신다면서요? ” 



“ 네 맞아요 결혼. 네? 결혼? ” 

 

 

“ 아니 이런 좋은 소식을 청첩장 주면서 이제서야 말하면 어떻게 해요! ”

 

 

얀붕이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몰카 하는 건가? 

 

 

“ 나는 눈치채고 있었어 둘이 신입일 때 꼭 붙어서 다니더라고! ” 

 

 

“ 맞아요 저도 옆에서 봤는데 같이 일하는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더라고요. ” 

 

 

“ 저번에 구내식당에서 둘이 식사하는 거 봤는데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 ” 

 

 

“ 얀붕씨가 먼저 고백하고 프러포즈도 얀붕씨가 했다면서요? 보기보다 적극적이시다~! ” 

 

 

“ 결혼 생각 없다면서 허. 참내. 일단 축하해요. ” 

 

 

출근하자마자 모든 사람들한테 축하를 받고 있다. 

뭔가 잘못되어도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 

 


얀붕이는 곧바로 총무부로 뛰어가서 얀순이를 데리고 나왔다. 

 

 

“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 계획을 좀 바꿔 봤어. 이러면 이제 퇴직할 때까지 아무도 우리를 안 건들이겠지? ” 



“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해버리면! ” 

 

 

“ 왜. 그럼 무르게? 이제 와서? ”

 

 

나는 아무래도 또 다른 설계에 말려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