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교실 뒷편의 문이 열렸다. 푸석한 머리와 말라비틀어진 입술이 인상적인 얀순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얀순이의 쇄골은 푸르게 멍이 들어있었고, 팔에는 삶을 자주 비관하곤 했는지 수평방향 칼자국이 여러 개 나있었다.


반 친구들은 얀순이를 기피했다. 말도 적고, 음침한 그녀는 반 아이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여자의 타입이 분명 아니었다. 되려 그들은 얀순이를 괴롭히기도 했다. 때리고, 빵을 사오도록 하고, 창피를 줘가면서까지.


얀순이는 말 없이 자리에 앉아 가방을 책상에 걸었다. 그러고선 팔을 베게삼아 책상 위에 엎드렸다. 잠은 이미 충분히 집에서 자고 온 상태였지만, 얀순이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편이 없는 자신의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의 현 상황을 인정하기보다는, 피곤해서 잠을 자려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먼저 선을 긋고 학우들의 접근을 막는게 그녀의 입장에서 더욱 달콤한 선택지였던 것이었다.


조례 시간,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은 간단하게 학생들의 안부를 묻고서는 전학생을 한 명 소개했다.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어요.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하세요~"


전학생의 이름은 얀붕이, 그는 강한 인상을 가진 다부진 체격의 사내였다. 그는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생략하더니 뻘쭘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며 얀붕이를 얀순이의 옆에 앉혀두었다. 아이들은 얀붕이의 몸을 보고선 시비가 걸릴까 두려워 시선을 피하고 있는 상태였다.


"잘 지내자."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어색한 말투로 인사했다. 얀순이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푹 늘어졌다. 얀붕이는 쇄골의 멍을 슬쩍 보고선 얀순이가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얀붕이는 1교시 쉬는 시간에 얀순이에게 쇄골의 멍에 대해 묻기로 마음 먹으며, 우선적으로 학교의 일진들로부터 얀순이를 보호하는데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1교시 쉬는 시간,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다가갔다. 얀순이는 쉬는 시간에도 엎드려 있었다. 얀붕이가 얀순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한 남자아이가 바로 얀순이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얀순이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따악-"

"아!"

"야, 내 숙제 제대로 했냐?"


그러자 얀붕이는 곧바로 일어나 금태양을 밀어냈다.


"-"

"윽, 이 새끼가! 너.. 어... 누구세요?"

"전학생이다."

"아, 전학생이야? 신경 쓸 거 없어. 우린 친한 친구거든."


금태양은 전학생 얀붕이의 덩치를 보고 움찔했지만, 능청스러운 말재간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얀붕이는 얀순이와 금태양 사이를 가로막으며 얀순이를 지키려했다. 얀붕이는 뒷쪽에서 얀순이의 조용한 훌쩍거림을 들었다. 분명히 이 둘은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친구를 때리면 안되지."

"전학생, 왜 이래? 우린 친구라고. 친구 사이에 숙제 좀 부탁하는게 잘못이야?"

"방금껀 전혀 친구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에이, 설마. 그럼 너는 전혀 고등학생처럼 보이지 않는데?"

"..."


얀붕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금태양을 쏘아보았다. 몇초간의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얀붕이가 입을 떼며 정적이 깨졌다.


"물러나."

"워허우, 알았어. 이 황소같은 샊.. 아니, 아니, 난 너가 정말 존경스럽다고."

"꺼져, 당장."

"알았다, 알았어. 나 갈게. 간다?"

"드르륵-"

"-!"

"아오, 이 씨발롬의 학교를 전부  쏴죽이던가 해야지.."


금태양은 마지막까지 깐족거리다 교실을 나갔다. 그러나 스스로 그냥 나가기엔 가오가 상했는지, 교실문을 세게 치닫고서는 씩씩대며 반을 나갔다. 전학생의 압승이었다. 바깥에서 금태양의 투정이 들려왔다. 다른 학생들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존재하던 질서가 깨지는 장면을 보고서, 아마도 몇몇은 새로운 권력에게 줄을 서야겠다는 다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얀붕이는 얀순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야, 쟤들 갔다."

"킁, 크흡, 큽, 고마워.."


얀순이는 최대한 애써 괜찮은 척 하려 눈물을 참았다. 그러자 곧이어 얀붕이가 휴지를 들고 왔다.


"자."

"응."


얀순이는 얀붕이가 가져온 휴지를 받아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고선 코를 풀었다. 얀붕이는 얀순이를 향해 말했다.


"난 저런 애들 안좋아해."


얀순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휴지로 눈물을 연신 닦다가, 다시, 늘 그래왔듯 책상 위에 엎드렸다.


2교시는 체육 시간이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나가 체육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체육 선생님이 도착했다. 체육 선생님은 체조를 시키고선 대충 자유시간을 하사하고는 운동장 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하기 시작했다.


"자, 알아서 공 차라~"

"네!!"


학생들은 기자재실로 달려가 제각기 공을 꺼내 원바운드, 풋살 등 자기들이 원하는 운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얀붕이는 얀순이의 곁을 지켰다. 1교시 쉬는시간의 금태양처럼 다른 학생들 중 분명 얀순이를 때리려는 학생들 또한 있을 터였다.


그러나 얀붕이의 직감은 절반만 옳은 것이었다. 얀붕이의 체격과 강한 인상을 본 학교의 일진들은 평소처럼 얀순이를 괴롭히지 못했다. 그들은 속으로 얀순이가 분명히 조폭이나 보디가드를 고용했으리라 추측하며, 감히 얀순이에게 덤벼들 수 없었다.


그때,


"휘잉-"

"-"

"아!"


축구공 하나가 얀순이의 왼쪽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가만히 앉아있던 얀순이가 도끼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황한 얀붕이도 주위를 같이 둘러보았다. 축구를 하던 남자 무리와 구경하던 여자 무리가 서로 낄낄대면서 얀순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학교 축구부 에이스 얀준이가 자기 무리 남자애들 몇을 데리고 얀순이 앞으로 다가왔다.


"미안, 인사이드가 잘못 나간 것 같네."


얀준이는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얀붕이에게 손을 건넸다. 얀붕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정색했다.


"어이, 사과는 얀순이에게 해야지."

"얀순이? 아, 니 친구야?"

"너희는 얀순이 친구가 아닌가보지?"


얀붕이는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얀준이 바로 앞으로 다가섰다. 얀준이는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다. 서서히 남자애들이 얀붕이의 앞으로 다가섰다. 얀붕이보단 아니었지만, 꽤 체격이 좋은 축구부 부원들이었다.


"왜, 친구가 아니면 때리게?"


얀준이는 피식 웃으며 얀붕이를 도발했다. 뒷쪽에는 어느새 20명 가까이 되는 남자애들이 모였다. 체육 선생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힐끔 쳐다봤지만, 별 일 아니겠거니 생각하고선 이내 자신의 토토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병-신 찐따새끼 하나 보살펴주면 쟤가 너한테 대주기라도 할 거 같냐?"

"이야~ 얀준이 빠꾸없노!!"


성실한 청년의 얼굴을 띈 얀준이의 입에서 험한 말이 흘러나오자, 근처 남자애들이 하나 둘 환호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얀붕이는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 얀순이를 바라보았다.


"야, 매점 가서 너 먹고 싶은거 좀 사와."

"어, 어... 어? 고마워.."


얀붕이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얀순이에게 건넸다. 얀순이는 말을 더듬다 이내 구깃구깃한 지폐들을 받아들고서 학교 안 매점으로 뛰어들어갔다. 얀순이가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얀붕이는 다시 얀준이를 바라보며 또박또박한 말투로 응수했다.


"덤벼, 쪽수 믿고 깝치지 말고."

"아, 그래? 용감하네 이 개  끼야!!"


얀준이가 한순간에 얼굴을 싹 바꾸고 주먹을 날렸다. 얀붕이가 부드럽게 슥 피하고선 얀준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퍽-!"

"억-"


얀준이의 상체가 고꾸라졌다. 얀준이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나왔다.


"조져!"

"이 씨발!!"


곧이어 얀준이 뒷쪽의 축구부원들이 얀붕이에게 달려들었다. 얀붕이는 가장 선두의 두 명을 차례로 때려눕혔다. 얀붕이의 펀치에 두 명이 그대로 기절하자 축구부원들의 기세가 주춤해졌다. 그러자 얀붕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쫄리냐? 븅신새끼들.."

"이 개새끼가!"


얀붕이의 도발에 넘어간 한 축구부원이 달려들자, 얀붕이는 그대로 목을 잡아 땅에 메쳤다. 굉음이 울렸다.


"쾅-!"

"윽!"

"뭣, 뭐야, 이 새끼들아! 빨리 안 흩어져?"


토토하다 그새 싸움을 발견한 체육 교사는 그대로 인파에 달려들어 싸움을 중재했다. 그제서야 축구부원들은 얀붕이를 노려보다 별수없이 흩어지게 되었다. 얀붕이는 가소롭다는듯 그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조롱했다.


"앞으로는 쪽수 믿고 나대지 마라?!"

"야, 조용히 안해?!"


체육교사는 얀붕이를 축구부원들과 분리시켰다. 나름대로 여러 해 교직 생활을 거치며 일궈온 자신만의 노하우였다.


"얀붕아, 이따가 잠깐 교무실 들러서 진술서 좀 쓰자. 알겠지? 첫날이니까 더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어."

"네, 알겠습니다."


체육교사의 말에 얀붕이는 금세 화를 수그러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얀순이가 크림빵과 과일 주스를 사들고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얀순이는 쓰러진 축구부원들과 얀준이를 보며 흠칫 놀랐다. 얀붕이는 얀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더이상 쟤네 너 못 괴롭히니까."

"..."


얀붕이는 얀순이를 향해 싱긋 웃어보이다, 곧 수업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교 건물 안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얀순이는 얀붕이를 뒤따라가며 옅은 미소를 살짝 지었다. 얀붕이는 보지 못했지만, 얀순이의 미소는 얀순이가 나름대로 얀붕이에게 마음을 열어간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점심시간, 얀붕이는 등교 첫날부터 진술서를 쓰고 밥을 먹던 상태였다. 혹여나 얀순이가 다시 괴롭힘을 당할까 눈에 힘을 주고 주위를 살펴보던 얀붕이는 소문이 퍼진건지 함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다른 학생들을 보며 내심 안심하고선 밥을 먹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얀순이는 쭈볏쭈볏 밥을 먹다가 잠깐동안 고민하더니 얀붕이를 보며 말했다.


"저, 아까.. 그... 그거.. 도와줘서 고마워."

"뭘, 친구면 돕는거지."


얀붕이는 얀순이의 말에 따봉을 치켜세우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자 얀순이는 볼에 홍조를 띄우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며 얀붕이의 눈을 이리저리 피하기 바빴다. 얀붕이는 밥을 계속 먹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그, 원래 쟤네들이 너 괴롭히는 애들이었어?"

"응? 아, 그게, 어... 맞아. 내가 좀 소심해서, 그, 걔네들이, 나 많이 괴롭혔어."


얀순이는 말하기를 꺼려하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얀붕이는 말없이 얀순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 나.. 중학생때도 왕따 당했어. 그, 걔 있잖아, 얀준이."

"얀준이가 널 왕따시켰단 얘기지?"

"그, 처음에는 잘, 그렇게 좀 대해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막, 이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더니, 자기랑 단둘이 술을 먹자고 하더라. 거절한 이후로, 막, 그냥 엄청 무서워졌어."


얀순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얀붕이는 묵묵히 얀순이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태양이도, 그, 얀준이 친구였어. 태양이는 엄청 잘나가는 애여서, 걔, 그 주변의 일진이라 해야되나, 그런 애들이 같이 날 왕따시켰어. 삥도 뜯고, 막, 엄청."


얀붕이는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을 얀순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줄테니까 앞으로 이걸로 눈물 닦아, 왠만하면 울지 말고."

"아, 응.."


얀순이는 손수건을 소중히 받아들어 눈물을 주섬주섬 닦고서는 자신의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다. 얀순이는 순수하게 오래간만의 내 편을 만났다는 점에 대해 내심 기뻐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나 자신을 괴롭히던 과거와는 달리, 얀붕이의 존재 하나만으로 얀순이는 보호받는다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자신만의 사랑이라고 해야할까, 얀순이만의 서툰 사랑이 꽃피우는 날이었다.


방과후, 얀순이와 얀붕이가 같이 하교하고 난 뒤였다. 양호실에서 깨어난 얀준이와 3명의 축구부원들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이 개년이, 육봉 하나 잡았다고 싸가지가 없어졌어."

"그러니까! 내 말이."


그들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향후 어떻게 그 둘을 조질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학교에 존재하던 질서는 얀붕이의 등장으로 깨진지 오래였다. 그들 입장에선 한참 전에 사라진 이상을 좆는 한 미치광이 때문에 자신들의 입지마저 불안하게 된 셈이었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금태양이 양호실에 들어왔다. 금태양은 양호 선생님께 생긋 인사하고선, 비참한 분위기의 축구부원들 앞에 섰다.


"아이고, 이 패잔병들아. 니네 쳐맞았다매?"

"뭐래, 병신 금발 새끼가."

"이 상황에서도 싸울 셈이냐?"


금태양의 조롱에 축구부원 하나가 발끈하자, 얀준이는 그를 말리고선 금태양을 쳐다보았다.


"그 새끼 진지하게 조질건데 좋은 방법 없을까?"

"그 쪽수로 졌는데 맞다이로 어떻게 이기냐?"

"이 새끼가 진짜!"

"아, 닥치라고."


금태양은 얀준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다른 축구부원 하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얀준이는 그를 보며 정색하곤, 다시 고개를 돌려 금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넌 뭐 뾰족한 수라도 있고?"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이상한거면 진짜 쳐맞을 준비나 해라."


얀준이의 경고에도 금태양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오히려 자신감 있는 모습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이간질을 시키는거지."

"이간질?"


얀준이와 축구부원들은 어리둥절하며 금태양을 바라보았다. 다들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금태양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하아, 얀순이 그 개년도 하루만에 그 덩치를 자기 호구로 포섭했잖아. 내가 봤을때 걔는 착한 아이 페티시 있는거 같거든?"

"좀 알아듣게 얘기를 해봐, 병신아."

"우리 쪽에서도 여자를 동원해서 그쪽에 사람을 붙이는거지, 도와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서."

"오, 그럴듯한데?"


얀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태양의 아이디어 찬성표를 내던졌다. 다른 축구부원들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얀순이는 사실 리플리 증후군 걸린 구라쟁이고, 여자애 시켜서 에어팟 훔친걸로 대충 꾸미면 얀순이년 나락가겠지."

"일리가 있어. 그 씨발련 횡설수설하는거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그러니까, 그 개호로잡년을 아예 박살을 내버리자고. 제대로 속은 그 덩치가 얀순이년을 추궁하면, 당연히 그 씨발년은 자기가 아니라고 하겠지."

"그리고?"

"씨발년이 발뺌한다며 여자애가 슥 이간질을 시키면? 그 덩치는 스스로 자기 좆집을 패겠지. 그 다음엔 그대로 학교에 찌르면 되는거야. 한 번은 그냥 넘어가도, 두 번은 그냥 안넘어가고 본보기로 징계를 먹이거든."

"이야, 개 천재네."


어느새 축구부원들은 금태양의 아이디어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얀준이는 한가지 못미더운점이 있다는 듯 금태양을 쳐다보았다.


"그럼 그 여자 역할은 누가 하지?"

"당연히 너가 구해야지, 병신아. 내 얼굴에 그런 충성스런 여사친들이 꼬일 거 같냐?"

"그럴 줄 알았다 이 씨발련아, 널 믿은 내가 죄인이지."


금태양이 당당하게 말하자, 얀준이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껄껄 웃었다. 이윽고 얀준이는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누구를 시킬지에 대해 서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몇일 뒤.


얀붕이의 아침은 얀순이와 함께 등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얀순이의 집이 마침 얀붕이의 집과 꽤 가까웠기에, 얀순이와 매일 같이 등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얀순이는 새로운, 그리고 유일한 친구와 매일을 함께하며 점점 자신감을 되찾아갔다. 얀순이의 허름한 헤어스타일은 어느새 수수하지만 나름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바뀌었고, 말라비틀어진 입술은 핑크빛이 감도는 탱탱한 입술로 변했다. 몸에서는 그동안 흔했던 멍자국들이 하나 둘 지워지기 시작했으며, 말투 또한 점점 말을 더듬지 않게 되어, 얀순이는 어느새 학교에서 꽤나 인기있는 학생으로 변하게 되었다. 어쩌면 얀순이의 아름다운 외모가 자충수나 다름없는 방치에 의해 그동안 가려졌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얀순이는 항상 얀붕이와 함께 붙어다녔다. 이미 자신을 괴롭히거나 방관하던 학생들이 몇일만에 태도를 바꾸고 친절히 고개를 숙이는 다른 남자 학생들에게 커다란 환멸감을 느낀 상태에서, 얀순이는 하루만에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들을 모조리 물리쳐준 얀붕이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남자로 보였다. 사실 얀순이가 머리를 자르고 기본적인 화장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얀붕이를 유혹하기 위해서였다. 이따금 얀붕이의 핸드폰에서 여자가 나오면 얀순이는 얄궂은 질투심에 핸드폰을 빼앗아 얀붕이의 곁에서 하루종일 자신이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의 급식실이었다.


얀붕이와 얀순이가 같이 밥을 먹던 어느 날, 얀붕이의 바로 옆에서 우연찮게 한 여학생이 넘어졌다. 그녀의 이름은 얀진이었다. 얀진은 얀준의 소위 말하는 여사친으로, 체육시간에 얀순이를 비웃던 여자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얀붕이를 엿먹이면 재밌으리라는 심보 하나로 얀붕이 근처에 접근한 첩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얀붕이가 이런 일들을 알 턱이 없었다. 얀붕이는 갓 전학온 신입생이었을 뿐더러, 얀진이는 당시 영향력 있는 학교 여자 일진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러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얀준이에게 결과만 듣고 복수를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얀진이는 얼짱 각도를 통해 최대한 얀붕이 근처에 넘어지며 근처 여자 무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여자 무리는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얀진이를 매도했다.


"아, 씨발련아!! 너 때문에 셔츠에 국물 튀었잖아! 아, 진짜 이 씨.."

"개찐따년이 진짜 좆같이 구네 씨발..."

"미, 미안해 얘들아.."


여자 무리의 매도에 얀진이는 할리우드 연기를 선보이며 눈에 눈물을 고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러나 얀순이는 어렴풋이 얀진이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었다. 얀진이는 마치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듯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뒷쪽에서 수족을 부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일진들의 괴롭힘을 받아본 얀순이 입장에서는 일진들의 입에서 여러번 오르내린 얀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와줘야 해."

"아냐, 쟤 일진이야. 그, 일부러 저러는거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것 또한 괴롭힘이야. 잠깐만 기다려봐."

"자, 잠깐만 얀붕아..!"


얀붕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얀진이와 여자 무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얀붕이는 커다란 키로 여자 무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지?"


얀붕이가 입을 열자, 여자 무리는 얀붕이를 트집잡으며 생떼를 부렸다.


"허, 막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거야?"

"막 아랫쪽이 울끈불끈 해?"


그때, 얀진이가 신호를 보내자 여자 무리는 얀붕이가 제대로 된 반박을 하기도 전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일사불란하게 도망갔다.


"착한 척 하기는, 등신."

"기쁨조 만들어서 맛있게 돌려먹어라 씨바라마~"


여자 무리가 도망가자, 얀진은 계획대로 얀붕이에게 감사를 표하며 유혹을 해오기 시작했다. 사랑에 서툴었던 찐따 얀순이와는 다르게, 여러 문신돼지국밥육수충들을 조련해온 짬밥이 있는 얀진은 능숙한 실력으로 고양이처럼 천천히 얀붕이에게 다가갔다.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나 내일 약속 없는데,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 내가 살게."

"괜찮아, 보상을 바라고 한 일 또한 아니니까."

"그럼 연락이라도 자주 하자. 누가 나 괴롭히면 너가 도와줘."


얀순이는 얀진이의 능숙한 유혹 스킬을 보며 남자를 빼앗길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자 얀순이는 다급하게 얀붕이의 등 뒤를 껴안았다.


"얀붕아! 내 곁에 있으라고 했잖아, 진짜.."

"어머머, 여자친구야?"


얀진이는 코웃음을 치며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얀붕이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강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앗, 아니야. 나는 연애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어."

"그럼 여친 없는거네? 전화번호 좀 줄래?"

"엇, 어, 어, 그러지 뭐."


당황한 얀붕이는 얼떨결에 얀진이에게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다. 이윽고 얀진이가 얀붕이에게 인사하고 나서 급식실을 나가게 되자 얀순이는 왜 그랬냐며 얀붕이의 멱살을 잡고 울상인 얼굴로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왜 그랬어? 쟤 좋은 애 아니라니까!"

"얀순아, 침착하고 내 말을 좀 들어봐."

"내가 왜! 내가 왜!"


얀붕이는 얀순이를 진정시키고는 얀순이를 향해 몇가지의 충고를 들려주었다.


"난 항상 3가지의 미덕을 지키려고 노력해. 공감의 미덕, 양보의 미덕, 배려의 미덕. 사람은 타인이 처한 상황을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가끔씩은 내가 가진 것을 베풀며 호의를 노력하되, 타인이 어려움에 처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서야 하는거야."


얀순이는 아직도 훌쩍거리며 얀붕이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얀붕이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 또한 어릴적에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있어서 얀순이 너와 얀진이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동안 내가 길러온 힘 덕분에 위험한 상황에 처한 너와 얀진이가 도움을 청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나서서 너희들을 지켜낼 수 있었어."

"그렇다고 해도, 난, 나는.."

"너도 나처럼 다른 사람을 도왔으면 좋겠어."


얀붕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얀순이를 바라보았다. 얀순이는 단념하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얀순이는 어딘가 마음 속 찝찝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사랑에 서툰 얀순이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하였기에, 아마 얀순이 스스로도 꽤 혼란스러움을 겪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얀진이와 얀붕이는 하루가 다르게 친해졌다. 얀진이는 허구한 날 얀붕이에게 전화하여 여러 유명한 데이트 코스, 이를테면 영화관이나 극장, 공원 및 유원지 등을 신나게 유람하였고, 얀진이가 무서웠던 얀순이는 서서히 얀진이와 가까워진 얀붕이와도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얀진이는 몇일 간격의 텀을 두고 스킨십의 범위를 더더욱 늘려나갔다. 처음에는 손 잡기, 그 다음은 머리카락 만지기,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얀붕이와 팔짱을 끼는 단계까지 진출하였다. 사랑에 서투른 것은 얀붕이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여자의 애정공세에 마음이 넘어가버린 얀붕이는 어느덧 얀순이는 뒷전이고 얀진이와 함께 다니는 날이 점점 더 많아져갔다. 얀순이와 함께했던 등교는 차츰차츰 얀진이가 그 자리를 꿰차버렸다. 


"얀붕아.."


얀순이는 집에서 얀붕이가 준 손수건을 주며 스스로 고찰하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얀진이보다 무엇이 못났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계속 반복하던 얀순이는, 매일 울다가 잠에 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의 방과후였다. 저녁 하늘이 시원한 밤공기로 가득찬 날이었다.


얀진이는 얀붕이와 함께 유원지의 관람차를 타고 있었다. 얀진이는 오늘 얀붕이에게 고백해서 얀붕이를 자신만의 남친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재미로 참가한 복수였지만, 얀진이에게 있어서 얀붕이는 정말 완벽한 이상형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얀진이는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와 얀붕이의 무력을 높이 사,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끝나고 난 뒤 모든 것을 잃은 얀붕이를 구슬려 완전히 자신에게 복종하는 충견으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얀진이는 관람차 안에서 얀붕이의 곁을 파고들며,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서 얀붕이에게 속삭였다.


"있잖아 얀붕아, 나 요즘 너 생각 많이한다?"

"그래?"

"그냥 너가 나 구해준게 너무 고마워서, 항상."


얀진이는 씨익 웃으며 얀붕이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너가 좋아, 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어? 어, 어. 얀진아, 그건 좀 당황스러운데."


그러나 얀붕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얀붕이는 새빨개진 얼굴로 몇초간 눈알을 굴리다 말을 더듬다 결국엔 얼버무렸다. 얀진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얀붕이에게 말했다.


"진심이야? 너가 여기서 거절한다면 우린 영원히 끝이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그치만, 어.."

"좋다면 좋다고 말해."

"그래, 어.. 어, 어. 너가 좋아."

"좋았어, 자기야. 나도 널 사랑해..."


얀붕이가 마지못해 수락하자, 얀진이는 얀붕이의 다리 위에 올라타 얀붕이와 입을 맞추었다.


"쪽-"

"...!"

"으읍, 푸흡. 뭐하는 거야!"

"사랑의 입맞춤?"


얀붕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얀진이를 쏘아보았다. 얀진이는 얕게 웃다가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키스 처음해보는 것도 아니고 뭘 새삼스럽게.."

"처음해본다고, 진짜.. 으윽."


얀진이는 자신의 입맞춤이 얀붕이의 첫키스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깜짝 놀라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진짜야?"

"그럼 거짓말을 하겠어 내가?"

"그거 듣기 좋네, 내가 니 첫키스 대상이라니."


얀진이는 다시 얀붕이 옆에 앉아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에게만 충실해야돼, 자기야."

"으, 응..."


얀붕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얀진이는 얀붕이를 꼭 껴안았다. 정말 달콤하지만, 어쩌면 거짓된 사랑의 시작이었다.


몇 십 분이 지나고, 오늘도 혼자 집으로 하교한 얀순이는 얀붕이의 얀톡 프로필을 살펴보다 상태메시지와 프로필 사진이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얀붕이의 프로필은 그 여우같았던 얀진이가 얀붕이를 껴안고 있는 사진으로 바뀌었고, 상태메시지엔 얀진이와 얀붕이의 새출발을 알리는 달콤한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으흑, 으흑, 으아아..."


얀순이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는 자신이 혐오하고, 자신을 혐오하는 한 여자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얀순이의 서툰 사랑은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채, 짝사랑으로 끝나게 된 것이었다.


"내가 먼저 사랑했는데.."


얀순이는 얀붕이의 얀톡 프사를 확대하며 얀붕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구해줄 것 같은 그 눈빛은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얀순이의 소유가 아니었다. 얀순이는 그에게 있어서 지켜줘야 할 한 소녀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얀순이는 예전처럼 말라비틀어진 머리와 퀭한 얼굴을 하고 학교로 등교했다. 학교의 학생들은 그가 같은 얀순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 얀순이를 괴롭히던 일진들은, 얀붕이가 더이상 얀순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선 얀붕이가 얀진이를 만나러 간 사이를 틈타 다시금 괴롭히기 시작했다. 얀붕이가 있을때는 정말 단순한 형식적인 관심만이 얀순이에게 떨어졌고, 자신에게 친절하던 그 학생들은 다시 얀순이에게 잔혹한 집단괴롭힘을 이어갔다. 얀순이의 자신감은 정말 빠르게 떨어졌고, 얀순이는 다시 말을 더듬으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거진 몇 주만에 이루어진 얀순이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그럼에도 얀순이는 조금이나마 행복했다. 자신의 옆에 얀붕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얀순이는 조금이나마 행복했다. 조금이나마..


그때였다.


"드르륵-"

"야, !"


얀붕이가 얀순이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교실로 들어왔다. 얀순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빨리 에어팟 이리 내."

"그, 얀붕아,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이리 내라고."

"이리 내!"


얀붕이는 화가 끝까지 난 표정으로 얀순이 앞에 서있었다. 얀순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얀순이의 마음은 마치 갈기갈기 찢어진 행주와도 같았다. 얀붕이의 옆에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서있는 얀진이의 표정은 마치 비수처럼 얀순이의 순정을 찢어놓았다.


"은혜를 뒤통수로 갚아? 아무리 그래도 너는 그러면 안되지!"

"그래, 얀순아. 너 들어보니까 리플리 증후군이라며? 그동안 잘도 거짓말을 치고 다녔겠다?"

"아, 아냐, 으, 으아, 으아아앙-"


얀붕이가 버럭 화내자 옆에 있던 얀진이가 거들었다. 얀순이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한 여학생이 얀순이의 뺨을 때렸다.


"짝-"

"좆같은 년아,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얀순이는 곧바로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얀붕이는 씩씩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누군가가 자신을 괴롭히면 얀순이 본인을 지켜주리라 생각했던 얀붕이는 이미 차갑게 돌아선 상태였다. 


"흐흐, 으흐흐, 흐.. 얀부, 얀붕, 얀붕아..."


얀순이는 속으로 세상을 저주하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림에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얀순이의 인생은 괴롭힘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끝에서 바라본 빛엔 얀붕이가 있었다. 그러나 얀순이는 그 빛을 잡지 못했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했다. 정확히는 사랑을 빼앗겨 버렸다. 그럼에도 얀순이는 아직도 얀붕이를 사랑했다. 자신이 본 유일한 빛이었던 얀붕이의 앞에서 비참한 꼴을 보이기는 싫었다.


"너희들 전부 다 똑같구나."


얀순이의 비참한 한 말에 교실에 있던 모두가 얀순이를 바라보았다. 시선들이 따가웠다. 눈알 하나하나가 강철 가시와도 같았다.


"그래, 너희들은 나를 싫어하는구나. 내가 그렇게 싫구나. 내가 사라지길 바라는구나."


얀순이는 미친듯이 깔깔대더니 이윽고 곧장 교실을 탈출해 옥상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 씨발련 잡아!"


얀진이의 외침에 얀붕이와 다른 학생들은 얀순이를 잡으러 옥상으로 가는 얀순이를 쫓았다. 이윽고 옥상에 도착하자,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한 명의 소녀가 옥상 난간 앞에 서있었다.


"야, 얀순아. 이건 아니지!"


얀붕이가 소리쳤다. 얀순이는 뒤를 돌아보더니 얀붕이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더듬거리지만 나름대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야, 얀붕아. 너도, 너도.. 그건 아니야. 아닌거야."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화해하면 되잖아!"

"자기야, 뭐해? 그냥 죽여버려!"


얀진이가 소리치자 얀순이는 잠깐동안 고개를 숙이더니, 품에서 소중히 간직하던 손수건을 꺼내 얀붕이에게 건넸다.


"야, 얀붕아. 나, 나 진짜 너 조, 좋아했어. 하, 항상 품속에서 가지고 다니던 거야."

"이러지 마 얀순아, 나 이미 애인 있어."

"너, 너 말대로, 왠만하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그게, 그게.."


얀붕이는 자신이 얀순이에게 줬던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군데군데 눈물이 굳은 흔적이 보였다.


"얀진이랑, 그, 행복한 모습을 보니까, 잘 안됐어. 나, 난, 아직도, 널 사랑해."


옥상엔 어느덧 수십명의 학생들이 모여든 상태였다. 얀순이를 잡으러 온 학생들과,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다고 들은 학생들이 섞여 얀순이와 얀붕이를 둘러쌌다.


"야."

"공감의, 미덕. 너, 너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정말 예쁜 사람이야."

"김얀순."

"양보의 미덕. 내,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그나마도 목숨 뿐이야."

"김순!"

"배려의 미덕, 너가 좋은 사랑을, 사랑을 하도록, 말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얀순이를 둘러싼 학생들마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사라져 줄게."

"돼!"


얀순이가 난간으로 달려갔다. 얀순이의 몸이 붕 떴다. 얀붕이가 달려갔다. 얀순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탁-"

"앗!"


얀붕이가 기적적으로 얀순이의 손을 잡았다. 얀순이가 소리질렀다. 난간엔 얀순이가 얀붕이의 손을 잡은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뭐해 자기야! 계속 손잡고 있을거야?"

"아니, 그래도 사람 목숨은 구해야지!!"


얀진이가 소리치자 얀붕이가 대꾸했다.


"자기,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랑 헤어지고 싶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죽일 순 없어!"

"그 손 놓으란 말야!"

"좆까!"


얀진이는 씩씩거리며 얀붕이에게 다가갔다. 그순간, 얀순이가 중얼거렸다.


"아직도, 아직도 널 사랑해 얀붕아.."


얀붕이는 얀순이의 말을 듣고선 엄청난 힘으로 얀순이를 들어올렸다. 죽다 살아난 얀순이는 헥헥대고 있었다. 얀진이가 얀붕이의 뺨을 때리려하자, 얀붕이는 얀진이의 손목을 탁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잘못된 거야."

"이, 이...!"


얀진이는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얀순이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얀진이를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자, 동작 그만!!!"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여인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흰 가운이 펄럭였다. 여인의 손에는 스마트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귀여운 애새끼들 장난인줄 알았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


여인은 스마트폰을 꾹 누르더니, 이내 한 녹음 파일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넌 뭐 뾰족한 수라도 있고?.."

"...이간질을 시키는거지..."

"...우리 쪽에서도 여자를 동원해서.."

"...얀순이는 사실 리플리 증후군 걸린 구라쟁이..."


얀붕이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선 얀진이를 바라보았다.


"사실이야?"

"아냐, 자기야. 저런 가짜 파일을 믿는거야?!"


얀진이는 악에 받친 표정으로 얀붕이에게 대꾸했다. 여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옥상엔 얀준이와 금태양이 올라왔다. 학교 대부분의 아이들이 올라간 상태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차 올라온 것이었다.


"어, 양호쌤?"

"이런, 너희들을 반길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여인은 고개를 돌려 두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얀준이와 금태양은 녹음 파일을 듣더니 얼굴이 굳어버렸다. 여인의 이름은 얀희, 금태양과 얀준이가 양호실에서 작전을 짜던 상황을 지근거리에서 녹음한 양호 선생님이었다.


"정리하자면, 너희가 작전을 짜고 저 얀진이라는 여자애가 요원으로 투입된거네."

"이럴수가.."


얀붕이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대해 망연자실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얀진이는 얀준이와 금태양을 노려보다가 옥상 문을 박차고 휙 나가버렸다.


"그런 얘기는 집에서 하던가 했어야지, 너희들 이거 퇴학감인건 알지?"

"동의없는 녹취는 불법인거도 아시죠?"

"그래, 그렇게 믿어보던지."


얀희의 말에 얀준이가 퉁명스런 표정으로 대꾸했다. 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곧이어 얀준이와 금태양도 투덜거리며 옥상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얀순이의 앞에 얀붕이가 무릎꿇었다.


"잘못했다. 내가 잘못된 여인에게 속아 거짓된 사랑으로 너를 힘들게 한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화해하지 않아도 좋으니 내 사죄를 부디 받아주길 바래."

"얀붕아, 일어나."


얀순이는 얀붕이를 일으켰다. 얀붕이가 일어나자, 얀순이는 말없이 얀붕이를 꼭 안았다. 얀붕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널 용서할게. 그리고, 난 너가 내 곁에서 언제나, 영원히 있었으면 좋겠어."


얀붕이가 얀순이를 꼭 껴안았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다른 학생들도 하나 둘 무릎 꿇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괴롭힘 당했을 때 못본척 해서 미안하다!"


얀붕이와 얀순이를 제외한 옥상의 모든 학생들이 무릎꿇었다. 얀순이는 얀붕이에 곁에 서서 주위를 슥 둘러보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정말 너희들을 싫어했지만.."


"..정말로 너희들을 증오했지만..."


"...너희들 또한 누군가를 무서워했을거야. 나도 이해해..."


"...여기 있는 너희 모두를 용서할게."


얀순이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양호선생님 얀희는 피식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럼 얀준이, 태양이, 얀진이만 처벌하는걸로?"


얀순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곧 다시 웃으며 얘기했다.


"네, 그 씨발롬들은 용서가 안되네요."


.

.

.

.

.



얀붕이와 얀순이는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차이점이라면, 얀붕이는 공식적으로 얀순이의 영원한 남편이 되었고, 이전보다 더더욱 강해진 얀순이의 집착과 속박을 얀붕이가 당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얀붕이는 그러한 얀순이의 집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얀순이와의 연애를 속죄의 일부로 여기되 한편으로는 집착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얀진이와 금태양, 얀준이는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교 내부의 폭력과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방치한 교감과 교장은 꼭지가 돈 장학사의 철퇴로 옷을 벗어야만 했다. 얀진이는 퇴학당한 이후로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전전하다 결국 윤락업소의 종업원이 되었고, 금태양은 아르바이트를 하겠답시고 여러 일용직을 전전하다 결국 원양어선에 팔려 사실상 노예가 되어버렸으며, 얀준이는 그나마 좀 잘생긴 얼굴로 호빠에 취직해 나름 윤택한 삶을 살았으나, 내연녀의 남편에게 칼을 맞아 비참하게 거리에서 사망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얀순이의 사랑은 결과적으로 멋지게 꽃피우게 되었다. 얀순이는 하루하루를 매일 얀붕이의 곁에서 보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의 학생들은 사죄의 의미로 얀붕 얀순 커플에게 매일같이 맛있는 간식들과 음료를 바쳤으며, 학교는 언제나 사랑이 꽃피우는 행복한 공간이 되었다.


눈이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얀붕과 얀순은 서로 같은 시험장에서 수능을 치루고 나오게 되었다. 얀순이는 얀붕이를 데리고 모텔로 데려갔다. 얀순이의 꿈을 실제로 이루기 위함이었다.


"얀붕아, 가끔씩 너를 보다보면 정말 이게 꿈같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응, 순간 일어나면 너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갈 것 같아."


얀붕이는 침대 위에서 얀순이를 꼭 껴안았다.


"어디에도 가지 않을거야, 너의 곁에 있을게."

"좋아! 평생동안 내 곁에서 나만 사랑해줘."


얀순이는 키스는 다른 그랜드 개년에게 빼앗겼지만, 첫 경험만큼은 자신이 쟁취한다는 행복감에 얀붕이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 내 남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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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소설임. 피드백 환영

소설 총 분량 17336자

얀데레라고 보기엔 살짝 애매한데 의존형 얀데레라고 생각하고 봐주십쇼 ㅠㅠ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