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훌쩍-



"다녀왔습니다..."



"얀순이 왔... 어머, 왜 울고 있는거야?! 무슨 일 있었니?!"



또래 남자 애들보다 키가 훨씬 큰 장신이었던 탓에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아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딸 얀순. 



어려서는 자주 놀림을 받아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지만, 요즘은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었는데...



"엄마... 으흑... 히끅..."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엄마를 보자 어린애처럼 더 울먹이며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들어 안기는 얀순. 



"일단 울음 그치고 앉아서 엄마랑 천천히 얘기하자."



"훌쩍..."



그렇게, 간신히 진정된 얀순이와 함께 마련된 대화의 장. 얀순과 그녀의 엄마 두 여자 앞에 뜨거운 차가 놓여진 채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 얘기해보렴."



"나... 흐윽... 내가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나 싶더니만, 또 다시 울먹이기 시작해버린 얀순. 그녀의 엄마는 그런 얀순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얘기했다.



"전혀 안 그래. 우리 딸이 얼마나 대단한데~ 공부도 잘하지, 얼굴도 예쁘지..."



"그럼 뭐해! 얀붕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해서 얀붕이가 다른 여자랑 다니는 걸 몰래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데!"



"...뭐?"



자기 딸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다닌다는 말을 들은 얀순의 엄마는 귀를 의심했는지, 그대로 표정이 굳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얀붕이가...?"



"히끅... 날이 갈수록 연락도 잘 안하고... 잘 만나주지도 않고... 내가 보이는데도 버젓이 다른 여자랑 함께 다니고... 으아앙!!"



'이 자식이...'



처음 얀순이가 얀붕이를 데려와 자신에게 인사 시켰을 때 얀붕이 더러 얀순이를 잘 부탁한다고 한 지가 아직 몇 달 조차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사태가 벌어진것에 대해, 얀순의 엄마는 서서히 안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엄마... 으흐윽... 흑... 나, 나 얀붕이 없으면 안돼... 어떻게 해야 돼...?"



자신의 두 손을 붙잡으며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애처롭게 바라보며 애원하는 얀순. 그 모습을 본 얀순의 엄마는 두 눈을 감고 짧게 한 숨을 쉬더니, 곧 다시 눈을 뜨며, 얀순에게 말했다.



"얀순아, 옛날 엄마 얘기를 하나 해줄테니, 잘 들어보렴."



"으응...? 훌쩍..."



"사실 너도 그렇고, 우리 집안의 여자들이 키가 큰 건, 외가에서 내려오는 유전병이란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가 아빠보다 키가 크잖니?"



"어... 으응..."



"그래서 엄마도 옛날엔 키가 커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도 받고, 심지어 왕따도 당했었어."



"어... 엄마도...?"



"응. 그러다가, 아빠를 만난거야."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집중하며 경청하고 있는 얀순. 얀순의 엄마는 그런 얀순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와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만났는데, 아빠는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매일 같이 날 괴롭히는 애들에게서 엄마를 구해주고,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따돌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에 도움을 줬지."



"그, 그래서... 그렇게 쭉 이어져서 아빠랑 결혼한거야?"



얀순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는 얀순의 엄마.



"아니. 그때 당시 아빠를 좋아한 엄마가 아빠에게 고백했지만, 아빠는 거절했어."



"에엑...?"



"이미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지. 정말 비참하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니."



"그... 근데 아빠랑 결혼은 어떻게..."



후릅-



이후, 차를 한모금 마시더니, 탁자에 팔을 기대며,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얀순에게 가까이 다가간 얀순의 엄마.



"그래서, 엄마는 강제로 아빠와 기정 사실을 만들어버렸단다."



"기정... 사실?"



"이 유전병은 키는 물론, 힘도 남자를 훨씬 웃돌게 만든단다. 그래서 엄마는 그 당시 지내고 있던 집에 아빠를 유인한 다음, 강제로 덮쳤단다. 그래서 생긴 게 우리 딸이고. 후훗."



"......"



꽤 충격적인지,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은 얀순.



"그래도 지금 아빠 모습을 보면 꽤 만족하고 있잖니? 가끔씩 밤에 옛날 기분도 내보는데... 아무튼, 우리 집안의 여자들은 원하는 게 있으면 힘으로 쟁취했단다. 그건 엄마도, 할머니도, 이모도 마찬가지지."



"그... 그렇게는 못해! 그건 얀붕이한테 상처를 주는거잖아!"



"얀순아, 상처는 얀붕, 그 자식이 먼저 줬어. 버젓이 당당하게 바람을 피고 돌아다니는데, 이렇게 계속 가만히 있을거니?"



"그... 그치만..."



"얀순아, 엄마는 우리 얀순이가 무슨 선택을 내리든 존중하겠지만, 이것만 명심하렴."



그러더니, 얀순의 귓가에 입을 갖다댄 얀순의 엄마는, 작게 속삭였다.



"우리 집안의 여자들이 남자를 힘으로 잡아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란다? 지금까지 우리 집안이 이렇게 유지 되어 온 거야."



"그리고 이 방법이 아니면... 어떻게 얀붕이를 다시 데려올거니? 이대로 다른 여자한테 얀붕이를 뺏길거야?"



틱-



그 순간, 얀순의 머릿속에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




"네가 먼저 다 부르고... 웬일이야?"



얀순의 집 앞. 그곳에선 얀순과, 얀붕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서."



지금까지 말을 더듬으며 부끄러움을 타던 얀순이가 대뜸 아무렇지않게 말하는 모습을 본 얀붕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내 그러려니하고 넘어갔다.



"뭔데. 빨리 해 줘. 나 이따가 친구 만나러 가야 해서."



"중요한 이야기라 여기 서서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우리 집에 들어가서 하자. 오래 안 걸릴 거야."



"...그러지 뭐."



그렇게 얀순의 집 안으로 들어간 얀순과 얀붕. 이후, 얀순의 방에 들어온 얀붕이 얀순과 이야기 하기 위해 바닥에 앉으려던 찰나.



덥석-



"응?"



그런 얀붕의 팔목을 붙잡은 얀순. 이후.



"으, 으윽!!"



그대로 힘을 줘 자신의 침대까지 밀어내 얀붕을 눕히는 얀순.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시끄러."



"으윽... 끅..."



뒤늦게 얀순에게서 벗어나려 해봤지만, 누워있는 자신의 몸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그림자를 가진 얀순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너... 너 미쳤냐? 지금 이거..."



"그래. 어디 가서 여자한테 덮쳐졌다고 해봐. 과연 사람들이 믿을지."



"어...?"



"이젠 지쳤어. 너한테 무시당하는것도. 네가 바람피는것도... 이젠 우리 집안의 방식대로, 널 우리 집안의 사위로 만들어주겠어."



"내... 내가 미쳤다고 너랑..."



"네 의사는 상관없어. 어차피 넌 굴복하고, 우리 집안의 일원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저항 그만하고... 나랑 즐거운 거 해서 아이 많이 낳자? 그게 우리 집안을 부흥시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런 미친...!"



끼이-



"어머~♥ 이게 다 무슨 일이람~"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기 직전, 닫혀있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얀순의 엄마.



그 모습을 본 얀붕은, 살았다는 듯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얀순의 엄마에게 말했다.



"아, 아줌마! 마침 잘 오셨어요! 지금 얀순이가 미쳐가지고..."



"어머?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되지."



"...네?"



얀순의 엄마도 마찬가지로, 얀순처럼 얼굴에 그늘을 띄운 채, 눈을 가늘게 뜨며 싱긋 웃었다.



"장모님이라고 불러야지? 우리 사위~♥"



얀순의 엄마의 말에, 안도했던 표정이 망가지며, 그대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얀붕.



"난 우리 사위랑 얀순이가 얼마나 아이를 많이 낳을지 기대하고 있단다~ 그러니 부디 열심히 해주렴. 화이팅!"



"자, 잠깐만요. 아줌마..."



끼익- 탁-



하지만 얀붕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버린 얀순의 엄마.



"아아... 아..."



그 뒤 얀붕과 얀순이 남은 방 안에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교성과 비명만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