짹 짹 짹 ㅡ




내 의식을 심연 속에서 끌어올린건 기계식 알림음이 아니었다.



새들의 지저귐... 그것도 창 밖, 넘어에서 들려오는 자연 그대로의 목소리였다.




"....으응..."



요즘도 도시에 새 소리가 들렸던가?



"...."


반신반의하면서도 몽롱함에 몸을 뒤척인다.



".... 응?"



그러자 몸 전체를 파고드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머릿 속에 물음표를 띄운다.



"몸이.. 뭔가..."



뭐랄까.. 이 느낌....



마치 내 몸이 작게 축소된 것만 같은 생소한 느낌이었다.




"......"



허나 ㅡ



".....어?"



점점 또렷해져가는 사고와 함께 의문은 곧 불안감으로 변질 된다.



"잠깐...

?!"



이건 몸이 작아진 느낌이 아니었다....



진짜로 몸이 작아져 버렸다.



"허어 ㅡ!"



그 사실을 깨닫고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듯 이불을 거둬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ㅡ




"여.. 여기 어디야?!"




눈을 뜨자 마자 나를 반겨준 광경은.. 살아생전 처음 보는 건물 안 이었다.



아니 이건... 처음이라기 보단 다소 오래된 느낌이 물씬 들게 된다.




마치 옛날 중세시대 귀족들이 좋아했을 법한 고풍스러우면서도 단조로운 디자인.




"난 왜 여깄지??"



나는 분명 내 방에서 잠이 들었을 터 였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 것만 같은 상황에 혼란스러운 기분이 머리를 짓누른다.


"응?"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내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저게... 나?"


바로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이었다.


"....."


지금의 난.. 한 10년 정도 어려진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가..?"


게다가 본례의 나와도 완전히 다른 생김새였다.


자학 개그 같지만은... 어렸을 때의 나는 이리도 잘생긴 관상이 아니었는데..?



"아니.. 잠깐만.."


하지만 그 순간, 뇌리를 따갑게 스치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ㅡ




"이건... 아논이잖아?!"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악역 캐릭터였다.








◇◇◇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곳에 온지 몇 칠,


상황을 이해하는데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이 곳은 내가 현실 세계에서 즐겨 플레이 했던 '아카데미 판타지'라는 게임 속의 세상,



즉.. 이세계 전이라는걸 하게 되었다.




"... 여기 책은 하나 같이 두껍네, 아님 내가 작은건가?"



그리고 난... 게임 속의 등장인물인 아논 베네딕트.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귀족가의 외동 아들이자, 게임 내내 주인공 일행들을 지지고 볶을 쓰레기 캐릭터였다.




하지만... 어느 서사에서나 악역은 최후를 맞이하듯


아논 역시 고약한 짓을 일삼다 그에 걸맞는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걸 가졌지만.. 사람으로서의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에 끝내는 모든걸 잃어버리는 전형적인 악역이었다.




"으음...."




그렇다는건 새로운 삶이 시작되자 마자 위기를 마딱드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야 이대로만 있으면 내가 죽는건 시간 문제니까.


이 이질적인 세상에 적응 할 시간도 없이 중대한 과제가 생긴 격이었다.



"지도상으로 우리 영지가 여기부터 저기까지란 말이지?"




그나마의 다행이라면... 현재는 게임이 시작되는 시간선보다 한참 과거라는 점이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모습이나 수소문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는 게임이 시작되기까지 약 8년 전의 시간대였다.



이것은 별 것 아닌듯 하면서도 엄청난 매리트가 있는 시점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파멸은 면할지도 모를터,



"그럼 일단... 세상 구경 좀 나가볼까?"



그러니 지금부터 대비를 해야만 했다.









◇◇◇








따그닥 따그닥 ㅡ




말바굽 소리가 반복 될 때 마다 미세한 진동이 몸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



나는 창문을 통해 마차 밖의 광경을 내다보고 있는데.




"여기에선 이게 평화로운건가?"



시야에 펼쳐지는 모습들은 하나 같이 옛날의 방식과 기술력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일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


그런데 뭐랄까... 몸을 거북하게 만드는 이 생소한 느낌들은..




아마 이 세계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현실 감각이 둔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연극을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중세 시대 사극을 연기하고 있고, 나는 그것들을 관람하는 관람객인 것만 같았다.




"물론입니다, 도련님."



그런데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와중... 나를 안내하던 하인이 내 혼잣말을 질문이라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베네딕트가의 영지는 치안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아아.. 그런 설정이 있었구나.



솔직히 처음 알았다.




물론 아논의 선입견 탓 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살던 세계에선 베네딕트가의 평판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마 자식은 부모의 거울인데, 아들 녀석이 이 모양이어서야 부모는 오죽할까 라는 생각들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ㄱ.. 그렇군."


하지만... 하인의 말도 그렇고, 요 며칠간 관찰하고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베네딕트 가문 전체가 나쁘기보단 아논 이라는 존재가 독보적인 것 같았다.



하긴 게임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방식도 보면 전부 아논 개인에게만 주워지는 형벌만 있었지, 가문이 몰락했다거나 하는 언급이 없는거 보면... ㅡ



"응?"



그러던와중 내 시선을 사로 잡는 광경이 포착된다.





".... ㅡ!"



"... ......... ..!"




그것은 한 낡고 허물어보이는 가정집 앞에서 누군가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간절히 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봐, 저기 저건.. 무슨 상황이지?"




피해자로 보이는건 백발에 젊지만은 무언가 연세의 미가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 ...!!"



마차의 벽에 가로 막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진 모르겠으나 남자들에게 무언갈 다급히 설명하는듯한 분위기였다.




"아아~ 위법 입주자들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내 귀를 더욱 솔깃하게 하는 것은... 상황을 이해했다는듯 평온한 어투로 말하는 하인의 단어였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영지는 치안이 좋은 편입니다."


"허나 그만큼 도시세도 만만찮은 편이죠."



"저런 부류들은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그 혜택을 누리고자하는 족속들입니다."



그렇다는건 저것이 범죄의 현장은 아니라는건가...


그나저나 하인의 말엔 상당한 날이 서있었다.


"조사하면 알 수 있으시겠지만 보시면 전부 베네딕트가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지요."



아무리 우리 가문에서 고용된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같은 서민 신분일 텐데.



하지만 그런 동정도 잠시 내 세계에서도 불법 체류자 신분을 생각한다면 납득이 안되는 태도도 아니었다.



"저기 잠시.. ㅡ"



그래도... 여인이 너무 곤란해 보이는 나머지 중재의 목적으로 마차를 세우려던 그 순간 ㅡ




".....?!!"



나는... 보고야 말았다.



"쟤는...!"


여인 옆에서 울먹거리는 한 여자 아이를 ㅡ




"마차 멈춰..."



그 소녀를 목격한 순간, 내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져만 갔다.



"네..?"



"못 들었어?! 멈추라고!"



안 그래도 사악했던 인물인데, 절박함 마저 더해지니 목소리는 더욱 더 날카로워졌다.



"ㄴ.. 네...! 알겠습니다!




ㅡㅡㅡ ㅡ!



내 지시에 전진하던 마차의 속도는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덜컥 ㅡ!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난 반동이 가시기도 전에 자리에서 뛰쳐 내렸고..



"도련님...!"



무언가 잘 못되었음을 느낀 하인의 말을 무시한체, 낡은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ㅡ 발... .... 드릴..!"



"하?! .... 써 ㅡㅡ"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입모양만 보였던 대화 내용이 점점 귓가에 흘러들어온다.




"제발.. 한번 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음 달엔 무조건 드릴테니...!"



"하?! 벌써 몇 달 째나 밀린지 알고나 이야기 하나?!"




역시나 좋은 대화 내용은 아닌듯한데.



여인은 하다못해 무릎까지 꿇으며 고용인들에게 싹싹 빌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허나 그런 불길했던 분위기도 내 목소리가 파고들자마자 잠잠해 진다.



"ㄷ...도련님?!"



고용인 중 한 명은 나를 알아보았는지 곧 바로 눈을 부릅떴다.



"ㄷ.. 도련... ㅡ!"


그리고 그 순간...


"으읏... 도련님..!!"


여인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눈치 챈 걸까?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내게 머리를 수그리며 발목을 붙잡는다.


"제가.. 다 설명 드릴테니까...!"


자신보다 어린 소년인데.. 이렇게도 빌빌거릴 수가 있을까.


아마 절박함의 결과물 일 것이다.



"이 아줌마가..?!"


"지금 누구의 다리를 붙들어매는지 모르는 거냐?!"



그러자 고용인들은 기겁하듯 소리치며 내게서 여인을 떼어놓을려고 했으나...




"그만."





조곤하면서도 위엄있는 어투에 일순간 모두가 얼어붙고 만다.




"...."


"......?"



잠시간의 무거운 침묵이 내리 앉고 ㅡ




"부인, 혹시 옆에 있는 아이는 당신의 친딸 되시오?"



얼어붙은 정적을 깨고 내뱉은 질문에, 먼저 고개를 든 것은 백발의 여인이었다.



"ㄴ... 네..!"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엎드려 떨고 있는 아이의 등을 어루만졌고...




"거기 너.. 얼굴 한번 보자."



"으읏...."


내 말에 그녀의 딸은 싫은듯하면서도



"으으... 네......"


결국엔 파르르 떠는 몸을 붙들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


이윽고 마주친 붉은 빛 눈동자 ㅡ



"....?!!"


그 순간... 몰려오는 전율과 함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ㄷ... 도련... 님..."




새하얀 눈이 뒤젚힌 것 처럼 곱게 뻗은 머릿결과 그걸 부각시켜주는 루비 같은 눈,



분명 내가 알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이 과거라는걸 고려하면 판박이나 다름 없었다.



"너.. 이름이 뭐지?"




"..... 이리아.. 블러디곤.... 입니다.."



이름과 성까지 모두 동일...


그렇담 틀림 없었다.




"ㅇ.. 왜 그러신가요....?"



그녀는 게임 속 등장인물이자...



"도련.. 님..."



나를 파멸로 몰고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






이리아 블러디곤



그녀는 게임의 메인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인간 아버지와 흡혈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 소녀이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캐릭터로 소개된다.




그리고 그 불행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이 있었으니 ㅡ




".... 이리아 라고?"



그것이 바로 나, 아논 베네딕트였다.



"네.. 이리아 라고.. 불러주세요..."




게임을 기준으로 했을 때 ㅡ



그녀는 어렸을 적, 베네딕트가의 영지에서 자랐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불행한건 아니었는데.



어느날... 그녀의 부친께서 갑작스러운 지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오랜 기간 회복되지 못한 이리아의 아버지,



몇 달 째 났지 못한 아버지의 병세로 이리아의 가족은 위기를 마주해야만 했고...




세금은 물론 병원비를 감당하는 것 조차 버거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소식이 악독한 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ㅡ


그게 바로 지금의 '나' 였다.



아논은 탈세자가 있다는 소식에 그 집안을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내원 중인 병원에 몰래 뒷 돈을 주고 잔혹한 짓을 시키거나..


마족이라는 이유로 악동들을 모아 이리아에게 고약한 장난을 일삼는 등,


그녀의 불행에 직접적으로 관여되기 시작했다.


허나 그런 숯한 악행에도... 아논은 더욱 악랄한 짓을 꾸몄으니,


바로 강제 추방.



아논은 괴롭힘이 질린다 싶으니, 그녀의 가족을 탈세의 명분으로 영지에서 추방시킨다.



그녀의 가족은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이 몰수 됨과 동시에 영지에서 쫒겨나 버렸고




결국... 얼마 못가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로 돌아셨고


어머니 역시 노동에 가담하시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


한 순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된 이리아.



그렇게... 베네딕트가에 앙심을 품게 된다.



당연히 무대가 게임으로 넘어오며 아논은 그녀의 복수 대상이 되었고


그 방식이 어떠하든.. 그의 최후엔 항상 그녀가 연관되어 있었다.


게임 내에 아논이 파멸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자유도가 높고 워낙 업이 많은 캐릭터다 보니 그 결말도 다양했는데.




다른건 나중에 말하겠지만... 대표적으로 그녀가 아논을 절벽에서 밀쳐버리고 사고로 위장시키는게 있었다.











"물러나라."



그녀의 대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들은 내가 잘 이야기 해보겠다.


그리곤 가문 사란들에게 일단 빠지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네? 하지만 도련님..."


그들은 내 말에 당혹감과 더불어 의문을 제기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ㅡ


"두 번 말하게 할래?"



나는 잔혹하기로 소문난 악역, 



".... 넵.."


특유의 위화감으로 그들을 반 강제로 밀어낸다.


"ㄱ.. 그럼..."


내 말에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떠날 준비를 하는 수금자들.



"....."



분명 이제부터 선행을 베풀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다름 아닌 내 생사와 관련된 일 이니까.


"마차는 멀지 않은 곳에 대기 시켜 둬, 오래는 안 있을 거니까."


그리고 다음은 마차를 몰고있던 하인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본분대로."


수금자들과는 달리, 그는 내 말에 순종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곧 바로 고삐를 움직인다.




"그럼.. 안녕히계십쇼."


그에 맞춰 수금자들도 모자를 눌러쓰곤 다급히 발걸음을 돌린다.





".... 후우"



그렇게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언제까지고 험악함이 자리 잡을 것만 같았던 분위기는...


다름 아닌 '한 사람'의 등장으로 고요함을 되찾았다.



너무 애용하면 안되겠지만... 이게 권력의 힘 일까?



".. 도.. 도련님...?"



아무튼 이제 이 장소에 남은건 나와 두 모녀 뿐이었다.


"......"


가문 사람들을 돌려보내자, 이리아의 모친이 희망 서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죠."



내 집도 아니긴 하지만... 일단 두 모녀를 데리고 집 안으로 이끄는데.




덜컥..


"가.. 감사합니다!"



건물에 들어서자 마자 이리아의 모친은 내게 절 할 기세로 고개를 숙여버린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리아도 덩달아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괜찮아요. 딱히 감사를 받을려고 한 행위도 아닌데요."



나는 격식을 차리면서도 은근 슬쩍 본심을 담아 양손을 휘젖는다.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감사를 받기 위해서라기 보단 내가 살기 위해서 모녀를 도와준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어쩜 이리도 너그러울 실까...!"



허나 그런 내 속내를 알리 없는 모친은 감격에 차오른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보죠..."


나는 결국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뒤를 돌아보았고


마침 눈에 보이는 탁자가 있어,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들었는데.


"아아.. 네! 차라도 금방 내오겠습니다."



그러자 스프링이 튀어오르듯 벌떡 일어나선 곧장 부엌으로 사라져버린다.



"......"




뭐랄까... 나는 그저 중제만을 해준 것 뿐 인데.


필요이상의 보답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





"네.. 그렇게 됐습니다...."



모친의 이야기는 관점만 다를 뿐, 내가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였다.


자신의 남편이 오랜 기간 투병 중 인지라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 밀린 세금으로 몇 칠 째 독촉장과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흐음..."


나는 처음 들은 이야기인 척,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제 막 상황을 들었다는 것 마냥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애초부터 마음을 정했지만 괜히 고민 끝에 결심한 것 마냥 모친의 눈과 마주쳤다.



"이런 억압은 이제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진중한 말투로 도움주겠다고 말했다.




탁 ㅡ!



그 순간 이리아의 모친께서 과격하다 싶을 만큼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더니..



"으.. 윽..."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감동에 찬 눈 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밀린 도시세는.. 꼭..! 금방 갚을테니...."


그리곤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건낸다.



"아뇨, 괜찮으니 무리하지마세요."


나는 모친에게 괜찮다는 말과 함께..


"...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 게요."


거북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만 자리를 뜨게 된다.




"네? 벌써 돌아가실려고요..?"



"네.. 본론은 끝났고, 앞 서 보셨다시피 마차가 대기 중 이라서요."


"그럼 이만."


공손한 인사와 함께 현관문을 열려는 그 순간 ㅡ



"도.. 도련님...!"



귓가에 파고드는 여린 목소리에 홀린듯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그게...."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리아 였다.


".. 으..."



아직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게 많이 서툰 것인지, 눈동자의 초점을 이곳저곳을 오가며 손가락도 마구 꼼지락 거린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내 용기를 쥐어짜냈는지, 두 손을 꼭 쥐며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데.




... ㅡ




"읏...!"


"...응..? ...에... 에엣..?!"


그녀가 기특한 나머지 옅은 미소와 함께 머리를 쓰다듬고야 말았다.




"그래, 이제 걱정말고.. 가족들과 행복해야 한다?"


나는 조곤한 목소리로 이리아에게 불행이 아닌 행복을 기원한다.


"우.. 웃... 네...."


내성적인 그녀에게 있어, 아직 이성과의 접촉은 부끄러운 걸까?



고개를 푹 숙여버리곤 내 말에 조용히 대답한다.




"......"


또 말하기 좀 그런 발언이긴 하지만..





".. 가.. 감사합니다..."




홍조를 띄운 아기자기한 두 뺨과 새빨게진 채로 파닥거리는 귀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





"하아..."



본가로 돌아온 난, 방에 들어서자 마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정도면 됐다.."



그야 내가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를 제거했으니까.



"....."


허나 앞으로도 해처 나가야할 난관들을 생각하면 벅차올랐던 마음이 다시금 사그라들게 된다.




그야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겨우 하나 없앴다고 한들... 내가 파멸할 길은 여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위험 하나하나를 전부 제거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감격보단 아득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봐, 아까 내가 호출한 사람 좀 불러주게."



그래도 일단 하나라도 확실히 끝내야지.



"네 알겠습니다."



내 요청에 하인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방 밖으로 나선다.



똑 똑 똑



허나 5분도 체 되지 않아서, 노크 소리가 방 안을 울렸고,


"들어와."




덜컥.. ㅡ



"도련님, 저희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내 하인과 함께 들어온 두 명의 남녀가 내게 공손히 인사했다.


"그래, 너희들이 해주었으면 하는게 있어."


내가 그들을 부른 이유는 딱 하나.


"우선 먼저 말한건 이 모든게 익명으로 이루어져야 해. 내가 한 일이라곤 눈치 채지 못하도록."


바로 이리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너."


내가 먼저 지목한 사람은 일종의 회계사의 직종을 맡고 있는 남자였다.



"내가 아버님에게 잘 말해 놓을테니, 한 가족의 탈세 기록을 전부 지워줘."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내게 정괄한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며 지시를 받아들인다.






"... 그리고 넌."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이 근방에서 제일 실력이 좋다는 약사.



"내가 조합법을 하나 전달 할게, 그거에 맞춰서 약을 제조해줘"


"그리고 그걸 어떤 환자에게 전해, 병원 주소도 같이 써줄거야."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여자는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의뢰를 수주한다.




".... 그래, 이만 돌아가봐."


이로서 이리아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해결 되었다 봐도 무방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강박 증세였는데.



내가 두 모녀에게 도움을 주고 오긴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 뿐... 근본적으로 해결된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부친은 아직도 투병 중 이며 모친에겐 앞으로도 감당해야 될 빚이 남아있다.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만약에 부친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시거나,


하다 못한 모친이 노동에 가담하게 된다면 게임 속의 전개와 별 반 다를 것이 없게 되버린다.



그러니 이건, 그런 변수들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 흠.."


나는 종이에 어떤 약제법을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부친이 지닌 희귀병을 치료하는 약의 레시피,



지금은 몰라도 게임의 시점에선 그 희귀병의 치료약이 개발된다.


다름 아닌 이리아의 손으로.




자신의 가족은 늦었지만 제 2의 자신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병의 치료제를 개발한다.



그리고 그런 약의 레시피는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자연그럽게 공개되는데.



다행히도 난.. 그것에 재료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대로 부탁할게, 혹시 모르니 너도 성분 분석을 철저히 해주고."


약의 재료와 조합법이 적힌 종이를 약사에게 건낸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종이를 소중히 받아들었는데.



"하아."


그녀가 일을 착수했다는 사실 확인히자, 뭔가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이리아의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 지시가 잘 따라졌다면 아마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은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겠지.


그야 나는 익명으로 그들에게 의뢰를 부탁했다.


내가 그들을 도와준걸 알지 못하도록.


그 이유는 이리아와 더 이상 엮이지 않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이리아는 내가 죽을 수도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기에


폭탄 같은 존재와는 이것으로 완전히 연을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엇?! 제 아내가 말한 도련님 아니십니까?!"


나는 몰랐다...


"이야~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제 슬슬 잠잠해졌을 것 같기도 하고, 이리아의 근황이 궁금하여 다시금 방문하게 되었는데.


"세금 면죄도.. 전부 도련님의 은혜죠? 몇 번을 인사드려도 모자랍니다...."


어째서인지 그들은.. 내가 한 짓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




솔직히 이건.. 내 불찰이었다.


가족들의 관점에선 내가 나타난 이후 모든 것이 잘 풀렸다.


익명의 도움으로 병을 치료 받고 빚이 사라졌다고 한다면


.... 이건 누가봐도 내가 한 짓이라 예상 할 것 이다.



"도련님..!"


그리하여 현재...


지금의 난, 나의 실수로 인하여 이리아와 단 둘이 있게 되었다.


왜냐고?



그녀의 부모는 음식을 사온다고 밖에 나가버렸으니까.


대대손손 감사해야 할 은인이 찾아왔으니 성대한 접대를 해야 된다며 딸을 두고 부부끼리 집을 비워버리고 말았다.




"그냥 아논이라 불러, 어차피 나이도 같을 텐데."


"그.. 그럼.. 아논님..!"


"... 그래, 지금으로선 그 정도면 뭐."


그렇게 난... 미래의 원수지간과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 그.. 질문이 있습니다..!!"


악역인 나와는 다르게 밝고 똘망한 눈동자를 지닌 이리아가 내게 물었다.


"뭔데?"



"제 주제에 건방지겠지만.... 줄곧 궁굼한 것이.."


"어째서 저희 가족을 이렇게도 도와주시는... 건가요?"


그녀의 의문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야 이런 딱한 상황에 동정심을 품어 줄 순 있어도,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그것이.... 서민을 입장을 모를 공작가의 악역 이라면 더더욱 ㅡ



"그리고.. 왜 제가 행복하길 바라는 건가요....."


그리곤 질문과 동시에 저번의 일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붉어진다.




"....."



이리아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야 이대로라면 너가 나를 죽일 거니까' 같은 자폭 멘트는 당연히 안되었으니까.



그렇게 어떤 변명이 좋을까 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순간 ㅡ




"아."


낯 부끄러워하는 이리아의 얼굴을 보며 머리 위에 전구가 떠오르듯 좋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자,"



"히끗..?!"


내가 머리 위에 손을 얹자 이번에도 이리아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놀란 기색을 드러낸다.



"아마 이리아가 귀여워서 일까?"


그리곤 무작정 그녀를 칭찬하기 시작했는데.


"ㄴ.. 네엣?!"



내 말에 적잖은 당황을 하게 된 건지, 이리아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지만.



"제.. 제가 귀엽다니...."


마냥 싫지만은 않은건지 이미 붉어진 뺨이 더욱 진해지며 이내 귀 까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다.. 당치도 않습니다...! 아논님 눈에 저 따윈..."


물론 그녀는 스스로를 낮춰 불렀지만


"아니? 난 이미 충분히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녀의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네.. 네엣..?! 그.. 그치만... 전 흡혈귀이고... 부모님껜 비밀이지만... 여기 아이들은.. 이런 제가 보기 흉하다고...막 놀리고..."



그러자 아픈 기억을 꺼내들면서 까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런 애들의 말 따윈 듣지마, 넌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해?"


하지만 난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까지 동원하며 그녀를 밀어붙힌다.


"넷..? 당연히 아논님..."


"그럼 내 말 믿어, 넌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그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도 비단 같은 머릿결도 난 마음에 들어."



"...?!?!"



결국 그녀가 들을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어서 버렸는지, 얼굴은 수증기가 보일 정도로 새빨게져 버렸고 눈도 핑핑 돌기 시작한다.



"내.. 내가 귀여워...."



"그래, 그게 내가 도와준 이유야. 알겠지?"



"...... 네.."


그런 혼란한 틈을 타, 그녀의 이해를 받는데 성공하였고.



이렇게 결국 흐지부지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아아.. 내가.. 아논님께...."


물론 이건 정도가 너무 지나쳤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앞으론 이리아에게 밉 보일 일이 없을 것 같아 되리어 안심하게 된다.


"흠..."


나는 한참을 쓰다듬어주던 손을 때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야 이리아는 이제 내 적에 아닐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앞으로 만날 인연들을 고려하면 이건 약과에 해당되는 것이니까.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업은 쌓여갈 것이고.. 대처를 하지 못한다면 끝내는 파멸 할 것이다.



그러니 첫 번째 난관을 넘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셈,



"한 번 해보자고.."




그러니 이건 악역이 살아남는 법의 첫 걸음이었다.








아직 빌드업 중이라 노잼일 수도 있는데 최대한 진도 빼볼게 


그러니 조금만 버텨줘!

아님 내가 폐사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