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조용한 밤, 대학 도서관 안에서 형광등의 감미로운 빛이 내리쬐며 컴퓨터 화면은 반짝거렸다. 

마침내 마무리한 과제를 통해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안도감이 가득한 나는 어떻게 이제 남은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며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났다.


작은 웅크린 자세에서 기지개를 켜니, 오랜 앉은 자세의 피로가 사라지고 근육들이 한껏 풀렸다.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나 : 전역하고 복학했어야 했는데...


라며 속으로 후회의 말이 스쳐지나왔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돈이 없어 등록금을 낼 수 없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 안타까운 감정에도 미소를 지어냈다.


나 :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결정에 대해 생각했다. 

돈을 벌어 복학하는 것이 현재로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등록금을 내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작업물을 컴퓨터에 저장하며 마지막으로 화면을 살펴봤다. 

성취감과 함께 내 노력이 담긴 파일들이 행복하게 보였다.


나 : 이 노력들이 언젠가 큰 도움이 될지도 몰라.


다리를 올려놓은 빈 의자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노력은 나의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가방을 챙기며 


나 : 취직하고 싶다.


말하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강의실을 나서려는 순간, 대학 후배인 수진이 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머리엔 약간의 땀이 맺혀 있었고, 호흡이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수진 : 선배! 아직 안갔어요?


수진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나는 놀라서 수진을 살펴보았다. 


나 : 어, 수진아! 오늘 수업 없다고 했잖아. 왜 여기에?


수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수진 : 조교 언니가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왔어요. 그리고 선배, 나 저녁 안 먹었거든요. 밥 사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 나도 그러고 싶지만 돈이 없어. 조교한테 사달라고 해봐. 조교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돼.


수진은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진 : 조교 언니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서 퇴근을 못하겠다고 해요. 다음 번에 사주겠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지. 이번엔 제가 사 줄 테니 따라와요.


나는 속으로 자존심을 꾹 참으며 생각했다. 

어린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건 좀 창피하지만, 배고픔이 너무 커서 수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 : 그래, 자존심보다 배고픔이 더 크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진의 뒤를 따라갔다.


둘은 강의실을 나와 어두운 거리를 걸어갔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둘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수진에게 말했다. 


나 : 그런데 뭐 먹을 건데? 거기 갈래? 왕돈까스집? 싸고 양도 많잖아.


수진은 생각에 잠시 멈추고 말했다. 


수진 : 네? 지금 열시가 넘었는데 문 닫았죠! 웬만한 데는 다 닫았을걸요?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나 : 그런가? 그럼 어디 가지?


수진은 조금 생각한 뒤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갔다. 


수진 : 내가 아는 데가 있으니 따라와요.


나는 수진의 안내에 따라 어느 대학가의 술집으로 들어섰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다. 

수진이 미소를 짓고 앉은 자리에 함께 앉았다.


수진은 결단력 있게 주문을 하였다. 


수진 : 여기 주문이요!


직원은 수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직원 : 네!


수진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이어졌다. 


수진 : 세트메뉴 B 주세요.


직원은 주문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직원 : 네!


하지만 수진은 아직 만족하지 않은 듯이 말했다. 


수진 : 맥주 2000cc도 같이 주세요.


직원은 주문을 받아들이며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직원 : 네!


나는 속으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 비쌀 텐데...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용량의 맥주를 주문하는 것은 나에게 조금은 걱정을 주었다.

수진은 내 걱정을 알아차린 듯이 나에게 속삭였다. 


수진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 오늘은 제가 쏜다고 했잖아요. 편하게 즐겨주세요.

나: 그나저나, 이런 곳이 생겼네. 예전에는 없었는데.

수진: 어? 정말요? 예전부터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뭐, 모임 있을 때마다 여기서 모이잖아요.

나: 아, 그래? 내가 과 생활을 거의 안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수진: 그러니까요! 후배들하고 좀 친하게 지내고 해봐요. 아 맞아! 금요일에 과 애들이랑 모이기로 했는데 선배도 올래요?

나: 고맙지만 됐어. 괜히 복학생 끼면 불편하잖아. 나는 알바도 가야하고...

수진: 치.. 선배는 왜 과 생활 안 해요? 친한 사람 있어요?

나: 어.. 있긴 있지. 경수랑은 동기니까 친하고.. 또.. 너. 아, 아니 이건 내 생각이구나. 그.. 네 생각은 어때? 우리 친한 건가?

수진: 크크. 선배 귀엽네? 당연히 친하죠! 내가 아무한테나 술 사는 줄 알아요? 저 그럼.. 이제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수진의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로 말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수진을 보았다.


나: 그래. 편하게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

수진: 그럼 야 라고 해도 돼?

나: 어 음.. 그렇게 부르고 싶어?

수진: 아냐. 농담 농담...


그 때, 직원이 음식을 가지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직원: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둘은 대화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곧 둘은 식사를 마무리했다.


나: 아, 배부르다.

수진: 오빠. 영화보러 갈래?

나: 영화? 지금?

수진: 아니, 나중에!

나: 뭔 영화?

수진: 걍.. 뭐. 아무거나.


수진은 나에게 은근슬쩍 데이트를 신청하였지만 나는 눈치가 없어 알아채지 못하였다.


나: 가고는 싶은데.. 평일엔 과제에 주말엔 알바해야해서..

수진: 오빠 진짜 센스 없다! 됐어. 가지마. 가지마!

나: 왜 그래? 너 취했냐?

수진: 안 취했거든!

나: 크크. 취했네. 뭐. 그만 가자. 늦었다.


수진의 눈은 아쉬움과 조급함으로 가득 찼다.


나: 잘 먹었어. 다음에는 내가 꼭 맛있는 걸 사줄게.


수진은 크크크 웃으며 말했다. 


수진 : 그 말 꼭 기억해 둘 거야!

나: 그래, 기억해 둬. 너 기숙사지? 가자. 앞까지 바래다 줄게.


수진은 앞서 가려는 내 옷깃을 잡으며 멈칫했다. 얼굴에 고민스러운 표정이 피어났다.


수진: 잠깐.. 룸메이트가 오늘 남친을 데려온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자라던데...


수진은 오늘밤 나와 같이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눈치가 없었다.


나: 어? 여자 기숙사에 남친이 어떻게 들어가?

수진: 아, 진짜! 다 방법이 있지..!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해? 센스가 없어, 왜이리!


수진은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자신의 의도를 몰라주는 내가 야속한 듯한 듯했다. 

그녀의 말에 내 안에 미안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나: ...... 알겠어. 오늘밤 함께 있어줄게.


수진은 깜짝 놀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수진: 정말? 진짜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 나는 대학 동기인 경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수: 그래서! 수진이랑 찜질방에 갔다고?

나: 어, 효율이 좋잖아! 만원에 씻고 자고 다 할 수 있어.


경수는 수진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고 찜질방에서 잤다는 나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경수: 너 혹시 수진이 싫어하냐?

나: 아니. 얼굴 예쁘고 스타일 좋은데 왜 싫어해?

경수: 아 씨 그럼!! 후.. 아니다. 니가 그러니 그 모양이지.

나: 왜 너가 신경질을 내?

경수: 됐고 그래서 수진이랑은 찜질방에서 나와 같이 등교한 거야?

나: 아니, 수진이는 오전 수업 없다길래 나 먼저 찜질방에서 나와서 학교에 왔지.

경수: 그래. 잘 했다.

나: 왜 너가 신경질을 내?

경수: 알아. 수진은 멋진 여자야. 그래서 그런데 너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거 보면, 너는 그냥 구제불능인 것 같아.


나는 경수의 말에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


나: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냥 수진이랑은 친구로 지내는 게 편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경수는 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수: 넌 병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