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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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전두환 씨 사망
출생 | 1931년 1월 18일[1] |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現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2길 14) | |
사망 | 2021년 11월 23일 (향년 90세)[2] |
학력 | |
자택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27나길 11-14 |
재임기간 | 제11대 대통령 |
1980년 8월 27일[6] ~ 1981년 2월 24일 | |
제12대 대통령 | |
1981년 2월 25일 ~ 1988년 2월 2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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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일생 [편집]
2.1. 사망 [편집]
"북녘 땅이 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전두환의 유언.
2021년 11월 23일 오전 8시 45분경 "한국에서 '''가장 비판받는 독재자", 전두환이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드디어 생을 마감했다. 오랜 동지이자 악우였던 노태우가 서거한지 정확히 4주가 된 후였고, 노태우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를 간지 정확히 33년 만이었다. 이로써 20세기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모두 사망해,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은 이명박과 박근혜 이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으나 이 두 사람도 모든 예우를 박탈당한 상태이다.
전두환 본인은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뿌리라"란 말을 남겼고, 말 대로 화장되어 뿌려질 예정이다. 이철희는 과거 노태우 사망 당시 전두환 국가장에 대해 "일고 가치도 없다"라며 일축했고, 민정기는 가족장으로 치루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두환 본인은 삶의 의지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살 만큼 살며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이 누렸으며, 막내동생 전경환과 동지 노태우의 죽음 이후 이제 본인도 갈 때라는 것을 직감하여 운명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성기를 함께한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난 상황에다가 재판 출석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삶의 의욕도 점점 떨어졌을 것이다.
전두환 본인은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뿌리라"란 말을 남겼고, 말 대로 화장되어 뿌려질 예정이다. 이철희는 과거 노태우 사망 당시 전두환 국가장에 대해 "일고 가치도 없다"라며 일축했고, 민정기는 가족장으로 치루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두환 본인은 삶의 의지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살 만큼 살며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이 누렸으며, 막내동생 전경환과 동지 노태우의 죽음 이후 이제 본인도 갈 때라는 것을 직감하여 운명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성기를 함께한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난 상황에다가 재판 출석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삶의 의욕도 점점 떨어졌을 것이다.
3. 공/과 [편집]
3.1. 공 [편집]
3저 호황을 이룩하고 KBO 등을 만들어서 국민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3.2. 과 [편집]
5.18, 6월 민주항쟁 등에서 시위대에 무자비한 탄압을 하는 등 독재를 하였다.
4.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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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생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 시절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아 출생신고를 실제보다 늦게 하고 애초에 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었기에 빠른 생일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2] 역대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는 윤보선에 이어 2번째로 장수한 대통령이며, 욕 먹은 만큼 오래 산 걸로 유명했지만 2021년 11월 23일 끝내 생을 마감했다.[3] 자택 화장실에서 사망.[4] 만주국 반석현 호란진에 있었던 학교로 1944년 가족들이 대구로 돌아오면서 희도소학교로 전학하였다. # #[5] 당시 6년제였으며, 1950년 4월 대구공업중학교와 대구공업고등학교로 개편하였다가 1951년 7월 대구공업중학교를 폐지하였다.[6] 보궐선거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당선 확정과 동시에 임기가 시작되었다. (관보)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거행되었다.[7] 23세손 #[8]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 → 불교.[9] 단, 아들들은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차남인 전재용이 목사가 될 것이라는 소식에 기뻐했다고 하며 전재용이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하겠다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