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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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
출생 | 1941년 12월 19일 (82세)[1] |
2008년 2월 25일[5] 데뷔일로부터 +5905일째 | |
소속 정당 | |
재임 기간 | 제17대 대통령 |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 |
서명 | |
1. 들어가기 전에 [편집]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2. 개요 [편집]
퇴임 이후 |
3. 일생 [편집]
3.1. 정치 활동 [편집]
3.1.1. 17대 대선 [편집]
후보 | |||
득표율 | |||
26.14% | 48.67% | 15.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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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2007년 6월 13일, 경남 사천 당원간담회에서 #
3.1.2. 이명박 정부 [편집]
나는 국민들이 뽑아주었기에, 하루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3.2. 음악 활동 [편집]
자세한 내용은 Dr.2MB 문서 참고하십시오.
4. 구속 사건 [편집]
4.1. 왜 감옥에 가셨나 [편집]
문재앙이 하지 못하는 업적을 이루어서 샘나서 보냈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노래를 못부르는 문재앙이 노래를 잘부르는 이명박을 시샘해서 감옥으로 보냈다.
노래를 못부르는 문재앙이 노래를 잘부르는 이명박을 시샘해서 감옥으로 보냈다.
5. 평가 [편집]
"나는 내 당대에 좋은 평가를 받아서 영광을 누릴 생각 없다.
내 뒤에 오는 정부, 내 뒤에 오는 정권이 확실히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기초를 닦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6. 여담 [편집]
- 역대 대통령들 중에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났다.
- 생일과 결혼기념일, 그리고 대통령 당선일이 모두 12월 19일로 같다. 때문에 이날을 "트리플 크라운 데이"라고 부르면서 매년 전날인 12월 18일에 친이계 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 송년회를 겸한 생일잔치를 한다. 이외에도 청와대 비서관급과 수석비서관급, 장관급 인사들도 날짜를 달리해 각각 이명박과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측은 매년 벌여온 자축연이고 참석자가 많아 이명박과 안부 나누는 정도일 뿐이라며 세력화 등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 대통령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평범하게 대통령을 했으나, 자기 앞뒤로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다만 결과는 전자의 경우 부활한 반면, 후자의 경우 처참한 결말을 맞았다는 차이가 있다.
-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임기 종료 시까지 소속된 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소속된 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당했는데, 처음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지킨 채 임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사실 대통령 임기 막판에는 인기가 시들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당 차원에서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임기 말 당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쫓겨나거나 탈당하는 관습이 존재했었다. 일례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토사구팽 당했고,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전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여생을 보냈다. 다만, 대통령 퇴임 이후 당 회비를 계속 내지 않고 있었으며, 2017년 1월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면서 탈당했다.
- 2021년 3월 13일 한 디시인사이드 유저가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
- 대통령 재직 시절 냉면은 물론이고 보신탕까지 즐겨먹을 정도로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었으며, 떡, 만두, 풀빵 등 군것질거리나 젊은 사람들 입맛 음식들인 피자와 스파게티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대선 광고 때 보여준 국밥 먹방은 보는 사람마저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이고, 어묵 먹는 사진과 가래떡 먹는 사진도 있다. 심지어 모든 현역들과 예비역들이 악평하는 군대 짬밥도 맛나게 먹는다.
7. 어록 [편집]
나는 내 당대에 좋은 평가를 받아서 영광을 누릴 생각 없다.
내 뒤에 오는 정부, 내 뒤에 오는 정권이 확실히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기초를 닦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여러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준비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이 시대가 바라는 것도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1996년, 와이제이 학사고시 광고 #
나라를 위해,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2007년 6월 13일, 경남 사천 당원간담회에서 #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은 위대한데 위대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중략)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2007년 대통령 후보로 지지자들에게 연설 중 #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여러분 언제부터 한 방에 간다, 한 방에 간다 하더니, 그 한 방이 어디 갔습니까? 허풍입니다, 허풍.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대회 中
나는 국민들이 뽑아주었기에, 하루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8. 관련 문서 [편집]
9.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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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자신의 생일 및 결혼기념일과 겹친 날이었다.[2] 가미촌은 1955년에 오사카시에 통합되었고, 동시에 후쿠이도(福井戶)정은 가미후쿠이도(加美福井戶)정으로 바뀌었다. 이후 1974년에 현재의 가미미나미(加美南)정으로 통폐합되었다. 지금 이름인 가미미나미(加美南)정과 혼동되어 존재했던 적이 없는 가미미나미후쿠이도(加美南福井戸)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MB도 모르는 오사카 출생지(JBC 뉴스)[3] 1945년 8.15 광복 직후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실질적인 고향은 경북 포항이다. 포항 덕실마을에 이명박 대통령 생가가 위치해 있다.[4] 야후 재팬의 관련 질문[5] 데뷔곡은 불명이다.[6] 1931~2010.[A] 7.1 7.2 6.25 전쟁 당시 피난 중에 사망했다.[9] 본명은 이말분이었으나 개명했으며,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10] 국당공파 39세손 '상(相)' 자 항렬. 족보 이름은 이상정(李相定)이다.[11]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으나, 서울시장에 재임하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려대학교 동문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꿔 지었다.[12] 소망교회 장로[13] 젊었을 땐 175cm였다. #[14대] [15대] [16] 최종 소속 정당은 새누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