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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https://arca.live/b/arknights/57492726

1-3화 - https://arca.live/b/arknights/57711735

외전 - https://arca.live/b/arknights/57896660



"박사! 이것도 무바라!"


가을 하늘과 같은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짓는 백파이프가 박사에게 구운 감자를 찍은 포크를 들이밀었다.

옆에서 보면 누가봐도 사이좋은 커플이 서로 먹여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어...응..."

"와 그러나? 박사? 목이 맥히나?"


그러나 당사자인 박사는 주변의 시선이 너무나도 신경쓰인 탓에 도저히 감자가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입 앞에 들이밀어진 감자를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백파이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박사를 바라보는 탓에 그저 얌전히 그녀가 먹여주는 감자를 입에 재빨리 넣었다.

볼 한 가득, 감자를 우물우물 씹는 박사와, 앞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내며 환하게 웃는 백파이프.

그리고 주변의 시선이 더욱 따가워지던 찰나,


"아, 여기 계셨군요. 박사님♥"


소란스러운 식당이 잠시나마 조용해지고,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박사는 누군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최종보스 납셨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박사의 바로 옆에서 발걸음 소리는 깔끔하게 멎었다.

감자를 씹던 박사는 고개를 돌려 체념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선 카우투스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미야."

"네, 박사님♥"

"여기는 무슨 일이야?"


짐짓 태연을 가장한 박사의 물음에 귀를 쫑긋거리던 아미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저도 친목을 위해서 식당에 오는 법이에요, 박사님♥"

"...그러냐, 맛있게 먹고 가라."

"섭섭하게...너무 하시네요. 바로 옆 자리가 비었잖아요? 앉아도 될까요?"

"어차피...내가 뭐라해도 앉을거잖냐."


박사의 한탄 섞인 답변에도, 철저하게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던 아미야는, 엇차. 실례할게요. 라고 말하면서 박사의 바로 옆에 앉더니, 손을 들어서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아, 선생님! 여기에요...!"

"선생님이라고 한다믄...설마가..."


선생님이란 말에 녹색의 불길한 기운을 느낀 백파이프는 고개를 돌려 뒷편을 보았고, 거기에는


"그런가...식사라는 것은 친목 다지기의 일환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박사도 그 와이번 아가씨 말고도 다른 사람들과 친목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의료부 치프이자..."

"...넌 좀 닥쳐."

"무례하군, 박사. 네 '전속' 주치의에게 쌀쌀맞은 것 아닌가?"


역시나라면, 역시, 켈시였다.

말투로는 누구보다 상처받았음을 주장하지만, 정작 그녀의 표정은 겨울의 엄동설한처럼 냉랭했고, 이내 백파이프를 옆으로 살짝 밀어내고 아미야의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박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좀 더 나를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나? 나는 너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요구할 생각도 없어. 그저 네 꿈을 이뤄주고 싶을 뿐이다."

"...X랄하고 자빠졌네."

"...아무래도 너는 냉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구체적으론 내 옆에 앉아있는 와이번 아가씨와 거리를 조금 두는게..."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의 말을 하던 켈시는 무어라 더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내


"우웁!"

"하하, 켈시 선생은 감자도 좋아하지 않나! 마니 묵으라!"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입으로 들이밀어지는 감자에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웁! 웁! 소리만 내면서 항의하듯 백파이프를 노려보았고,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마찬가지로 노려보는 백파이프의 눈빛에 둘의 기싸움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박사는,


"박사님, 자 아앙♥"

"내가 먹는다고, 내가 먹어!"


마찬가지로 옆에서 들이밀어지는 감자를 쳐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어느새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았고, 마지막 한 명의 오퍼레이터가 따봉을 날리며 문 밖으로 황급히 나가는 광경을 직접 보았다.

순식간에 대부분이 빠져나간 식당을 둘러보며 박사는 거의 포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발...싸우지 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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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연애조작단, 첫 활동 다음날, 박사의 집무실.』


"아함..."


너무나도 상쾌한 아침을 맞는 시원한 기지개 소리, 그리고 그 기지개 소리의 근원인 박사는 요 며칠 쌓인 피로가 풀린 기분에 아주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오, 7시네. 시간도 딱 좋고, 씻고...오늘의 어시스턴트는 프틸롭시스인가. 그리고...오늘도 같이 농사를..."


서둘러 침대 밖으로 나오면서 박사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힘차게 화장실로 향했다.

그 와중에 묘하게 자신에게 들러붙던 백파이프가 떠오른 탓에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그정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테니 아무 상관이 없고, 전부 다 문제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들의 속셈인 것도 모른 채, 힘차게 집무실로 향하는 박사의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게 들떠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오늘은 프틸롭시스가 어시스턴트를 담당하겠습니다."


하얀 색 머리카락, 감정이 없는 냉랭한 얼굴, 하지만 그녀는 감정을 잃은 것이 아니다.

...단지 봉인했을 뿐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눈처럼 하얀 소녀, 프틸롭시스는 집무실에 들어서는 박사를 향해 정중히 목례를 하더니 책상 위의 서류 뭉치들을 가리켰다.


"이 서류들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이것은 최근 로도스 아일랜드의 예산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또한 이것은, 저번 작전의 기록입니다."

"...뭔가 좀 늘어난 것 같은데."

"닥터 켈시의 말을 재생합니다."


의자에 털썩 앉으며 박사가 서류들을 들여다보던 찰나, 프틸롭시스는 입을 열어 기계처럼 켈시의 말투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박사, 네가 어제 서류 작업을 무척 빨리 끝냈더군. 또한 생각보다 잘못 본 부분도 없었다. 따라서 오늘부터 서류를 아주 '약간' 더 늘릴 생각이다. 힘내도록."

"이...망할 녹차단또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엎어지는 박사를, 아마도 가엾다는 눈빛으로 보던 프틸롭시스는 서류 더미들을 가리켰다.


"프틸롭시스의 기준에서는, 이 서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서류들은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제가 함께 해드리겠습니다."

"오...정말? 벌써 분류를 다 해놓은 거야?"

"라인 랩 출신의 분석력을 무시하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마찬가지로 박사의 집무실 한 켠에 비치된 테이블 앞에 앉은 프틸롭시스는, 무언가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집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사람이라면 꺾이지 않을 각도까지 목을 꺾더니, 약간이나마 놀랍다는 표정을 그녀의 얼굴에 드러냈다.


"프틸롭시스로서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첸 팀장님."

"난, 이젠 팀장이 아니라고..."


앞장서서 집무실에 들어온 첸 훼이지에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자연스럽게 박사에게 다가가 서류를 뺏어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뭔가 좀 늘었는걸,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대충 누가 그랬는지는 알 것 같기도 해."

"하아...알잖나..."

"어쨌든, 걱정마라. 오늘도 우리가 왔으니."


좌절한 듯 머리를 움켜쥔 박사를 보며 첸은 열린 문 밖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아아, 알았사! 지금 간다!"

"그라니도 등장!"


이내 박사의 집무실은 조금 시끄러워졌고,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하고 의문을 품은 프틸롭시스에게 다가간 첸, 백파이프, 그라니는 서류를 하나씩 들고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 상황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의문을 풀어야겠습니다."


어쨌든 도와주는 사람이 늘었다면 좋은 일이라고 판단한 프틸롭시스는 막 들고 있던 서류들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내 집무실은 종이 넘기는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후...다 끝났다."

"박사! 수고했사! 잠시 좀 쉬자! 어깨라도 주물라 주까?"


마지막 서류를 옆으로 치운 채, 박사는 책상 위로 엎어졌고, 그런 박사에게 다가간 백파이프는 박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장난스럽게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착하다! 착하다! 울 박사!"

"난 어린 아이는 아닌데..."


백파이프의 손길에 뭐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치울 생각은 없는지 그냥 엎어진 박사,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백파이프.

주황색 머리카락의 와이번 미소녀가 수상한 헬멧을 쓴 남자의 머리를 토닥여주는 기묘한 광경에, 분명 감정이 있는 상태의 나라면 공중까지 점프했을 것 같다. 그렇게 느낀 프틸롭시스는 마침 옆에 앉은 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첸 팀장님. 프틸롭시스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협조를 해주시길 권장합니다."

"우선...나는 더 이상 팀장은 아니다만...마침 나도 궁금한 게 있었으니 잘 되었지. 그럼, 그라니. 먼저 가서 온실을 열어다오. 호시구마도 거기에 있을거다."


프틸롭시스의 말을 능숙하게 받아넘기며 첸은 온실 열쇠를 맞은 편의 그라니에게 던졌고, 옛썰! 하면서 능숙하게 열쇠를 받아낸 그라니는 먼저 문 밖으로 향했다.

그 광경을 보고 질문거리가 더 늘었군요, 그리 생각한 프틸롭시스는 우선 제일 먼저 궁금했던 질문을 첸에게 던졌다.


"우선, 첸 팀장...아니 첸 씨가 어째서 박사의 집무실로 찾아 오신 겁니까?"

"음...말하자면 간단하지. 박사의 서류 작업을 돕기 위해서다."


백파이프가 박사의 어깨를 주무르는 광경을 흐뭇하게 보면서도 첸은 프틸롭시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박사가 과중한 서류 작업에 시달리고 있기에, 우리가 서류 작업을 돕겠다고 자원했지. 그리고 박사도 우리의 일에 협력해주고 있다."

"그 일이라 함은..."

"아, 잠깐 이제 내 차례인가."


무언가를 더 물으려던 프틸롭시스였지만, 이내 손가락을 세운 첸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잘 했어, 하고 고개를 끄덕인 첸은 잠시 고민하더니 탁자를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


"로도스 아일랜드 내부에서 발신 혹은 수신되는 메신저 혹은 통화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어째서 그것을 물으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프틸롭시스가 아는 바로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보안은 최고 수준입니다. Leader One을 뚫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럼 이제, 프틸롭시스의 차례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내 말은 외부에서의 해킹이 아니다만...어쨌든 그럼 네가 질문하도록 해라."

"프틸롭시스는 다음에 그 질문에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박사가 협력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만...저 녀석과 내가 만든 동아리에 들어와서 같이 농사를 짓는거다."

"농사...말씀이십니까?"


감정이 없는 프틸롭시스조차도 첸의 대답에 경악에 비슷한 몸짓을 보이더니,


"에러 발생. 프틸롭시스로서는 현재 상황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에라 핫..."

"어이? 야? 잠깐만?"


의미 불명의 말을 내뱉으며 눈을 감아버렸고, 당황한 첸이 재빨리 일어서서 그녀의 어깨를 잡자, 핫! 하고 고개를 흔들던 프틸롭시스는 괜찮다는 듯 그녀의 어깨에 올려진 첸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이제 괜찮습니다. 다만 설명이 부족했던 점, 추가 보충을 요구합니다."

"또한, 첸 씨의 아까의 질문에 대해서 보충하자면, 분명 로도스 아일랜드의 내부의 통신 기록을 열람하는 방법은..."


한 박자 잠시 쉬고 숨을 들이 쉰 프틸롭시스는 확고하고도,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존재하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PRTS와 최고 관리자 뿐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볼 수 없습니다."


이제 되었습니까? 하고 말을 끝맺은 프틸롭시스는 추가 설명을 요구한다는 뜻이 담긴 눈빛을 첸에게 보냈고 첸은 하는 수 없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협력에 감사합니다. 또한 프틸롭시스도 여러분의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합니다."


당연히 연애조작단에 관한 내용은 쏙 뺀 채,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박사의 운동을 위해서 한 몸 희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답을 한 첸에게 그녀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귀에 들어왔다.

어느새 나가버린 박사와 백파이프, 박사 없는 박사의 집무실에서 첸은 이걸 어떻게 쳐내야할지 고민하다가 탁자를 몇 번 두들기고 말했다.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다. 동아리 회장은 백파이프니까 말이다. 그리고, 동아리에 새로운 인원을 받으려면 기존 회원의 과반수가 넘는 4명의 찬성도 필요하고 말이지. 나에게만 말한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는 아니야."

"동의합니다. 그런 조항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프틸롭시스 또한 체스 동아리에 가입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정식으로 발족한 건 아니고, 홍보는 오늘부터 할 예정이다."

"그러고보니 다른 멤버들이 누군지에 대해서 듣지도 못했습니다. 우선 멤버는 여기에 계신 첸 씨, 그리고 그라니 씨, 그리고 백파이프씨, 그리고 박사와 나머지 두 분이 끝입니까?"

"맞아. 나머지 멤버들은 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일거야...어쩌다가 이런 동아리가 발족에 성공했나 기가 찰 정도라니까..."


한숨을 내쉬며 필사적으로 어째서 이런 동아리가 성립이 되었지, 하고 연기를 하는 첸.

그리고 연기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프틸롭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박사가 동아리에 들어갔다는 점이 신기해서 프틸롭시스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농사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아쉽지만 관두겠습니다."

"음음...그렇지. 어차피 너는 할 일도 많고 그렇잖냐. 고생한다."

"아닙니다. 어쨌든 서로의 궁금증이 풀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협력에 감사합니다."


사무적인 어투, 그러나 분명 호감이 미미하게나마 묻어나오는 말투로 인사를 하고 프틸롭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나갔고, 이내 정적이 감도는 박사의 집무실에서 첸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늘어졌다.


"클릭...그 녀석이 제대로 만들어야할텐데...촉박하게 시간을 줘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게 잠시 늘어져있던 첸은 이내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온실로 향했다.




한 편, 첸과 프틸롭시스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때,


"하나! 둘! 하나! 둘! 잘하구 있사!"

"으갸갸갸갸갸갸갹!"


오늘도 백파이프와 거의 밀착한 채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박사.

그리고 그 둘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삽과 괭이로 열심히 흙을 고르고 한 쪽으로 치우는 그라니와 호시구마.

온실은 여느때와 같이 평온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 그럼 휴식하겠사! 그라니랑 호시구마도 수고했으니 좀 쉬라!"

"알겠습니다. 그럼 그라니씨도 같이 쉬러가시지 않겠습니까."

"아, 호시구마씨도 고생했어. 나도 좀 쉬어야겠는걸."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파이프의 외침에 호시구마와 그라니도 들고 있던 농기구들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그녀가 있는 그늘쪽으로 향했다.

농사일을 하느라 고단해진 몸을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움직이던 호시구마가 문득 첸과 클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옆에서 같이 걷던 그라니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클릭씨랑 첸 팀장님이 보이지 않습니다만...혹시 어디에 가신겁니까?"

"첸은 프틸롭시스랑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클릭은 동아리 홍보물 만들러 갔어."

"홍보물...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홍보물? 고개를 갸우뚱거린 호시구마와 그녀에게 그라니는 첸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주었다.


"응응. 원래라면 홍보물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온실 사용 허가나 자재 반출 허가를 받아야하는데...첸이 사실 이런 동아리는 성립하지 않을 것 같지만 동창이 부탁하니까 그냥 어느정도 절차를 무시했대."

"...첸 팀장님도 나름 사고가 유연해지셨군요."

"아하하, 그러게나 말이야...그나저나..."


백파이프가 앉아있는 나무 그늘에 도착한 호시구마와 그라니는 미지근한 눈빛으로 그녀, 아니 그와 그녀가 함께 있는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냥 냅둬놨어도 알아서 잘했을까?"

"...소관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 둘 다 고생했사. 박사는 일어나지 말래이. 어차피 힘들어가 몸도 제대로 안 움직일테니까."


어제와 같이 백파이프의 무릎 베개를 받으며 본인 기준에서 극락을 만끽하는 박사.

그리고 그녀들이 오자 일어나려고 하지만 백파이프의 가벼운 손길에 다시 누워서 몸을 맡기는 눈꼴시리는 광경까지.

그렇게 꽁냥거리는 그들을 보며 조금, 아니 조금치고는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호시구마와 그라니에게 필사적인 박사의 말이 들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내가 다 설명을 할게. 그러니까..."

"아하하, 괜찮아 박사. 나라도 일어나기 싫을거야."


필사적인 박사의 말에도 웃어넘기는 그라니, 그리고.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박사님도 기분이 좋으시지 않습니까?"


속이 꽉 찬 돌직구를 날리는 호시구마.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박사도 더 뭐라 하지 못하고 포기한 채 축 늘어졌다.


"박사...내 허벅지, 기분이 좋나?"


그리고 백파이프가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마지막 결정타까지, 세 대를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맞아 아웃된 박사는 자포자기 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기분 좋다니 다행이구마. 근디 머리카락때문에 약간 간지럽사. 가만히 있으라, 박사."

"모두에겐 비밀이야..."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박사는 내친김에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 먹고 눈을 감고 바람을 쐬며 부드러움을 만끽하기 시작했고, 그런 박사의 이마를 쓰다듬는 백파이프를 보며 호시구마와 그라니는 서로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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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류한 첸 또한 박사와 백파이프의 모습을 보고 미적지근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영차, 하고 호시구마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첸 팀장님. 오셨습니까?"

"아아. 그나저나...로도스는 보안은 좋은 것 같지만 완전하진 않은 것 같아."

"무슨...말씀이십니까?"


어느 새 호시구마에게 기대서 자고 있는 그라니를 보고, 호시구마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 첸은 시계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외부보단 내부가 더 위험한 법이지."

"...대충 짐작은 갑니다. 알겠습니다."


첸의 말에 금새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호시구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마침 그라니도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첸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암...첸도 왔어...?"

"잘 잤나, 그라니. 그나저나...쟤네들은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까..."


시간이 상당히 지나 해가 지고 슬슬 달이 떠오를 때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둘 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백파이프와 박사를 본 첸과 호시구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라니에게 손을 내밀어서 일으켰다.

엉덩이를 툭툭 터는 그라니를 보며 첸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먼저 퇴장해줘야겠군."

"나도 같은 의견이야. 첸이랑 나는 클릭한테 가볼게. 슬슬 홍보물이 완성되었을 것 같으니까."

"마침, 저는 볼일이 있으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박사님에게는 인사 전해주십시오"


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호시구마는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떠났고, 첸과 그라니는 아직도 무릎 베개를 해주고 있던 백파이프에게 다가갔다.

마침 다가오는 둘을 본 백파이프는 여전히 자신의 허벅지를 벤 채로 자는 박사를 사랑스럽다는 듯 한 번 이마를 쓸어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아, 둘 다 오늘 고생 많이했사. 슬슬 정리하고 같이 가야..."

"아니, 정리할 것도 별로 없고, 박사는 여전히 피곤한 모양인데 나중에 와도 괜찮으니 둘 만의 시간을 조금 더 즐기는 건 어때?"

"동감한다. 박사에게 이왕 이리 된 거 '제대로 된 휴식'을 주라고."


직설적인 둘의 말에 백파이프는 얼굴이 새빨개진채 고개를 숙였고, 그 때 마침 잠에서 깨어난 박사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파이프와 듬성듬성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어두워진 하늘을 보고 있는 힘껏 벌떡 일어나다가...


"아야!"


백파이프의 턱과 이마를 성대하게 부딪히고 다시 그대로 눕더니 이마를 감싸쥐고 뒹굴기 시작했다.

물론 정작 교통사고의 원인인 백파이프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 어이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박사도 참 덜렁이다 아이가..."

""네가 할 말이냐.""


한심하다는 듯, 그러나 귀여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백파이프의 한 마디에 묘하게 의견이 일치한 첸과 그라니였다.




그렇게 한참 이마를 감싸쥔 채 뒹굴던 박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 이래나 저래나 이득이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더니 손목의 시계를 보고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서 달이 떠오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단 말이야?"

"박사, 잘 잤사? 어찌나 잘 자는지 깨울 수 읎었다 아이가."


내가, 이만큼이나, 잤다고? 그렇게 경악하는 박사에게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는 백파이프, 그리고 그 둘을 보던 첸과 그라니가 박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 박사. 잘 잤나? 시간이 좀 늦었으니 우리는 가봐야겠다."

"마침, 클릭씨를 보러가야 하거든. 둘이서 정리하는 게 어때?"

"어...그럼 그냥 넷이서 같이 정리하는 게 조금 더 빠르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박사에게 첸과 그라니는 짜기라도 한 듯 번갈아가며 말했다.

아니, 이 순간만큼은 그 둘도 서로 연습도 하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배우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 그건 그런데 클릭이 지금 계속 작업중인데 연락도 안 되고 해서 걱정이거든."

"그래서, 우리가 가보려는거다. 마침 동아리 홍보물 작업이라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으니 간식거리라도 좀 사가야하지 않겠나. 지금도 좀 늦었고."

"응응. 그러니까 여기는 둘에게 맡기고 난 첸이랑 같이 가볼게. 둘이서 오붓하게 공동 작업이라도 하고 있으라구! 아 덤으로 난 가서 빨래도 해야하고!"

"...미리 말해두지만 둘만 있다고 해서 이상한 짓은 금지다. 마침 나도 방 청소를 해야하기도 하니까 그럼 가보겠다. 박사. 내일 보자."

"백파이프도 너무 오래 하진 말고, 박사! 내일 봐!"


둘이 언제부터 저리 호흡이 잘 맞았지?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둘을 얌전히 배웅한 박사는, 어째선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백파이프를 보고 말했다.


"자, 그럼 저 둘은 마침 할 일도 많은 것 같고 그러니까...그런데 왜 안 일어나, 백파이프?"

"아...그기 박사..."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보는 박사에게 백파이프는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쥐가 나버렸사...다리가 움직이질 않사..."

"...아...맞다. 하기사 그렇게 오랫동안 그랬다면..."


무릎 베개를 너무 오래하게 만든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는 박사에게 백파이프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멍하니 보지만 말구 다리 좀 피는 걸 도와주면 고맙겠사..."

"아, 아아...응...그럼 우선 옆으로 눕힐게. 몸에 힘 빼고..."


맞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박사는 이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백파이프를 보며 옆으로 살며시 눕힌 뒤, 왼쪽 종아리를 붙잡았다.


" 지금부터 편다. 하나...둘..."

"아...아야야...아프다...박사...조금만 상냥하게 해도...아..."


누워 있는 덕분에 백파이프의 다리는 박사의 힘으로도 수월하게 뻗어졌고, 그 와중에 들리는 그녀의 묘한 신음 소리에 박사는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면서 반댓쪽 다리도 펴주었고, 이내 대자로 뻗어버린 백파이프를 보며 박사는 식은 땀을 닦아내렸다.


"후...이제 됐지?"

"...고맙사. 박사. 근디...여전히 별로 감각이 없사...미안하지만..."


얼굴을 붉히며 백파이프는 다리를 꼼지락거리더니 박사의 손을 붙잡더니 말했다.


"그...쥐난 거 푸는 방법 알제...좀 도와도...부끄럽지만..."

"...분명...발에서부터..."

"...으으...부끄럽사..."


이내 박사의 손을 놓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려버린 백파이프와, 그런 그녀를 보고 밑으로 움직여서 백파이프의 발에 천천히 손을 뻗는 박사.

그렇게 묘한 분위기의 끝에, 마침내 박사의 손이 그녀의 발에 닿았고, 다시 한 번 백파이프의 신음을 들으며 박사는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야...아프다...박사..."

"미...미안."


힘 없이 칭얼거리는 백파이프. 그리고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무방비한 모습에 순간적으로 두근거린 박사는 잡념을 이기기 위해서 차분히 마사지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동안 발을 주무른 뒤, 이젠 괜찮다...하는 모기와도 같은 가느다란 백파이프의 목소리에 박사도 손을 떼고는 다시 한 번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물었다.


"백파이프, 이젠 괜찮은거야?"

"으응...내사 이젠 괘않타..."


오른 팔로 눈을 가린 채 숨을 몰아쉬는 백파이프. 그녀의 숨결에 따라 제법 커다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본 박사는 필사적으로 시선이 향하는 것을 막고, 누워있는 백파이프의 오른쪽 머리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박사가 다가온 것을 느낀 백파이프는 여전히 눈을 가린 채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 중얼거렸다.


"박사에게는 요즘 들어 꼴사나운 모습만 보인다...좀 부끄럽사..."

"어...음...아니야."


백파이프가 시무룩해한다는 것을 눈치 챈 박사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조금은 부끄럽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로 마음 먹고 입을 열었다.


"난 네게 고마워하고 있는 걸. 백파이프. 이런 좋은 동아리에 초대해주고...나를 위해서 굳이 1:1로 트레이닝도 해주고, 무릎 베개도 해주고...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굳이 안해도 괜찮아."


박사의 다정한 말에 백파이프는 순간적으로 움찔하더니, 천천히 그녀의 눈을 가린 오른팔을 풀고 박사의 뺨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길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박사는 굳이 피하지 않았고, 이내 박사의 뺨에 백파이프의 손이 닿았다.

거칠지만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의 손바닥을 느끼며, 박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게 나를 위해서잖아? 나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고마워. 내가 이렇게 예쁜 아가씨랑 둘이서 있다니, 분명 모두가 부러워 할 걸? 하하."


뭐, 아마 내가 죽으려나. 그렇게 투덜거리는 박사의 귀에 이내 백파이프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말이 작게 들려왔다.

 

"...박사는 역시 모지리다."

"응? 뭐라고?"


뺨에 닿은 백파이프의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받쳐주면서도 그녀가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박사는 되물었고, 이내 한숨소리가 박사의 귀에 들려왔다.


"하아...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이가...조금만...가까이...지름길이라도...이때가 아니라면...용기를...언제 또 내겠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힘내. 내가 응원할게."

"...그럼 박사, 내사 힘낼 수 있도록 부탁 딱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오늘따라 백파이프가 혼잣말을 많이 하는데 고민이 많나? 그리 생각한 박사는 의미심장한 백파이프의 말에, 이런 진지한 순간에 거절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 먹고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백파이프는 박사의 뺨에 닿은 손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이내 심호흡을 시작했다.


"...뭘 하는거야? 백파이프?"

"잠시만, 잠시만 움직이지 말그라."


심호흡을 할때마다 자꾸 어딘가로 시선이 가던 박사는 다시 한 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백파이프의 말대로 앉은채 가만히 있었고, 몇 번이고 고민을 하는 듯 심호흡을 계속 하던 백파이프는 이내 결심이 굳었는지 박사를 향해 양 팔을 벌리더니,


"...엇!"

"...후훗. 놀랬나. 박사?"


박사의 목을 재빨리 휘감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누웠다.

당연히 와이번의 힘을 이겨낼 수 없던 박사는 무방비의 상태로 백파이프가 이끄는대로 드러누웠고, 이내 백파이프의 오른팔을 벤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슨..."

"박사에게도 이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탁이다. 그러니까...잠시만...내랑 이렇게 있어도..."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지만 이내 부끄러움에 일어나려던 박사는 꺼질듯한 백파이프의 목소리에,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모든 걸 포기한 채 백파이프에게 몸을 맡겼다. 물론 어차피 일어날 생각도 없었다는 마음 속의 외침은 무시한 채로.

그렇게 한동안 나란히 누워서 서로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그와 그녀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저기..."

"박사..."


완벽하게 겹쳐버린 타이밍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백파이프는 가능한 차분하게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박사가 먼저 말해도 괜찮사."

"아니야, 네가 먼저 말해도 괜찮아."

"으응...아니다. 박사가 먼저 말해도 좋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알고 싶다."


앞으로도 먼저 말해줘도 좋다, 계속 말해줘도 좋다. 백파이프의 전해지지 못한 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박사는 말했다.


"...고마워. 혼자서 보는 밤하늘과는 또 다른 느낌이네."

"으응, 아니다. 괘않타. ...앞으로도 같이 많은 풍경을 보믄 좋지 않겠나."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잠깐...너 그 말은..."


백파이프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박사는 무심결에 옆을 쳐다보았고, 마침 자신을 보던 백파이프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살짝 맺힌 채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

살짝 떨리는 부드러운 앵두빛 입술.

붉은 빛으로 상기된 뺨.

그저 친한 친구로 여겼던 활기찬 소녀가 아닌, 분명 자신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 확실한 여자로서의 얼굴.

전해지지 못한 백 마디 말보다 단 하나의 표정에, 아무리 둔한 박사라도 눈치를 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떨리던 입술이 작게 열리고, 어느새 아주 조금씩 둘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감자 소녀와, 다가온 여름 -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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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걸 2화를 써버렸다.

클릭이 왜 없었는지는


https://arca.live/b/arknights/57896660


이거 읽어보면 됨.

피드백 환영함. 사실 그게 있어야 쓸 맛이 난다고.

더 쓸지 말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