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arknights/53329183 >전링평크





***


 “그나저나 박사, 이번엔 수행원 한 명도 없는 거야? 저번엔 데려왔었잖아.”


 나는 그 텁수룩하고 시커먼 남자와 우르수스 소녀를 떠올리며 말했다. 박사는 내 말을 듣고선 잠시 눈알을 굴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눈치는 아니었고, 내가 말한 그 ‘수행원’이란 단어가 과연 상황에 맞나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어쨌든, 사소한 일에 크게 신경 안 쓰는 성격 덕인지 그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선 입을 열 뿐이었다.


 “수행원? 아……. 그때 샤프랑 오로라? 그쪽은 다른 데서 임무 중이야. 일정 맞추고 싶었는데 못 맞춰서 많이 아쉬워하더라고.”


 “누가? 아, 그 우르수스 소녀? 하긴 고향에 와볼 기횐데 못 왔으니 아쉽기도 했겠지.”


 “아, 오로라도 아쉬워하긴 했지. 근데 내가 말한 쪽은 샤프야. 엄청 아쉬워하더라.”


 “뭐?”


 미간에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힌다. 그 샤프란 남자에게 나쁜 감정은 없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감정도 없다. 그의 태도는 딱 지시대로 행동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아쉽다’니.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박사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귀엔 이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난리를 겪으면서 엔시오디스의 괴물 같은 경호원까지 상대했는데도 여기가 맘에 들었다고? 박사, 그 샤프란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샤프가 그래 보여도 감수성이 풍부하거든. 취미가 원예라니까? 하하, 본인은 다음에 만나면 술 한 잔 정돈 사고 싶다더라.”


 “못 살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와하하, 하고 웃는 박사. 그 모습을 보자니 뭔가 머리가 띵해서 이마를 짚었다. 하긴 지도자가 이런 괴짠데 아랫사람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 아무래도 로도스 아일랜드란 곳은 내 생각 이상으로 ‘개성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인 모양이었다.


 뭐어, 그건 그렇다 치고.


 “수행원은 필요해. 아무리 당신이 엔시오디스의 손님으로 와 있다고 해도 말이야.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필요하지.”


 “네가 있는데도 안 돼? 난 너만 있어도 충분해.”


 “…….”


 정말 잘도 그런 말을 아무런 사심 없이 내뱉을 수 있구나. 저 한마디만 떼어 놓고 보면 고백 비슷한 말인데도 너무 기가 차서 그런 건지 딱히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이 사람의 안일한 마음가짐에 눈살이 찌푸려질 뿐이었다.


 “박사, 나는 브라운테일의 가주야. 물론 그걸 떠나서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돕겠지만, 그것과 수행원은 다른 문제야.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을 초대한 엔시오디스의 체면도 깎아 먹는 거라고.”


 “그런가? 하지만 네 말마따나 한 가문의 가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곁에 있어주니까 딱히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문제될 게 없어. 난…….”


 거기서 말을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다음 말을 못 내뱉도록 내 목을 힘껏 조르는 느낌이었다.


 난 뭐?


 내가 뭐?


 그야 나만 붙어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기라도 한다면, 분명 쉬쉬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날 욕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그쪽으론 이미 무감각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박사에게 들킨다면 얘기가 다르다. 과연 대놓고 그런 소릴 할 정도로 간 큰 사람이 있겠냐마는, 햇살 아래 뒹구는 산토끼 같은 주제에 눈치 하난 기민하게 빠른 박사가 그런 거 하나 눈치 못 챌 리 없다.


 그건 싫다.


 박사가 날 위해 신경 쓰는 건, 싫다.


 이 사람에게만큼은 동정받고 싶지 않다. 


 동정은 평등에서 가장 먼 감정이니까.


 …그건 내가 이 사람과 평등하지 않다는 의미니까.


 이 사람에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라타토스로 기억되고 싶다. 브라운테일의 가주도 아닌, 라타토스 브라운테일도 아닌……. 그저 나, 라타토스의 모습으로.


 “네가 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저택에서야 당신 뒷바라지건 뭐건 다 할 수 있지만, 밖에서까지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 브라운테일에 대해 뭐라고 그러겠어? 이 산골짜기 동네 귀족들은 하루의 절반을 남 흉볼 거리나 찾으면서 시간을 떼운단 말야. 어휴, 답답하긴. 숙녀가 이렇게 눈치를 주는 데도 몰라?”


 내가 살짝 눈을 흘기며 박사를 바라보자, 그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람 좋게 웃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하, 미안미안.”


 그는 사람 좋게 웃었다. 나 역시 그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가식적인 미소를.


 그에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런 미소를.


 아냐.


 아냐, 박사. 사과하지 마. 미안한 건 나야.


 왜냐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해버렸는걸.


 그렇게 속삭인다. 닿을 수 없는 속삭임이, 닿을 리 없는 속삭임이 마음속 깊은 곳을 맴돌다 연기처럼 사라져간다.


 닿을 리가 없으니까 말할 수 있는 거야.


 이런 거,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걸.


 사실 브라운테일의 이름 따윈 중요하지도 않아.


 가문의 위상 따위도 핑계에 불과해. 왜냐면 브라운테일이란 이름의 값어치 따위, 이미 땅에 떨어져 길가의 진창보다 가치가 없어진 지 오래니까. 귀족들은 브라운테일이 그동안의 죗값을 치렀다고 이죽거리고, 영민들은 자기들의 땅이 브라운테일의 영지라는 걸 수치스러워해.


 견딜 수 있어. 견뎌야 해.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테니까. 시간만이 유일한 답일 테니까. 세월이 지나고, 증오도 잘못도 모두 똑같은 구덩이에 처박혀 새까맣게 풍화되어 갈 즈음이면 브라운테일은 그때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확실한 건 적어도 그게 내 대에서 이뤄질 일은 아니란 거지.


 나는 가문의 모든 죄악과 함께 그 구덩이 속에 파묻혀야 할 테니까. 후손들에게 가계도에서 이름이나 안 파이면 다행이겠지.


 나는 견뎌야 해. 그게 내 마지막 책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에게 그걸 보이고 싶단 소리는 아냐.


 당신에게 몰락한 실패자라고 기억되고 싶지 않아. 나를 그렇게 기억하지 마, 박사.


 날 동정하지 마. 당신의 그런 눈빛, 난 견딜 수 없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해. 그저 아득해서, 간신히 잡고 있던 가느다란 줄 하나가 끊어질 것만 같아. 그렇게 떨어지면 그 아래에는 어둠만이 있겠지. 빛조차도 삼켜버릴 어둠이.


 난 두려워, 박사.


 난 그곳에 떨어지는 게 두려워. 당신이 날 동정할까 봐 두려워.


 당신이 날 경멸할까 봐 두려워.


 제발, 그때와 똑같은 시선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줘. 내 옷깃을 만져주며, 말없이 날 봐주던 그때 그 시선으로.


 그 담담함, 그 따스함. 당신의 손길. 내 옷깃을 만져주던.


 변하지 마.


 내게 남은 건, 이제 그 정도밖에 없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실버애쉬 쪽에 기별 넣어놓을 테니까 알아둬. 오후에 계곡 시찰 나갈 거지? 아무리 늦어도 그때까진 수행원 보내 줄 거야. 그놈의 엔시오디스가 그거 하나 신경 못 쓸 정도로 바쁜 게 아니라면 말이지.”


 “으, 라타토스. 너 실버애쉬랑 사이 별로 안 좋은 거 같은데?”


 “같은데가 아니라 안 좋은 거 맞아. 서로 죽이기 일보 직전까지 간 사인데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실버애쉬는 널 그렇게까진 싫어하는 거 같지 않던데. 얼마 전에 네가 쓰러졌을 때도…….”


 “그만.”


 나는 손을 들어 박사의 말을 막았다. 처음이었다, 이 사람의 말을 막은 건. 하지만 그때의 일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이었다. 그것도 그의 입을 통해서라면 더더욱.


 “나와 엔시오디스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러니 우리 관계에 대해선 너무 신경 쓰지 말아줘, 박사.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지금 그게 아니잖아, 그렇지?”


 그래, 제발 부탁이야.


 당신 입으로 엔시오디스가 내게 호의적이란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아.


 그가 내게 호의적이라고? 날 인정한다고?


 날 여자로 봐준다고?


 알아.


 안다고, 그가 날 맘에 들어 한다는 것 정돈. 나도 태생부터 언변과 인간관계만으로 가문을 쌓아 올린 브라운테일의 핏줄인데 그런 거 하나 눈치 못 채겠어?


 만약 여자로 인정하지도 않았다면 청혼서 따위도 보내지 않았겠지. 기껏해야 회사 직책 하나 던져줬으려나.


 하지만 그거 알아, 박사? 그는 날 동정해. 날 위로하려 하고, 날 품으려 해.


 그는 날 내려다봐. 마치 덫에 걸려 낑낑대는 한 마리 여우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승리자 주제에, 애초부터 너는 내 상대가 아니었다는 그런.


 그 불타는 저택에서, 이쪽은 목숨을 걸었어. 그런데 그는 날 평가나 하고 앉아 있었지. 내가 내 모든 걸 불사를 각오로 네게 던진 승부수는, 그에겐 결국 하찮은 발버둥에 불과했던 거야.


 위선자.


 네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난 너를 증오해.


 엔시오디스.


 아아, 엔시오디스.


 너만큼 비열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승리자가 또 있을까?


 박사, 이름도 모르는 당신.


 우리의 인연은 바람결에 실려 온 눈송이보다도 빨리 녹아 스러지겠지.


 당신은 내 유일한 온기야. 내가 처음으로 느껴 본,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사람의 온기. 혈육인 시우르스마저도 쉐라그 바깥으로 내친 주제에 끝끝내 버리지 못했던 미련.


 내게 남은 게 있다면, 그건 모두 당신을 위해 준비된 걸 거야. 남은 게 있다면, 말이지만.


 그러니 박사, 제발 그 말만큼은 하지 말아 줘.


 당신 입을 통해 그의 얘길 듣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을 테니까.


 “…미안해. 내가 너무 나갔네.”


 “괜찮아. 나쁜 맘으로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뭘. 오히려 지난 일 가지고 계속 신경 쓰게 만드는 이쪽이 미안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더 얘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침묵했고, 박사 역시 더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긴 생각해 보니 우린 서로 겹칠만한 대화 주제 같은 것도 없었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거의 남남에 가까웠다. 그걸 박사 특유의 친화력으로 무마시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슬쩍 벽시계를 보니 이미 한밤중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한두 시간 눈 붙일 시간도 없을 터였다.


 “거의 밤을 새워버렸네. 어서 자, 박사. 지금이라도 침대에 안 누우면 정말 한 시간도 못 잘 거야.”


 핑계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빈 그릇을 정리한 뒤 내친김에 창문마다 죄다 커튼을 내렸다. 새벽이라 해도 아직 해가 뜰 시간은 멀었기에 집무실은 굉장히 어두웠다. 몇몇 군데 밝혀 놓은 등불만이 옅게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정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밖으론 소리 없이 눈이 쌓이고 있었고, 우리가 있는 집무실 안은 고요했다. 여태 쉬지 않고 떠들어댔던 주제에, 나와 박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왜일까.


 박사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잘 자, 박사.”


 “너도, 라타토스.”


 박사가 그 말을 했을 때 이미 나는 집무실의 문을 열고 있었다. 탁, 하고 닫히는 문. 등 뒤에서 문이 닫힐 때까지 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두려웠다. 박사가 혹시라도 날 바라보고 있을까 봐.


 그러나 그런 걱정 따윈 쓸데없다는 듯, 잠시 뒤 집무실 안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그맣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 집무실 구석에 간이로 마련해 둔 침대에서 나는 소리였다.


 잠자리에 들었구나. 다행이다, 박사. 좋은 꿈 꿔.


 좋은 꿈 꿔.


 내일도 힘내자. 아니, 오늘도.


 그런 친근감 있는 인사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 웃으면서 잘 자라고 했으면 기분 좋게 방으로 가서 푹신한 침대 속에 파묻힐 수 있었을 텐데.


 언제나 손에 쥐지 못한 게 아쉽게 느껴지는 법이지.


 낮게 흘러나오는 한숨에 그런 생각을 흘려보내며, 나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체력을 비축하려면 자둬야 한다.


 결국 아침은 오고, 그렇게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하는 법이니.


 새벽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복도는 깊은 어둠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




 그랬던 게 몇 시간 전의 새벽.


 그리고 지금은 브라운클리프 계곡 앞에 세워진 로도스 아일랜드의 간이 막사 안.


 “…….”


 결국 잠을 설쳤다.


 제대로 눈을 붙인 시간은 30분이나 됐으려나. 그러나 침대에서 뒹굴거릴 여유조차도 없었다. 영지 업무에, 엔시오디스에게 보내는 수행원 요청과 그 외 자잘한 기타 보고 사항, 거기에 다른 귀족들의 시시콜콜한 무도회며 연회에 대한 답신까지.


 귀족들의 연락이 확 줄어든 차라리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박사를 따라 나오는 데까지 지장이 생겼을 테니까.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간밤에 쌓인 눈밭 위로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피곤한 탓일까, 그다지 햇살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눈이 아파서 몇 번이나 미간을 찡그려야 했다.


 “라타토스.”


 “…박사?”


 “잠 못 잤어? 피곤해 보여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박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세상에, 언제 온 거람. 여느 때와 똑같이 깊게 눌러 쓴 후드, 전신은 물론 얼굴까지 다 가리는 방호복 차림새. 그다지 키도 크지 않고 근육이 붙은 몸도 아니라서, 이렇게 보니 성별이 모호해 보였다. 솔직히 목소리도 좀 중성적이기도 하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가 쓴웃음을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경 쓸 거 없어. 이 귀족 저 귀족 연회 불려가며 밤을 새웠던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안심해. 발목 잡진 않을 거야.”


 “그런 걸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는 다시 쓴웃음 섞인 한마디를 내뱉더니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샌드위치였다.


 “아침에 슬쩍 봤더니 너무 바빠 보여서. 점심도 안 먹었지? 이거라도 먹어. 물도 여기 있으니까 마시고.”


 “…아.”


 그제야 내가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박사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저녁쯤에서나 오늘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걸 알았으리라.


 “고마워, 박사. 잘 먹을게.”


 “식사는 제때 해. 불규칙한 식사는 건강의 적이란 말도 있잖아.”


 “어머나, 당신이 할 말이야?”


 “나니까 하는 말이지. 건강에 안 좋다는 건 내가 직접 다 체험해보니까.”


 “어련하시겠어.”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하는 박사의 모습은,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원래부터가 성격이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인데. 포기하면 편하다. 응, 그렇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선 박사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한 야채의 식감과 적당히 짭짤한 햄, 그리고 치즈.


 “맛있네.”


 아주 단순한 구성의 샌드위치였지만 이상하게 허기가 동했다. 단순한 게 최고란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우니 박사가 기다렸다는 듯 하나 더 내밀었다.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 물도 마시고.”


 “으응.”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되는 대로 샌드위치를 입에 밀어 넣고 물도 병째로 죽 들이켰다. 후우, 하고 깊게 나오는 한숨. 음식이 들어가니까 뇌가 굴러가는 듯 그제야 난 박사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는 어느새 내 앞에 앉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


 으음.


 뭔가 좀 부끄럽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내가 당신 거까지 먹은 거 아니지?”


 “걱정 마. 카란 무역 쪽에서 먹고 자는 거 하나는 빵빵하게 지원해주더라. 여기 임시 기지에 쓰인 캠핑용품도 전부 그쪽에서 지원해준 거야.”


 “흥, 제 일 하나 해결 못 해서 당신한테까지 손 뻗친 건데 그 정돈 해야지. 당신도 원하는 거 있으면 막 말해. 어차피 다 엔시오디스 주머니에서 빠져나갈 테니까. 다른 로도스 직원들도 실컷 쓰라고 하고.”


 “5성 호텔 VVIP룸으로 한 층을 아예 전세 내줬다던데, 그 정도면 됐지 뭘. 놀러 온 것도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뜯어낼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뜯어내야지, 라는 뒷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 그건 브라운테일의 잣대 아니던가.


 “정말, 사람만 좋아서는.”


 “하핫, 그래도 보수에 선금까지 두둑하게 받고 일하는 거니까 너무 뭐라 그러진 마.”


 그가 어깨를 다시 한번 으쓱하는 사이 밖에서 박사님, 하고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어, 나 여깄어! 금방 갈게!”


 박사는 밖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선 내게 손을 뻗었다. 스륵, 하고 천이 스치는 소리. 그의 손이 내 외투 깃을 여미고 있었다.


 “아…….”


 “날은 좋은데 좀 춥더라.”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듣는 건지도 몰랐다. 


 짧은 따스함.


 그때와 똑같은.


 “좀 쉬다가 나와 줘. 여기 지형이 너무 복잡하더라. 뭐 지도를 봐도 알 수가 있어야지. 부탁할게, 라타토스.”


 “으, 응.”


 “그럼 좀 이따 보자고. 어어, 지금 나갈게!”


 밖에서 다시 한번 박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답하며 그는 천막을 빠져나갔다.


 텅 빈 천막, 넓은.


 …여기가 이렇게 넓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없는 이곳은 냉기가 휙 스며드는 것 같았다.


 추워.


 갑자기 추위가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움켜잡았다. 방금 박사가 만져줬던 바로 그 부분을. 내 착각일까, 그곳에서부터 온기가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온기가 손을 거쳐 등골을 타고 내려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따스함이 맴돈다.


 손끝에, 그리고 온몸에.


 “…정말 종잡을 수가 없구나, 당신은.”


 속삭이는 내 목소리엔, 나조차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기쁨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철없는 예닐곱 살짜리 얼굴 같은 걸 하고 있겠지.


 하지만 기쁜 건 기쁜 거다. 설마 그때와 똑같이 이런 기쁜 기습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거 하나만으로도, 뭔가 오늘 아침의 고생을 다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자아, 보수를 받았으면 일해야지.”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박사는 내가 도와주길 바라고 있다. 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천막을 나서지 햇살이 느껴졌다. 눈이 따갑게만 느껴졌던 햇살은 어느새 부드럽게 내 얼굴을 간질이고 있었다. 햇살과 함께 쉐라그 특유의 추위도 느껴졌지만, 춥지 않았다.


 그가 준 온기에 비하면, 쉐라그의 추위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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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벌써 10화라니


이번화로 체크 포인트 도달하려 했는데 분량 조절 실패


이전에 소제목으로 썼던 거 이번에 활용하는 기믹을 써보앗읍니다


있어보이는척을 하니 자존감이 높아지는군요


여튼저튼쨌든 대가리 깨진 여우 아가씨 대가리 봉합하는 소설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는데 어떻게든 바둥거리는 꼴이 매우 쎆쓰럽군요


다음화에 진짜로 체크 포인트 도달합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덧: 대사 패러디가 있는데 찾는다면 기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