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박겜 하다보면 왜 존나 쎈 전함, 항모를 두고 순양함 / 구축함을 만들어 돌렸는지 합리적인 의문이 들곤 하는데

체스나 장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전함은 해상전 최상위 포식자지만

한척 건조할때마다 국가 예산이 움찔하고, 만드는데 몇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며

운용에 2000~3000명의 승무원이 필요한, 항구에 가만히 있어도 돈을 쪽쪽 빨아먹는 전략병기였다

그만큼 위력이 확실해서 전함 한척이 포병 전대 몇개급 전략적 가치가 있었고

단함으로도 해전을 승리로 이끌만큼 강했기에

지금의 핵무기처럼 전함의 건조와 보유는 주변국들한테 견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수가 제한적이었다

숫자가 적으니 한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해역에 압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배치되어야만 했으며

체스에서 퀸처럼 굴려졌다고 보면 된다

전함의 위력과 영향력이 커져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현장에서 활약하는 행동대장이 필요했는데 바로 넓은 항속거리를 가지고 대양을 누비는 순양함 중 장갑과 화력을 높힌 중순양함이었다

중순양함은 전함보다 견제가 덜했고 전함끼리 마주치면 거의 확실히 전쟁을 뜻했기에

수위 조절을 위한 기싸움 용도로 보내지기도 했다

(사실 중순끼리 마주치는것도 전쟁 위기였고 보통은 경순양함, 구축함을 보내서 견제했다)

요즘도 좆본이 일년에 100차례 정도 독도에 순시선이나 탐사선을 들이미는데

우리가 꼴받는다고 구축함을 보내는게 아니라

군함보다 격이 낮은 해경함을 보내서 기싸움하다가 쫒아내는거랑 비슷하다

(왼쪽 : 독도 해역에 들어온 쪽발이 순시선, 오른쪽 : 항로를 막아선 한국 해경함)

전함이 정치, 외교적으로 광범위한 견제를 받자

자연스럽게 각국 해군은 중순양함을 대량 건조해 해군력을 높히자는 생각을 했다

전함이 함부로 나서기 힘든 상황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중순양함은 함대 기함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예 타카오급은 설계부터 넓은 함교를 가진 기함용으로 건조되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군축조약으로 전함이 규제될때 중순양함도 같이 규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중순양함의 총 배수량 쿼터를 정해줬는데

모가미급, 토네급처럼 경순양함의 배수량을 끌어다가 한척이라도 더 중순양함을 만드려는 시도가 나오기도 했다

중순양함은 쓰기편한 작은 전함으로 굴려졌고

전함이나 항모가 뜨는 대규모 해전이 아닌 곳에서 맹활약한다

체스로 따지면 룩

전함 숫자가 적고 빼내기 힘들고

바다를 열심히 누비는건 중순양함들이었기에 중순양함을 전문적을 사냥하는 순양함 킬러, 대형순양함이 나오게 된다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대형순양함이 돈은 돈대로 먹으면서 전함한테 발리는 잉여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실질적인 행동대장이 중순양함이었던만큼

전함만큼 시선을 끌지는 않으면서 

구형 전함과 중순양함을 잡아먹는 행동대장 킬러를 따로 만드는건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독일은 장갑함, 영국은 구형순양전함, 미국은 알레스카급을 이렇게 사용했고

일본도 아즈마급을 설계하는 등 마냥 자원 낭비는 아니었나봄

중순양함보다 가볍고 주포 위력이 약한(6인치) 경순양함은 구축함을 잡기위한 순양함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구축함이나 잡는 6인치를 들어 주력함 싸움에는 끼지못해 처음에는 찬밥신세였고

지켜야할 바다가 넓은 영국을 빼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함종이었다

오죽하면 일본이 모가미급 사기를 치면서까지 경순 쿼터를 중순으로 돌리려고 했을까

하지만 모가미급에서 모티브를 받아 미국과 영국이 경순양함을 대형화하자 지금까지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벗어나 중순만큼 활약하는 대역전극을 보여준다

1) 배수량이 늘어나자 6인치 포의 숫자를 크게 늘릴 수 있었고 경순양함 원래 임무인 적 구축함 제압을 더 잘하게 되었다

2) 더 많아진 포로 육상지원을 더 잘하게 되었다

육군 입장에서 전함의 포격은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거고 경순의 포격은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오는건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좆같았다

3) 중순의 8인치와 달리 6인치는 무게 부담이 훨씬 덜했고, 대형화 이후 남은 자리에 대공포를 도배할 수 있었다

2차 머전은 해상항공전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는데 중순보다 단함 대공이 뛰어난 경순이 해상항공전에 더 적합했다

4) 잠수함 탐지는 음파탐지기인 소나가 중요한데 전함과 중순은 자체적인 엔진 소음으로 소나 정확도가 크게 저하되었다

경순 이하로는 소나에 큰 영향을 주지않아서 경순은 적극적인 대잠이 가능한 가장 큰 함급이 되었다

이렇게 함생 역전에 성공한 경순양함은 영국 미국에서 사랑받았다

영국은 아예 신규 중순양함이 우선도가 낮다며 취소했고(드레이크 체셔 갈갈)

미국은 볼티모어, 디모인이라는 걸출한 중순양함을 뽑아내면서도 우스터 같은 신규 경순양함을 계속 개발했다

경순양함은 일상적인 순찰, 소함대끼리 교전, 함포지원, 함대대공 등등 함대의 돌쇠로 맹활약했는데

중순양함에 올인한 일본은 이 흐름을 타지 못해서 경순 전력이 매우 약체화되었다

우리한테는 가장 작아서 페도화의 대상이 되는 구축함이지만

가장 작다는 것도 '원양항해가 가능한' 배 중에서 가장 작다는거지

'함'이 아니라 '정'까지 생각하면 구축함도 존나 크다

어뢰가 개발되고 꼬꼬마 어뢰'정'들이 전함과 순양함을 후방을 노리고 다니자

전함과 함대를 호위하며 어뢰정들을 '구축'할 전문 함선이 필요해졌고

위력이 약하지만 속사가 빠른 5인치를 주무장으로 하는 '어뢰정 구축함'

영어로는 '토피도 보트 디스트로이어'라는 함급이 만들어졌다

구축함에 디스트로이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유이다

원래는 이름처럼 전함을 노리고 접근하는 어뢰정을 무찌르고, 경우에 따라 비싼 전함 대신 어뢰를 대신 맞아 산화하거나

근처를 정찰하거나, 수송함대를 지키거나, 화물을 나르기도 하는 등 함대의 졸병이었지만

'원양항해가 가능한 가장 작은 함선'이라는 특징 때문에

해전의 범위가 넓어지자 본인이 어뢰를 달고 대형 어뢰정 짓도 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하게된 어뢰정 짓이었지만 주력함 배수량에 제한을 받은 일본이

구축함의 어뢰찜질에 주목하여 뇌격 능력을 극대화한 뭔가 주객이 전도된 구축함을 집중적을 개발한다

그 정점이 시마카제.

전쟁 초반, 특히 야전에서는 큰 활약을 했지만 레이더의 발달과 해상항공전으로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메타가 바뀌며 망해버렸다

반면 미국은 함대의 만능 일꾼이자 소모품이라는 초기 목적에 집중한 구축함을 만들었는데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국과 일본의 구축함 운용 차이가 확 나타나게 된다

우당탕탕 과달카날 (1) 

우당탕탕 과달카날 (2)

짧게 요약하면 과달카날에서 일본 해군은 구축함의 강력한 어뢰로 적함을 사냥하는데 집중한 반면

미국 해군은 일본 구축함의 어뢰를 소모시키기 위해 구축함을 밀어넣어 희생시키고

어뢰가 빠진 일본 함대에 사다코와 워싱턴을 집어넣어서 해전에서 승리했다

미국의 뭐든 할 수 있는 함대의 노예 구축함 컨셉은

구축함이 대형화되면서 뭐든 잘하는 만능 일꾼으로 변했고 구축함 교리까지 완성하면서

어뢰정 격퇴 뿐만 아니라 함대방공, 대잠, 추격전, 뇌격까지 잘하는 중요한 함종이 되었다

해전의 양상이 포격전에서 어뢰, 잠수함, 대공까지 다변화되자 만능형 구축함의 중요성이 떡상한거다

구축함이 대형, 고급화되니까 원래 구축함들이 해오던 호위임무에 따로 빼내기 아까워졌고

천조국답게 수송선의 느린 속력에 맞추고 무장도 크게 줄인 '호위' 구축함을 대량 생산해서 호위 업무를 전담시킨다

체스로 따지면 그야말로 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3줄요약하면

1) 전함은 존나 쎄지만 너무 비싸고 움직이기도 관리하기도 힘들어서 소량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

2) 호랑이 없는 곳엔 여우가 왕이라고 전함보다 작은 중순양함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순양함 잡겠다고 대형순양함이 나온다

3) 어뢰정 잡으라고 만든 구축함이 어뢰정이 되자, 다시 구축함 잡는다고 경순이 나타났다 그런데 구축함과 경순을 대형화하자 2차머전 메타에 적합한 만능일꾼으로 탈바꿈했고, 경우에 따라 중순보다 더 활약했다

항모의 경우에는 원래 전함의 시녀에서 오늘날까지도 해군의 주력이 되는 엄청난 함생역전이 있어서 여기서 짧게 정리하기가 힘들어서 뺐음 

언젠가 따로 쓰고 싶다

근데 장바르랑 아마기부터 써야하는데

나는 안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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