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황혼선생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렬한 서치라이트의 불빛들이 암흑을 찢어발기며 창고 안을 대낮처럼 비추었다. 철저하게 무장한 사감대의 정예 병력들이 퇴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특수교역부 부원들과 밀수업자가 극심한 패닉에 빠져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사방은 한 치의 틈도 없는 촘촘한 포위망으로 가로막힌 뒤였다.

그리고 그 눈부신 서치라이트의 중심,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워진 곳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모든 것을 설계한 지배자, 샬레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손에는 특수교역부가 그동안 숨겨왔던 자잘한 밀수 내역부터, 방금 전 산해경의 백면을 빼돌린 초대형 범죄 증거와 유통 장부까지 전부 들려 있었다.


후유 : 선생님…? 어째서… 당신이 강제로 우리에게 루트를 줬으면서…!

후유가 핏대를 세우며 배신감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자신들을 범죄에 엮이게 한 후 완벽하게 사냥당했다는 절망감이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의 처절한 외침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직 냉소적인 미소만을 지은 채,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와일드헌트 평의회 의장 마나미에게 그 두꺼운 장부들을 툭 던지듯 건넸다.


선생 : 여기 와일드헌트를 좀먹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집단, '특수교역부'의 모든 범죄 증거다. 마나미, 네 말대로 한 놈도 빠짐없이 엮어서 잡았다. 단 4일 만에.

마나미 : …인정하도록 하죠. 당신의 초법적 권한이 보여준 결과물을. 사감대, 전부 잡아들이고 당장 발키리 경찰학교에 연락해라. 와일드헌트 평의회가 블랙마켓 최대의 밀수 단체를 일망타진했다고 전해.

사감대장 : 네! 전원 체포해라!


사감대 부원들이 거칠게 들이닥치며 아이들의 가녀린 손목에 차가운 철제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하는 섬뜩한 금속음이 창고 안을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던 미요는 마침내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범죄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만들어 샬레의 합법적인 자금줄이자 지갑을 채우는 말로 쓰겠다던 선생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선생은 그들을 아끼기는커녕, 그저 특수교역부와 블랙마켓의 거대 음지 세력을 단 한 번에, 뿌리째 뽑아 박살 내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거대한 '미끼'로 이용한 것뿐이었다.


미요 : 선생님…… 으윽, 아아아……!








#. 와일드헌트 기숙사 5동 402호 / 밤 (4일차)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선생의 눈동자가 5동 402호의 난장판을 담담히 응시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서툰 꿈과 비밀이 숨 쉬던 온기 어린 방은, 이제 차가운 수색의 도살장으로 변해 있었다.


선생 : 수색해라. 쥐새끼들의 흔적을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전부 끄집어내.


선생의 냉혹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감대원들이 방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후유가 밤새워 손가락에 생채기를 내 가며 조립했던 신형 투석기 부품들이 사감대의 무거운 군홧발에 밟혀 처참하게 으스러졌다. 빠드득, 부서지는 나무와 철제 부품의 파편들이 방바닥으로 볼품없이 흩어졌다.

리츠가 침대 밑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소형 밀수 자금 금고는 사감대의 도끼에 찍혀 처참하게 강제로 열렸다. 



쾅!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날카롭게 찌러진 철문 사이로, 리츠가 예술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아둔 채권과 현금들이 사감대의 압수 주머니 속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제 목숨과도 같은 장부와 지갑이 짓밟히는 모습을 보며, 리츠는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가장 잔인한 처형은 이제 시작이었다.


미요 : 아, 안 돼…! 내 소설… 내 원고가…! 제발 그것만은 안 돼요……!


미요가 비명을 지르며 사감대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매달렸다. 대원 중 한 명이 서랍 가장 깊숙한 어둠 속에 소중히 숨겨두었던, 검열받지 않은 순수한 창작 원고 뭉치를 거칠게 끄집어내 바닥으로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진 하얀 원고지 위로, 붉은색 '검열 미승인 유해물' 도장이 사정없이 쾅, 쾅 찍혀 나갔다. 미요가 밤을 새워가며 꾹꾹 눌러 쓴 문장들, 유일한 도피처이자 꿈이었던 이야기들이 붉은 낙인으로 오염되어 쓰레기처럼 짓밟혔다.

미요는 사방으로 찢기고 짓밟힌 원고지 조각들을 필사적으로 가슴에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기어 울부짖으며 선생님의 구두 앞을 가로막았다. 자존심마저도, 모두 내려놓은 채, 기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미요 : 선생님… 흑, 제발요… 너무 심해요… 제발 그만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선생님…!


눈물과 먼지로 범벅이 된 미요가 마지막 동아줄을 잡듯 선생님의 바짓자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단 한 줌의 동정도, 미련도 없다는 듯 미요의 손을 가차 없이 쳐냈다. 탁하는 파열음과 함께 미요가 중심을 잃고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감대의 군홧발에 밟혀 짓이겨진 원고지들이 그녀의 등 뒤로 허무하게 흩날렸다. 선생님은 쓰러진 미요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심장을 얼려버릴 듯 잔혹하게 읊조렸다.


선생 : 교칙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낙오자들이 예술은 무슨 예술이냐? 그저 탐욕스러운 장사치일 뿐이지.

미요 : 아으윽… 흑, 선생님…… 왜, 왜 우리한테…

선생 : 특수교역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선생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선생 : 억울하면 합법적으로 살아남아 보든가. 내 체제 아래서 법을 어긴 범죄자년들에게, 자유롭게 숨 쉴 권리 따위가 존재할 줄 알았나?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절대적인 어른의 폭력의 언어였다.


뒤에서 이 악물고 반항하려던 후유와 리츠 역시, 자신들의 미간을 조준한 사감대의 장전된 소총 총구들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자금줄도, 장비도, 그리고 영혼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창작의 자유까지. 특수교역부가 가졌던 모든 소박한 세계가 ‘선생님’이라는 거대한 심연의 벽 앞에서 완벽하게 분쇄되어 나갔다.


선생 : 이 방에 있는 모든 물품을 압수하고, 기숙사 5동 402호는 이 시간부로 영구 봉쇄한다. 행정부 장부에는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마라. 이 쥐새끼들은 공식적인 와일드헌트의 역사에 기록될 가치조차 없다

히로미 : 선생님……! 압수는 그렇다 쳐도 기록 말소는 행정 절차상 너무 과하십니다! … 무엇보다 아직 제대로 확인이… !


뒤에서 수색을 지켜보던 히로미가 참다못해 떨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선생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싸늘하게 낙인을 찍었다.


선생 : … 아직도 상황 파악이 잘 안되는 모양이군.


선생의 입꼬리에 서슬 퍼런 어른의 미소가 걸렸다. 그는 미요의 책상 서랍을 거칠게 열어젖히더니, 그 안에 소중하게 정돈되어 있던 원고지 뭉치를 통째로 끄집어냈다. 그것으로 모자라다는 듯, 선생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붉은색 유해물 도장이 찍힌 원고지들까지 단 한 장도 남김없이 구겨 쥐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차가운 금속제 라이터를 꺼내 무심히 불꽃을 튕겼다.




치익, 탁.




작은 불꽃이 하얀 원고지 모서리에 닿자마자, 불길이 순식간에 종이를 집어삼키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선생은 불타오르는 미요의 세계를 방 한구석에 놓인 쓰레기통 안으로 가차 없이 던져버렸다. 


미요는 자신의 피와 살, 영혼의 파편 같았던 원고들이 바닥에 떨어진 낙인찍힌 조각들까지 전부 산채로 화형당하는 광경에 미요는 단번에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미요 : 아아!! 선생님!! 안 돼!! 제발 그것만은, 내 원고!!! 아아아아!


미요가 불길을 끄기 위해 맨손으로 쓰레기통을 향해 기어갔다. 그러나 차마 이 비극을 눈뜨고 보지 못하던 사감대원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 차가운 제복에 감춰진 사감대원의 손길은 깊은 미안함과 슬픔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미요의 숨결이었던 하얀 종이들이, 붉은 낙인 자국과 함께 검게 뒤틀리며 허무한 재가 되어 흩날렸다. 단 한 문장도, 단 한 글자도 남기지 않겠다는 잔혹한 전멸이었다.


선생 : 쥐새끼의 조잡한 글 따위, 이 세상에 빛을 보고 나와선 안 될 불온서적일 뿐이다. 와일드헌트에 이딴 쓰레기가 존재할 자리는 없다.


선생은 서랍 속 원고부터 바닥의 파편까지 마지막 한 장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서진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구두 굽 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미요의 세계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미요 : 선생님…… 선생님……!!! 흑, 으아아아앙!


기숙사 복도 전체를 찌르는 미요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장송곡처럼 메아리쳤다. 아이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지옥을 각인시킨 선생의 검은 등은, 단 한 줌의 동요도 없이 복도의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다.

방 안에 남은 히로미와 사감대원들, 그리고 리츠를 안아 든 채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던 후유는 차마 울부짖는 미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모든 꿈을 태워버린 쓰레기통의 붉은 불꽃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생의 절대적인 독재와 시스템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무력감. 아이들은 그저 저마다의 주먹을, 하얗게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쥘 뿐이었다.




#. 복도 (4일 차)


귀를 찌르는 미요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등 뒤로 멀어질 때쯤, 선생은 기숙사 건물의 음산한 모퉁이를 돌았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을 집어삼킬 듯 서슬 퍼렇던 폭압적인 기운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의 얼굴에는 지독한 피로감과 묵직한 가라앉음만이 남았다.

선생은 품 안에서 싯딤의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복도의 어둠을 향해 낮게 읊조렸다.


선생 : 아로나, 프라나. 백업파일은 문제 없지?


그의 부름에 옅은 푸른빛과 함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로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로나 : …네! 사쿠라이 미요 씨 소설의 진짜 원본은 와일드헌트 내부에서도 학생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비밀 유적에 잘 숨겨놓으셨잖아요.


아로나의 목소리에는 안도감과 함께, 조금 전 선생이 보여준 잔혹한 연극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어서 차분하고 기계적인 프라나의 목소리가 교차하듯 울렸다.


프라나 : 긍정. 그것뿐만이 아니라 저희에게 글자 하나, 문장 부호 하나까지 전부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라고 명령하셨으니까요. 현장의 물리적인 원본이 완전히 소실되더라도, 미요 씨가 담아낸 이야기의 내용만큼은 철저히 보호되고 있습니다.


두 학생의 보고를 들으며 선생은 감추어 두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특수교역부의 해체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후유의 투석기는 의뢰인을 받는 일에 쓰이기 전에 사라져야만 했고, 리츠가 빼앗긴 자금줄이야 언제든 선생의 권한으로 은밀히 채워줄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다.

하지만 미요의 소설만은 달랐다. 만약 미요의 창작물이 이대로 외부로 유출되거나, 사감대원들의 거친 손에 넘어가 곧바로 파쇄기에 던져진다면, 미요가 작가로서 받게 될 영혼의 상처는 영영 회복되지 못할 터였다.

그렇기에 선생은 움직였다. 아이들이 블랙마켓에 발을 들여놓은 그 틈을 타 선생은 402호에 몰래 잠입했었다. 어둠 속에서 미요의 원고지들을 한 장씩 꺼내 들고,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 속에서 모든 문장을 복사해 나갔다.

사전 복사를 끝마친 진짜 원본은 아무도 찾지 못할 와일드헌트의 깊숙한 유적 속에 안전하게 봉인해 두었다. 오늘 사감대원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쓰레기통에서 시뻘겋게 타올랐던 원고지들은, 전부 선생이 미리 바꿔치기해 둔 정교한 가짜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 밀수업자 창고 / 동시시각 (4일차)


가로등 불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창고 앞, 사감대원들이 발키리 경찰학교 학생들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지막 압수품 상자들을 대형 트럭에 싣고 있었다. 사위는 밤의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철제 상자들이 부딪히며 내는 묵직한 소음만이 적막한 공기를 가득 채웠다.


사감대장 : 이것으로… 특수교역부의 잔당 소탕 및 물품 압수를 완료했습니다.


사감대장이 땀을 훔치며 경례를 건넸다. 그 앞에 서 있던 공안국장 칸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칸나 : 수고 많으셨습니다, 와일드헌트 사감대장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와일드헌트 사감대.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트럭에 실어 나르는 물건이, 학원 전체를 파멸로 이끌 거대한 폭탄이자 '뇌선(雷線)'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 복도 (4일 차)



같은 시각, 복도를 걸어가던 선생은 품 안의 싯딤의 상자를 조작하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아로나와 프라나의 연산을 통해, 압수된 밀수품들의 깊숙한 사각지대마다 치명적인 '흔적'을 미리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선생 : 이제 계획 2단계가 시작된다.

선생의 나직한 혼잣말이 어두운 복도 벽에 부딪혀 흩어졌다.


이 창고에서 발견된 것은 단순한 밀수품이 아니었다. 발키리 경찰학원이 수년간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해 혈안이 되어 쫓던 초고위험 지정 수배자의 장물이었다.

그 누구도 출처를 밝히지 못했던 그 장물의 표면에는, 지워지지 않은 선명한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선생이 미리 마나미와 함께 특별계엄령 문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확보해 두었던 ‘예술 평의회’의 공식 직인. 선생은 아로나와 프라나에게 명령해 그 비밀 직인을 완벽하게 복제한 뒤, 압수품 상자 곳곳에 정교하게 찍어놓았던 것이다

이로써 이 위험천만한 장물들이 와일드헌트 평의회의 은밀한 묵인과 비호 아래 거래되고 있었다는 완벽한 '정황 증거'가 선생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다.


깊어가는 밤의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은 선생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