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일드헌트 예술 평의회실 / 다음날 (5일 차)
칸나 :와일드헌트 예술 평의회 전원, 움직이지 마십시오!
평온하던 아침의 고요를 깨고, 와일드헌트 중앙 광장에 수십 대의 발키리 순찰차가 비상 사이렌을 폭발적으로 울리며 들이닥쳤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발키리의 무장 경비대원들이 순식간에 평의회실을 포위했다.
마나미 : 지금 무슨 짓입니까.. 칸나 국장!!
의장을 비롯한 평의회 의원들이 서류를 내던지며 경악 섞인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경비대원들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그들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사정없이 채워 나갔다.
코노카 : 장물 은닉 및 대규모 밀수 자금 세탁 혐의입니다.
칸나의 뒤에서 걸어 나온 코노카가 싸늘한 목소리로 체포 영장을 치켜들었다.
코노카 : 전원 발키리 교정국으로 이송합니다. 항변은 서에서 하십시오.
마나미 : 밀수라니요? 우리가 왜 그런 짓을……!
마나미와 평의회 학생들은 완강히 부인했지만, 선생이 심어둔 '평의회 공식 직인이 찍힌 장물'이라는 완벽한 정황 증거 앞에서는 무력했다. 어제까지 특수교역부와 대규모 밀수 조직을 소탕하며 학원의 영웅이자 절대적인 규제자로 군림하려던 평의회가, 선생이 판 놓은 단 하루 아침의 덫에 걸려 꼼짝없이 밀수 연루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학원의 성역이자 학생 자치의 중심이었던 평의회실 앞마당을 가득 메운 수십 대의 발키리 장갑차와 탱크들. 그 압도적인 광경을 목격한 와일드헌트 학생들 사이에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충격과 소문이 번져나갔다.
'예술 평의회가 통째로 체포당했다.'
'지도부가 통째로 증발했다.'
체포 연행으로 아수라장이 된 그 혼란의 중심, 굳게 닫혀 있던 평의회장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소란스러운 공기를 가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관망하던 선생이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수갑을 채우던 발키리 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평의회의 몰락을 주도한 선생. 칸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차가운 맹수의 눈빛이었다.
칸나 : …선생님.
선생 : 요. 또 보네, 칸나. 우리는 꼭 이렇게 거물들을 체포할 때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 같아.
선생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가벼운 손인사를 건넸다. 그 태연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며 칸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과거, 이 남자는 와카모의 가면을 강제로 벗겨 키보토스 전체에 박제해 버렸다. 학생을 지켜야 할 어른이 도리어 학생을 배신하고 파멸로 몰고 가는 잔혹함을, 칸나는 경찰로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 후 선생에게 버림받고 영혼이 완전히 피폐해져 망가져 가는 와카모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도 바로 칸나 자신이었다.
칸나의 눈에 지금의 선생은 학생들을 등쳐먹고 파멸시키는 추악한 배신자이자, 언젠가 제 손으로 반드시 수갑을 채워야 할 거물 범죄자일 뿐이었다. 이번 평의회의 몰락 역시 이 인간이 뒤에서 판을 짠 짓거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결정적인 물증이 없을 뿐.
칸나가 선생의 미간을 꿰뚫을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뼈가 가시처럼 돋아난 유도신문의 말을 낮게 뱉어냈다.
칸나 : …늘 선생님에게 상처받은 학생들을 잡을 때만 보는 거겠죠.
'이번에도 네가 뒤에서 이 아이들을 조종하고 상처 입혔지?'라는 매서운 경고이자 덫이었다. 자백이나 미세한 동요라도 이끌어내기 위해 던진 서슬 퍼런 칼날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칸나의 그 증오 섞인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입꼬리를 뒤틀며 차갑게 대꾸했다.
선생 : 그럼 칸나가 그 상처가 더는 덧나지 않게, 곁에서 잘 돌봐주렴.
마치 '네가 백날 의심해 봤자 심증뿐인데 어쩔 거냐'라는 식의 오만하고 도발적인 대답이었다. 학생을 배신하는 악마의 배짱에 칸나는 깊은 분노를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이 위선적인 어른의 멱살을 잡고 연행하고 싶었지만, 지금 발키리의 손에 쥐어진 완벽한 '밀수 증거'들은 평의회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페이스에 휘말린다. 칸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등을 돌렸다.
칸나 : … 가자.
발키리의 삼엄한 호위 속에 평의회 학생들이 연행되어 나가고, 홀로 남은 선생은 텅 빈 평의회장실에서 깊은 적막을 삼켰다. 수십 대의 순찰차가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가 아득해질 때쯤, 방 안에는 오직 무거울 정도의 고요만이 내려앉았다.
선생은 주인 잃은 방의 한가운데로 걸어가, 이제는 공석이 된 평의회장석 의자에 천천히 몸을 묻었다. 가죽 의자가 그의 무게를 받아내며 낮게 삐걱거렸다.
마나미가 특별계엄령을 선포하며 선생에게 넘겨주었던 전권 위임장. 사감대를 포함한 학원의 모든 전력을 제공한다는 그 절대적인 권력의 계약서는, 평의회가 연행된 지금까지도 파기되지 않은 채 유효했다.
이제 와일드헌트에 선생의 폭주를 막을 평의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생에게 준 위임을 해지할 주체 자체가 공중분해 되었기에, 영원토록 학원의 모든 입법, 사법, 행정 권력이 선생 한 사람의 손아귀로 고스란히 떨어졌다.
선생 : 이걸로 계획 2단계까지 완료. ……마지막 3단계를 시작해볼까?
선생의 나직한 독백과 함께 평의회장석의 만년필이 종이 위를 거칠게 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장악한 권력 위에 더 거대하고 정신 나간 특별법의 조항들이 하나씩 새겨지던 그 순간, 적막한 방 안으로 문을 두드리는 위태로운 소리가 울렸다.
선생 : 들어와.
미요 : …선생님.
선생의 허락과 함께 열린 문틈 사이로 미요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틈 사이로, 오늘 평의회 전부가 발키리에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때문에 일시적으로 구속을 면하고 학원에 대기 처분 중이던 미요가 초점 없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선생님은 더 이상 학생들이 의지하던 인자한 어른이 아니었다. 학원 전체를 속여 넘기고 왕좌를 찬탈한, 거대하고 완벽한 독재자였다.
선생님은 평의회장의 인장을 만지작거리며, 문가에 선 미요를 향해 차갑게 읊조렸다.
선생 : 보아라, 미요. 너희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평의회도, 너를 괴롭히던 과도한 규제 시스템도… 결국 내 왕좌를 위한 자폭 동반자였을 뿐이다.
미요 : 처음부터… 이것 때문에 우리를…
미요의 목소리가 빗물에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찢어졌다. 선생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잔인한 진실의 쐐기를 박았다.
선생 : 그래. 너희 특수교역부는 평의회를 발키리에 넘기기 위한 가장 완벽한 제물이었지.
미요는 절망 속에서도 선생의 책상 위, 방금 전까지 그가 거침없이 써 내려가던 특별법의 내용을 발견하고는 숨을 들이켰다. 온몸을 얼려버릴 듯 무자비하고 부조리한 독재의 법률이 눈앞에 선명히 박혀 있었다.
미요 : 선생님!!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미요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지만, 선생은 인장을 책상 위로 툭 던지며 오만한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선생 :이제 와일드헌트의 규칙은 곧 나다. 내가 곧 예술 평의회이자, 이 학원의 유일한 주인이지. 주인이 바뀌었으니 우습게 보는 녀석들이 많을 텐데, 내 방식이 얼마나 매운지 똑똑히 각인시켜 줄 필요가 있지 않겠나?
선생은 광기 어린 시선으로 미요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붉은 낙인이 찍힌 특별령을 거칠게 밀어 던졌다.
[와일드헌트 최고통치자 특별령 제1호: 학내 비상 체제 전환에 관한 건]
본 특별법은 전 평의회장으로부터 위임받은 무제한적 전권을 바탕으로 발효되며,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모든 학생은 본 조항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고 따를 의무를 진다. 만약 아래 명시된 8개의 특별 교칙 중 단 2개 이상을 동시에 위반할 경우, 어떠한 사법 절차나 변호의 기회도 없이 그 즉시 '퇴학 처분'에 처한다.
제1조 (상시 통행 금지 및 즉시 정학): 정규 수업 종료 선언 직후, 즉시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 통금 시간 이후 구역 외에서 발견된 모든 학생은 반란 분자로 간주하여 별도의 경고 없이 그 즉시 정학 처분에 처한다.
제2조 (창작물 전면 국유화 및 연좌제): 학내의 모든 개인 창작물은 생산 즉시 행정부의 소유로 귀속된다. 미승인 창작물을 은닉하다 적발될 경우, 해당 학생은 물론 같은 반 학생 전원을 연좌제로 묶어 즉시 정학 처리한다.
제3조 (사설 동아리 즉결 정학): 동아리 및 소모임은 즉시 '불법 전복 단체'로 규정한다. 적발 시 청문 절차나 유예 기간 없이 현장에서 즉각적인 무기한 정학 및 기숙사 강제 퇴거 조치를 집행한다.
제4조 (창작 도구 및 소지품 전면 몰수): 정규 수업시간 제외 한 전 시간 동안 학생 개인의 펜, 종이, 붓, 캔버스는 물론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창작 행위가 가능한 모든 도구의 개인 소지를 금지한다. 무단 소지 적발 시 도구 일체를 영구 몰수하고 즉시 정학에 처한다.
제5조 (사상 통제 및 인쇄물 연소죄): 평의회 승인을 받지 않은 모든 서적, 공책, 인쇄물의 소지를 금지한다. 발견된 불온서적은 전량 소각하며, 소지한 학생은 학생부 기록에 낙인을 찍음과 동시에 즉시 정학 처분한다.
제6조 (2인 이상 집회 금지 및 밀고 의무제): 학내에서 2인 이상의 학생이 모여 대화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 학생들은 타인의 불온한 언행을 목격할 시 사감대에 밀고해야 하며, 이를 은폐한 자 역시 그 즉시 정학 처분한다.
제7조 (무제한 가택 연금 및 상시 감시): 사감대는 영장 없이 기숙사와 개인 공간을 파괴하고 진입할 수 있으며, 모든 학생의 침실에는 24시간 감시 카메라와 도청 장치 설치를 의무화한다. 거부 시 즉시 정학 처리한다.
제8조 (비판자에 대한 즉시 정학 및 영구 구금): 현 체제나 선생의 조치에 대해 사소한 의문이나 불만을 표출한 학생은 광장에 대자보로 박제한 후, 그 즉시 정학 처분 및 독방 구금 조치를 집행한다.
제9조 (강제 노역 및 사법권 박탈): 계엄령 위반으로 체포된 학생들에게는 변호나 항변의 기회를 일절 박탈하며, 학내 시설 정비 및 탄약 생산을 위한 강제 노역 형벌을 부과함과 동시에 무기한 정학에 처한다.
미요가 숨이 막힌 듯 가슴을 움켜쥐는 모습을 보며, 선생은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선생 : 기분이다, 사쿠라이 미요. 새로운 통치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행운으로 너와 후유, 리츠… 특수교역부 전원을 특별사면해 주지. 앞으로는 밀수 같은 조잡한 짓은 꿈도 꾸지 마라.
미요 : 선생님……!
선생 : 이것으로 내 행동의 정당성은 확보되었다. 비공인 불법 동아리를 규제하고, 마침내 학원에 완벽한 법과 질서를 가져왔으니까
선생은 미요의 절규를 무시한 채, 와일드헌트 학원 전체의 통제 장치를 최고 단계로 끌어올렸다. 경보음과 함께 학내 전산망이 붉게 물들었고, 창밖으로는 무장한 사감대원들이 자비 없이 학원 전역을 통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 평의회가 가졌던 과도한 규제의 끝에 탄생한 것은, 오직 선생 한 사람만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파시즘 체제였다.
선생 : 사쿠라이 미요. 새로운 학생회장의 통치 아래서…… 네가 그토록 원하던 '특수교역부'가 해체 된, 아주 평온한 삶을 누려라.
선생의 서늘한 선언과 함께 학생회장실의 두꺼운 커튼이 굳게 닫혔다. 완전히 장악당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하늘 위로,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미요는 자신이 사랑하는 와일드헌트가 선생의 손에 유린당하자 참을 수 없다는 듯 밖으로 나가기 위해 평의회실 문을 열자 히로미가 있었다.
히로미는 당황하고 미요는 히로미를 째려보고 밖으로 나갔다.
선생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선생의 모모톡이 끝없이 울려대고 있다. 발키리의 학생들, 총학생회의 연락들
하지만 선생은 그 액정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서랍을 닫고 열쇠로 잠가버린다.
이제 이 학원에 '선생님'은 없다. 오직 완벽한 법과 질서를 집행하는 '새로운 학생회장'만이 존재할 뿐이다.
선생 : ... 자유로운 창작은 혼란을 낳을 뿐이다. 그렇지 않나, 히로미?
히로미 : ...네, 선생님.
선생은 책상 위에 놓인 '비공인 조직 전멸 및 학내 안정화 보고서'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와일드헌트 학원은 이제 아무도 규칙을 어기지 않고, 그 어떤 자유도 허용 하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죽은 예술의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