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7월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개시되었을때 국군 측 대표는 백선엽 장군이었고 


북괴군 대표 중 한명은 당시 정찰국장, 부참모총장을 역임했던 이상조(1915~1996) 중장이었음.


이때 이상조가 기싸움에서 지지않으려고 했던 행위(파리가 이마에 붙어도 전혀 꿈쩍하지 않는다든지, 백 장군에게 욕설이 적힌 쪽지를 건넨다든지)는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도 나온 유명한 얘기임. 


정말 아이러니 한 사실은


남한측 대표인 백선엽 장군의 고향은 평안남도 강서, 즉 이북이고


북괴 측 대표인 이상조의 고향은 경상남도 동래(부산), 즉 이남이라는 거임.


이상조 중장은 일제 시대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과 같이 활동했고 그래서 해방 후에 이북으로 들어가서 인민군 장교가 된 거임.


각각 남북을 대표하는 사람의 고향은 정작 거꾸로 되어있다는 아이러니. 이건 백선엽 장군에게도 대단히 인상깊은 사실이었는지 백 장군도 언론 기고문에도 직접 해당 내용을 언급했었음. 


참고로 이상조 이 분은 휴전 후 소련 대사를 지내다가 50년대 김일성이 연안파를 숙청할때 바로 소련 현지에서 망명했음. 그래서 한소 관계가 해빙기에 접어들던 1989년에 한국을 방문해서 6.25에 관해 중요한 증언을 하기도 했었음.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들과 상봉하기도 했고. 


https://www.ehistory.go.kr/page/view/photo.jsp?photo_PhotoID=12909&photo_PhotoSrcGBN=PT

상단은 1989년 고향 방문 당시 기자회견 사진임.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34203_30435.html

https://www.joongang.co.kr/article/4265113#home

1990년 재방한 당시.


그 뒤에도 남한을 재차 방문해서 이때 한때 적이었던 백선엽 장군과 만나기도 했고. 백선엽 장군 회고에 의하면 백장군이 이때 휴전 회담때 욕설 적힌 쪽지 자기한테 준거 기억하냐고 물었을때 이상조가 옛날의 그 행위가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그런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고. 


어쨌든 이상조는 그 뒤에도 계속 러시아에 머물면서 러시아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료 출신 고려인들과 함께 반북 운동을 계속 하다가 1996년 별세했다고 함. 


이상조 이분은 그래도 자신의 고향이 자유 진영 품안에 있기에 인생 말년에라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백 장군은 끝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고 그 땅은 지금도 자유로워질 기미가 전혀 안보이니 정말 통탄할 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