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아아아암.."
실비아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상쾌하게 기상했다.
설레서 잠을 못이룬다던지 하는 순정만화틱한 전개는, 아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양질의 수면을 취한 덕택에 실비아의 피부는
베이스화장없이도 맑고 투명했다. 하지만 맘 한켠에 생기는 불안.
'나, 그 녀석을 좋아하긴 하는걸까.'
상상치도 못한 고백과 더 상상치못한 거절에 홧김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연인 없이 지낸 오랜 시간이 외로워서 그를 마지못해
선택한 것은 아닐까, 연애대상인 카일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는 자신이 좋아서 대뜸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닐까.
사랑은 설레는 것이라고 배운 그녀로서는 뜬금없이 찾아온 첫 연애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으으으! 모르겠다! 리프노드! 남자를 확 휘어잡을 만한 코디,
추천해줘!"
리프노드는 그 즉시 시스루 룩을 패널에 띄웠다.
문란해! 누가 이런 다 비치는 옷을 입는다고! 아니 확실히 남자를
휘어잡긴 하겠지만... 일단 이 날씨에 얼어죽을 일 있나.
실비아는 즉시 시스루 룩을 기각하고 리프노드의 추천을 고르고
골라 겨우 맘에 드는 코디를 골라 냈다. 하지만 그 전에.
'속옷.... 신경쓰는게 맞을까?'
새로 만난 여자친구와 단번에 홈런을 쳤다는 앨버트의 말이 계속
그녀를 괴롭혔다.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라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적어도 부끄러운 속옷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아니, 아니! 절대 안 할 거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12월말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바람이 실비아가 골라 입은
회색 치마는 물론이고 결국 신경써서 골라 입은 살짝 야시시한
검은색 프릴 팬티를 뚫고 들어왔다.
'하.. 역시 팬티 이런거 입고 나온건 오바였나..'
기껏 엄선해서 골라 입고 나왔건만, 현타가 진하게 온 그녀였다.
어느새 저 멀리, 챠콜그레이 계열의 코트와 붉은 머플러로 몸을
감싼 카일이 보였다. 벽에 살짝 기대 핸드북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에 실비아는 잠시 멍하니 쳐다볼수밖에 없었다.
델타세븐 정복이 아닌 카일의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처음 보는 광경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팬더같이 내려앉은 눈가의 다크서클이 귀여워서,
카일이 보고있는 핑크빛 표지의 핸드북 제목이
'당신도 할 수 있다 로맨틱한 연애!'라서, 카일이 읽을 거라곤
상상조차 안 되는 그 책을 정독하는게 귀여워서 한동안
걸음을 멈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실비아는 자신이 근처에 왔다는 어필을 위해 요란스레 다가왔다.
다행히 카일은 그녀의 배려덕분에 핸드북을 재빨리 주머니에
집어넣고 실비아를 반겼다.
"3분 지각입니다, 실비아 양."
"좀 봐줘, 스틸레토 힐 신고 걸으려니까 평소신던 부츠로 계산했던
걸음이 안 나왔단 말이야."
"...제 말대로 벗고 와주셨군요. 아름다우십니다."
카일의 충격적인 발언에 실비아의 얼굴이 대번에 벌게졌고
주위 사람들의 휘둥그레한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
"야!! 그게 무슨 변태같은 말이야!"
"안경... 안경말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카일이 실비아와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었겠지만,
난생 처음 입어본, 사실상 반라에 가까운 그녀의 팬티가 실비아를 더 과민반응하게 했다.
괜히 찔린 실비아의 씩씩거림이 조금 잦아들자, 카일이 실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요즘 핸드북은 뭘 가르치길래 첫만남 첫데이트부터
손을 잡게 시키는거지? 앨버트가 이런걸 봐서 그렇게 문란해졌나?
실비아는 어린 시절 봤던 순정만화처럼 손잡을때의 그 떨림과
설렘, 풋풋함을 느껴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분위기를
깨고싶지 않아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핸드백.. 달라는 겁니다만..."
카일이 문란한 여자 다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하라고 답답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