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pink


아직 가랑이는 저릿저릿하고 또 욱신거렸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기쁨과 처음 느껴본 오르가즘 덕분에 실비아는 행복한

얼굴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실내용 끈나시와 돌핀팬츠, 더운 물로 

샤워한 직후의 상기된 얼굴과 젖은 머리칼은 2라운드를 바로

할 맘이 들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다만 카일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카일,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저는 쓰레깁니다.."

"엥, 갑자기 뭔 소리래."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었는데, 욕정에 못 이겨서 실비아 양을

몰아 세우고 말았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현타 뭐 그런건가.'

콩깍지가 씌었는지 실비아는 의기소침해 있는 카일이 마냥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 아까 내 팔을 구속하고 몸을 더듬던 그 남자와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이 남자의 처음이구나, 이 남자가 나의 첫 상대였구나.'


실비아는 그런 카일을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토닥여 주었다.

카일은 잠시 놀란 듯 했지만 자타공인 안아줘요 괴물답게 더 품에

파고 들었다. 


"실비아 양의 품은 신기하네요.. 모든 걱정이 잊혀지고 안정되는

기분입니다.."

"그거 그냥 내 가슴이 좋다는 말 아니야?"


카일은 실비아의 품에서 거칠게 얼굴을 꺼내어 완강히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막 샤워한 실비아 양에게서 좋은 향기도 나고,

체온이 전해지는게 따뜻해서..."

"흐응.. 그런거 치곤 아까 아기처럼 가슴에 몰두하던데 카일 군?"

"...본능인데..."

"아하하, 이성의 현신같은 카일이 본능 이러니까 재밌네. 종족번식

욕구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제야 알겠어."

"그만 놀리시죠, 누군 심각한데."

"무슨 일로 심각하십니까, 카일 군?"

"아직 제가 약속한 대로, 실비아 양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지도

못 했고, 정식으로 남자친구로 인정도 못받았는데 그저 성욕에 

못이겨 실비아 양을 아프게 하고, ....또 미숙한 모습만 보였고.."


실비아는 한바탕 깔깔거리며 웃었다. 윽, 아직도 거기에 통증이.

그리고 짐짓 화난 시늉을 하며 카일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카일 군, 묻겠습니다. 카일 군은 제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처음을 줄 정도로 헤퍼보이나요?"

"절대 아닙니다!"

"그럼 또 한가지,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나눴던 애정표현들이

제 마음을 표현하는데 충분치 않았나요?"

"그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지금 아파 보이나요?"


실비아는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미소를 확인한 카일의 경직된 표정이 그제서야 살짝 미소로 바뀌었다.


"꼭 말로 해야만 남자친구로 인정하고, 좋아한다는 마음이 표현

되는 건 아니잖아. 부끄럽기도 하고."

"..그 말엔 동의 못하겠습니다. 표현을 해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저도 부끄러웠지만 참고 표현 한겁니다."


실비아는 카일이 부끄러움이라는 개념을 알면서 그런 오글거리는

멘트들을 얼굴색 변화 하나 없이 해왔는지 믿기 어려웠지만,

몸과 마음 가득 행복감으로 가득 찬 지금은 누구와도 싸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네,네. 미안합니다. 이제 제대로 알기 쉽게 표현해줄게.

근데 짚고 넘어 갈게 두개 있어."

"두개나요?"

"응, 첫째. 나 오늘 처음이라 무지막지하게 아팠어, 행복감이 더 커서 

괜찮은 거지 지금도 아파. 그리고 둘, 나름 첫키스였는데, 

더 로맨틱한 장소에서 더 로맨틱하게 하고 싶었는데ㅊ곁다리로 쓱싹 

해치운 것 같아서 영 마음이 별로네. 이거 어떻게 책임질래?"


카일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 두번째 사안말인데, 저도 첫 키스였으니 서로 상쇄됐다, 라는 건

어떨까요?"

"농담 아니거든? 하지만 나는 자비로우니까, 네가 내 소원 두개

들어주는 걸로 퉁치려고 하는데, 어때?"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뤄드리겠습니다."


실비아는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의 개념이 그에게 있는 것이 확실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뭐, 됐어.


"첫번째, 카일 웡은 이제부터 실비아 레나 쿠퍼의 정식적인 

남자친구가 된다. 뭔가 선후관계가 바뀐 것 같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얘기하고 싶었어."

".. 그게 소원이십니까?"


카일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가 소원으로 빌고 싶었지만 그녀의

마음까지 얻는 것은 아니었기에 망설였던 것을 실비아가 먼저 요구한

것이다. 카일의 표정이 LED등을 킨 것처럼 밝아졌다.


"두번째, 지금 엄청 배고프거든? 가서 라면 끓여와!"

"여자친구님이 원하신다면!"


실비아는 사랑의 흔적을 뒷정리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앞치마까지

두르고 본격적으로 라면을 끓이고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 근데 우리집에 추가해 넣을 식재료가 없을 텐데.


결국 카일쉐프가 내온 건 라면 튜닝의 끝, 순정이었고 카일은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실비아에게 젓가락을 건넸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너 꼬들면좋아해? 난 살짝 퍼진게 좋은데."

"! 식성을 바꾸겠습니다."

"아니야 농담이야! 히히. 나도 꼬들면 좋아해. 잘먹겠습니다!"

"역시 우리는 천생연..."


푸웁.


"너 말야, 진짜 부끄러움이 뭔지는 알아?"


***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라고, 실비아와 카일은 라면 두봉지를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흐아.. 잘먹었다. 라면 잘 끓이네 카일?"

"감사합니다. 근데 실비아 양 집에 식재료가 너무 없는데, 냉장고에

탄산만 종류별로 있는게 말이나 됩니까? 평소에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는 겁니까?"

"보, 보통 시켜먹지. 요즘 얼마나 배달이 잘 되어 있는데."

"다음에 제 집에 한번 오시면, 집밥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남자의 집.. 실비아는 안 그러려고 해도 방금 성인 남녀가 단 둘이

있으면 어떤 CC에 걸리는지 몸소 체험한 터라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것을 캐치한 카일에게 한 소리 듣긴 했지만.


"저더러 자꾸 변태라 하시더니.. 얼굴 빨개지는 건 대체.."

"시..시끄러! 앗, 아야야! 카일이 흉기로 찔러서 아직도 아프네!"


실비아가 엄살을 부리자 카일이 눈에 띄게 허둥거렸다.

귀여운 녀석같으니라고.


"화..환부를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퍽.

실비아의 쭉 뻗은 다리가 카일의 턱을 강타했다.

천하의 변태[검열됨]같으니라고.


"이..이거 순 돌아이아니야.."

"노..농담입니다.."


시곗바늘은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라면을 너무 늦은 시간에 먹어버렸다~ 내일 얼굴 팅팅

부어서 카일이 못알아보면 어떡하지?"

"괜찮습니다. 저는 실비아 양이 어떤 모습이든 알아 볼 거고,

어떤 모습이든 좋아할 겁니다."

"...너 말야, 후.. 아니다 됐다. 입만 아프다."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 섹스는 5분에 약 75kcal을

소모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므로.."

"섹..?! 내가! 섬세함을! 배우랬지! 죽어, 죽어!"


실비아가 베개로 카일을 마구 때렸고 겨울 밤과 그들의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