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원의 대형병원.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산책로의 한 벤치에서,


"저주라니, 성가신 힘이네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처참한 몰골의 여성에게 센스없는 말을 지껄이는 남자가 있었다.

철저하게 의도된 선한 인상으로, 별거 아니라는듯 검은 금속 조각을 꺼내보인 나유빈이 말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카운터 능력으로 완파된 물건은 수리가 아니라 새로 만드는게 낫겠죠. 그게 저주처럼 흉흉한 힘이라면요."

"...그래, 역시 그런가."


그녀의 애병이였을 금속 조각은 더 이상 그 역할을 해내기는 힘들어보였다.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잠시나마 고민하는듯 하던 나유빈이 말을 걸었다.


"몸은 어떠시죠?"

"괜찮아, 신경쓰지마라."


물론 귀화가 피어올랐던 한쪽 눈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아 감고 다니는 상태고, 방금까지도 이터니움을 정제한 치료제를 온 몸에 덕지덕지 바른 참이였지만, 적의는 내보이지 않는다.

그야 여러모로 짜증나는 남자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해코지를 할 인물이 아니라는걸 아니까.


디자이어의 머리를 터뜨리고 그대로 졸도한 그녀를 구조대가 올때까지 지킨게 저 남자인 이상, 그녀에겐 한가지 의무가 생겨난 참이였다.


"...살려줘서 고마워. 이 인사는 해야겠지."

"아하하...감사인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니까요...그 여성분은 어떻죠?"

"충격때문인지, 아니면 머리를 부딪혀서 그런지. 이면세계에서의 일은 전부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야. 병원비가 아깝다면서 벌써 퇴원했다더군."


은혜를 준 사람은 없다.

은혜를 받은 사람만 있을뿐. 그 괴리가 퍽 달갑지 않아, 그녀는 괜시리 땅바닥의 돌맹이를 걷어찼다.


"아쉬우시겠어요?"

"...그래, 아쉽네. 그 여자도, 내 검도."


하지만 보내주어야 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들고있던 검은 금속을 어딘가로 휙 던져버렸다.


그 모습에 움찔한 나유빈이였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뭐, 디바이스로의 기술이랑 기능은 일체 없으니까..."

"이봐, 궁금한게 있는데."

"어떤건가요?"


그녀는 감고있는 오른쪽 눈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이건, 결국 어떻게 안되는건가?"

"...후, 어렵게 설명해도 못알아들으실테니 최대한 쉽게 설명할게요."


그녀의 눈은, 그녀의 카운터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매개체였다.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다루는 능력.


"누군가의 원망, 저주, 사념...뭐 이런 것들일테죠. 성가신 능력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침식증후군인줄 알았는데...그보다 더 위험할줄은 몰랐어요."

"원망이라..."


그녀를 원망할 이라면 수없이 많겠지.

그녀가 지켜보고, 또 떠나보낸 망자만 해도 수백 수천일터다.


"그렇게라도 전우들이 지켜봐준다니, 대신 살 맛 나겠어."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나유빈이 말했다.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란건 말입니다. 대체로 현실과는 동떨어져있죠."

"...무슨 말이지?"

"당신은 자기 자신을 마주볼 수 있나요? 당신의 두 눈으로, 거울이나 수면따위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당신 그 자체를요."

"...넌 바보인가?"

"...안되겠죠 당연히?"


그녀의 반문을 무시한 나유빈은 감겨있는 그녀의 눈에 손을 가져다 댄다.

잠깐이지만 무엇인가가 몸을 스쳐지나간듯한 느낌과 동시에, 손을 떼어낸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 것들이 보이는게, 당신의 눈입니다...저주에 가깝네요."

"어렵군...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것들은 당신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괴롭혔을겁니다. 실제로 그 때마다 당신의 눈이 터질것처럼 아팠죠. 그리고...그건 당신의 힘이였습니다."


나유빈은 미소를 덜어낸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자학이 심한 사람이였네요, 당신은."

"...나였던건가? 그것들은."

"네, 당신의 죄책감이였을겁니다...확실하진 않지만요."

"그런가..."


그녀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악령이면 어떻고, 죄책감이면 어떨까. 이제 그깟 것들에 휘둘리진 않는다.


제 멋대로 전우들과 동료들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허락따위, 이제와서 받을 생각은 없다.


"그래, 알았다. 고맙군."

"정하셨나보네요. 더 이상 흔들릴 생각은 없으신가봐요."

"그런건 안어울린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고민해봤자 피곤하기만 해."


지난 세월 얼마나 피곤하고 괴로웠던가.

그에 비하면 현재의 그녀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바로 직전에 나유빈이 사들고 온 캔커피를 다섯 캔이나 끝장낼 정도였으니까.


"앞으로 뭘 하실건가요?"

"하고싶은걸 찾아야지."

"...분명, 하고싶은걸 찾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래, 하고싶은걸 찾는걸 하고싶어."

"아...네..."


깊게 생각하기를 포기한 나유빈은 이내 피식 웃어버리곤,


"그렇다면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좋아, 목숨값이라면 갚겠다."

"듣지 않으셔도 될까요?"

"머리아픈 이야기는 질색이야. 그냥 내가 할 일만 알려줬으면 좋겠군...겸사겸사 검 한자루만 구해주면 더 좋고."

"하하하, 이거...그래도 알려드려야죠."


기분좋다는듯 웃음을 흘리던 그는, 이내 웃음기 뺀 얼굴로 말했다.


"그 전장이, 그 멸망이 다시 올겁니다."


클리포트 게임.

인류에겐 종의 생존을 건 필사의 혈전이 누군가에겐 그저 심심풀이뿐이 되지 못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알려주는 이름.


"인류는 게임의 말조차 되지 못해요. 우리는 판위의 먼지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판 위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겠죠."


관리국은 그랬기에 실패했다.

말조차 되지 못하고 바스러진 수 많은 생명은, 언제나 그들의 영원한 업보일터다.


"이 세상이 살아 남기 위해선...룰을 바꾸고, 판을 엎어야됩니다."

"듣기만해도 힘들고 피곤하겠는데."

"네. 힘만으로는 정의를 실현하지 못해요. 우리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우리는 뒤에서 세상을 떠받들어야겠죠."


게임은 특별한 이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그들이 활약할 수 있는 전장과 룰을 만들어야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


관리국의 일원이였던 그녀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였다.


"돕겠다. 나도 그렇지만, 만약 다른 전우들이라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겠지."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관리국이 무너진 이 때, 당신을 구속하는건 하나도 없어요. 이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도 됩니다. 지원도 하겠습니다. 굳이 지옥으로 올 필요는 없어요."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군. 그런건 나랑 어울리지 않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회시간이 끝났다며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병실로 데려가고 있는 모양이니,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지.


"퇴원에 맞춰서 데리러 오도록. 아, 그리고 알아봐줬으면 하는게 있다."

"어떤거죠?"

"...그 여자, 그 정신나간 여자의 동생은 어떻게 됐지?"

"죽었습니다. 침식 증후군이였다네요. 열 네살이였습니다."


즉답이였다.

어쩌면 물어볼지도 모른다며 알아뒀던 것이였다.


잠시간의 침묵.

그것을 깬건 그녀의 목소리였다.


"...이름은?"

"이지수...지혜 지智에 빼어날 수秀 자를 쓰는 아이였습니다."

"지수...이지수...그래."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다음부턴 이지수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와서 어린 아이 하나쯤. 더 짊어져주는게 뭐가 그리 대수랴.


처음으로 미소지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유빈역시 마주 웃어 보였다.


"네, 그러죠. 지수씨."






날개를 펴기 전에 떠나버린 그들을 위해.

대신 날개를 펼치기로한 그녀, 이지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빌어먹게도 화창한 날이였다.


--------------------------------------------------------


그리고 이 아이는 몇년후 복지과 계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