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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오게 된 것인가.


유미나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뇌의 주름들이 하나하나 뒤엉켜 서로가 새로운 매듭을 만들고만 있는 것 같았다.


주시윤은 "실례합니다-"와 같은 말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섰다.


기숙사는 적당히 커다란 원룸과도 같았다.


구석에 침대가 하나 있었고, 침대의 건너편 구석엔 주방용 식탁이 하나 있었다. 식탁 위에는 여러 식기 도구들과 인덕션이 놓여 있었다.


방 한켠에는 컵라면이 쌓아져있는 공든 탑 몇 개가 쌓아져있었으며, 그 옆에는 똑같은 정장으로 가득찬 비키니 옷장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문옆에는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이 있었고, 방은 전체적으로 적당히 청소가 되어 있는 편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마땅한 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청소는 되어있다는 점에서 유미나는 12월 23일의 자신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미나는 다가가 자신의 침대 위에 사뿐히 자신의 몸을 올렸다.


주시윤은 멀리 떨어진 식탁에 앉으려했지만, 유미나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리다 그 또한 그곳에 착석했다.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그들을 옥죄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적당한 화제를 꺼내 말했다.


"집이 잘 정돈되어있네요. 여자 혼자 사는 방이라고는 생각 못하겠어요."


"고, 고마워. 하하."


그녀는 적당히 대답했지만 그속에 영혼은 단 1g로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잠깐 숨을 들이킨 후,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저기, 아까 한 얘기...진심이야...?"


"네, 물론이죠."

한치의 고민도 없이 흘러나온 즉답.

오히려 질문을 이어간 것은 역으로 주시윤 쪽이었다.


"미나양께서는...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나야 뭐...좋기는 한데..."


"좋기는 한데?" 그가 되물었다.


"선배는 진짜 괜찮겠어? 나같은 걸로? 선배 주변엔 하나 언니나 뭐...더 괜찮은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미나 양. 자신을 비하하지 마세요. 전 정말 진심이니까요."


유미나의 호흡이 잠깐 멈추었다.

그러다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심호흡이 필요할 것 같았다.

호흡이 무척이나 거칠었다.


답답했고, 안에서 덩어리 채로 뭉쳐진 무언가가 그 통째로 터질 것만 같았다.


눈에선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이것은 감격일까, 혹은 부끄럼일까.


"내가 왜 이러지, 진짜.."

그녀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눈물이 더 새어나올 뿐이었다.


"선배, 나 정말 기쁘거든? 그런데...자꾸 눈물이 나오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의 감정을 그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그녀가 어떻게 그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는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얘기했다.



"미나 양."


주시윤이 다시금 유미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포개었다.


유미나는 손을 빼지도 않았다.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그 여느때보다 뜨겁게 붉힐 뿐이었다.


"대답은 오케이로 봐도 되겠죠...?"


유미나는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시윤과 유미나는 그렇게 나란히 뒤로 젖혀져 침대에 누웠고, 서로를 마주봤다.


주시윤은 그녀를 쳐다봤다.


젖어 흐르는 눈물 사이로 벌건 홍조가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그 어떤 화장품과 크림을 발라도 그보다 밝게 빛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유미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야비해보이는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그의 귀가 터질 듯 빨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잠깐 웃다가 서로 입술을 포개었다.


혀가 뒤섞일 정도로 격렬한 키스는 아니었다.


마치 여느 청순한 첫사랑이 그렇듯이 , 서로 맞닿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서로의 입술을 포개었다.


그러곤 주시윤은 맞잡은 유미나의 손을 당기곤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유미나와 마주봤다.


유미나는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가까이 있으니 그녀의 숨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주시윤도 거칠게 숨을 내쉬기는 매한가지였다.


서로의 숨소리가 서로의 얼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단 둘이서 뜨거운 사우나라도 들어간 듯 후덥지근하면서도 텁텁한 기분이 그들을 자극했다.


유미나의 위에 올라탔지만 주시윤 자신도 스스로의 행동에 난처해하던 도중, 유미나가 그를 힐끗 올려다보고 말했다.


"선배, 나 처음이니까...살살 해줘..."


순간 주시윤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나 양은 참...못된 사람이네요..."


그렇게 그들 얼굴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혀져갔다.


유미나 또한 자신과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눈을 감으려했다.





그러던 도중,


그녀가 미처 눈을 감지도 못했음에도,

 

온 세상이 먹물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새까맣게 변하였다.













****





"음냐?"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나와 베개를 흠뻑 젖히고 있었다.


몸은 찌푸둥해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유미나는 그 상태에서 조용히 눈동자만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 일어나셨네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동공을 향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그녀를 마주한 것은...


"어...하나 언니...?"


코핀 컴퍼니의 김하나였다.



멈춰져 있던 근육이 조금씩 이완되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팔을 빙빙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가지 실험기구들과 놓여있는 두 짝의 침대들.


자신은 아마 연구실에 있는 듯 했다.


내가 왜?

나는 분명 어젯밤 선배와...


그 생각을 하니 또 다시 얼굴이 붉어졌기에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궁금해진 그녀는 김하나를 향해 질문했다.


"저...하나 언니,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네? 미나 양, 기억 안 나세요? 어제 점심쯤에 갑자기 복도에서 쓰러지셨잖아요!"


"어제 점심?"


"네! 시윤 군하고 같이 꼬박 하루를..."


"잠깐, 그럼 선배는 지금 어딨어?!"


익숙한 이름이 들리자 유미나는 흥분한 표정으로 김하나의 양 어깨를 잡았다.

김하나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어...시윤 군이라면 아까 일어나서 복도로..." 김하나는 말했다.


"복도 어디?!"


"사장실쪽 복도...였던 거 같은데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미나는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말이 맞다면 그도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복도를 달렸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서 선배의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녀는 다가가 오른손으로 그의 왼손을 붙잡고 소리쳤다.


"선배!!!"


그러나 주시윤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어...미나 양? 안녕하세요?"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선배가 설마 지금까지 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나?


유미나의 머릿속이 순간 오만가지 망상들로 채워졌다.


설마, 그걸 기억을 못 한다고?


그 모든 기억들을, 나만 기억한다고?


이대로는 억울해서 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선배, 혹시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자신이 어제 점심에 쓰러졌다면, 오늘은 필시 25일 터.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만약 그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둘만이 나눴던 이 암구호의 의미를 모를리가 없었다.


"오늘 말씀이신가요?"


주시윤은 흠-하는 소리와 함께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대답했다.


"아마 12월 25일이었던 것 같은데요?"


더는 살필 필요도 없다는 듯, 평범하고 무난한 대답이 돌아왔다.


유미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망가졌다.

실망이나 절망과 같은 표현따위론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그녀의 표정은 찌그러졌다.


억하심정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제 일은 나만 기억한다고?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었다.








*****



"그래서 그 물건은 뭐였던 거죠?"


서윤에게 받은 선물을 매만지고 있던 사장을 화난 듯 째려보며 이수연이 말했다.


"무슨 물건 말하는 겐가?"


"그 이상한 구슬 있잖습니까, 시윤 군하고 미나 양이 잡고 쓰러졌던 그거."


그간의 사정을 cctv로 확인한 이수연이 말했다.


그녀의 말투가 조금 화나있던 탓에 관리자는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냥 이전에 갖고 왔던 소원구슬을 조금 건드려본 거라네. 그것을 만진 사람들이 꿈 속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말이야."


"꿈속에서요?" 이수연이 물었다.


"그렇네, 꿈 속에서."


관리자가 잠시 침을 삼키느라 말을 멈추었다.


이수연은 이를 기다렸고, 관리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게 하나 있다네. 내가 아무리 그 구슬을 건드려봐도 나는 꿈에 빠져들지 못했었 거든."


"그건 아마 사장님께서 특이 체질이라서 그런가보죠." 이수연이 질책하듯 말했다.


"나도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아니었어. 몇몇 직원들한테도 한 번씩 만져보라고 권유했었는데, 다 실패했었거든. 딱 한 번을 제외하고 말이야."

관리자가 검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딱 한 번...?"


"아인과 츠바이에게 구슬을 줬을 때였다네. 둘이 동시에 구슬을 만졌는데, 동시에 쓰러졌지 뭔가. 나중에 물어보니 두 사람이 다 똑같은 꿈을 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

이제 질린다는 표정으로 이수연이 말했다.



"그러니까..."


관리자가 잠깐 뜸을 들였다.


"그 구슬은 두 사람 이상이 똑같은 소원을 가진 채 만졌을 때, 비로소 작동이 된다는 이야기일세."


"두 사람 이상이 똑같은 소원을...말씀이십니까?"

이수연이 되물었다.


"그런 셈이지. 어떤가 자네의 소원이 나랑 같은지 한 번 실험해보겠나?"

관리자가 유미나로부터 회수한 구슬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양하죠. 그런 변태적인 취미에 어울리긴 싫어서요."


이수연이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이상하구만. 이걸 처음 본 사람들은 구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이걸 가지려고 애를 쓰는데."


"제가 그까짓 거에 넘어갈 것처럼 보이시나요?"

이수연이 손을 모아 사장의 머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물론, 단 한 대에 지나지 않았다.








******




유미나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녀는 그제야 비로소 기쁨의 놀라움을 가질 수 있었다.


주시윤은 계속해서 몸은 뒤를 돈 채 얼굴만을 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투와 표정으로 상황을 넘기려던 주시윤이었다.


그러나 유미나는 그녀가 봤던 그의 마지막 모습과 일치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그의 귀.

유미나는 지긋한 눈빛으로 그의 귀를 올려다봤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의 귀가,


유미나가 손을 잡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그 어떤 펄펄 끓는 용암보다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