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브 건강 챙기는 레오

"으음..."

늦은 오후, 소파에서 눈을 깜빡이며 일어난 이브는 자신의 몸 위에 덮인 얇은 이불을 치우며 일어나려다 다시 소파에 털썩 누웠다.

"...?"

몸이 말을 안 듣는다는, 그녀로서는 생소한 그 현상에 당황한 이브는 입을 열어 레오를 불렀다.

"레오..."

최대한 크게 부른 건데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에 이브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브님? 이브님!"

자신에게도 들릴락 말락 했던 목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달려오는 레오를 속으로 대견하다 생각한 이브는 그런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레오... 이게 무슨 일이니?"

"기억 안 나세요, 이브님? 아침에 물 마시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잖아요."

"내가...?"

"네. 마침 지바 님이 보결 악마님네 들렸다 가시던 길이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급성 마력 고갈 현상이라는데, 인간으로 치면 몸살 같은 거래요."

어디서 가져온 건지 작은 부채로 이브의 식은땀을 날려준 레오는 부엌으로 가 죽을 한 그릇 떠왔다.

"마늘이랑 야채를 넣고 끓인 거에요. 제가 먹여드릴게요."

"됐단다. 내가 먹을 테니 숟가락 이리 주렴."

"그러실래요? 힘드시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이브님?"

숟가락을 내밀어도 아무 반응이 없어 당황환 레오는 더 당황한 이브의 표정을 보았다.

"팔이... 안 움직여져."

"네? 그, 그럼 제가 먹여드릴게요."

"어쩔 수 없네. 잘 불어서 먹여주렴."

죽을 작게 한 숟갈 뜬 레오는 아까의 부채로 죽을 식혀 조심스레 이브의 입에 넣어주었다.

"삼킬 수 있으시겠어요?"

이브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꿀꺽 하며 죽을 넘겼다.

"더 주렴."

"네, 이브님. 다 드시고 나면 이불 덮어드릴테니까 좀 더 주무세요."

식도로 죽을 넘기는것 조차 힘들었지만 억지로 한 그릇을 다 비운 이브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레오. 찬장에 있는 초콜렛 하나만 가져다주렴."

"어... 저기 그게, 지바님이 초콜렛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마력이 충만한 상태라면 괜찮지만 지금 이브님의 상태로는 독이 될 거라고 말씀하고 가셨여요."

"아프니까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구나."

다행히 얌전히 소파에 누운 이브는 레오가 덮어주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레오."

"네, 말씀하세요 이브님."

"내가 잠들때까지 거기 있으렴."

아파서인지 부드러워진 이브의 목소리에 뺨을 붉힌 레오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질책이 날아들어왔을 행동이었지만 이브는 아무 말 없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잠시 멍하니 있던 레오는 핫 하고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브님."






2. 투닥대는 로키와 루퍼스

데차왕조 500년.

선왕 르시페로의 통치 아래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데차국에는 세 왕자가 있었다.

브라운국으로 사절단을 겸해 유학을 간 첫째  카미뉴 왕자.

성격이 괴팍하다고 알려져있지만 인덕이 두터운 둘째 로키 왕자.

마지막으로 500년 왕조중에서도 특출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르시페로를 이어 왕이 될 것이 확실시되는 셋째 루퍼스 왕자.


세간에선 세 왕자에 대해 그렇게 말하곤 했다.

"왕자님. 로키 왕자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자신의 수족을 자처하는 듀랜달이 전한 말에 루퍼스는 인상을 구겼다.

"그 능구렁이가 또 웬 일이지. 들은 게 있나, 듀랜달?"

"없습니다."

"그렇다면 또 나의 심기를 흐트러놓기 위해 온 모양이군."

"돌아가시라 전해야 합니까?"

지난 번 그 말을 전했다가 듀랜달의 뺨에 생긴 상처를 떠올린 루퍼스는 닳은 책을 접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니, 내가 나가겠다. 너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거라. 언제 로키가 본성을 드러낼지 모를 일이니."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듀랜달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걸 본 루퍼스는 옷을 고쳐입고선 큰 소리로 말했다.

"와 계신 거 압니다, 형님."

드르륵하는 문 소리와 함께 키득거리며 들어온 로키는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네 친구는 어디 갔어? 보고 싶었는데."

"듀랜달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는 친구가 아닙니다. 저의 종이지요."

저의 종이라는 말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는 걸 느낀 로키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발을 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저번에 네 친구한테 손을 댄 거에 화가 나 있는거야? 그렇게 인정이 많은 지는 몰랐는데?"

"...감정 없이 인형 같은 시녀들을 달고 다니는 형님은 이해할 수 없으시겠지요."

자신의 도발에도 넘어오지 않는 루퍼스를 보고 피식 웃은 로키는 품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자신을 해할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루퍼스는 흠칫하며 몸을 긴장시켰지만 로키는 품에서 꺼낸 것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건... 비녀 아닙니까. 저에게 주시는 건 아닐 것이고, 새로운 취미라도 만드셨습니까?"

"우리 동생 많이 컸네? 농담도 할 줄 알고."

방금 전과 별다르지 않은 것처럼 들리지만  잔혹함이 묻어나는 로키의 목소리에 루퍼스는 다시 그 비녀를 들여다보았다.

화려한 장식이 없는 단순한 비녀였지만, 자세히 보니 핏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제서야 그 재미없을만큼 단순한 비녀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챈 루퍼스는 로키가 앉은 의자의 다리를 부숴트리고 바닥에 넘어진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크흐흐흑.. 이번에는 좀 화가 났나보네 우리 동생? 쿨럭!"

예사롭지 않은 루퍼스의 밟는 힘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로키는 킥킥대며 그를 비웃었다.

"루인은 어디 있나."

"아아... 네 노리개 이름이 루인이었나? 몰라. 잔뜩 가지고 놀다 버렸으니까."

루퍼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차 발을 들었을 때, 듀랜달이 달려와 그를 밀쳐냈다.

"주군, 여기서 분노를 참지 못 하시면 정말로 큰 일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냉철한 듀랜달의 표정에 간신히 남아있는 이성의 끈을 붙잡은 루퍼스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루인의 비녀를 집어들었다.

그 사이 로키는 콜록대면서 일어나 루퍼스를 비웃었다.

"고작 계집 하나 때문에 이성을 잃다니, 너답지 않은걸 루퍼스?"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루퍼스의 서슬퍼런 눈빛에 로키는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어이쿠, 우리 동생님이 화가 많이 나셨네. 그 친구랑 잘 놀고있어 루퍼스. 안 그러면 다음엔 저 안대를 선물로 줄 테니까."



"듀랜달."

"하명하십시오."

"루인의 행적을 쫓아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려던 듀랜달은 멈칫하고 한 번 멈춰서고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듀랜달이 떠나고 홀로 남은 루퍼스는 핏자국이 묻은 비녀를 품에 넣으며 눈을 감았다.








3. 채식주의자 구미호

점심시간 전, 주방에서 한참 상추를 씻던 상아는 자신의 치마를 잡아당기는 손길을 느끼며 옆을 바라보았다.

"상아. 오늘 점심은 뭐야?"

자신의 허리맡에서 묻는 아우로라의 질문에  눈높이를 맞춰준 상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오늘은 악마가 탄 보너스로 삼겹살을 먹기로 했어요."

"삼겹살? 와~ 너무 좋아!"

신이 나서 방방 뛰는 아우로라를 귀엽다는 시선으로 바라본 상아는 아 하며 입을 열었다.

"참. 우리가 삼겹살 먹었다는 거, 구미호한테는 비밀이에요."

"아참, 구미호는 고기 먹는 거 싫어하지. 알겠어!"


"다녀왔다는 것이다!"

오후의 나른함이 물러갈때 쯤, 밀짚모자를 쓴 채로 양 팔에 채소가 잔뜩 들어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끼고 있는 구미호가 잔뜩 들뜬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미호 씨, 어서 오세요."

플라스틱 용기를 받아든 상아는 식탁 위에 그것들을 올려두며 물었다.

"오늘 농촌체험은 어떠셨어요?"

"말도 말란 것이다. 매일같이 그 곳에 가고 싶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밀짚모자를 벗은 구미호의 머리는 땀 때문인지 여기저기로 헝클어져있었다.

"이거 다 오늘 거기서 캐신 거에요?"

찬 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인 구미호는 찬장에서 커다란 양푼그릇을 꺼냈다.

채소와 양푼그릇을 번갈아보고서 구미호가 하려는 걸 눈치챈 상아는 빙긋 웃으며 냉장고에서 고추장을 꺼냈다.

"밥은 먹고 오셨어요?"

"농부들은 전부 고기반찬만 먹어서 오늘은 한 끼도 못 먹었다는 것이다. 배가 고파서 어질어질할 정도라는 것이다."

"제가 빨리 비벼드릴테니까 씻고 나오세요."

"고맙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농촌의 일을 체험하느라 땀범벅이 된 몸을 씻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온 구미호는 양푼 앞에 앉아있는 아우로라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구미호, 언제 왔어?"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이다. 집에서 잘 놀고 있었냐는 것이다."

"응. 점심엔 상아랑 앙마랑 삼겹살... 앗!"

삼겹살이라는 말을 꺼내고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아우로라를 본 구미호는 옆자리에 앉아 꼬리로 그녀의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남이 먹는 걸로는 신경 안 쓴다는 것이다."

"정말? 헤헤. 근데 저번에 앙마한테는 왜 그렇게 화냈어?"

"그, 그건..."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해하는 구미호를 구원해준 건 상아의 상냥한 목소리였다.

"아우로라. 이거 구미호 씨가 가져온 채소로 만든 비빔밥인데 한 번 먹어봐요."

어린이용 숟가락에 떠준 밥을 오물거리던 아우로라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너무 맛있어! 구미호도 먹어봐."

"여기서 이러지 말고 티비 보면서 먹자는 것이다."

"응! 상아, 그래도 돼?"

"소파에 흘리지만 마세요. 리자가 보면 불호령이 떨어질테니까요."

"와아~~"

마치 자매처럼 사이좋게 소파로 달려가는 둘을 보며 상아는 옅게 미소지었다.


"이렇게 하고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이다."

소파 위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빈 공간에 양푼을 놓은 구미호는 커다란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와구와구 먹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입으로 쉴새없이 들어가는 비빔밥을 보며 연신 감탄하는 아우로라와 구미호의 행복한 시간은

평소보다 일찍 귀가한 리자에 의해 오래 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근데 앙마한테는 왜 고기 먹는다고 뭐라 한걸까?'




채식주의자든 고기를 좋아하든 구미호는 먹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하면서 쓴...














이제엘제님을 모셔와주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