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기 전에, 난 여성을 싫어하지 않을 뿐더러 성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걸 밝혀두고 싶음.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근본적인 혐오감이 있는 사람도 아님. 


당연히 내 생각이 진리라고 믿고 있지도 않고, 어떤 세상이 좋고 어떻게 그 세상에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 내 가치관을 만들고 있음. 그러니까 이 생각에 대한 반론이 있다면 말해줬으면 좋겠음.


일단 이 글이 성립하려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통한 성평등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상이어야 하고, 남성에 대한 근본적 혐오를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여야 함.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음.



1. '타자화' 에 대한 이해


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념에 대해 미리 알아야 해.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개념은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된 "타자화" 야. 


이 분은 현재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계시는 미국의 유명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이라는 분이야. 자유주의 페미니즘계의 거물이기도 하시지. 


이 분의 책인 '타인에 대한 연민' 에서 잘 드러나는 개념이 바로 '타자화' 야.


타자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 거고 또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알 거라 생각하니 짧게만 설명하자면, 타자화란 말 그대로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 이들을 '타자' 로 분류하고, 그 상대를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거야.


가장 좋은 예시로 나치즘의 아리아인 우월주의 사상과 인종 차별, 성 차별을 들 수 있어.


근데 타자화는 그냥 쉽게, 조건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아니야. 타자화는 특정한 조건을 가지고 그 조건에 충족되는 상황이어야지만 일어나.


그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타자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야.


위의 예시의 나치와 백인, 남성은 타 인종, 여성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어. 다른 '타자화' 의 대상이 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


다른 인종도 자신의 인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 인종차별주의자는 계속 인종차별주의가 옳다고 믿고 살아갈까? 여성을 차별한 이들이 여성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과 동등한 대상으로 본다면 계속 여성을 차별할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 '타자화' 의 조건이 무엇인지까지 다들 이해했을거야.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유가 뭘까?" 라고 생각한 철학자들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꽤 많았고, 이들의 고민의 결론은 주로 '공동체' 라는 한 개념의 문제를 확인한 후 해결되었어.



2. '공동체' 의 위험성


'공동체' 는 인간의 발전에 역사적으로 큰 도움을 줬어.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면, 인간은 여기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높은 효율성에는 큰 부작용이 따라왔지. 바로 '공동의 타자' 라는 개념이야. 


다른 표현으로 '공통의 적' 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그 예시로는 나치즘이 보는 유대인이 있어.


또 다른 표현으로 '공통의 약자' 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그 예시로는 남성우월주의자가 보는 여성이 있지.


이 '공동의 타자' 는 공동체 내부의 결속력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그들 공동체의 이권 수호 방법, 그들이 바라는 이상을 이룰 수 있는가에 관한 해답을 제시해 줬어.


바로 '공통의 타자' 에 대한 혐오를 연료 삼는 것이지.


즉, '공동체' 의 존재 자체가 바로 '혐오' 라는 감정의 기원이라는 거야. 


여기서, 페미니즘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허점이 드러나. 바로 '여성' 이라는 공동체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점이야.



3. 왜 페미니즘이 문제일까?


앞에서도 밝혔듯,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 수호를 위한 사상이야. 


결국 여성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활동할 수밖에 없지. 물론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오는 것이니, 이 행동 자체는 잘못된 게 전혀 없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러나 페미니즘의 방식, 즉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결국 여성 vs 남성이라는 두 공동체의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지. 


결국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 수호라는 당연하고도 정의로운 목표는 퇴색되어버리고 페미니즘과 성 평등이라는 주제는 끝이 없는, 여성과 남성의 갈등에 빠져들게 될 거야.


실제로 지금도 그렇잖아? 남성들이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때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떠올려 봐.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니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거야.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Report.do?cn=TRKO201900002444

올리기 너무 빡센 모욕들이라 링크로 대체할게. 아래로 내려보면 표 있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온갖 예시들이 있어.


더 큰 문제는 바로 이게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상대에 대한 무지는 여성, 남성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거든.


최근 논란이 된 '주둥이방송' 이라는 채널의 댓글들만 봐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어.


(괴물쥐는 구독자 113만, 대한민국 남성 2천5백만에 비해서는 월등히 소수. 물론 괴물쥐는 문제가 있어.)

(남자에 대한 비방)

(위와 동일)

(남자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남성혐오가 맞지? 여성을 일반화 하는 게 여성혐오가 맞듯이?)

(남자에 대한 비방)

(근거 없는 비방)


위 댓글들의 공통점으로, '남자' 라는 공동체를 적으로 보고 상대(남성)에 대한 이해 없이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비방하고 있어. 앞에서 설명한 타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저 댓글들 찾는 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다른 댓글은 아마 더 많겠지. 한 댓글의 답글에서 몇개가 동시에 나오기도 했고. 그리고 남자에 대한 타자화의 다른 예시들도 분명 존재해.


어쨌건, 페미니즘은 의도치 않게 여성 vs 남성의 구도를 만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페미니즘의 의도는 선했지만,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난 거지.


이런 방식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은 서로에게 큰 희생을 치른 채 해결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결국 공동체라는 개념과 타자화는 사라지지 않을 거고, 혐오의 문제는 결국 다시 생겨날 거야.


그렇다면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놔둬야 할까? 


당연히 아니야.



4. 나의 해답: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적 평등 추구


갑자기 웬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적 평등?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난 이 방식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뿌리뽑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상이 개개인에 초점을 맞춘 거라는 점이야.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것은 바뀔 수 있지만,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아까 내가 말했던 '타자화' 는 대부분의 차별과 혐오의 근원이야. 그 타자화의 근원은 공동체이고. 


그렇다면, '공동체' 라는 개념, 즉 여자와 남자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차별을 없애려 시도한다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의 혐오와 차별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차별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거야.


그러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차별은 의외로 여성과 남성의 문제보다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어.


서로를 공동체가 아닌, 개인과 개인으로만 보게 된다는 거지. 내가 추구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능력에 따른 평등은 공동체를 만들어내지 않아. 


개인의 능력만이 평가의 잣대이고,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이들은 더 적은 능력을 가진 이들보다 많은 것을 갖지만, 그 '능력' 이라는 것이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이에 대한 논쟁은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올려볼게.)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분배를 해 주는 거지.


능력이 많은 이들(혹은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가진 이들)은 많은 것을 얻고, 능력이 적은 이들(혹은 시대에 맞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은 삶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을 분배를 통해 얻게 될 거야. 물론 능력이 적다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에서 자신의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능력 많은 이들에 비해 얻는 것이 훨씬 적으니까). 


물론 능력에 따른 차이는 현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크겠지만, 능력이 많건 적건 존중받게 될 거야. 최소한의 삶과 인간으로써의 혜택도 받을 수 있을 거고. 분명한 건, 타자화가 일어나지 않기에 능력이 있음에도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의 수는 훨씬 줄 거고.


여기서 '무능함' 도 하나의 특성이고 그 특성으로 무능한 사람과 유능한 사람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겠지만, '무능함' 은 차별주의적인 시각에서 특성이 아닌 특성에 따른 결과야. 


예시로, 무능한 이들은 여성(X) 여성이기에 무능함(O) 라는 혐오적 생각이 있지. 


한마디로, 무능함이라는 것은 혐오받기 힘들어. 왜 무능한가에 대한 설명이 힘들기 때문이지. 그러나 여성, 흑인, 성소수자 등 눈에 잘 보이는 특성들은 혐오받기 쉬워. 혐오에 증명이 필요 없거든.


그래서 개개인에 집중하는 내 방식을 따르면 더 이상 서로 싸워가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갈등을 동반한 평등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야. 이는 타자화를 없애고 결과적으로 모든 종류의 혐오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겠지. 이 과정에서 자연히 혐오와 차별 중 하나인 양성평등은 이루어질 거고.


난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의 목적에 찬성하지만, 그 공동체적인 방식에 반대해. 그래서 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내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의견에서 허점을 발견했다면 꼭 댓글에 남겨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