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이던 영국 해군의 제1해군경 (우리나라로 보면 대충 해군 참모총장 즈음 된다고 보면 된다)이 된 존 피셔 경은 간단히 말해서 '효율충'이었음. 부포 여러개 달기 귀찮으니 전함을 단일구경 주포와 단일 구경 부포로 단순화하자!(드레드노트) 장갑순양함도 전함 포 구경에 맞춰서 단일 구경 주포와 단일구경 부포로 단순화하자! 대신 수는 전함보다 좀 적게.(인빈시블) 이게 그 양반의 철학이었음.



  그리고 위에 적었듯, 최초의 전투순양함인 HMS 인빈시블은 원래 존 피셔경이 마찬가지로 추진하던 신세대 전함인 HMS 드레드노트를 보조할 신세대 장갑순양함으로서 디자인 되었음. 이 시점에서 존 피셔 경과 영국 해군이 HMS 인빈시블에 요구하던 역할 역시 기존의 장갑순양함이 수행하던 역할과 다르지 않았음. 위력 정찰, 전함으로 이뤄진 주력함대 보조, 패주하는 적 주력함대 추적, 상선단을 노리는 적 순양함의 요격. 여기까지 보자면 HMS 인빈시블부터 시작한 일련의 함급이 기존의 장갑순양함이면 충분하지, 딱히 전투순양함이라는 분류를 받을 이유는 없어보임.


  문제는 같이 진행되던 전함 HMS 드레드노트가 전함뿐만 아니라 순양함에까지 충격을 불러왔다는 점임. HMS 드레드노트의 all-big gun 설계사상에 가려서 자주 주목받지 못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기존 전함들에 비해 속력이 확 늘어났다는 거임. 기존 영국해군은 전함의 최고속도를 18노트, 장갑순양함의 최고속도를 23노트로 맞춰놓아서 5노트 정도 빠른 장갑순양함들이 주력함대에만 묶여 있지 않고 나머지 역할을 위해 자유롭게 기동할 수 있는 여유를 뒀음. 그러나 HMS 드레드노트는 최고속도가 21노트에 달했고, 이는 기존의 장갑순양함들이 겨우 2노트의 우위만으로는 주력함을 따라가는데도 벅차 정찰/추적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음.


HMS 디펜스. 드레드노트가 건조에 들어가기전에 건조를 시작한 마지막 장갑순양함이다.


  반면 HMS 인빈시블과 그녀를 시작으로 하는 일련의 새로운 장갑순양함들은 속도를 최소 25노트로 잡아놨고, 이는 이들이야 말로 드레드노트 시대에 장갑순양함에 알맞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음. 1907년 HMS 인빈시블이 취역하자마자 그녀는 기존의 장갑순양함이라는 단순한 함급 대신 '드레드노트-크루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음. 그리고 드레드노트 이후로 늘어난 드레드노트형 전함들이 주력함대의 위치를 차지하자 이를 보조할 함대 역시 인빈시블을 위시한 신형 장갑순양함이 채워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결국 1911년 인디페티거블급의 취역과 함께 영국해군은 함급에 대한 재분류를 실시함.


HMAS 오스트레일리아. 그녀를 포함한 인디페티거블급의 취역은 함급 재분류을 불러왔다.


  함급에 대한 재분류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이미 영국해군은 구형 장갑순양함에 대해 어떠한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음. 이미 드레드노트형 전함은 8척이 취역한 상태였고 두척이 추가로 건조되었으며, 심지어 훗날 초-드레드노트급이라 불릴 13.5인치 탑재형 오라이온급까지 진수를 끝낸 상황에서 구형 장갑순양함들은 상선단 보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목표의 달성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즉 이들은 이 시점에서 Battle(해전)에 참가할 능력이 없었다. 반면 인빈시블급과 인디페티거블급을 위시한 신형 장갑 순양함은 장갑 순양함의 이 세가지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있었음. 즉 Battle(해전)에 참가할 능력이 있었던 것임.


  따라서 영국해군은 신형 장갑 순양함들을 '해전에 참가할 능력이 있는 순양함'이란 의미에서 Battlecruiser이란 함급으로 새로 분류하고, 오직 이들만을 신형 순양함으로 만들며, 기존의 장갑순양함과 보호순양함은 상선단 호위의 임무로만 쓰다가 퇴역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들 전투순양함 또한 전함과 동일한 구경의 13.5인치로 주포를 확대하고, 수량 역시 주력함대의 보조에 필요한 만큼 늘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계획은 잘 흘러가는 듯 했다.


어느 세르비아인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