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왜 전투순양함이 되었는지는 다 말했으니 3편은 타국 사정에 대해 말할거고, 이번 번외편은 전투순양함의 아버지 존 피셔 경의 광기에 대해 말할거임.


대령 시절의 존 피셔


  1편에서 존 피셔 경이 효율충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양반은 속도충이기도 했음. 첫 전함 지휘를 건조 당시 가장 혁신적이고 빨랐던 HMS 인플렉시블의 함장으로써 맡은 후, 피셔는 영국해군이 나폴레옹 전쟁의 명장 넬슨이 그러했듯 함선과 함대의 속도를 장갑과 화력보다도 우선해야 한다고 믿었음. 심지어 지중해함대의 지휘관이 됐을 때는 주로 기함으로 선택되던 1급 전함(드레드노트 등장 전의 영국해군에서는 전함 역시 1급과 2급으로 나뉘어있었다) 대신 화력과 방호력이 부족하지만 속도가 더 빠르던 2급 전함 HMS 리나운을 기함으로 삼는 기행 역시 보여주었음.


본래 북아메리카 전대 기함 정도로나 쓰이고 함대 기함으로는 죽어도 될 일이 없는 운명이었던 2급 전함인 HMS 리나운은 속도충 존 피셔 덕에 지중해함대의 기함이 되었음.


  1904년 제1해군경이 되었을 때의 존 피셔를 흔히 기존 전함과 장갑순양함보다 빠르고 강력해진 드레드노트와 전투순양함의 아버지로 기억하지만, 사실 처음 존 피셔가 제1해군경이 되었을 때 그가 추구하던 것은 '전함 없이 전투순양함으로만 이뤄진' 영국해군이었음. 그는 영국해군이 넬슨이 나일강 해전과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력과 맷집의 부족함을 우월한 기동으로  추월할 수 있다고 믿고 전함 대신 전함의 주포를 단 신형 장갑순양함으로 영국해군을 꾸려나가고자 했음. 당연히 너무 과격했던 이 주장은 부하 제독들의 격렬한 반대에 반려되고, 존 피셔는 '일단 기존 전함보다는 빠른'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인빈시블급 전투순양함으로 만족해야 했음.



  커레이져스급 역시 존 피셔 경의 속도에 대한 집착이 낳은 괴물임. 1차 세계대전 동안 해군의 지상에 대한 화력지원이 급증하자 영국해군은 기존 전함과 전투순양함 외에도 모니터함이라는 전력을 만들어 투입하게 된다. 문제는 지중해의 대 터키전선의 경우 터키해군을 견제할 러시아 제국 해군의 존재 덕에 터키해군이 지상 화력지원을 진행중인 전노급 전함과 모니터함을 공격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지만(사실 실제로 한번 터키해군의 주력함 야부즈 술탄 셀림이 모니터함 두척을 격침시킨 사례가 있다), 발트해와 북해의 경우 독일해군과 영국해군 어느쪽도 확실한 제해권 우위를 쥐고 있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존 피셔 경은 무려 '모니터함의 속도를 올려 독일해군의 빈틈을 돌파하여 발트해로 진출해  발트해 쪽의 독일 해군 항구를 제압한다!'라는 정신나간 계획을 입안한다. 이 배는 소수의 고속함으로 독일해군의 빈틈을 돌파해야 했기에 기존의 모니터함보다 화력이 강하고 속도가 빨라야 했으며, 반면 목적지가 수심이 낮은 곳이 많은 발트해였으므로 포나 장갑으로 인해 너무 흘수가 깊어져서도 안되었다. 물론 이런 병신같은 설계를 주력함이랍시고 발표하면 영국 해군 내에서도 반대가 심할게 뻔하니, 존 피셔 경은 '대형 경순양함'(large light cruiser)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함


  그 결과는 애매한 화력인 15인치 연장포탑 2기, 도저히 전열에 설 수 없는 76mm의 측면 장갑, 그리고 딱히 정규 전투순양함인 리나운에 비해서 빠를 것도 없는 32노트라는 속도를 낳음. 여기에 1916년 11월 취역했더니 그 다음해 2월에 이론상 영국해군의 발트해 공격을 도와줘야할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이탈함. 커레이져스는 태어나자마자  원래 설계목표대로 운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력함대에 끼워넣을 수도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고, 유틀란트해전에서조차 15인치를 달고 있는 주제에 주력함대에 끼지도 못한 채 경순양함 전대의 기함으로써 정찰임무나 수행하는게 전부였음. 당연히 군축조약에서 영국해군에게 전함이나 전투순양함 일부를 항공모함으로 전환해 전함 배수량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영국해군은 바로 커레이져스급을 항공모함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