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분명 맛있지만

모든 고기가 맛있는 건 아니지.


지구 상에 남은 거의 모든 문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기를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 노력했고



그 맛을 살리는 스파이스를 위해서

적잖은 피와 돈이 흐르기도 했지.



재미있는 건 그 모든 과정을 겪고도

가장 맛있는 고기 요리를 꼽으라 할 때 매번 등장하는 것이

그저 단순하게 불에 굽는 방식이라는 거야.


구이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동갑이라 해도 될 정도로 오래되고

열원에 재료를 직접 노출시키는 극도로 단순한 조리법이지만

그걸 '맛있게'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가 않아.



동물의 신체 조직, 즉 고기는 열 전도율이 높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 무작정 노출시키면 급격한 단백질 변성이 불균일하게 일어나.


이게 뭔 소린고 하면

겉은 타고 속은 안 익는다고.



그렇다고 어중간한 온도로 천천히 익히려고 하면

이번에는 조직 내의 수분이 지나치게 날아가

뻣뻣하고 맛없는 고기가 되지.



뜨거운 불 앞에 서서

고기의 온도와 질감, 촉촉함의 균형을 능숙하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가장 훌륭한 요리사로 대접받았고,



그 고기를 썰어 나눠 주는 칼은

권력의 증거로 인류의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있지.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고기 한 접시 한 접시에 무진장 공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될 수 있으면 편하게, 

그래도 최대한 맛있게 먹고 싶다는 욕망은 생길 수밖에 없고,

욕망은 인류가 새로운 발명을 하도록 이끌었지.



그렇게 떠오른 조리법이

이제는 구이보다 더 친숙해진 가성비 갑 음식

튀김이야.



물보다 끓는점이 높은 기름은 불을 쐬지 않고도 구이의 노릇한 질감과 풍미를 살려 주고,

튀김옷은 조리 과정에서 재료의 수분 유출을 효과적으로 막아 줘.



그리고 무엇보다

대량 조리가 구이보다 훨씬 쉬웠지.




이렇게 만들어진 '튀긴 스테이크'는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을 포함해 유럽 전역에서 발생하며

커틀릿(cutlet)이라는 요리 장르로 형성되었고



다들 알다시피 유럽의 선교사들과 함께 아시아 극동으로 건너가게 되지.




커틀릿은 일본인들에게 신기한 음식이었어.




일본의 금육령이 육식을 완전히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놓고 식육 산업을 할 수 없었던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대부분

멧돼지나 사슴, 토끼 등의 야생 동물이었고



이것들은 대부분 누린내라고 부르는 육향이 매우매우 강렬했기에



고기는 일본인들의 인식에서 귀하지만 냄새가 심한 뭔가 애매한 식재료로 인식이 박혀 있었어.




그래서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들의 의식주를 빠르게 서구화 시키고 싶었던 정부는

우선 식(食)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장애물을 빠르게 극복하기 위해

고기가 들어가는 몇 가지 실험적인 메뉴를 도입하게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덴뿌라 등으로 인해

튀김은 일본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요리였어.



망치로 두들겨 얇게 펴고

튀김옷에 빵가루까지 묻혀 기름에 튀겨 내면

거북한 육향이 상당 부분 가려지는 것은 물론,

빠르고 쉬운 조리에

두꺼운 튀김옷으로 양도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지.




됴쿄 긴자의 연와정 ( 렌카테이煉瓦亭, れんがてい) 에서 최초로 송아지 고기를 사용한 가쓰레스를 내놓으면서

커틀릿은 성공적으로 일본 사람들 앞에 선보이게 돼.



나중에 나가사키 등지에서 식육용 돼지가 대규모 사육, 보급되면서

커틀릿도 돼지고기로 만드는 게 보통이 되었고,

돈(豚) 가쓰레스(カツレツ).

돈까스(豚カツ)가 커틀릿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게 돼.



요즘도 '경양식' 하면 떠오르는이미지처럼

당시의 커틀릿은 서양 식습관에 대한 동경이 큰 몫을 차지했어.



식탁보를 깔고 잘 꾸며진 테이블에 앉아

왼 손엔 포크, 오른손엔 나이프를 쥐고

한 점씩 썰어 우아하게 입으로 옮기면

탈아입구( 脫亞入歐 )의 시대 속에서 모양이나마 진짜 서양인의 디-너를 즐기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지.



하지만 디-너는 디너고

동양인은 저녁밥을 먹어야지.


고기의 맛과 향에 일본인들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이 커틀릿도 일식으로선 뭔가뭔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



한 점 한 점 썰면서 먹는 것도 사실 영 귀찮고,

기름을 흠뻑 머금은 두터운 튀김옷은 느끼하고

반찬이랍시고 버터 범벅이 돼서 나오는 가니시도 쌀밥과 된장, 야채절임에 익숙한 일본인에게는

영 속이 불편해지는 조합이었지.


그래서 돈까스는 일식에 맞게 변화를 한 번 더 거치게 돼.



자작한 기름에 지지듯 튀기는 방식 대신

많은 기름에 풍덩 빠뜨리는 딥 프라이(deep-fry) 방식을 사용하면

더 두꺼운 고기도 속까지 잘 익힐 수 있고,


젓가락으로 집어먹기 좋게 미리 자르고, 소스도 따로 종지에 담아서 내지.



그리고 서양식 가니시 대신

가늘게 채썬 양배추를 곁들이면서

돈까스는 마침내 서양을 모방한 경양식에서

일식으로 완전히 편입되게 되지.



자, 서론이 참 길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얘다.


솔직히 헤이조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어.


안 그래도 이나즈마는 스토리적으로 좋게 봐 줄 면이 참 적지만


특히나 이 동네에서 지능형 캐릭터는 이미 차고 넘칠 지경이라

아무리 애써도 이 녀석이 주목 받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여.  


헤이조의 묘사를 보면 '텐료 봉행 소속 탐정'이라고 하는

경찰과 탐정의 이미지가 뒤섞여 있는데,


경찰의 이미지라면 이미 쿠죠 대장이 차지하는 중이고


탐정은 하도 우려먹다 못해 그새끼 전설퀘까지 써먹고 있어서

결국 이 넘이 경찰인 건지 탐정인 건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게 된 느낌이 커.



집어치우고 특제 요리나 보자.

딱 봐도 가츠동(돈까스덮밥)인데


영미권 경찰의 상징이 도넛이라면




일본 쪽은 가츠동이라고 할 수 있지.




대충 '사회의 뜨신 밥' 정도의 의미로

형사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나오는 음식인데,

이 가츠동의 탄생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어.



도쿄의 와세다(早稲田) 대학 앞에서 영업하는 삼조암(산쵸안三朝庵)이라는 소바집에 

어느 날 반가운 주문이 들어와.

어떤 회사에서 연회용 음식으로 대량의 돈까스를 예약 주문 하는데,


싱글벙글 다 만들어놓고 기다리던 주인장에게



날벼락 같은 '노쇼'가 날아들어.

연회 취소.



애써 튀겨 놓은 돈까스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보며 멘탈을 놓아가던 주인장은

적어도 죄 없는 음식만은 살려보자는 결심을 하게 돼.


식은 돈까스를 츠유다시와 계란을 부어 따끈하게 데우고,

소바를 담는 돈부리에 밥과 함께 얹어 덮밥으로 만들었어.



남은 음식을 돈 받고 팔 수는 없으니

이렇게 만든 덮밥을 와세다 대학의 배고픈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했지.



공짜로 먹는 밥은 원래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지만

그걸 공제하고라도 이 덮밥의 맛이 꽤 훌륭했던 모양이야.



나중에 학생들은 일부러 돈을 내고 돈까스 덮밥을 먹으러 오기 시작했고,

가츠동은 맛있고 든든한 덮밥의 대표주자로 메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시작한 김에 하나 더 보자.



사실 커틀릿도 샌드위치도 일본과는 별 상관이 없었던 음식이지만



더더욱 상관이 없는 장소에서 두 음식이 합쳐지게 돼.



도쿄의 우에노(上野)거리는 대표적인 유흥가로 수많은 게이샤들이 활동하고 있었어.



게이샤는 기본적으로 예능인이기 때문에 짙은 화장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화장은 일상 생활, 그 중에서도 식사를 하면서 번지거나 지워지는 일이 많았어.



근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좀 먹으면서 해야지.



이런 고충을 감지한 돈까스 전문점 이센(井泉)에서



입술연지가 묻어나지 않도록 빵 사이에 돈까스를 끼운 다음

손가락만한 사이즈로 썰어서 판매하기 시작했어.


이게 게이샤들과 우에노를 출입하던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카츠동과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평범하게 팔리는 음식으로 퍼지게 된 거야.



오늘의 뇌절은 여기까지인데,


마치기 전에 몇 가지 중요한 소식을 전하고 끝내려고 해.


그 동안 뇌절 그 자체로 시작한 이 시리즈를 오래도 이어나갔는데,

댓글로 몇 번 조언을 받기도 했고

어쨌든 이 시리즈도 내 작업물에 속하기는 할 테니까


그 동안 연재했던 시리즈를 내 개인 블로그로 하나씩 옮기는 중이야.


물론 나는 씹관종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계속 연재할 거니까 걱정 할 거 없음.

걍 본인 맞으니까 여기꺼 베꼈다고 욕하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오늘이 정월 대보름인데



내 생일임.

축하 해줘.


1. '진실은 단 하나'의 정체는 돈까스 덮밥 가츠동.

2. 돈까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과 애환이 얽힌 다채로운 음식이다.

3. 생일날 꼭두새벽에 이러고 있으면 관종 ㅁㅌㅊ임?



바람신의 잡채 편


달빛 파이 편


탕수어 편


몬드 감자전 편


일몰 열매 편


경단 우유 편


2021 결산 편


용수면 외 편


강자의 길(야채 볶음면) 편


생선 무조림 편


세계 평화 편


흥얼채 편


새우살 볶음 편


아루 비빔밥 편


풍요로운 한 해 편


타친과 오차즈케 편


멸치 편


코코넛 숯탄 전병 편


일몰 붕어빵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