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3권, 선조 2년 6월 20일


기대승이 나아가 아뢰기를,


"지난번 장필무(張弼武)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삼국지연의(三國志衍義)》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천문(天文)·지리(地理)에 관한 책은 이전에는 숨겨졌다가 나중에 드러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사기(史記)의 경우는 본래 실전되어서 뒤에 억측(臆測)하기 어려운 것인데 부연(敷衍)하고 증익(增益)하여 매우 괴상하고 허탄하였습니다. 신이 뒤에 그 책을 보니 단연코 이는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칩니다. 위에서 우연히 한번 보셨으나 매우 미안스럽습니다. 그중의 내용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동승(董承)의 의대(衣帶) 속의 조서(詔書)라든가 적벽(赤壁) 싸움에서 이긴 것 등은 각각 괴상하고 허탄한 일과 근거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입니다. 위에서 혹시 이 책의 근본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감히 아룁니다. 이 책은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가 의리를 심히 해치는 것들입니다. 시문(詩文)·사화(詞華)도 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더구나 《전등신화(剪燈新話)》나 《태평광기(太平廣記)》와 같은 사람의 심지(心志)를 오도하는 책들이겠습니까. 위에서 무망(誣罔)함을 아시고 경계하시면 학문의 공부에 절실(切實)할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정사(正史)는 치란(治亂)·존망(存亡)에 관한 것이 모두 실려 있어서, 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갓 문자만을 보고 사적(事迹)을 보지 않는다면 역시 해가 있습니다. 경서(經書)는 심오하여 이해가 어렵고, 사기(史記)는 사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경서는 싫어하고 사기를 좋아함은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유사(儒士)가 잡박(雜博)하기는 쉽고 정미(精微)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전등신화》는 놀라우리만큼 저속(低俗)하고 외설적(猥褻的)인 책인데도 교서관이 재료를 사사로이 지급하여 각판(刻板)하기까지 하였으니, 식자(識者)들은 모두 이를 마음 아파합니다. 그 판본(板本)을 제거하려고도 하였으나 그대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일반 여염 사이에서는 다투어 서로 인쇄하여 보고 있으며 그 내용에는 남녀의 음행(淫行)과 상도(常道)에 벗어나는 괴상하고 신기한 말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괴상하고 탄망(誕妄)함이 이와 같은데도 인출(印出)하기까지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어찌 무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문자를 보면 모두가 평범한 이야기이고 괴벽(怪僻)한 것뿐입니다. 옛사람들은 ‘첫째는 도덕(道德)이라.’ 하였고, 또 ‘첫째는 대통(大統)이라.’ 하였습니다. 동자(董子)도 ‘육경(六經)의 과목(科目)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은 모두 폐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자(王者)가 백성을 인도함에 있어 마땅히 바르지 않은 책은 금해야 합니다. 이는 그 해가 소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옛 임금 중에 가끔 사화(詞華)를 좋아하고, 염려(艶麗)를 숭상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영명(英明)한 군주가 천분(天分)이 매우 높으면 후세에 유전(流傳)하는 시편(詩篇)이 있는데, 저 수 양제(隋煬帝)·진 후주(陳後主) 같은 이는 지나치게 유의(留意)하다가 마침내는 망국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니, 인주(人主)가 사화에 전념한다는 것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가(詩家) 가운데에는 옛사람의 성정(性情)을 읊은 글이 있기는 하나, 역시 과장 잡란(誇張雜亂)한 말이 있으니 위에서도 아셔야 할 일입니다. 우리 유자(儒者)의 학문 가운데에는 정(程) 주(朱)의 논의가 매우 옳은데, 근래 중원으로부터 유포되는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설문청(薛文淸)의 《독서론(讀書論)》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현재 이를 인출(印出)하고 있으나, 그의 의논도 역시 흠이 없지 않으니 배우는 자는 참고해 보는 자료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근래 배우는 자가 정주의 글은 심상히 여기고 새로 나온 책을 보기 좋아 하니 이 또한 해가 많습니다. 위에서는 아셔야 할 일입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020602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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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것은 배격하는 꼬장꼬장한 선비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 친구들에게 들었지 자기는 안 봤다고 둘러대고 있지만, 책이 언제 나왔는지도 잘 알고 있다.


신이 뒤에 그 책을 보니

=> 열변을 토하다 바로 앞에서 자기는 안 봤다고 말한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중의 내용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 내용은 물론 훤히 꿰고 있다.


혹시 이 책의 근본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감히 아룁니다. 이 책은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가 의리를 심히 해치는 것들입니다.

=> 삼국지만 본 게 아니라 해당 장르에 대해서도 해박하며 그 내용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경서는 싫어하고 사기를 좋아함은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합니다.

=> 그렇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