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분리공작(華北分離工作)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만주국 수립 등

광대한 만주를 꿀꺽한 일본은 고심에 빠졌음

만주를 먹었더니 이번엔 강력한 소련(+ 몽골)이 걱정이었고

만주사변으로 중국의 항일 분위기가 고조되자, 향후 소련과 전쟁에서 중국이 만주 회복을 위해 참전할 것을 염려했기에

1931년 이래, 일본의 대륙 정책은 중국의 분열이 최우선 목표로 자리 잡았음
(특히 관동군 내부 분위기가)

실제로 1933년, 열하사변을 통해 베이징과 지척인 열하성을 통째로 점령하여 만주국에 합병

1935년, 한간 인루겅을 앞세워 퉁저우 지역에 괴뢰국인 지둥방공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기동사변
(베이징과 엎어지면 닿는)

1936년, 사실상 독립된 내몽골 괴뢰군을 앞세워 쑤이위안을 침공한 수동사변 등등
(옌시산이 개박살 내어 실패)

일본은 끊임없이 대륙 분열을 목표로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음

이중 중일전쟁 이전까지 가장 집중한 목표가 이른바 화북분리공작

말 그대로 베이징 - 톈진은 물론이고, 바오딩 등등 화북 전체를 싹다 대륙에서 분리하여 괴뢰 정권을 수립하는

제2의 만주사변 스케일급 대륙 분열을 목표로 잡은 계획이었음

다만 광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대륙과 비교하여 상당히 적고 군벌시대 내내 장씨 일가가 따로 놀았던 만주와 달리

화북은 인구도 엄청났고, 산업력ㆍ엮인 외국 자본ㆍ정치적, 외교적 중요도도 상당했기에

일본이 대놓고 만주처럼 군사적 침략은 무리수가 많아, 주로 끈 떨어진 옛 군벌들 대상으로 막대한 로비를 통해 회유하고자 했음

이때 제일 끈질기게 회유 받은 인물이 2명인데

우페이푸, 그리고 옌시산

우페이푸는 이미 완전히 몰락했지만 그 인맥과 명성이 막대했고

옌시산은 본인 기반도 충실한데다 장제스와 악연이 짙었기에 딱이었음

다만 결과는 둘 모두 실패로 끝남

우페이푸는 옛 군벌 최전성기 시절부터 강경한 반일 성향이라 일본의 회유 시도에 상종조차 안했고

옌시산은

너구리 같은 영감 답게

주는 돈ㆍ무기ㆍ산업 장비는 다 받고

회유 사실 폭로하여 엿 먹이고 대금 떼 먹고 튀었음

결국 꼴받은 일본은 1937년

전쟁 터진 김에 회칼로 직접 대륙을 썰어벌이고자 대륙 깊숙히 진격하면서,

이번에도 단순 국지전으로 끝나겠지 예상한 정부ㆍ대본영 모두 당황케 만든 중일전쟁 수렁으로 끌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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