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1편  https://arca.live/b/lastorigin/9679372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9756344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3편  https://arca.live/b/lastorigin/9875022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4편  https://arca.live/b/lastorigin/11385415


 주의: 스포일러(메인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작품은 픽션입니다. 이 작품의 설정은 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메인스토리 5-4장과 메인스토리 8장 interlude에서 인용한 문구와 설정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십시오.


레오나를 업은 상태로 여기저기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꾸고 있는 꿈의 세계가 상상 이상으로 방대하다는 것이었다.


닥터가 개발한 기기를 실험하기 위해 여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꿈에 들어갔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지난 닷새간 봐온 것들 중에 제일 큰 규모의 꿈은 멸망 전의 축구경기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펜리르가 굴러다니는 고기를 잡기 위해 사방팔방 날뛰던 내용이었다.


그때 나를 고기로 오인한 펜리르에게 몸이 뜯길뻔했는데... 아무튼


그 크기만큼 여기저기 퍼져있는 철충분대를 눈대중으로만 살펴봤는데도

현실에서 맞서 싸워온 철충무리들이 귀엽게 보일 만큼 그 구성에 자비가 없었다.


엠페러와 센츄리온이 네스트의 무리에 섞여 있지 않나


커맨더와 솔져칙 무리에 스펙터 두 기가 붙어 다니질 않나.


상상 이상의 조합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치 심야에 호러영화를 혼자 보는 느낌이었다.


만약 저 병력이 실제로 구성된 걸 바탕으로 레오나의 꿈이 재현한 것이라면, 인류가 멸망한 건 당연했다고 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저항군들의 흔적을 따라 탐색해온 결과 마침내 두 개 소대 규모의 잔존병력을 만났다.


그들 역시 자신을 사령관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내 등에 업혀있는 피투성이의 레오나를 본 이들은 급히 의무반 막사로 안내했다.


그녀가 치료받고 같이 쉬고 있을 때 부대를 이끌고 있던 발키리 개체가 막사에 들어와 자신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 저항군의 소대장 발키리03이 사령관 각하를 뵙습니다."


"...?!"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바람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많지 않지만 여러 꿈을 거쳐 온 사령관은 이 느낌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꿈의 주인이 악몽을 꾸게 되는 요인.


그것이 꿈의 주인과 가까워졌을 때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오라(aura)였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사령관은 자신을 발키리라 소개한 개체를 레오나와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갑군 발키리 소대장. 할 얘기가 많지만 여기서는 좀 그러니, 먼저 나가 있게. 따로 얘기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발키리가 먼저 막사를 나섰고 사령관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레오나를 향해 제스처를 취한 뒤 권총을 허리춤에 매고 따라갔다.


그 모습을 레오나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


-


막사 뒷편 수풀로 가려져 있는 숲을 향해 5분 정도 나아간 둘은 공터에 자리 잡아 마주 보고 섰다.


무슨 이유로 발키리가 레오나가 꾸는 악몽의 원인으로 찍혔는지 사령관은 생각했다.


꿈에 진입할 때 그녀의 독백에 따르면 구하지 못한 발할라 전투원들에 대한 자책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요소가 있는 건가?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있던 사령관을 향해, 발키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사령관의 사고가 순간 멈췄다.



"그럼 소감 좀 들어볼까? 타인의 꿈에 들어온 느낌은 어때?"


"뭐라고!? 컥!"



쏜살같이 질러오는 공격에 반응을 못 한 사령관은 발키리의 가느다란 손에 목이 잡혀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꿈속에서 고통이란 감각이 차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에 위협을 느낀 사령관은 반사적으로 발키리의 손목을 잡아 꺾으려 했지만, 그녀는 마치 커다란 바위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순식간에 전개되는 상황에 사령관의 뇌가 따라가지 못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발키리가 아니다.'



평범한 꿈의 구성원이라면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령관은 자신 앞에 서 있는 발키리를,

아니 발키리의 탈을 쓴 무언가를 째려보았다.


그 시선에 비웃음을 날린 그것은 사령관을 잡은 팔을 흔들거리며 비아냥거렸다.



"킥. 그렇게 째려봐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단자. 고작 살덩이들이 만들어낸 기계 따위로, 꿈에서 나를 힘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철판을 긁어서 내는 듯한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이단자, 살덩이들이란 비하.


사령관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것은 철충, 그중에서도 말을 할 수 있는 개체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발키리의 모습을 한 그 철충은 화가 난 표정으로 눈앞의 사령관을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이해할 수가 없어! 조금만 힘을 줘서 밟아버리면 되는 벌레 같은 너희들을, 마더에게 보낼 공물을 도둑질하는 너희들을!

교황 성하가 그냥 놔두는 이유를!"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구심점인 너만 없애버리면, 그 살덩이들은 방황하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겠지."



휙! 우지끈!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총알처럼 날아가는 사령관의 몸이 나무 두 그루를 박살 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 사령관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발키리, 아니 발키리의 탈을 벗은 인간 형태를 띈 철충은 닷새 전의 작전에서 본 식별명 '나이트 매어'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네가 아끼는 그년과 부대원들은 꿈속에서 우리 철충들에게 유린당하며 죽어갈 거야. 멸망 전처럼"


"...벌써 단정을 짓는 건 이른 게 아닐까?"



사령관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든 것일까? 철충에게 표정은 드러나지 않지만 그런데도 불쾌하다는 기색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령관은 허리에 손을 댄 상태로 천천히 일어났다. 


나이트 매어 너머의 숲이 조금씩 흔들리는 걸 본 사령관은 나이트 매어를 향해 승자의 미소를 보였다.



"불청객은 퇴장할 시간이다."


"...!"



탕! 탕!


허리띠에 숨겨놓은 권총을 섬광의 속도로 꺼내든 사령관은 철충을 향해 한 발 쐈다.


권총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쏜 탄환을 피해낸 나이트 매어의 머릿속에 순간 경종이 울렸다.


분명 그가 쏜 탄환은 한 발. 그런데 왜 소리는 두 번 들렸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기 전에 철충이 뒤를 돌아 보려했으나 그 몸체가 노이즈가 낀것처럼 버벅거리며 깨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태를 눈치챈 철충은 눈에서 빔이 나갈 기세로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이... 이 벌레 새끼들이!"



탕!


레오나가 한 번 더 쏜 탄환이 이번엔 머리를 뚫고 지나가자 나이트 매어의 형상을 띤 노이즈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나무에 기대 털썩 주저앉았고


그것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레오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사령관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 레오나를 보며 사령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나이스 타이밍 레오나."


"달링! 몸은 괜찮아?"



어떻게 레오나가 이곳의 위치를 알고 올 수 있었을까?


시간은 사령관이 막사에서 나설 때로 되돌아간다.


-


-


발키리가 나간 이후 사령관이 나가기 이전


막사의 입구를 향해 몸을 돌린 사령관은 왼손을 뒤로 빼 그녀만 볼 수 있도록 모종의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을 5초정도 바라본 레오나는 그것이 단순한 제스처가 아닌

발할라 부대에서 쓰이는 수화암호인 것을 깨닫고 그 의미를 해석했다.



'꿈, 속, 조심, 미행'


'지금 이곳은 꿈속, 조심히 미행?'



혹여 자신이 못 봤을까 다시 한번 더 알려준 사령관은 이내 막사에서 나갔고, 혼자 남은 레오나가 고운 이마를 찡그렸다.


어떤 이유로 말이 아닌 저 수신호를 남긴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뒤로 미루고

사령관이 남긴 의미를 되뇌던 레오나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현자처럼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나는 꿈속에 있다.'



자각몽.


그 사실을 깨닫자 주변 공기가 바뀌며 레오나의 뇌리에 꿈속에서 행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철충들에 맞서 싸우다가 간신히 탈출한 기억,


사령관을 향해 뻣뻣한 자세로 예를 갖춘 기억,


사령관이 자신을 업고 여기까지 온 기억까지.


특히 마지막 모습을 다시 떠올린 레오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호호... 붙잡히기만 해 봐 달링. 감히 날 업고 다녀? 내가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에?"



눈은 웃고 있지만 입은 살벌한 미소를 띠며 무장을 마친 레오나가 사령관의 뒤를 조용히 밟았다.


그가 남겨둔 흔적을 따라 추적해온 그녀는 큰 어려움 없이 지금 이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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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재밌게 읽어주고 관심 가져주는 라붕이들에게 감사함.


스포일러 태그 써둔 이유는 이번화에서 나이트 매어의 대사가 해당 메인지역에서 긁어 온걸 각색한거라 해둔거임.


아마 다음 편에서 레오나 파트가 마무리되고 발키리 파트로 이어 나갈 듯.


스토리 주연 순서는 레오나> 발키리> 티아멧> 유미> 리앤> 리리스로 웬만해선 순서 안 바뀌고 전개될 거 같아 .


그럼 다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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