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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마음처럼 미호네 동네로 달려갈 수는 없었다.

 

성규의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나는 성규와 매일같이 붙어 다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놈 핀토도 있는 주제에 말이야, 맨날 나보고 잠깐 나와 봐라, 시간 좀 되냐고 하니, 원...

 

그래서 나는 성규의 입대 전 잠시 동안 성규와 거의 붙어 살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성규의 입대가 정말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 성규, 미남이, 핀토, 그리고 미호.

 

미남이는 자기 차가 있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미호를 데리고 와 주었다.

 

"...내가 미호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아냐, 됐어. 뭐 하러 왔다갔다 해. 그리고 미호도 오랜만에 동네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그렇다. 미호는 성규가 논산으로 출발하기 전의 잠시 동안, 굳이 우리 동네를 다시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응, 뭐... 일단은 고향이니까 말야. 오랜만에 한번 와 보고 싶긴 했는데"

 

"역시 오니까 생각보다 별 거 없네. 뭔가 바뀐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뭐, 오랜만에 미호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을 만큼 말이지.

 

"우리 동네는 뭔가 생각만큼 좋지는 않네."

 

"...그래도 뭐, 역시..."

 

"...철남아!"

 

"응"

 

"우리 철남이 너무 보고 싶었어... 철남아, 철남아~"

 

그렇게 말하면서 미호는 신난 강아지마냥 내 품으로 뛰어든다.

 

"나도 보고 싶었어 미호야"

 

그렇게 우리 둘은 한동안 조용하게 서로 안고 서 있었다.

 

그러고 있자, 슬슬 뒤통수가 간지러워 오는 것이 아닌가.

 

"응?"

 

"""........."""

 

"야 이철남, 너 두 번 다시 나랑 성규보고 닭살이 어쩌니 저쩌니 하지마라, 진짜 껍데기 벗겨버릴 거니까"

 

"야, 니들 꼭 군바리 앞에서 그러고 싶냐?"

 

".....죽고 싶다"

 

뭔데, 니들. 커플 처음 보냐? 뭔 표정들이 그래.

 

"야, 민성규, 민핀토. 니들 평소에 이거보다 100배는 더하거든? 와, 진짜 내로남불하네"

 

"아? 거울 갖다주고 싶네 진짜. 완전 얼탱이가 없네"

 

"뭐래 진짜, 니 남친 대가리 맨들맨들한데 그게 거울이구만"

 

"말 다했냐?"

 

"아뇨, 덜했는데요 할ㅁ"

 

"으아, 잠시만, 진짜 아ㅍ 야 핀토야 미안하다 진짜아파"

 

 

 

 

 

 

 

 

 

 

미호는 핀토네 집에서 하루 묵는다고 했다.

 

나와 미남이는 성규네 집에서 하루 신세지기로 했다.

 

""내일 만나서 가자""

 

"""그래"""

 

 

 

 

 

 

 

 

"야, 근데 왜 우리 불렀냐?"

 

"뭐가"

 

"아니, 왜 여친이랑 둘이서 안 가고..."

 

"그건 나도 좀 궁금하긴 하네"

 

"아니, 나도 사실 핀토랑 시간 좀 보내고 싶긴 했는데"

 

"핀토가 우리 세 명 있는 거 보고 싶다고 막 그래서"

 

"걔도 가끔 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네"

 

"...설마 일병 못 넘기는 거 아니냐?"

 

"죽여버린다 진짜"

 

"그리고 또, 하는 김에 오랜만에 미호도 불러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니네들 있으면 올 테니까"

 

"너는 괜찮고?"

 

"아, 나는 괜찮지, 핀토랑 나 사이에는 다~ 있어, 서로에 대한 그런, 이해 같은 게"

 

그러냐.

 

"그럼 뭐, 할 말은 딱히 없네. 내일 여친 앞에서 질질 짜지 말고 지금 미리 눈물 빼놓지?"

 

"그래, 이거 한 잔 마셔 일단"

 

"아냐, 내가 무슨 ㅋㅋㅋㅋ 사나이 민성규가 무슨, 남들 다 가는 군대로 여친 앞에서 울어"

 

 

 

 

 

 

 

 

 

 

성규는, 정말이지 망국의 군주라도 된 듯한 표정으로 꺼이꺼이 울었다.

 

너무나도 서글픈 얼굴이었다. 마치 병원에서 엄마를 잃은 신생아 같았다.

 

"으흫느흫흐어, 핀토야... 나하 걱정하지히 말고오..."

 

"...잘 갔다와, 민성규. 나 너 기다릴게"

 

핀토가 오히려 더 차분하다. 핀토는 그저 조용히 성규를 쳐다보고만 있다.

 

"흐읗흐으어엏 핀토,야... 나 갈게헤...."

 

그렇게 성규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핀토는, 미호에게 안겨 울면서 성규가 사라진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너희 둘이서 그냥 바로 미호네 동네로 가"

 

"아니, 그래도... 핀토야, 나 너랑 조금 더"

 

"아니, 괜찮아. 나 며칠만 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핀토야, 정말 내 차 안타고 가도 되겠어? 난 별로 상관 안하는데"

 

"아, 괜찮아, 진짜로. 나 혼자 있고 싶은 게 더 커서 그래, 정말로."

 

"..."

 

"야, 니들 너무 그런 표정 하지 마, 나 실컷 울었잖아. 어차피 성규 무슨 죽으러 간 것도 아니고"

 

"나 원래 기분 안 좋으면 며칠 혼자서 기분 돌릴 시간 필요한 스타일이라 그래, 신경 쓰지 말고 둘이서 가 봐"

 

"...철남아, 가자"

 

미호는 핀토를 잘 알고 있다. 미호가 괜찮다면 괜찮겠지.

 

"핀토야, 조만간에 한번 얼굴 보러 갈게"

 

"그래, 너무 남친한테만 정신 팔지 말고"

 

"생각 조금만 해 볼게, 조금만"

 

"아오 진짜 얄밉네"

 

그렇게 핀토와, 그리고 성규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그래, 너와 다시 함께 있는 겨울이.

 

 

 

 

 

정신을 차려보자, 순식간에 겨울은 지나 있었고, 

 

나는 다시 미호와 헤어져서 학교에 다닐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나온 나는 깜짝 놀라 자지러졌다.

 

 

 

 

 

미호가, 우리 학교 국문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내가 말했지? 좋은 소식 있다고, 기대해도 좋다고"

 

"앞으로 잘 부탁해"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