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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간 2호 나오면 후회물보다도 추노찍을거 같지 않냐 - 1


[소설] 인간 2호 나오면 후회물보다도 추노찍을거 같지 않냐 - 2


[소설] 인간 2호 나오면 후회물보다도 추노찍을거 같지 않냐 - 3


[소설] 인간 2호 나오면 후회물보다도 추노찍을거 같지 않냐 - 4



1

Ass… We can…”

 

별다를 것 없이 습하고 어두운 여름의 아침. 눈을 부비며 세면장으로 향하던 금태양의 귀에, 근처의 브라우니 무리에서 나왔을, 중저음의, 그냥 지나치기 힘든 한마디가 들렸다.

 

“븤ㅋㅋ”

 

“그러다 들리지 말임닼ㅋㅋ”

 

그 대사가 무엇인지 금태양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멸망 전, 국가를 막론하고 소위 ‘붕탁물’이라 불리는 합성물의 소재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이 포르노 배우의 대사. 

 

“뭐 어때, 다 아는 사실 아니냨ㅋㅋ”

 

또 유행인가 하고 넘어갈 법도 했지만, 자신을 주시하며 킬킬댄다는 상황으로 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브라우니니까.’

 

금태양은 찝찝한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털어내려 생각했다.

 

멸망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일선에서 가장 많이 뛰어다니는 게 누군가 하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브라우니라 답할 것이다. 멸망 전이라면 그렇게 굴러다닌 것 말고도 인간들에 의해 가장 많이 갈려 나가고, 시달린 당사자들이다. 그런 기억(멸망 후에 제조된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억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모듈로 인해 공유하는 과거이므로 금태양은 그렇게 부르기로 생각했다)때문에라도, 그리고 그에 더불어 특유의 유쾌한 성격으로 멸망 전 인류인 자신을 은근히 놀리는 것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그런 찝찝한 짓을 벌이던 인간은 아니었어도, 그렇게 크게 기분 나쁘지도 않고, 오히려 그렇게 가볍게 대해 주는 것이 편했으니까.

 

이런걸 기회 삼아 친해지고 하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세면장을 향하던 금태양은 사령관과 마주쳤고,

 

“아,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바쁘신가 보네요.”

 

“아, 그… 어, 어어. 그렇게 됬네요. 하하… 그, 그럼 바빠서…”

 

어제까지만 해도 편하게 반말로 이야기하던 그가 어색한 존댓말과 함께 엉덩이를 서류철로 어색하게 가리며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걸 보고, 그냥 넘어가기엔 조금 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2

“씨발?”

 

숙소에서 스정게를 돌아다니던 브라우니-2056은 화면 구석에 위치한 실시간 념글을 보곤 자는 줄 알았던 이프리트 병장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지, 근처의 노움이 자신과 레프리콘을 번갈아 가며 째려보는지, 레프리콘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을 필사적으로 휘적거리는지도 모르는지 감탄하듯 욕설을 내뱉으며 손가락을 놀렸다.

 

 

「금태양 그 새끼 게이 아니냐」(ㅇㅇ111.12)

내가 펙첩 NTR 충은 아닌데, 솔직히 사방이 여잔데 누구 하나한테 헬렐레 거리거나 찝쩍거리는 게 하나도 없는 게 말이 되냐

부랄 달렸으면 성욕이란 게 있을 거 아니야

우리 사령관님한테 들러붙어서 실실 빠개는 게 ㅈ같어서 그래 보이는 걸 수도 있긴 한데, 솔직히 좀 이상하지 않냐

내가 뇌피셜충인가

 

 

금태양이 합류하고 나서 우후죽순 생겨난 NTR 분탕인 줄 알았건만(알면서도 들어가 보고, 정독한 뒤에 기분 나빠져서 비추 박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일 거라고, 브라우니-2056을 비롯해 대부분의 스정게 이용자들은 생각했고, 이런 여론을 증명하듯 NTR 물이나 후회물은 수많은 비추 폭탄을 받으면서도 항상 조휘수 기준 상위권에 위치했다) NTR 떡밥은 아닐뿐더러,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그리고 그럴싸한 개연성을 가지는 주제에 힘입어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이용자들의 관심 역시 끌어들이고 있었는지, 조회 수와 추천 수가 쑥쑥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ㅇㅇ212.13) 괜히 NTR 각 잡다가 사령관한테 찢길까 봐 사리는 거 아님?

   ﹂(ㅇㅇ111.12) 그건 그렇다 쳐도 뭔 관심도 없어 보이잖아

﹂(ㅇㅇ411.23) 성욕이 없는 거 아님? 오기 전에 나이트 칙한테 맞았다매. 머리나 불알이 어케 됐을 수도 있지

   ﹂(TFeather) ㄴㄴ 딸 치는 거 봄

      ﹂(Theodore Hyena) ㅅㅂ

      ﹂(ㅇㅇ212.13) 학생,, 글,,, 내려,,,^^;;;;,,,,,

 

 

확실히 관심도 없는 것과 사리고 있는 건 차이가 있을 터이다.

 

브라우니극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롤을 계속 내리며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댓글들을 읽어나갔다.

 

﹂(철남충별랄랄루해) 철남충 게이게이였노 느그 오르카 수준 보인다

   ﹂(ㅇㅇ122.17) 펙첩 쳐내

   ﹂(elegant) 펙첩새끼

   ﹂(alpha) 펙스 출석 150년 차 ‘건치회장치석빨고싶다’님 안녕하세요^^^

﹂(ㅇㅇ27.3) 컨셉ㅈㄴㅈ

 

 

여기도 있네 저 호감 고닉새끼.

 

 

﹂(wolfy) 태양게이 게이라 치면 우리 경쟁자 느는 거 아님?

   ﹂(ㅇㅇ65.7) 게이는 저번에 후기 올린 거 구라였노?

      ﹂(Connector) 고로시면 양식 지켜라

      ﹂(wolfy) 게이는 한 번 하면 닷씨는 안 하노? 한 번만 해보는 게 소원인 아다인거 티내노…

         ﹂(Connector) 너도 양식 지켜라

   ﹂(doomnight) 피지컬이 사령관보다 좋지도 않은데 한 따까리 할라 그래도 택도 없지 않을까

 

 

브라우니-2056은 생각했다. 하긴 경쟁자가 이미 포화 상태인데 금태양이 게이고 뭐고 유의미한 차이가 있겠는가? 다들 같은 생각인지 늘어나는 답글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견지했다.

 

떡밥이 생각보다 시시하게 식기 시작했고, 슬슬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속도가 뜸해질 때 즈음,

 

 

「어디가 꼴리는 건데」(4ssnal)

아카이브 뒤지다 찾았는데 뭔 2시간 동안 레슬링만 하냐 태양게이는 이게 꼴리노?

 

 

며칠 동안 이어질 폭풍을 몰고 올 글이, 1시간 45분짜리 영상과 함께 념글에 올라왔다.

 

 

3

“닥터야,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어…아, 맞아 뭔 일 있긴 있었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아침을 해치우고 랩실로 달려가 닥터에게 묻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닥터가 대답했다.

 

사령관마저 자신을 피하는 와중에, 물어볼 인물이라곤 닥터 말곤 없는 상황에 그녀마저 무슨 일인지 모른다면 어쩌나 했건만, 다행이었다.

 

의자를 빙글 돌리며 기지개를 켜는 닥터가 선고라도 기다리는 죄인마냥 우두커니 서 있는 금태양을 향해 말했다.

 

“새벽에 누가 가짜 참치캔을 유통한 게 확인돼서 오빠가 서류 정리 맡기고 갔었어. 겉보기엔 똑같은데, 따보면 무슨 수르스트뢰밍 같은 게 들어있대.”

 

브라우니들이 하던 이야기와는 관련 있어 보이진 않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큰일이네.

 

닥터가 내미는 반쯤 따여진 ‘가짜 참치캔’에 금태양은 헛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설마 하나하나 다 까봐야 하는 건 아니지?”

 

“포장은 어떻게 따라 하기 어려웠나 봐. 밖으로 내용물이 새어 나오는데, 그것만 ‘확인’하고 수량이랑 위치, 확인되는 유통경로만 정리해서 올려 주면 돼.”

 

“확인은 어떻게 하는데?”

 

설마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겠어? 닥터에몽이라면 뭔가 최첨단 장비를 쥐여 줄 거라 생각하고 금태양은 물었다.

 

그런 그의 기대에 무색하게, 닥터는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켰다.

 

“… 설마 냄새로 확인하라고?”

 

“에이, 설마 그런 걸 시키겠어? 후각은 금방 둔해진다고.”

 

역시, 닥터라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내 얼굴을 가리키는 건 뭐지? 장난인가? 아니면 벌써 나노봇이 주변에 떠다니고 있나?

 

금태양이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닥터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맛봐야지. 시큼하면 가짜야. 분석해보니까 탈은 안 날 거 같으니 안심하고. 파이팅!”

 

금태양은 로봇팔로 ‘파이팅’제스처를 취하는 그녀를 보며, 예전에 자신을 부려먹던 교수보다 미워 보이는 게 정녕 존재하는 것이었구나 싶었다.

 

 

4

킁, 킁

우욱…!”

 

도대체가 먹어도 괜찮은 거 맞긴 한 건가?

 

사령관님께서 가짜 참치캔만 회수하고 오늘 업무는 빼주시겠다고 한 말을 닥터에게 전해 듣고 ‘수사’를 시작한 지 2시간째. 의외로 사령관님의 발 빠른 대처에 수사 범위는 크게 넓지 않았다.

 

정형화된 모습과 문제의 참치캔이 공방 근처로 퍼져있는 걸 보면 공방에 뭔가 시설이 있는 것 같아 앞으로 한 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아 기쁜 금태양이었다.

 

물론 그런 기쁨과 별개로 이게 정녕 먹어도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코와 혓바닥은 죽어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출처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마구 문지르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면, 한편으론 미안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상처받고, 짜증 났다. 그도 그럴 게 내 잘못도 아닌데.

 

‘될 대로 되라지, 이것도 일인데 뭐.’하며 그런 그녀들의 반응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수사를 하던 금태양은, 늘상 그렇듯 웃는 얼굴로 달려오는 하치코가 5m쯤 앞에서 코를 부여잡고 기절하는 걸 보고 나서야 부랴부랴 매점에서 리스X린를 사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날 선 반응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리스X린 때문에 입에 남는 화한 느낌과 수르스트뢰밍 맛의 조합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구취 제거제를 들이키고 나면 소완이 한 상 차려온 음식도 맛이 이상하다 느낄 텐데, 삭힌 생선은 오죽하겠는가?

 

어째어째 구토감을 참으며 금태양은 공방에 다다랐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 빨리 끝내고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아침에 들었던 브라우니들의 말이 뭔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금태양은 의욕에 불타며 공방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공방은 금태양의 다양한 감각을 통해 ‘여기가 발원지요’하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튀어있는 생선 잔해, 복도와는 비교를 불허할 찐덕한 악취(이미 금태양의 코는 충분히 마비되어 냄새가 심한지, 덜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들이마셨을 때 오르카의 다른 곳과는 다른 점도를 가지는 공기를 보고 더 강렬한 악취가 나고 있음을 알았다), 이전에 본 공방에는 없었던 커다란 기계, 그리고 그 앞에 쓰러져 있는 히루메….

 

쓰러져 있는 히루메?

 

“어? 어?! 정신 차려봐요! 괜찮아요?!”

 

팔목을 들어 맥을 보니 단순히 기절한 것 같았다. 다행히 히루메는 금세 정신을 차렸고,

 

오우와우와우와우….”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과 함께 코를 손등으로 비틀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

 

여우도 후각이 예민할 테니, 가짜 참치에서 나는 악취에 기절한 것 같았다. 하치코처럼. 사령관님께 설에 있었던 일을 대충 들은 뒤이기에 금태양은 이번 사건이 대충 어떻게 시작된 건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보나 마나 뻔하지 뭐. 안 그래도 초창기에 포츈씨가 이 기계도 만들었었겠다.

 

“에휴…”

 

한숨을 푹 내쉰 금태양은 고장 났는지 멈춰있는 기계의 전원을 차단하고 히루메를 들어 올렸다.

 

언능 수복실로 데려다주고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돌려 공방의 입구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율법에 반하는 악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했더니… 역시나 네놈이었구나…!”

 

검은 날개를 가진 천사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뭐 하나 쉽게 가는 일이 없냐.”

 

 

5

여덟 번째, 물욕에 눈이 멀어 축성조차 받지 않은 기계로 거짓 화폐를 발행해 교단을 현혹한 죄!”

 

“…쏘야볶좀 더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포티아씨가 측은하게 웃어 보이며 식판에 소야를 더 얹어주셨다. 내 식판에, 그리고 식판을 들고 다소곳이 줄을 선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라키엘의 식판에도.

 

아홉 번째, 축성은커녕 사악한 화폐를 유통해 이곳의 복도를 악의 기운으로 채운 죄!”

 

“으응? 킁킁… 흐아아, 어디서 이상한 비린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하찌코만 그런가요?”

 

“아마 똑바로 맡으신 거일 거예요… 그 가짜 참치 때문에 겉옷 갈아입고 오긴 했는데, 냄새가 몸에 뱄나 보네요….”

 

“헤에, 그력구나.”

 

열 번째,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했거늘, 감히 구원자의 아내를 미혹하려 한 죄!”

 

“그런 적 없는데요….”

 

히루메를 수복실에 데려다줄 때까지는 눈치껏 조용히 뽈랑뽈랑 쫓아오기만 하더니, 숙소에서 옷 갈아입고 나온 뒤부터 쫓아다니며 이 모양이다.

 

처음엔 뭔가 큰일 난 건가 싶었지만, 고성방가하는 사라키엘을 두고 다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 내버려 두면 그만두겠거니 했건만, 식당까지 동행하고, 식판을 들고, 배식받고, 내 앞에 자리하면서도 그녀의 선언은 끝나지 않았다.

 

거룩하게 서서(혹은 허공에 떠서) 무슨 번개라도 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대사를, 심판과는 무관한 자기 할 일은 다 하면서 하는 모습이 제법 볼 만 했다.

 

몇몇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하나같이 키득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걸 보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음… 열한, 우물우물… 벙재! 가싱정인… 우물… 영기로 거짇된 미등을 시머줔…킁, 으흑 풉!! 콜록! 콜록!”

 

“… 삼키고 말해…. 체하겠다.”

 

물을 건네니 급하게 받아마신다.

 

얼씨구. 언제는 상종 못 할 간악무도한 죄인이라더니 죄인이 주는 건 그렇게 덥석덥석 받아도 되는 건지…

 

얇은 철제 물컵을 다 비운 사라키엘은 한층 개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열두 번째! 구원자를 공허한 쾌락의 늪에 빠뜨린 죄!”

 

“그러게, 그런 적 없다니ㄲ… 뭐?”

 

저건 또 뭔 소리지? 뭐가 쾌락이고 사령관님은 또 뭐야?

 

“알고도 모른 척하다니 그 죄가 더 중하다!”

 

“아니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이건 아예 몰라서 그러는데 설명 좀 해줘 봐.”

 

정지한 AGS처럼 우두커니 멈춘 사라키엘은 이내 주머니를 뒤적여 단말기를 꺼냈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두드리더니, 단말기를 쑥 내미는 사라키엘.

 

“보아라! 지식 보관소에 증거가 이렇게 남아 있는데도 발뺌할 셈이느냐!”

 

화면에 비친 것은 「강한 새벽, 호다닥 만들어옴」이라는 제목의 글. 첨부된 동영상은 익숙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이봐 친구, 잘못 찾아온 것 같군. 노예의 랩실은 두 블록 아래야.’

 

회색 츄리닝에 하얀 러닝을 걸친 남자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있을 곳에는 부자연스럽게 일렁이는 사령관님의 얼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설마 아침에 브라우니들이 말하던 게…

 

‘Fuck↗ you↘

 

반 다X 홈 형님의 용안이 있을 자리에 붙어있는 내 얼굴이 그 답을 대신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때? 아직도 발뺌할 셈인가? 열두 번…”

 

“이거 합성이잖아?!”

 

“엥?”

 

문제의 영상이 올라온 곳은 브라우니들이 이용한다는 ‘스틸라인 정보 게시판’. 양팔을 몸 앞으로 모아 내리뻗으며 쓰러진 사령관님 앞에서 ‘WOO♂’하며 세레머니를 하는 나를 뒤로하고 스크롤을 미친 듯이 내렸다.

 

성조기 빤쓰를 입고 춤추는 나, 가죽 두건을 쓰고 ‘My name is Thayyang. I’m an artist, performance artist.’ 같은 대사를 치는 나, 야시꾸리한 고문 틀에 묶여 ‘Fuck you!’를 외치는 나, ‘게이의 어원이 즐거움이라지?’ 같은 조롱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Ass… We can…”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브라우니가 한 그 말. 그 대사.

 

“으으윾…”

 

머리로 뜨끈한 뭔가가 솟구쳐오르는 걸 느꼈고, 그와 동시에 세상이 깜깜해졌다.

 

 

6

저녁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낮에 쓰러진 하치코와 히루메의 옆자리에서 눈을 떴다. 들리는 말로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단다.

 

다프네 왈, 몸에 큰 문제는 없고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으니 푹 쉬라 그런다.

 

계획상 오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지만, 그냥 쉬기로 했다. 어째저째 쓰러지는 걸 대가로 해결했으니.

 

저녁 시간이 끝날 무렵, 사령관님께 이야기해 오해도 풀었다.

 

…게이 아니라고도 말씀드렸고.

 

사령관님께선 게이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자기가 그동안 편하게 대한답시고 실수한 건 없나 해서 걱정하셨단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 그런데 그럼 아침에 엉덩이를 가리고 도망가신 건 뭐였지?

 

아무튼, 합성한 인물을 찾아 따끔하게 혼내주겠다고 하셨지만, 익명으로 돌아가는 사이트에서 누굴 잡아내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까지 범인을 잡아내면 스정게 본연의 오락거리로서의 기능을 못 할 게 뻔해, 앞으로 합성은 자제해달라는 공지 정도면 괜찮다고만 말씀드렸다.

 

어떻게 얻은 휴일인데,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고민하다 머리나 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보련 씨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금발로 염색을 했다. 약간의 일탈이지 뭐.

 

짐이나 챙겨갈 겸 랩실에 들렀더니 닥터가 한참 동안 웃으며 놀렸지만 뭐, 난 썩 마음에 드는 머리였다.

 

아, 그리고 쓰러졌을 때 사라키엘이 깜짝 놀라 실내 비행 금지도 어기고 나를 붙잡아 수복실로 냅다 날랐다고 한다.

 

그래, 사람은 착해. 좀 괴짜 같을 때가 있어서 그렇지.

 

나중에 따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내가 식당에서 쓰러지고 한동안 죄인이 벌을 피하려고 별 짓을 다 하네 뭐네 하다가 뭔가 싸하다는 걸 느낀 뒤에 수복실에 거의 내동댕이치듯 집어던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착해.

 

…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안 그러면 좀 상처받을 것 같다. 그것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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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앙망하옵나이다... 기말 끝내고 왔읍니다...


히루메 대사는 여우 울음소리를 들어보자

글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저어어까지가 와타시 한계인 데샷


언제나처럼 각종 지적 환영인 데수


누추한 글 읽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