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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오르카 밖으로 나오니 안에 있는 것보다야 훨씬 더 나았다. 개방감도 개방감이고, 무엇보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분을 한결 낫게 했다.

 

 “그렇게 도망치시면 누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대신 귓가를 스치는 용의 서슬 퍼런 잔소리는 기분을 한결 가라앉게 했지만 말이다.

 

 “저를 포함한 지휘관들도 이번 모의 전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진해서 휴가도 반납하고 며칠째 함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용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쇠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처럼 아프게 들렸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녀의 말은 가감 없이 전부 사실이었다. 사실이어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미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근데 용은 갑자기 내 얼굴을 확 잡아챘다.

 

 “왜 사과를 하십니까?”

 “으니……. 샤과 하라는 겨 아니었어……?”

 

 분위기가 무조건 내가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분위기 아니었나? 근데 또 내가 잘못 짚은 모양인지 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와, 진짜 여자 마음 어렵다…….

 

 “설마 저희를 쓸데없이 고생하게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뭐 결과적으로 소득이 없었으니까…응, 뭐 그렇지.”

 

 날 바라보는 용의 표정이 더 애틋해졌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럴 땐 그냥 솔직하게 끝까지 말하는 게 좋았다. 변명이랍시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뿐더러 무엇보다 용이 그런 걸 되게 싫어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두의 모범이 되지 못한 탓에 자책하시는 겁니까? 그래서 저도 피하신 거군요?”

 “…뭐 아르망한테 독심술 과외라도 받았어?”

 “명색이 평생을 함께 할 아내인데, 제가 서방님에 대해 그것도 모르겠습니까?”

 “…….”

 

 왜일까, 말 한마디에서 사랑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용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자기 볼에 가져다 댔다.

 

 “요, 용?”

 

 용은 내 손을 어루만지며 그 감촉을 즐기듯 눈을 감았다. 손바닥 너머로 용의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내게만 보여주는 아내로서의 모습이었다.

 

 “정말 서방님께선 여자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아서 문제군요.”

 “그, 화난 거 맞지?”

 “그런 걸 물어보시는 게 여자 마음을 모르신다는 겁니다.” 용이 쓴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살짝 꼬집었다. “서방님이 그렇게 가시고 지휘관들끼리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아십니까? 마리 대장이 한탄하는 걸 보셨어야 했습니다.”

 “아니 왜? 지휘관들은 전부 잘해줬어. 내가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 하면 구체적인 계획안도 짜 주고, 전술도 알려주고, 실전 지휘까지 다 도맡아서 해줬잖아?”

 “그리고 서방님을 침울하게 만들어 버렸죠. 저희 모두가요.”

 “그건……. 그건 내가 애초에 지금 전력으론 어림도 없는 전투에서 좋은 결과를 바라서 그랬던 거잖아.”

 “절 보세요, 서방님.”

 

 결국 그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자기에 대한 혐오감의 정체를. 시선이 저절로 밑으로 갔지만 용은 내가 시선을 내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무리한 전투였습니다. 저희 모두 그걸 알고 있었지요. 허나 정녕 소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저희가 서방님을 불신하고, 뒤에서 욕이라도 하길 바라셨던 겁니까? 큰 착각이십니다.”

 “…….”

 “서방님이 그렇게 실망하시는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를 너무 아끼시기 때문이죠. 그 이유를 알기에 저도, 다른 지휘관들도, 그리고 오르카의 모두도 서방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겁니다. 서방님께서 모든 걸 떠맡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패배를 했으면 원인을 복기해서 다음번에 더 잘 하면 됩니다. 그걸 위한 모의전이지 않습니까?”

 

 구구절절 정론이라 할 말이 없었다. 이성적으론 용의 위로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감정으론 납득할 수 없었다. 그 별의 아이를 상대로 과연 다음번을 기약할 수 있을까? 여태껏 동고동락하던 대원들이 공격 한 번에 쓸려나가는 걸 보고 내가 과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물음들이 머릿속에 그저 떠오르면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더 두려운 건…….

 

 “용,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난 널 잃는 게 너무 무서워.”

 “…….”

 

 나는 그대로 용을 끌어당겨 껴안았다. 용은 저항하는 대신 말없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네가 가장 강한 함대를 이끌고 있어서도 아니고 전략전술이 누구보다도 뛰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야. 난, 난……. 그냥 널 잃는 게 두려워.”

 

 늘 강한 척을 하려고 해도 사랑스러운 용은 내 약한 부분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내 성장에 기뻐하고, 누구보다도 상냥하게 위로해준다. 난 용의 그런 점에 끌렸다. 나를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고 나를 선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를 그저 애틋하게만 여겨주지도 않는다.

 

 용은 나를, 사령관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해줬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약한 부분을 눈치채줬고 방법은 가르쳐 주면서도 결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로채려 하지 않았다. 실은 내가 실망하면 어쩌나,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며 계속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말이다.

 

 “난 네가 없으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거야.”

 “서방님.”

 “어리광이라고 해도 좋고 화를 내도 좋아. 하지만 난……. 너를 잃느니 차라리 별의 아이에게서 도망치겠어.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거야.”

 “전 약하지 않습니다, 서방님. 제 이명을 잊으셨습니까?”

 

 그 호칭 별로 안 좋아하지 않니, 용? 하지만 그런 농담에도 난 웃을 수가 없었다. 

 

 “나도 네가 철충이나 오메가를 상대로 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헤쳐나오고,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겠지. 하지만 별의 아이를 상대로는 그런 생각이 안 들어.”

 “물론 저 역시 마지막까지 서방님 곁에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지만 끝이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로…….”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용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치졸한 발언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를 잃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녀에게 전달되지 못할까봐 그게 두려웠다. 난 겁쟁이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고 치졸한.

 

 “…그런 말씀은, 비겁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대답할지 뻔히 아시면서.”

 “난 원래 이런 놈이야. 비겁하고, 치졸하고……. 어쩌다 보니 그냥 최후의 인간이랍시고 덜컥 총사령관이니 뭐니 되어버린 거지.”

 

 입맛이 썼다. 이런 말 따위 다른 대원들 앞에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희가 믿고 따르는 최후의 인간님이란 작자가 비겁하고 속 좁은, 그냥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용은 내 품에서 얼굴을 떼더니 내 눈을 바라봤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모를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더 약한 소리를 많이 하십니다, 서방님.”

 “이런 내가 싫어서 그래.”

 “전 그런 서방님도 좋아합니다.”

 “…….”

 

 가끔 용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올 때가 있다. 용은 그윽한 눈빛으로 내 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런 약한 부분도 포함해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니까요. 의무만이 삶의 전부였던 제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신 건 바로 서방님이셨습니다.”

 

 서약하기 이전을 말하는 건가. 하긴 그때의 용은 솔직히 말해 좀 대하기 어려웠다. 그땐 지금과 같은 관계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서방님껜 저희의 각오를 보여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뭐, 뭘 보여준다는 건데?”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용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척척 걷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슨 손아귀 힘이……. 졸지에 엄마 손 잡고 따라가는 애 꼴이 되어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서방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지휘관들이 과연 실망했을 것 같으십니까? 후후, 서방님께선 정말 여심을 모르셔도 너무 모르십니다.”

 “??”

 

 대체 뭔 소린지 눈앞 가득 물음표를 띄우는 내게 용은 다시 싱긋 웃었다. 별로 안 좋은 예감이 등줄기를 훑었다. 저건 분명 놀리는 미소였다…….

 

 “직접 보셔야 합니다. 서방님을 믿고 있는 오르카의 모습을.”

 

 하지만 담담히 말하는 용의 목소리엔, 짓궂음 외에도 나를 향한 깊은 신뢰가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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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편이 마지막이겠지

무용 많이 사랑해주세요

무용 많이 예뻐요

이제 첫 반지 얻어요 무용이한테 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