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후우~"


코와 입 밖으로 나오는 연기. 피곤한 업무 중간에 슬쩍 나와 태우는 담배는

최근 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사령관이란 자리는 누리는 권리 만큼이나 책임감도

막중했고, 자연스레 하루에 태우는 담배는 늘어만 갔다.


"하.. 역시 이거야..."


잠수함의 갑판에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태우는 담배.

한 모금 한 모금이 연기가 되어 중압감과 책임감이 갖고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철컥-


"어...? 아, 안녕 사령관."


난간에 팔을 기대고 자유로이 날아가는 새들을 보는 도중 잠수함의 해치가 열리고

더치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오~ 안녕! 땃쥐."


"나, 나는 땃쥐가 아니..."


"그냥 그렇게 부를거야. 귀엽잖아? 땃쥐."


"으으.... 편하게 불러."


더치걸이 내 곁으로 다가오고 나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그녀에게서 멀리 있는 방향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담배 연기와 냄새는 독할것이라 생각했다.


치익- 칙-


"아... 라이터가..."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더치걸은 능숙한 손길로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땡기고 있었다.

하지만 옅은 불꽃만 잠깐 일어날 뿐, 그녀의 라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뭐야? 땃쥐 너도 담배 피우니?"


"응? 아.. 응. 예전에 땅 속에서 일하면 담배가 주기적으로 보급이 되고는 했어.

그때부터 힘들거나 무서우면 하나씩 피우기 시작한게.. 지금은 습관이 되버려서.."


차분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하는 더치걸의 과거 이야기. 그녀의 과거사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지만

새삼스레 그녀의 입으로 다시 듣는 그녀의 과거사는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다.


"...그래, 역시 그럴때는 담배만큼 확실한 친구가 없지."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담배는 말리는 편이 좋겠지만.. 차마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다.


'나 자신부터가 꼴초인 주제에 말이야.'


헤비스모커인 내가 어떻게, 무슨 명분으로 그녀의 흡연을 멈추게 하겠는가. 오히려 지금까지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그저 그 아픔을 덜어주고 싶을 뿐이다.


"여기. 이걸 써."


"앗! 고, 고마워..."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더치걸에게 던져주자 그녀가 허둥지둥 라이터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라이터를 멍하니 바라보다 자신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로 라이터를 향하였다.


치익- 칙!


"후우...."


더치걸의 입과 코에서 담배의 씁쓸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작고 여린 아이가 담배를

물고 있는 광경은 분명히 이상했고 어색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짙은 어둠을 뚫고 나온

백전노장의 그것과 비슷했다.


"힘들었지?"


"응? 아... 괜찮아. 힘든 거 없어."


내 물음에 답하는 더치걸. 아마 오르카 호의 생활에 크게 만족하는 듯 그녀의 표정이 밝았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그것을 물어본 것이 아니다.


"요즘 말고, 옛날에. 아주 옛날 우리와 합류하기 전에 말이야."


"아...."


그녀가 말문이 막힌 듯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하긴, 물어봐서 뭐 하겠어. 당연히 힘들었겠지. 수많은 동료들을 잃고... 그 어두운 땅속에서

계속 기다렸으니... 미안해."


내 말에 더치걸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은 이내 줄기가 되어

흐르고, 그녀의 입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왔다.


"담배, 되도록이면 줄이라고 하고 싶은데. 사실 나도 애연가라... 말리진 않을게.

힘들었던 일들은 이제 그 담배와 함께 태워버려. 그게 담배의 유일한 장점 아니겠어?"


그 말과 함께 다 핀 담배를 바닷가에 튕겨 버리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더치걸의 담배도 어느새 그 몸을 다 태우고 끝자락의 필터에 회색빛 재만 남겨두고 있었다.


"라이터좀 주겠니?"


"응.. 여기."


더치걸이 조심스레 건내는 라이터를 받아들어 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서 그녀들이 밝힐 수 있었던 유일한 불꽃. 그 불꽃을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간

더치걸의 동료들에게 전하는 향으로 올리며.


치익-!


"후우..."


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내 담배 하나를 꺼내 더치걸에게 건네주었다.


"자, 아까 그거 돗대 같던데 내가 말거는 바람에 다 못태웠지?"


"고마워. 그리고... 사령관이 미안해 하지마... 그건 사령관의 잘못이 아니야. 

사령관은 오히려 나를 구원해 준 은인인걸..."


"난 내 잘못을 사과하지 않았어."


내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더치걸. 나는 그녀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주며

그녀에게 눈을 맞추고 대답했다.


"너에게 그 슬픈 기억을 깊게 남겨둔 모든 못된 인간들 대신 내가 사과한거야.

아직 난 사과할 자격이 모자르니까.. 오래오래 내 곁에서 같이 있자. 내 사과도 들어야지."


"....고마워."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입에 물린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담배는 아직 붉게 타오르지 않았다. 난 내 마음을 담아 그녀의 담배에 내 담배를 맞추었다.


치이익-


담배와 담배가 맞닿고 그녀의 담배가 붉은 빛을 내며 타들어간다.


"후우~"


"하아~"


살며시 우리들의 거리가 멀어지고 각자의 입에서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젠 하늘에서 쉬고 있을 더치걸의 다른 동료들에게, 내 마음과 더치걸의 마음을 담아..


짙은 연기에 우리의 인연을 담아 보낸다.


마치 애도의 향을 태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