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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은 충남과 데이트하란 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여동생이 그한테 마음이 있다 고백한 이상 거절하는 것이 언니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상상 이상으로 거센 딸들의 성화에 무릎을 꿇었다.


“가게는 걱정 마. 주말동안 우리가 잘 볼게.”
“엄마 데이트 코디는 어떻게 입힐까? 충남 오빠는 연상 취향이니까 이런 스타일은 어때?”


미호가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 차림의 여성 사진, 일명 신도시 미시 룩을 보여주면 홍련이 자신에게는 안 어울린다 손사래쳤다.


“나이를 먹으니까 뱃살이 쪄서 몸매가 드러나는 옷은 부끄러워.”
“엄마. 남들 앞에서 그런 배부른 소리하면 기만질한다고 욕 먹어.”


조용히 듣고 있던 불가사리가 일침을 놓으며 미호를 곁눈질한다.


“불가사리. 그 의미심장한 눈은 뭐야.”
“미호가 인터넷에 자기 몸 평가해달라고 글 올린 걸 봤거든.”
“미호야?”
“아니에요 엄마. 이상한 사진은 안 올렸어요. 믿어줘요.”


한 번 의심을 산 미호는 직접 비교적 건전한 사진만 올렸음을 확인시켜주는 수치를 겪고서야 다시금 홍련의 데이트 코디로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

드라코는 좋은 아이디얼이 떠올렸다며 손뼉을 쳤다.


“반성매력으로 교복은 어때?”


충남이 들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제안이었지만 아쉽게도 밥버거 일가는 전원 여성. 자지 달린 수컷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각시켰다.

외에 핀토의 코스프레 제안.

기각시킬 줄 알았던 미호에게서 의외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으나 데이트 룩이 아니라 데이트 심화 룩이란 이유로 기각.

최종적으로 신도시 미시 룩이 네 자매에게 간택받았다.


“야해.”
“얘가 엄마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풍만한 몸매에 착 달라붙는 검정 민소매 원피스. 가슴과 겨드랑이 골짜기가 훤히 드러나고 은근슬쩍 엿보이는 속옷 끈.

동성이며 혈육인 딸들조차 야하단 말이 절로 나올 복장이었다.

홍련은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천이 살에 얽히지 않았다며 얼굴을 붉혔다. 나이가 들어서 살이 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주로 가슴과 엉덩이가 커졌다.

자매들은 확신했다. 이 복장이라면 충남을 확실하게 뇌쇄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이대로는 나갈 수 없다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딸들은 고민 끝에 베이지색 니트 가디건을 입혀 노출을 상당히 덮어주었다.


“머리 스타일은 어떻게 할래. 평소대로 묶어?”
“평소 모습도 좋지만 특별한 날이잖아. 생머리 추천.”


옷장 깊숙이 잠자던 옷을 깨우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향수를 뿌리고, 귀걸이를 찬다.

홍련은 외모를 꾸미는데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먼 옛날 추억에 잠긴다.

애 아빠와 처음 연애하던 무렵에는 매일 같이 꽃단장했었지.


“반지 안 끼는 편이 좋겠어.”
“얘, 이 반지는 남편과의 추억이야.”
“알아. 하지만 내일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러 가는 날이잖아?”


띨의 당돌한 제안에 홍련은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 대답했다.

충남이 장화와 모텔에서 정사를 치루고 있을 무렵, 홍련은 데이트가 아니라 여동생의 남편, 제부될 사람과 식사할 뿐인 자리라고 자기암시를 걸며 잠들었다


홍련은 꿈속에서 오랜만에 남편을 만났다. 그는 사진 속 모습처럼 이십대 젊은 얼굴 그대로였다. 자신만 나이를 먹은 채 나란히 걸으면 어느새.

벽에 가로막힌듯 나아갈 수가 없다. 남편 홀로 계속 걸어가다가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멈춰있는 그녀의 뒤편에서 하하호호 젊은 남녀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그곳에는 충남과 장화가 연인처럼 팔짱끼고 걷는다.

두 사람은 정체된 홍련은 추월해서 계속 나아갔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젊은 남녀는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

두 사람은 어느새 홍련과 비슷한 나이대가 됐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홀로 남은 그녀는 노년의 부부가 될 때까지 함께인 두 사람을 축복해주기 위해 두 손뼉을 들었지만 꿈에서 깰 때까지 박수를 칠 수 없었다.

추억은 지나간 일이다. 죽은 사람과는 다시 쌓을 수 없는 법.

시간을 나란히 걷는 모습이 사무치게 부럽다. 부럽고 부러워서 마지막에는 장화 대신 자신이 저기에 있었으면 어떨까 상상이 들었다.


꿈에서 일어난 홍련은 자기 전에 빼놓은 결혼반지를 집고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


데이트가 아니야. 아니지만.


모순 넘치는 변명하면서 꼼꼼하게 치장하면 약속 시간이 되어 복도에 나갔다.


“선녀인 줄 알았어요.”


한 발 앞서 나온 충남은 홍련을 보자마자 칭찬했다.


“평상시 편한 옷도 잘 어울리지만 귀여운 옷도 잘 받으시네요. 그리고 생머리도 잘 어울려요.”


가슴이 간질거렸다. 뻔한 칭찬이지만 목소리에서 입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란 것이 전해져 싫지 않았다.

충남은 혹여 놓친 칭찬할 부분이 있을까 홍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살피다가 복부 위에 가지런히 모인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꼴깍.


“반지, 안 하셨, 네요?”


흥분한듯이 떨리는 속삭임에 홍련의 얼굴이 머리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미망인이 항상 끼던 반지를 빼두었다.

꼴깍. 꼴깍.

충남은 계속 침을 삼켰다. 며칠 굶주린 사람이 진미를 마주한듯이 군침이 끊이지를 않는다.

여체를 원하는 수컷에 암컷이 반응한다.

티타니아 이상으로 숙성된 여인의 살집은 암컷으로서 기능이 끝나기 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남성을 미치게하는 색기를 풍겼다.
 
끈적한 페로몬에 당장 자지를 발기시키고 풍만한 가슴을 짜부러트리듯 주무르면서 커다란 엉덩이골을 범하듯이 비비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충남은 볼살을 깨물어 흥분을 식혔다. 방금까지 장화와 섹스하지 않았다면은 덮쳤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상한 소리를 했죠."
"아녜요. 괜찮아요."


둘 사이에 처음 만난 사이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싫지 않은 어색함이다. 소개팅이나 맞선 자리에 나온 남녀가 투영되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식사하러 갈까요?"


충남이 오른손을 내밀면 홍련이 왼손을 포갰다. 반지의 빈자리를 젊은 청년의 힘있는 손가락이 채운다.

크다. 기억 속의 남편보다.

역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홍련은 지금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꿈의 연속 아닐까?

충남이 장화와 걷는 모습을 질투해서 이번에는 충남과 걷는 자신을 꿈꾸는 걸지도 몰라.

넋을 놓은 채 걷다가 발을 헛디뎌서 몸이 휘청 기운다.

눈을 찔끔 감았다 떴을 때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는 대신에 강한 힘에 당겨져 단단하지만 따뜻한 품에 안긴 채이다.


"괜찮아요?"
"네.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을 해서."
"죄송하단 말하지 말아요.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하는 거에요."


그의 품이 너무나 포근해서 남편의 온도가 기억나지 않았다.


"고마워요."


말과는 달리 이대로는 영원히 기억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 도망치듯 뿌리쳐 나왔다.

그러나 주말 역은 평일과 달리 친구를 혹은 연인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는 사람들로 붐볐고 콩나물시루처럼 미어드는 사람들에 당연히 지하철 좌석은커녕 손잡이를 잡을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인파에 밀려서 떨어질까 꼭 껴안은 채. 쿵쿵.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남편의 심장 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홍련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가게는 어제 장화와 데이트 겸 예행 연습 삼아서 식사한 가게였다.

차림표에서 가격을 확인한 홍련은 자신이 사겠다 하였지만.


"홍련 씨. 오늘 저는 옆집 학생으로 당신과 만나는 게 아니에요."


홍련의 왼손 위에 손을 포개며.


"당신의 환심을 사고 싶은 수컷으로 만나는 중입니다. 여기서는 폼을 잡을 수 있게 해주세요."


비로소 두 사람은 옆집 학생과 옆집 미망인이란 관계에서 벗어나 한 쌍의 남녀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식사는 아주 즐겁고 맛있었다. 쉐프의 솜씨가 훌륭했고 무엇보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한테 두근거렸다.


"충남 씨. 다음 번에는 제가 살게요."


홍련은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에 깜짝 놀랐다.

이래서는 완전히 커플이다.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식사가 끝나자 홍련은 자신이 애 넷 딸린 미망인이란 사실을 자각했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이제 돌아가요.",


집으로 돌아가고.

학생과 미망인으로 돌아간다.

데이트가 아니라 식사를 할뿐.

도망치듯 역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남편보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다.


"다음 번에 사신다는 거요. 지금 부탁드려요. 영화 한 편 어떠세요?"


그렇게 말하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옛날 사람이라서 요즘 영화는 몰라요."
"이거는 어떠세요. 요즘 인기 있는 멜로 영화에요."


외로운 부인이 젊은 청년을 유혹해서 은밀한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스크린의 남녀가 입을 맞출 때 충남과 홍련도 서로의 입술을 흘겨보다 눈이 마주쳐서 고개를 홱 돌리고 부끄러워한다.

부인이 음란한 속옷만 입고 청년을 침대로 끌어들이고 정사를 나누면 홍련은 요즘 영화는 적나라하다 생각하면서도 꼭 자신이 충남과 몸을 섞는듯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크린 속 남녀가 얽힐 때 두 사람의 손도 놓지 않겠다는듯 깍지로 얽혀 있었다.

이윽고 스탭 롤과 음악이 흐르고 어두웠던 영화관에 불이 켜졌다.

두 사람은 다른 관객들이 전부 나갈 때까지 좌석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모두 나가고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술을 포갰다.

십 수 년 간 남편 없이 외로이 지낸 부인의 쌓인 정욕을 한 번에 풀어낼듯 격렬한 키스였다.

두 사람은 빈 관을 청소하기 위해서 직원이 들어오는 소리에 떨어졌다.

몸은 떨어졌지만 서로를 갈구하는 마음은 한층 깊어졌다.

충남은 지금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관에서 나오자마자 홍련을 벽면에 멈춰 세우고.


"고백할 게 있어요."


고백.

고작 두 글자에 설레버린다.


"저는 최근 세 여자랑 잤습니다."


홍련은 그런 사실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를 가장 설레게하는 여자는 당신이에요."


그렇다면 앞서 말한 건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잖아.


"홍련 씨. 당신과 섹스하고 싶습니다."


말하는 게 엉망진창이야. 하지만 엉망진창인 고백에 몸이 달아오르는 이유는 뭘까?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최종적으로 임신시키고 싶어요."


남은 인생이 이토록 원해지는 일이 있을까?

홍련은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자궁이 허락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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