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저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네, 이걸 비밀이라고 한 것에서 알아채셨겠지만 저도 여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정정하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외모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삶의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스무 살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스무 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사람. 가족이라고는 그녀의 삶에 족쇄 같은 딸 하나밖에 없는 사람. 그러나 그녀를 으스러트리려는 세상의 무게를 꿋꿋하게 버티며 서른일곱이 되어버린 사람.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결코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녀의 삶의 모습에 감동하고 동경하고 경애하고 애정하고 결국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사랑하고 그녀의 거친 손을 사랑하고 그녀의 다정한 손길을 사랑하고 그녀의 낮은 목소리를 사랑하고 그녀의 곱슬거리는 단발머리를 사랑하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서 나는 맛을 사랑합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떠한 계기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고 어느 순간 제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순간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추웠던 겨울. 술에 취해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누워서 잠이 들어버린 그녀. 그녀의 붉은 입술과 입술의 감촉과 술 냄새. 그리고 제 몸에서 느껴지던 뜨거운 열기와 가슴이 흔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뛰던 심장.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사랑의 열기에 끙끙 앓았던 시간.


 제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그날 저는 더 이상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


 그녀는 저를 사랑합니다. 저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서로 다르겠지요.


 그녀를 사랑하기에 저는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언제나 웃는 얼굴만 보여주었던 그녀도 웃지 못하겠지요. 저의 고백이 그녀에겐 크나큰 고통이 되겠지요. 그러하기에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사랑을 가슴에만 품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만은 마음껏 고백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저에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지만 결코 남에게는 해서는 안 될 비밀.


 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역겹기 그지없는 사랑입니다. 이루어져서는 안 될 사랑.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저의 역겨운 사랑이 닿아서는 안 될 정도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저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저는 저의 지금까지의 삶이 그녀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을 그녀를 위해 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는 박복하고 험난한 삶은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나운 삶이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웃으며 세상의 물살을 온 몸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저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는데……저는 그만 그녀를 사랑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는 제 감정을 너무 미화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녀에게 짐승처럼 욕정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 안의 괴물이 눈을 뜬 저주받을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유달리 일이 힘들었던 겨울.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 그녀를 보고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 순간. 저는 잠든 그녀를 보고 욕망이 불길처럼 제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속옷을 입지 않아 옷 위로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난 가슴, 흐트러진 검은 세미 롱, 지금까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던 입술, 무방비하고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얼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이미 그녀를 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그녀가 깨어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그녀를 탐했습니다.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먹듯이, 목마른 짐승이 물을 마시듯이 저는 그녀를 탐했습니다.


 한참을 그녀를 탐하고, 간신히 만족감을 느낀 후에 뒤늦게 죄책감이 죄악감이 모멸감이 자책감이 자괴감이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 제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저 자신을 사람으로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인면수심. 짐승만도 못한 년. 뒈져도 싼 년. 그게 바로 접니다. 이 감정이 너무 심해 언제나 자살을 생각하지만 제가 떠나면 제가 사랑하는 그녀가 슬퍼할 것을 알기에 간신히 연명해가고 있습니다. 저는 살아있습니다만 단지 살아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결코 허락받지 못할 사랑. 그녀가 저를 사랑하게 된다면 저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클 것입니다. 그녀 역시도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앞으로 그녀가 걷게 될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알고 있기에.


 제가 사랑하는 이여. 제발 저를 사랑하지 마시길. 만약 제 사랑을 알게 된다면 저를 헐뜯고 욕하고 내치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부탁한다.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