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다, 정말.


내가 쥴리아나에게 빙의된 이후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참한 최후를 피하기 위해 분투하고, 주연 5인방의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야하고, 은근히 빡센 수업도 소화해야하고, 내가 빙의자라는 것을 들키면 어쩌나 마음을 졸여야하고, 추종자 3인방의 부담스러운 응원을 받아야하니 비참한 최후에 도달하기 전에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다.


‘이래서 쥴리아나가 악역영애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반 이상은 쥴리아나의 자업자득이잖아?


“이 악녀야아.”


나는 기운 없이 이 몸의 원주인을 욕했다.


“하아!”


이 몸의 원주인을 욕해도 개운해지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나는 암담한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오아시스같은 휴식처가 있었다.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배경이 되는 잇셀론 왕립학교는 작중 묘사에 따르자면 작은 도시 하나 정도 되는 방대한 크기를 자랑한다고 한다. 여기에 태클은 그만. 작가가 그렇게 설정했으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그 커다란 규모의 대부분은 숲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숲이라는 게 관리를 하기는 하지만 반쯤은 야생이란다. 동물들이 뛰노는 것은 물론이고, 괴물도 간간히 보이는 그런 숲.


그래도 작가가 생각은 있는지 결계가 있어서 위험한 괴물은 들어오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내가 왜 뜬금없이 이런 설명을 했냐면……


“아웅!”


내가 숲을 거닐고 있을 때 괴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칠흑처럼 검고 풍성한 털, 새파란 깊은 눈, 뾰족한 귀, 가지런한 이빨, 긴 주둥이, 짧은 다리, 통통한 몸.


“귀여워!”


거창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강아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새끼늑대.


새끼늑대는 폴짝폴짝 뛰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어 새끼늑대를 받을 준비를 했다.


새끼늑대는 나의 두 손으로 정확하게 뛰어들었다. 나는 새끼늑대를 집어 가슴에 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망!”


‘멍!’도 아니고 ‘망!’


울음소리도 귀여워라.


나는 한 팔로 새끼늑대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새끼늑대의 온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새끼늑대는 기분이 좋은지 내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아, 이 아이를 안고 있으니 나의 피폐해진 심신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이 아이를 발견한 것은 며칠 전이다. 사람들을 피해,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이 아이와 마주쳤다.


이 아이는 나와 마주쳐도 도망치거나 적대하는 대신에 종종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렸다.


이 아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유 중 하나가 주인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주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그 이유에 처절하리만큼 공감이 되었다.


내가 빙의한 몸은 악역영애 쥴리아나 레이첼란스다. 쥴리아나는 악역영애답게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 주인공 5인방의 미움을 받고, 그에 따라 엑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 다른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도 백안시 되어갔다.


나를 옹호해주는 사람은 기껏해야 쥴리아나의 추종자인 3인방뿐이지만, 그 3인방의 호의도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인간관계에 지쳐갈 때 이 아이를 만났다.


이 아이는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상관없이, 아무런 계산 속 없이 그냥 나를 반겼다.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로 인해 지쳐있던 나는 그만 이 아이를 끌어안고 울고 말았다.


아, 그 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웅?”


내 눈가가 축축해졌다. 새끼늑대가 핥은 것이다. 나는 새끼늑대의 얼굴에 내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안 울어. 안 울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울고 싶기는 하지만 더 이상 울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아이를 더 이상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 속에 담겨 있던 울분을 전부 토해내었기에 지금은 참을 수 있었다.


새끼늑대와의 힐링타임을 보내고 나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는 새끼늑대를 내 앞에 앉히고 말했다.


“오늘은 목욕을 할 겁니다.”


“아웅!”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지만 이 아이는 내가 말하면 언제나 답해줬다. 똑똑해라.


나는 들고 온 바구니에서 목욕용품들을 꺼냈다. 반려동물 전용 목욕용품을 구하지 못해서 내가 목욕을 할 때 쓰던 것들을 가져왔다.


“안 돼, 먹는 거 아니야.”


내가 꺼낸 목욕용품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새끼늑대를 슬쩍 떨어트렸다.


목욕용품을 전부 꺼내고 나는 마법을 썼다.


허공에 큼지막한 물덩어리가 생겨서 떠다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물덩어리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마법이라는 거 엄청 편리하네. 이제는 마법을 쓰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물덩어리에 손을 넣었다.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였다.


그리고 나는 새끼늑대를 들어 올려 다리부터 천천히 그 물덩어리 안에 넣었다.


몸에 물이 닿는 것을 질색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새끼늑대는 뜨끈한 물 안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은지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나는 물덩어리에 손을 넣어 새끼늑대의 털이 물을 잘 머금을 수 있도록 주물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욕을 한 것인지 물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그래서 물을 한 번 버리고 다시 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비누칠. 뽁짝뽁짝 거품을 잔뜩 냈다. 거품도 시커멓다. 그래서 한 번 헹구고 다시 비누칠을 했다.


그 다음에는 헹구기. 세탁기를 쓴다는 이미지로 물을 움직여 혹시나 남아있을 비눗기를 전부 제거했다.


그리고 말리기. 수건으로 먼저 물기를 빨아들이고, 따뜻한 바람을 일으켜서 이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확실하게 말렸다.


마지막으로 빗질하기. 촘촘한 빗으로 엉킨 털을 풀어주고 풍성함을 전부 살려줬다.


그러자…….


“우와아아아.”


흑요석처럼 검지만 빛이 나는 풍성한 털을 가직 새끼늑대가 나타났다.


“엄청 예쁘다.”


나는 새끼늑대를 들고 그 털에 얼굴을 비볐다. 엄청 부드러웠고, 향기로웠다.


“아아, 데려가고 싶다.” 


마음 같아선 이 아이를 기숙사의 내 방으로 데려가고 싶지만……기숙사 수칙을 찾아보니 애완동물 금지였다. 규칙을 어기는 배짱 같은 건 나에게 없었다.


원래의 쥴리아나라면 규칙 같은 것은 전부 무시하고 데려갔겠지만 말이다.


아니, 작중 행적을 보면 무리인가.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원래 전개에 따르자면, 작중에서 주인공인 아리시아는 숲에서 한 동물을 구하게 된다.


이를 아리시아가 발견해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그 동물은 아리시아를 따른다.


하지만 쥴리아나가 숲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아리시아와 그 동물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중에 아리시아가 없는 틈을 타서 동물을 해치려고 한다.


동물은 쥴리아나와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적대적으로 굴며 쥴리아나의 손에 상처를 낸다.


이에 분노한 쥴리아나는 마법을 사용해 그 동물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아리시아에게 가져간다.


쥴리아나는 이런 위험한 동물을 기르고 있던 아리시아를 처벌해야한다고 외치며, 그 벌로서 이 동물을 직접 죽이게 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 후작가 후계자라는 배경이 남아있었기에 쥴리아나의 억지 주장은 받아들여지고, 학교 측은 아리시아에게 그 동물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바로 그 때 네 명의 남주가 등장한다.


브레톨리우스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집행을 멈추어 시간을 끌고, 그 틈을 타서 안시엘이 학교 규칙의 허점을 찾는다.


그는 사역마가 남에게 상해를 입힐 시 그 경중에 따라 주인을 처벌한다는 규칙을 발견하여 선례를 들어 사역마로 삼은 동물을 주인이 직접 죽이게 하는 처벌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틈을 타서 클라우드가 사역마 계약의 준비를 마쳐 아리시아가 그 동물과 사역마 계약을 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동물을 치료한다.


마지막으로 티자일이 쥴라아나가 먼저 아리시아의 사역마를 헤치려고 했다고 진술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결국 아리시아에 대한 처벌은 무효화되고 반대로 쥴리아나가 아리시아의 사역마를 헤치려고 했다는 죄목으로 근신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거 쥴리아나가 억울한 에피소드 같은데. 남주들이 거짓말하고, 조작한 거잖아.


뭐, 그래도 쥴리아나가 그간 한 일이 있었으니 나름 죗값을 치루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응?”


원작에 대해서 설명을 하던 중에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나는 새끼늑대와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너, 내 사역마 할래?”


“우웅?”


새끼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역마는 반려동물과 달리 기숙사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


“아냐……못 들은 걸로 해줘.”


그러나 나는 그 방안을 포기했다.


내 앞가림이나 간신히 하는 판에 사역마는 무슨. 그냥 지금처럼 가끔씩 만나러 와서 먹을 것 주고 놀아주면서 힐링을 하는 것에 만족해야지.


한참 힐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새끼늑대를 내려놓았다.


“나는 이만 갈게. 다시 만날 때까지 몸조심해.”


“망!”


새끼늑대는 기운차게 대답을 하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조금만 아쉬워해주지. 나는 엄청 아쉬운데.


나는 새끼늑대의 매정함에 안타까워하며 학교 건물로 돌아갔다.


아. 말하다 말았는데, 방금 말한 원작 에피소드는 쥴리아나가 근신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다.


그 동물을 치료하면서 동물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는데.


그 동물은.


모든 마수의 왕.


신을 삼키는 늑대.


펜릴.


하지만 그 이명이 무색하게도 펜릴은 힘을 봉인당해 기껏해야 새끼 상태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음…….”


설마 방금까지 함께 있던 그 새끼늑대가 펜릴은 아니겠지?


……아니겠지. 원작에서는 펜릴이 쥴리아나에게는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다고 했잖아.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새끼늑대는 처음부터 나에게 붙임성 만빵이었다고!



* * *



-아리시아 side-


아리시아는 겉모습은 아직 소녀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태도는 어른스러웠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여러 힘든 일을 겪은 그녀는 어린 시절을 생략하고 곧장 어른이 되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가끔은 생략당한 어린 시절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어린아이처럼 굴 때가 있었다.


“하랑!”


숲 한가운데. 아리시아는 큰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풀숲을 헤치며 이름의 주인이 나타났다.


“망!”


하랑이라고 이름 붙은 새끼 늑대는 아리시아와 만나자 아리시아 발밑을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우우우우웅. 누나 많이 보고 시퍼써요?”


아리시아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는 모습으로, 새된 목소리를 내며 하랑을 끌어안았다.


“망! 망!”


하랑은 아리시아의 얼굴을 핥기 위해 열심히 혀를 날름거렸다.


“꺄악! 간지러워!”


아리시아는 하랑이 얼굴에 달려들자 하랑을 끌어안고 바닥을 굴렀다.


평소에 약한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것저것 쌓이는 것이 많았다.


“꺄하하하하하하!”


아리시아는 이보다 격렬하게 애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랑에게 애교를 부리고, 하랑의 애교를 받아주었다.


한참을 바닥을 굴러다니던 그녀는 하랑을 무릎 위에 앉히고 하랑이 먹을 음식들을 꺼냈다.


“이것 봐라. 누나가 우리 하랑 주려고 이것저것 많이 가져왔다.”


하랑은 아리시아가 준 음식에 코를 박고 열심히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아리시아는 자식을 먹이는 어머니의 눈으로 하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뜩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라? 목욕했니?”


하랑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 털이 윤기가 흐르고, 풍성해져있었다. 그리고 향긋한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단순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만으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목욕을 시켜야만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리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바람피우니?”


하랑은 아리시아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아리시아는 하랑의 반응이 귀여워 샐쭉 웃고는 하랑을 끌어안았다.


“뭐, 우리 하랑이 너무 귀여우니 누가 예뻐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이 아이를 귀여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 하랑이 제일 좋아하는 건 이 누나지?”


“망! 망!”


하랑은 이번에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후후후후후! 그래요? 그렇죠? 우우우웅!”


아리시아는 하랑을 귀여워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접고 열심히 하랑을 귀여워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질색을 할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빠져있는 네 명의 남주들은 이 모습도 귀엽다고 더욱 그녀에게 빠져들 것이다.



* * *



기숙사에 있는 공용목욕탕으로 향하던 아리시아는 무언가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


다른 때라면 향기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녀였지만 그 향기를 맡자 그녀는 뭔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리시아는 먼저 그 향기를 얼마 전에 맡은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어디서 맡았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


떠올랐다.


바로 오늘 낮에. 하랑을 귀여워할 때 맡았던 냄새다. 하랑의 몸에서 나던 향기다.


그런데 그 향기가 왜 여기서 나는 거지?


아리시아는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향기의 잔향을 거슬러, 향기가 짙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던 그녀는……


“어머나 아리시아?”


쥴리아나와 마주쳤다.


쥴리아나는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왔는지 얼굴이 상기되어있었고, 머리도 약간 축축했다.


뭇 남자가 보았다면 얼굴을 붉힐 모습이었다. 그녀의 성격은 어찌되었건 그녀는 겉모습만큼은 절색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리시아는 쥴리아나와 마주치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을 마주하면 곧장 시비를 걸던 년을 만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쥴리아나는 아리시아에게 아는 척을 하려고 했지만 아리시아의 반응이 냉랭하자 그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아닌 척 아리시아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아리시아는 쥴리아나가 오늘은 그냥 순순히 넘어가나보네 하고 안도했다.


바로 그 때, 열린 창문으로 한줄기 바람이 흘러들어와 쥴리아나의 고운 금발을 나풀거리게 했다. 금발 한 줌이 아리시아의 코끝을 간질였다.


아리시아는 진하디 진한 향기가 자신의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에취!”


그리고 코끝이 간지러워 재채기를 했다.


“어머나, 죄송해요, 아리시아.”


쥴리아나는 허겁지겁 머리를 정돈했다.


아리시아는 코끝을 비비며 쥴리아나를 노려보았다.


머리 정돈을 끝낸 쥴리아나는 아리시아의 시선을 피하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쥴리아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아리시아는 이 때 한 가지를 깨달았다.


쥴리아나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잔향이, 그리고 쥴리아나의 머리가 나풀거릴 때 맡았던 진한 향기가.


하랑의 몸에서 나던 그 향기와 똑같다는 것을 말이다.


아리시아는 놀란 눈으로 쥴리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바뀌자, 감정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내내 아리시아는 이 감정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