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시아 폴라리스에게 따귀를 얻어맞은 이후, 쥴리아나 레이첼란스는 주위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아리시아에게 살의를 품는다. 따귀는 무슨, 안면에 스트레이트를 얻어맞아도 할 말 없을 짓을 저지르고도 분기탱천하고, 살의를 품는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떻게 해야 아리시아가 화를 풀지?”


아리시아 폴라리스에게 따귀를 얻어맞은 이후, 나는 방에 틀어박힌 채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짓으로 인해 남에게 손찌검을 당하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 어떻게 상대의 화를 풀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소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소심인이다.


소시민 말고, 소심인.


소시민인 것도 맞기는 하지만.


나는 대체로 남에게 무해하고, 남이 나에게 험한 소리를 해도 예예거리기만 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화가 나도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빙의한 쥴리아나의 비참한 최후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내 본성이 남이 나에게 화를 내는 상황을 못 참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 목숨이 달려있다는 이유가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가장 우선 지금까지 쥴리아나의 괴롭힘을 참던 아리시아가 어째서 폭발을 했는지 찾았다.


그러니까 원작 지식을 뒤져보면…….


‘아리시아가 돌아가신 부모님께 받은 유일한 물건인 펜던트를, 쥴리아나가 사람을 시켜 몰래 훔친 후에 그것은 산산조각 낸 후에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 놓……’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악녀야아아아아아!”


쥴리아나가 자행한 짓을 떠올리고 나는 절규했다. 소심한 내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는 일은 거의 없으니 내가 얼마나 기겁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혹은 내가 빙의한 몸의 영향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짓을 당하고도 따귀 두 대에, 협박에 가까운 경고만으로 끝내는 아리시아가 얼마나 대인배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소설이 연재되던 당시에는 왜 고작 따귀 두 대만으로 끝내냐고 사람들이 성토했지만.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은 따귀 두 대만으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확인한 나는 다시 고민했다.


“어떻게 아리시아의 화를 풀지?”


나는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지를 물고 쪽쪽 빨고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원래의 나에게는 없는 버릇이었다.


그렇다면……이 버릇은 이 몸의 주인의 버릇일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 쥴리아나는 악녀이지만 어른스러운 외모에 어른스러운 취향의 소녀라고 묘사되어있었다. 쥴리아나가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빨았다는 묘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른스러운 악녀의 귀여운 유아적인 버릇을 발견한 내가 그 갭에 귀여움을 느꼈느냐? 뭐. 느끼기는 했다. 아주 조금.


“그런데 왜 성격은 전혀 안 귀엽냐고. 이 악녀야아아!”


지금은 무슨 일을 겪어도 사고가 절망 쪽으로 흘렀다.


고민하고, 절규하고, 고민하고, 규탄하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고민하고 절망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꼬르르르륵!


나의, 쥴리아나의 가느다란 배에서 우아하지 못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창밖으로 높은 시계탑이 12시를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식사시간이었다.


죽음을 회피할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지금은 먼 미래의 생존방법보다는 지금의 생존을 우선시하자.



* * *



조금 늦기는 했지만 내가 빙의한 소설에 대해서 약간 설명하도록 하겠다.


내가 빙의한 소설은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로맨스 판타지다. 키워드는 #로코 #능력여주 #걸크러시여주 #역하렘 #아카데미 #멀티엔딩 정도.


내용자체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아카데미물로서, 특이한 게 있다면 역하렘물에 멀티엔딩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작가가 옆 나라의 여성향 연애시뮬레이션을 따라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인기는……미묘? 출판될 정도의 인기는 있었지만 간신히 쪽박을 면할 정도의 인기밖에 얻지 못한 작품이다. 역하렘, 멀티엔딩이라는 요소가 없었다면 출판도 간당간당했을 것이다.


만약 아카데미물을 세 개 이상 보았다면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특색이 없는 작품이었으니.


설명은 여기서 끝. 이 이상은 사족이 될 테니.


식당에 가니 이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당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뷔페식으로 학생들이 직접 쟁반을 들고 자신의 식사 거리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선 자신이 직접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니…….


“쥴리아나 님!”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세 소녀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고 보니 쥴리아나에게는 추종자가 많았다. 예쁘고, 권세가의 유일한 후계자이니 그러고도 남겠지.


“저희가 이미 자리를 잡아 뒀어요.”


“쥴리아나 님께서 드실 식사를 가져오도록 할게요.”


“음료는 차갑게…… 식힌 장미차로…… 가져오겠어요.”


한 명이 나를 인도하고, 다른 두 명이 식사와 마실 것을 가져왔다.


내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나는 자리에 앉았고, 내 앞에는 식기와 음식과 음료가 차려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내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고, 고마워요.”


쨍그랑!


내 식사를 차려주고 이제 자신의 식사를 가지러 가려고 준비하던 영애가 식기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두 명도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면 똑같이 떨어트렸을 것처럼 잔뜩 놀라서 몸을 굳히고 있었다.


나도 놀라서 몸을 굳혔다.


자세히 보니 영애 하나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또, 또,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눈물을 글썽이던 영애가 말했다.


“여, 영광이에요, 쥴리아나 님.”


영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다른 두 영애도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 우는 영애를 달랬다.


……이 악역 영애는 평소에 주위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고작 감사의 인사 하나 한 것만으로 저렇게 감동을 할 정도라니.


“쥴리아나 님께서 저희들의 이름을 기억해주실 날도 오겠지요?”


……이 악역 영애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 아니에요!? 같이 다니는 사람 이름도 몰라? 괜히 악역영애가 아니네!?


내가 감동에 몸서리치는 악역영애들을 앞에 두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을 때.


“쥴리아나 레이첼란스.”


누군가가 쥴리아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그 쪽으로 돌아보니.


후광이 비치는 금발 벽안의 미남이 서 있었다. 어, 본 적이 있는 미남인데. 그러니까…….


추종자 중 한 명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브레톨리우스 저하!”


브레톨리우스 나셸라.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남주 중 한 명으로. 왕국의 왕태자.


왕태자였지만 어지간한 일이 있어도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는 유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외모도 붓으로 그린 듯한 상냥한 오빠 타입의 남자로서 왕태자보다는 집사나 성직자가 더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에서 장난삼아 여주와 집사와 아가씨 놀이를 했을 때 여주뿐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코피뿜뿜하게 만들었던 남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와라. 할 말이 있다.”


차가운 눈과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직감했다.


아리시아 때문에 이 남자가 찾아왔다는 것을.


나는 확신했다.


이 남자 아리시아에게 반했구나. 지금 상황 브레톨리우스 루트가 확정된 상황이구나. 이 남자가 적으로 돌아서는구나.


“예, 저하.”


나는 벌벌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레톨리우스는 내가 일어서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식당을 나섰다. 보폭이 작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야했다.



* * *



정원, 그것도 은밀한 곳으로 간 우리는 잠시 말없이 대치했다. 아니, 대치는 무슨. 


브레톨리우스는 나를 노려보고, 나는 그의 기백에 눌려서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쥴리아나 레이첼란스.”


소설의 묘사에 따르자면 브레톨리우스의 목소리는 봄의 산들바람처럼 따뜻하고, 사람의 긴장을 완화시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겨울의 눈보라처럼 차갑고 매서웠다.


“나는 후회하고 있다.”


“무, 무얼요?”


“네가 방약무인하게 날뛰는 것을 그냥 방치한 것을.”


“윽!”


“나는 사람의 선함을 믿는 사람이었다. 네가 날뛰어도 언젠가는 너의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악행을 저질러도 최대한 좋게 말하고, 좋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


“내 착각이었다.”


그는 칼로 자르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악인이다. 너는 나의 댐에 난 작은 구멍처럼 나의 신념을 무너트린 사람이다. 아니, 나는 네가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너는 반성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선행을 베풀 줄 모르는 존재다. 너는 양 떼에 섞인 한 마리의 승냥이다. 너는 사회의 기생충이다.”


브레톨리우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지금 상황을 알고 있었다.


소설에서 브레톨리우스 루트가 확정되었을 때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원작에서 쥴리아나는 브레톨리우스가 자신을 힐난하자 변명하고, 타인을 비방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지 모르겠다고 뻔뻔하게 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소심한 인간이니까. 타인의 비난을 들어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눌러 참는 것 밖에 못하는 그런 인간이니까.


“기억해둬라, 쥴리아나.”


아아. 성선설을 믿는 박애주의자가 자신의 신념을 꺾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나의 왕국에 너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 내가 왕이 된 후에, 나는 네가 이 나라에 발붙이고 살 수 없게 하겠다.”


원작에서 쥴리아나는 그 말을 듣고 상대방의 지위도 잊고 브레톨리우스를 힐난했다. 아리시아의 이름을 거론하며. 악녀에게 홀려 나라를 말아먹을 암군이라고.


그 말을 들은 브레톨리우스는 쥴리아나의 뺨을 때린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순간이라는 서술이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만드는 쥴리아나가 얼마나 대단한 악역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쥴리아나가 나였다.


나는 브레톨리우스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끝낸 브레톨리우스는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멀어지고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쥴리아나라면 여기서 성을 낼지언정 슬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독해져서 아리시아를 괴롭혔다. 쥴리아나에게 빙의했으면서 어째서 쥴리아나의 뻔뻔함과 강인함을 가지지 못한 것일까.


나는 울면서 생각했다.


망했다.


최악의 적을 만들고 말았다.


브레톨리우스가 쥴리아나를 비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쥴리아나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고 만다. 당연했다. 왕국의 제일 권력자가 될 사람을 적으로 돌린 사람과의 연줄은 독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이 보다 최악일 수가 있을까 하면서 절망하고 있을 때.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소리를 듣자마자 다급히 눈가를 닦았다. 소심한 사람인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간신히 눈물을 닦고 그칠 즘.


“레이첼란스 영애.”


발소리의 주인이 나를 불렀다.


나는 흠흠하고 목을 가다듬은 후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훤칠한, 흑청색의 머리에 갈색눈을 가진 미남이 있었다. 이 남자도 아는 얼굴이었다.


“안시엘 경.”


안시엘 유스텔라.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또 다른 남주 중 한명. 공작가의 후원을 받는 견습 기사로서 신분은 견습기사지만 아직 나이가 안 되서 견습기사일 뿐 실력과 성품은 정식기사가 되고도 한참 남을 정도라는 평을 받는 남자.


소설의 묘사에 따르자면 가장 고결한 기사라는 평을 받게 되는 남자로서, 견습기사인 지금도 그의 인품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울고 있는 영애를 앞에 두고도 경멸의 눈초리로 그 영애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쁘신 것 같으니 간단하게 용무만 말하고 가겠습니다.”


그는 정말로 간단하게 용무만 말했다.


“썅년아.”


그는 그 한 마디만 던지고 나를 두고 떠났다.


고결한 기사인 그가 숙녀에게 할 수 있는, 아니 그가 숙녀에게 결코 할 수 없는 비난을 나에게 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나를 숙녀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이겠지.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이로 인해 한 가지 사실을 또 알 수 있었다.


지금 안시엘 루트도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도 쥴리아나의 적이라는 것.


내가 쥴리아나에게 빙의한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세 명의 적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 흐름을 봐서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정말로 안타깝지만 나의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점심을 굶고 방으로 돌아와서 슬퍼하면서 방도를 찾고 있을 때, 쥴리아나가 끼고 있던 목걸이가 빠직 소리를 내면서 깨졌다.


소설의 묘사에 따르자면 후작이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보호주문을 부여한 마도구라고 했다. 원작에서도 이 마도구가 작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또 다른 남주, 희대의 천재 마법사 클라우드 벵기엥이 쥴리아나에게 저주를 걸었을 때에 마도구가 그 저주를 막고 부서진다.


여기서 또 나는 알아챘다.


아아. 클라우드의 루트도 확정되었구나.


그렇다면…….



* * *



밤이 되었다.


자정이 넘어 모두가 잠이 들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밤늦은 시간에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나는 인기척이 느껴져서 천천히 눈을 떴다.


회백색의 머리카락에 동물의 귀와 꼬리가 달린 남자가 단검을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마지막 남주. 수인 왕국 유력 가문의 후계자인


티자일 융. 그의 가문은 대대로 비밀스러운 암살로 유지해온 가문이었다.


그가 이번에 쥴리아나를 찾아온 것은 암살이 아니라 협박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원작에서는 티자일은 자고 있는 쥴리아나의 입을 막고 그녀의 머리 옆에 단검을 박고 ‘어둠을 조심하라.’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티자일 루트가 확정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지금 티자일이 나타난 것을 보면 티자일 루트도 확정된 것이리라.


티자일은 내가 일어나 있는 것을 보고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둠을 조심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티자일은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할 말을 빼앗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자신의 본론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방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는지 천천히 어둠속에 녹아 사라졌다.


자는 중에 덮쳐지는 심장에 안 좋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깨어있었던 나는 심장에 안 좋은 일이 지나갔지만 곧장 침대에 누워 잠이 들지 못했다.


심란한 심사가 내가 잠이 드는 것을 막았다.


잠들지 못한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확인했다.


나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악역 영애 쥴리아나 레이첼란스로 빙의했다.


주인공 아리시아 폴라리스는 쥴리아나에게 본격적으로 반격을 하려고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소설의 남주들은 전부 아리시아에게 반한, 하렘 루트였다.


남주들은 전부 쥴리아나에게 적대적이었다.


한 마디로 내 상황을 요약하자면.


망했어요.


악역영애 쥴리아나 레이첼란스에게 빙의한 소심인인 나는 살고 싶지만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입니다.


“살려주세요.”


절로 이런 소리가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