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고, 고민하고, 거듭 고민을 해도 내가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리시아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모든 것에서 도망쳐버릴까 하는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어느 정도 대범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책임 회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비록 그 책임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이더라도 말이다.


……억울해, 진짜로!


……억울하면 어쩔 거야. 이미 일은 전부 터지고, 진행되고 있는 판에.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곧장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어떻게?’라는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진짜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


작중 쥴리아나가 아리시아에게 한 짓을 돌이켜보면……


시비 걸기, 모욕하기, 다 들릴 정도로 뒷담화하기, 물 뿌리기, 헛소문 퍼트리기, 아슬아슬하게 폭행이 아닌 정도로 신체접촉하기, 물건 숨기기, 신분으로 찍어 누르기, 감금하기, 시험 못 보게 하기, 사고로 위장해서 다치게 하기, 더러운 것 먹이기, 그리고 부모님의 유품을 훔쳐서 박살내서 돌려놓기……


“이 악녀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절규했다.


지금까지 참은 아리시아가 참으로 대단하다. 아니, 신분차가 있다 보니 참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끝났고, 아리시아에게는 그녀를 비호하는 남주들이 있었다.


반면에 쥴리아나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


자신의 입장이 불리해지고 난 이후의 사과가 제대로 된 사과로 보일까? 지금까지 저지른 짓이 사과 한 마디로 용서될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진짜 나쁜 짓도 적당히 해야지…….”


나는 울상이 되어서 사과할 방법을 찾았다.


지금까지 저지른 짓들이 있으니 한 번에 용서를 받는 것은 포기해야할 것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사과를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과수 아래에 앉아서 낙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만 나에게는 원작의 지식이 있었다. 


원작의 지식, 즉 이 세계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용하여 아리시아에게 사과할 수 있을 것이다.


치사하다고? 이씨!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짓 때문에 사과하고, 책임지는 일은 안 치사하고? 내가 원작 지식을 통해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 마이너스를 제로로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잖아.


이런 불합리한 일을 겪고 있는 내 입장도 고려해야지!


씨익! 씨익!


나는 내 가슴을 쿡쿡 찌르는 양심을 성토하는 것으로 찍어 눌렀다. 양심도 납득했는지 죄책감은 많이 약해져있었다.


양심의 문제를 해결한 나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종이를 앞에 두고, 펜을 들어 원작에서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아침 첫 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 나는 복도에서 아리시아를 만났다. 아니, 만났다는 것은 어폐가 있었다. 내가 아리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서 걸어오던 아리시아는 나를 발견하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무서워서, 남에게 미움 받는 것이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나는 간신히 참아내고 아리시아에게 다가갔다.


“아리시아.”


내가 아리시아를 부르자 아리시아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싫다, 이 상황.


“무슨 용무죠, 쥴리아나?”


나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


“일 없어요. 꺼져요. 꼴 보기 싫으니까.”


아리시아는 그렇게 쏘아 붙이고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과일처럼 달콤한 향기가 내 코에 닿았다. 하지만 나는 그 향기에 취해 있을 수 없었다.


아리시아는 사과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이겠지.


진짜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내가 원작지식을 가지고 있는 빙의자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는 아리시아의 매몰찬 태도에 받은 상처를 추스르며 기다렸다. 잠시 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도 수업에 들어가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고 조금 더 기다린 후에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 * *



-아리시아 side-



그 날의 수업이 전부 끝이 났다.


“아리시아. 괜찮나?”


교과서와 필기구를 챙기고 있을 때, 금발벽안의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이 아리시아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불렀다.


“저하.”


“브리즈라고 불러달라니까.”


“단 둘만 있을 때에만 그렇게 불러드리겠다고 했잖아요.”


브레톨리우스 나셸라. 이 왕국의 왕태자였다. 이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은 평민 소녀와의 친분을 과시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원래라면 입장이 반대가 되어야 하겠지만 이 평민 소녀는 권력에 아부를 하려는 기질이 전혀 없었다. 그 때문에 브레톨리우스가 그녀에게 끌리는 것일 것이다.


“내가 들어주지.”


“아뇨, 짐도 별로 없는걸요.”


평민 소녀는 감히 왕태자의 친절을 거부했다. 하지만 왕태자는 그것에 성을 내는 대신 주인에게 거부당한 강아지처럼 의기소침해졌다.


아리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브레톨리우스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고마워요, 브리즈.”


브레톨리우스에게 개의 귀와 꼬리가 있었다면 그의 귀가 쫑긋 서고 꼬리가 파닥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애칭을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 왕태자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괜찮나, 아리시아?”


“뭐가요?”


“쥴리아나가 저지른 짓……”


브레톨리우스는 말끝을 흐렸다. 아리시아가 쥴리아나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아리시아에게 쥴리아나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괜찮습니다, 저하.”


아리시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혀 괜찮지 않다는 의미다.


브레톨리우스는 더 이상 자세히 캐묻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 질문하든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방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잡지 못했다.



* * *



아리시아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괜찮냐고? 당연히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부리며 푸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녀의 분노의 원인은 그녀를 괴롭히던 한 영애. 지금까지 괴롭힘도 괴롭힘이지만 이번에는 선을 제대로 넘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아리시아는 쾅소리가 나게 책과 필기구를 내려 놓고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후우!”


그리고 분노가 섞인 뜨거운 한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후우!”


한 번 더.


그 일을 겪고 하루가 지났지만 그녀의 분노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쥴리아나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아리시아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부모님께 받은 유일한 물건인 펜던트. 그것을 쥴리아나가 몰래 훔쳐서 박살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부모님의 펜던트가 부서진 것을 발견한 아리시아는 이성을 잃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기에 아리시아는 쥴리아나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따귀를 쳐올리고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아리시아는 자신이 한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쾌한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 복수는 허무하다는 식의 사고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실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리시아 그녀 자신의 신체 외에 유일한 물건, 부모님과의 연을 의미하는 유일한 물건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아리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분노조차도 발붙일 틈이 없는 압도적인 슬픔에 사로잡혀 그녀는 소리 높여 울었다.



* * *



저녁 식사까지 빼먹고 울던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아니, 그쳤다기 보다는 더 이상 울 수가 없었다.


너무 눈물을 많이 흘려서 몸이 바짝바짝 말랐고, 소리 높여 곡을 하느라 목도 다 쉬어버렸다. 우는 것도 기력을 많이 소비하는 짓이었기에 그녀는 기진맥진했다.


아리시아는 침대 옆 협탁에 있는 물컵을 들어 부족한 수분을 보충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잔뜩 소모되자 그 빈 공간을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쥴리아나.”


아리시아는 이름이 그 주인 그 자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이름을 씹어 내뱉었다. 그녀는 이 분노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활활 불타오르는 분노를 더 크게 불태우기 위해 자신의 방 가장 은밀한 곳을 찾았다.


옷장 가장 아래 칸, 가장 안쪽. 그곳에 작은 보석상자가 있었다.


이 보석상자는 그녀를 좋아하는 왕태자가 준 선물이었다. 이 보석 상자를 받은 그녀는 그것을 소중히 하고, 그 안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보관했다.


부모님의 펜던트를 말이다.


보석상자를 꺼낸 아리시아는 다시 슬픔이 자신을 지배하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분노를 더욱 불태우며 슬픔을 증발시켰다.


그녀는 과감하게 보석상자를 열었다.


“……어?”


보석 상자에는 그녀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없었다.



* * *



-쥴리아나 side-



쾅! 쾅! 쾅!


언제 오나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문 열어요, 쥴리아나!”


그리고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다닥 바닥을 기어 문까지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아리시아가 얼굴을 잔뜩 일그린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두 눈이 부었고, 화장도 지워져있었다. 울었나봐.


하지만 지금 그녀의 태도는 운 사람 같지가 않았다.


“뭘 하고 싶은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고 있는 나는 준비한 대답을 했다.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어서……”


“사과 할 거면 처음부터 저지르지 말라고요!”


아리시아는 쉰 목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내 가슴을 밀쳤다. 나는 순순히 밀려났다.


“당신은! 당신은! 당신은!”


아리시아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너무 감정적으로 변해 이성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아! 진짜!”


아리시아가 두 손으로 나를 떠밀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나는 뒤로 넘어졌다.


나는 아파할 겨를이 없었다. 아리시아가 넘어진 내 위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내 위에 올라탄 아리시아는 내 멱살을 잡고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했다.


“엉망진창이잖아요!”


아리시아는 울고 있었다. 화를 내면서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내 얼굴 위에 떨어졌다.


“당신이 뭘 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왜! 왜! 왜!”


그녀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동물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태도로 나에게 외쳤다. 그녀의 외침에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감정은 가득했다.


그녀는 나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쥴리아나에게 당한 억울함을 전부 쏟아내려는 것인가.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인가.


그녀의 따뜻한 눈물이 내 얼굴을 적신다. 그녀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녀의 분노 섞인 울음소리가 내 전신을 때린다. 그녀의 살냄새와 땀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부딪치는 그녀가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고 아리시아라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고 허억허억하고 숨을 골랐다. 폭풍이 끝난 듯하다.


내 얼굴과 내 몸은 그녀의 눈물과 땀과 내가 흘린 땀으로 인해 젖어있었다.


그리고 좀 더 세상을 확장하자 웅성웅성 소란이 들렸다. 방밖이다.


“아리시아.”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몸 위에 실려 있던 무게가 가벼워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네 명의 미남이 반원을 그린 채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남주들이다.


브레톨리우스가 아리시아를 부축하고 있었다.


“괜찮나, 아리시아?”


아리시아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기력이 전부 쇠했는지 브레톨리우스가 부축하는 데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른 세 명의 남주들도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브레톨리우스는 아리시아를 부축했지만 아리시아는 제대로 서지 못했다. 브레톨리우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리시아에게 말했다.


“잠시 실례하겠다.”


그렇게 말한 그는 아리시아를 들어 안았다.


방 밖에서 작게 꺄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잘생긴 남자에게 들어안기는 것은 여자의 로망이니까.


“방까지만 이렇게 하겠다. 미안하다.”


브레톨리우스는 아리시아를 안은 채로 방을 나섰다.


남은 세 명의 남주는 걱정과 질투심이 섞인 눈으로 그 뒷모습을 보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살의와 경멸과 분노가 섞인 눈빛이었다. 이 온도차에 소름이 다 끼쳤다.


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쥴리아나의 굵은 신경줄은 내가 기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레이첼란스……영애. 아리시아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안시엘 경이 대표로 물었다. 기사도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그 답지 않게 그 말투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겁을 먹은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짐승의 귀와 꼬리가 달린 남자. 티자일 융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태도는 거칠기 그지 없었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침대에 앉히고 물었다.


“무슨 짓을 했나?”


눈앞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기절하지 못했다. 나는 벌벌 떨면서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제로 말을 하게 만들기 전에 대답해라.”


푸른 머리에 펑퍼짐한 망토를 걸친 미남. 희대의 천재 마법사 클라우드 벵기엥이 나에게 지팡이를 들이댔다.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별거 아니다.


아리시아가 수업에 들어간 후. 그녀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쥴리아나가 부서트린 펜던트를 훔친 후 그것을 수리한 후에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을 뿐이다. 내가 한 일임을 알 수 있게 ‘죄송해요.’라고 쓴 쪽지와 함께 말이다.


사과를 하려면 우선 자신이 저지른 짓을 수습해야겠지.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니지만…….


사실 내가 부서진 펜던트를 수리한 것은 쥴리아나가 저지른 짓을 수습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것이 원작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서진 펜던트 때문에 의기소침해 하는 아리시아는 어느 날 그 펜던트가 수리된 것을 발견한다. 펜던트 옆에는 ‘미안하다. 네가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 너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라는 쪽지가 있었다.


그 쪽지의 종이와 필체로 멋대로 펜던트를 수리한 것이 누군지 알아챈 아리시아는 당장에 그 장본인을 찾아간다.


그녀는 장본인을 찾아가서 지금까지의 서러움을 모두 토해내며 그에게 안긴다.


그 장본인은 브레톨리우스 나셸라. 남주 중 한 명. 그리고 이 사건을 겪은 이후 아리시아와 브레톨리우스는 한 층 가까워진다.


내가 이번 일을 하면서 쥴리아나가 한 일을 수습한 것이기에 아리시아와 갑자기 확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아리시아가 나에 대한 분노를 조금 누그러트리지는 않을까하고 기대했는데…….


“닥치고 있지만 말고 대답해!”


아리시아는 미친 듯이 나에게 감정을 쏟아 붓고, 남주 세 명이 나를 심문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힝! 나는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왜 악녀한테 빙의해서 악녀가 저지른 짓을 수습해야하냐고!


억울함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세 남주들이 주는 압박이 내 숨통을 콱 조였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숨이 막혔다. 나는 입을 벌리고 숨을 쉬려고 했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호흡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산소가 부족한 뇌가 서서히 뇌를 꺼트렸다.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그러다가 모니터가 꺼지듯이 순식간에 암전했다.


나는 안도하며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