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면에 'UN' 이란 검정색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위압적인 덩치의 K2 전차 위로, 전차병 헬멧을 쓴 사내 하나가 전차 내부에서 들려오는 볼멘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안녕~ 맛난거 주는 거북이 헬멧 아저씨가 왔어요~"


K-2 전차 주위로 보라색 뱀 하반신을 가진 라미아 소녀와 검은 거미의 하반신을 가진 아라크네 소녀, 초록색 날개의 하피 아이들까지 온갖 모양새의 아이들이 와~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전차 위로 몸만 내밀고 있던 사내는, 전차 안으로 잠깐동안 사라진 뒤 'ABC 초콜렛 파티 패키지, 3kg' 이라 써있는 큼지막한 봉투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러고는, 전차를 빠져나와 차체 위에 착지한 뒤 몰려든 아이들에게 투명한 비닐로 포장된 조그마한 초콜릿들을 나누어 주었다.


몇몇 아이들은 비닐 포장이 신기한듯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하고, 핥아보기도 하였다.


사내에게 이미 여러번 달콤한 초콜렛을 얻어먹은 아이들은 익숙한 듯 양쪽의 비닐 꼭지를 가볍게 잡아당겨 초콜렛을 꺼내 입안에 털어넣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서 중사님, 그런거 얘네들 먹여도 되는건 맞슴까? 이거 뭐... 쟤네들 한테 독이거나 하면 어캄까?"


어느새 전차 위로 몸을 내민 앳된 얼굴의 병사가 사내에게 볼멘소리로 물었다.


"아~ 우리 김 상병은 나를 뭘로 보는거야! 당연히! 다 조사를 하고 안전하다~ 라는 말 듣고 주는거야. 내가 이거 저기 연구 섹터에 있는 우리 과학자 분들한테 직접 소주 싸들고 가서 물어본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사주 경계나 하세요~"


초콜렛을 나누어 주던 서 중사의 당당한 답변에 김 상병은 K1 카빈 소총을 뒤로 메고 투덜거렸다.


"나 참, 애들 뛰어다니는 마을에서 초콜릿 나눠주고 있는데 뭔 사주 경계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한참 동안 모인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준 뒤, 서 중사가 다시 전차 위로 올라왔다.


"야, 김 상병, 너도 사주 경계 하기 싫으면 애들한테 초콜릿이나 나눠줘. 사주 경계 내가 하면 되잖아? 이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서 중사의 말에 김 상병이 저 멀리 모여 뛰어노는 아인종 아이들을 힐끔 보았다.


그에게 아이들이란, 만날 별것도 아닌걸로 찡찡 거리기만 하고 사람 귀찮게 하는데만 도가 튼 악동들이었다. 


인간 아이도 이렇게 말썽인데, 심심하면 휘감는 뱀 꼬리랑 별의 별곳을 다 기어다닐 수 있는 거미 다리, 자기 맘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까지 있는 아이들이라고?


으,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에휴, 아임다. 전 별로 애들을 안 좋아해서..."


"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좋은 인상은 심어주고 가야지. 뭐 우리야 라미아니, 하피니, 데몬이니 아인종들 티비에서 몇번 봤고 지구로 돌아가서도 유튜브 같은 걸로 많이 보겠지만 이쪽 사람들한텐 우리가 유일한 '저쪽 세계' 사람들 이라구."


"오, 생각보다 계산적 이심다?"


김 상병의 한 마디에 서 중사는 장난스레 인상을 썼다.


"씁! 인마, 나는 애들 웃는 모습 보기가 좋아서 그런 거고~ 방금 건 너처럼 그냥 무뚝뚝한 냉혈한 한테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준거잖아." 


그렇게 말하고는, 김 상병의 손에 ABC 초콜릿 한 무더기를 쥐어주었다.


"에? 저 애들한테 안 준다 하지 않았슴까."


"그럼 니가 먹든가, 나 잠깐 중위님 오기전까지 눈 붙인다. 오면 깨워라~"


서 중사는 전차 안으로 들어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목베게를 하고 조종수 석에 몸을 기댔다.


김 상병은 포탑 위에 턱을 괴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저 멀리에는 풍차가 돌아가고 빨간색, 갈색, 파란색 지붕의 벽돌집 들이 밥 짓는 (이 사람들에겐 '빵 만드는' 일까?) 연기를 굴뚝에서 내뿜고 있었다. 


마치 미술책에서 봤던 중세 유럽 시골의 풍경 같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풍경의 사람들이 빨래를 너는 라미아, 등에 지게를 멘채로 과일을 잔뜩 실어가는 켄타우로스, 벽에 매달려 창문을 닦는 아라크네 라는 것일까.


저 '사람'들이 사이렌 소리, 울려퍼지는 군인들, 경찰들의 총성과 긴박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영상을 통해 처음 보았던 아인종들과 같은 종족 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땐 정말 뭐, 지옥에서 악마들이 튀어나온 줄 알았지만... 이렇게 보니, 아인종들도 그냥 매일 매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하긴, 원래 사람이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처음 접하면 공포를 느끼는건 본능이니까. 아인종들도 처음 철로 된 새가 비명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고, 철로 된 수레가 불을 쏘는걸 봤을땐 혼비백산 했겠지.


그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던 중, 시야 한 구석에서 무언가가 '사브작'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고개를 홱 돌리자, 나무 뒤에 숨어있던 자그마한 무언가가 움찔 했다.


자세히 보니, 검정색 무늬를 가진 하얀색 솜털의 나방 소녀였다. 


나방 소녀는 그의 시선이 두려운 듯 나무 뒤로 숨어버리고 더듬이 한쪽만 빼꼼 내놓은 채로 조심스레 그를 보고있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 상병은, 한쪽 손을 들어올려 흔들었다.


"안녕."


그 말에, 나무 뒤에 숨어있던 한쪽 눈이 빼꼼, 하고 나왔다.


"초콜릿 먹을래?"


그가 전차 승무원복 주머니에서 ABC 초콜릿 서너개를 꺼냈다. 


김 상병의 펼쳐진 손 위로 반짝 반짝 빛나는 갈색 물체를 보자 나방 소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쭈뼛 쭈뼛 나무 뒤에서 나와 그에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다.


김 상병이 초콜렛을 주고자 전차에서 땅으로 뛰어 내려오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 나방 소녀였지만 그의 손에 있는 갈색 물체에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듯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다.


이제 충분히 가까워진 나방 소녀의 손에, 김 상병이 초콜렛 하나를 쥐어주었다.


나방 소녀는 기쁘게 비닐로 포장된 초콜렛을 자그마한 손에 쥐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엑...."


나방 소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퍼졌다. 필시, 무색 무취의 비닐 맛과 쓸모없는 식감밖에 느껴지지 않을 터였다.


"안돼~ 지지! 퉤!" 


혹여나 비닐을 잘못 삼켜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김 상병이 뱉는 시늉을 하자, 나방 소녀는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포장된 초콜렛을 뱉어내었다.


"자, 잘 봐. 여기 양쪽을 잡고, 당기면..."


숙련된 조교 김 상병의 시범 하에 비닐 포장이 깔끔하게 벗겨지며 알파벳 'D'가 새겨져있는 초콜렛이 마침내 그 향기로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시범에 아! 하며 작은 탄성을 낸 나방 소녀도 그가 한 것처럼 초콜렛 포장의 양 끝을 잡아 당겨, 다소 어설프지만 초콜렛을 꺼내는데 성공했다.


쏙, 하고 그녀의 입에 작은 갈색의 성취물이 들어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얼굴에 황홀한 표정과 미소가 번져갔다.


김 상병은 자기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을 지었다.


"자, 여기 몇 개 더 가져가렴." 


주머니에서 남은 ABC 초콜렛 몇개를 전부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자, 그녀는 마치 그가 성인군자라도 되는 듯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먹고 자기 전에 이 꼭 닦고. 음... 엄마 말씀 잘 들어라~"


뭐라 덧붙일 말이 없어 아무 말이나 한 김 상병은 다시 전차 위로 올라갔다. 어차피 뭐, 한국어를 아는 것도 아니니 별 상관은 없었다.


한 손에 ABC 초콜렛을 가득 쥔 나방 소녀가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어디서 배웠는지, 경례 시늉을 했다.


비록 손도, 손날 방향도 각도도 틀린 경례였지만 김 상병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김 상병이 답 경례를 하자, 나방 소녀는 마을 쪽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김 상병은 그녀가 초콜렛을 품에 안고 마을로 가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야, 봐봐라. 너도 잘 하잖아~ 애들이 싫네 어쩌네 해도 잘 하는구만!"


언제 깼는지, 서 중사가 킥킥대며 그를 보며 말했다.


"에이, 아임다. 그냥 뭐..."


"그냥 뭐?"


"착한 애들도 있네~라 생각한거 뿐임다."


김 상병이 무뚝뚝하게 한마디 하자 서 중사가 그의 어깨를 탁 치며 웃었다.


"새애끼 이거 완전 그... 뭐냐. 츤데레구만? 하하하하!"


전차 위에서 왁자하게 웃는 두 군인과 마을 뒤로, 주황색 노을이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