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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갑이 오체분시 당해야 우리 집으로 술 업어올 수 있다는 거 제외하고 따졌을 때 '술 문화' 전반에 걸친 이미지 손상이 제일 억울한 것 같음.


챈에서야 주워먹고 주워들은 이야기들 하나둘 던지면서 이 얘기 저 얘기 꺼낸다지만 난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술 얘기를 주요 화제로 거론하기엔 애새끼 소리 듣기 딱 좋음. 술 먹어 봤자 얼마나 먹어 봤겠나, 뭐 얼마나 잘 드시길래?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상대가 봐도 진짜로 좀 먹는다 싶어도 좋은 시선 받기는 글렀지. 결론은 '그런 술' 잘 먹는 게 뭐 자랑이라고- 처럼 넘어가 버리니까. 뭐 대부분은 꼰대들 문제로 귀결되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지금 술 문화 이미지 자체가 어처구니 없다는 게, '술'의 기준은 항상 희석식 소주를 시작으로 잡고 많이 마셔도 제정신인 게 자랑이면서 사회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는 점임. 애초부터 적은 양의 알코올로 최대한 간단히 취하기 위한 형태가 자리잡았으면서!


본인들은 뭐 자기방어는 나름 개쩔게 하고 계시지.

희석식 소주가 맛이 없다 그러면 철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고,

주세 때문에 가격 벌크업 만땅인 고도수 증류주들 좋아한다 그러면 돈이 남아 도는구나, 허세 부린다 그러고,

먹을 생각도 없으니까 주량 적다 그러면 네가 나약해서 그렇다 그러고.

아주 17도 언저리에 최대한 염가로 뽑은 초록병 소주가 지들 간 스파링 상대인지 애인인지도 구분 못하는 것 같아.


나도 씹 술 마시면서 간 토닥이고 있는 마당에.



이 쯤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난 초록병 소주를 맛 없어서 싫어할 뿐이지 그거 마시는 사람까지 혐오하는 건 아님.

거 내 입맛에 안 맞는 위스키도 널린 마당에 내 입맛에 안 맞는 술 하나 더 있는 게 그렇게 특이할 일은 아니잖아? 아무튼 그거 좋다고 잘 마시는 분들도 계신데 내가 그거 가지고 뭐라 할 입장은 아니지. 내가 미친 놈도 아니고.


다만 확실한 건 그 초록병 소주 마시는 인간들 중에서는 분명히 나 같은 사람한테 꼰대질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임.

내가 성인군자 결심했어도 그 인간들까지 사랑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성인군자 관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주저리 주저리 또 말이 길어지는데, 이렇게 잘 조져진 술 문화에서 억울하다는 건 그 특유의 다크다크한 부정적 이미지가 담배랑 묶이기 딱 좋을 뿐만 아니라 파생되는 피해까지 술 문화 전체에서 감당해야 하는 점임.


난 흡연을 안함. 애초부터 호흡기 쪽 내구도가 별로였던 것도 있겠지만 담배가 썩 끌리지 않았어서 안 했음.

난 이해할 수 없지만 흡연자들은 스스로 돈을 들여서 흡연을 하고 만족감을 얻어. 그리고 간접흡연으로 옆에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피해가 발생하지.


애주가들이야 뭔 개소리냐고 하겠지만 대충 굴러가는 틀만 보면 제3자 눈에 술이나 담배나 유해 물질인 건 큰 차이가 없으니까 담뱃값도 올리는 마당에 술 비싼 거야 무슨 대수냐고 할 거야. 세금 자체도 그 명목으로 차곡차곡 쌓여서 때려멕이는 거고.



거기에 술 취한 사람들이 사고 치고 다니는 거?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길거리에 널린 반 시체들이 양주 처먹고 누운 걸까, 소주 붓고 누운 걸까? 근데 또 이게 백주대낮부터 술 퍼마시고 널브러진 사람 형태의 견종이 거리에서 발에 채이면 술을 욕하지 "아 시발 또 희석식 소주 염가로 들이붓고 누운 폭음자가 있네"라고 하겠냐? 나 같아도 그냥 술 문제라고 퉁치겠다.


그러면 또 주세법이 어쩌고 하면서 술값 내려가는 것도 문제가 되니까 손을 못 대는 거임. 정작 희석식 소주 가격은 그대로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어느 술은 가격이 떨어진다더라 그러면 음주운전 단속이나 빡세게 하지 술값을 왜 내리냐고 한 소리 듣는 거지. 어처구니 없지? 나도 그래 시발.



그럼 뭐 대충 정리해 보자.

현재 대한민국 술 문화의 중심은 여전히 희석식 소주임. 이거 하나로 소비량이 세계 1위를 찍었던가 그랬을 정도로 쥰내 잘 팔렸지. 아마 용량 기준이긴 했을 거임. 가격 자체는 존ㄴㄴ나 싸니까. 뭐 요즘에야 또 계속 오르는 중이라곤 하지만.


회식 문화와 결합한 희석식 소주는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반드시 제공이 되고, 한국인들 특유의 묘한 경쟁심을 부추겨서 '빨리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을 '누가누가 안 취하고 많이 마시나' 대회를 여는 희극으로 연결지었어. 역사도 100년 남짓 밖에 안 되는 근본 없는 술이 어떻게 한 국가 문화를 정의하는데 성공한 건지는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하여간 그 여파로 회식 자리에서 술 붓고 뻗은 직장인들이, 학생들이 거리에 넘치기 시작했지.


그 다음부턴 간단해. 싼 가격과 높은 보급율을 무기로 희석식 소주는 항상 거기에 있고, 그거 마시다가 반 쯤 뻗든 완전히 뻗든 이런저런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술 문화 전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확산시키는 거야.

그러면 다른 술들에 대한 접근이 더더욱 어려워지고, 주세법은 구닥다리 그대로 유지되고, 애주가들이 우리 술을 지키느니 지금의 구조는 잘못되었느니 말을 해도 술에 대해 애초부터 부정적인 인식이 박힌 대중에게서 공감을 받을 수가 없게 고립당하는 거지.



그렇게 '대한민국 술 문화' 자체가 죽는 거야. 기계적으로 희석식 소주를 들이부으면서 얼마나 마신지 자랑하고, 못 버티면 뻗고, 뻗으면 뻗은 대로 또 문제가 되고. 그러면 우리가 조용히 집에서 한 두 잔 땡기면서 '이거 맛도리네' 하고 있는 와중에도 술은 구제 받을 필요 없는 사회악으로 깔끔하게 대두되는 거지. 진짜 체크메이트가 따로 없음.


지금이야 뭐 그래도 다들 꿈틀거리는 것도 보이고 주세법 때문에 맛있는 술을 못 만든다, 오히려 전통주가 죽어가고 있다 말 많으니까 시간 좀 많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정도까진 희망이 보이는 느낌임.


지금 우리 주세의 근간이자 똥싸고 튄 원흉인 일본도 WTO 권고 따라서 주세 개편하기 전까진 우리랑 큰 차이 없었다고 그럼. 삼배증양청주니 갑류 소주니 부르지만 결국 초록병 소주나 다를 것 없는 싸구려 술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고 주세 뜯어 고쳐서 가격 경쟁력을 떼어 내니까 화들짝 정신 차려서 지들 사케니 준마이 어쩌고 하는 것들을 살려서 활성화한 거야.


위스키도 싸게 들어오니까 이런 술도 있구나, 저런 술도 있구나 하면서 더 다양한 취향과 맛, 향, 입맛의 존재를 인정해준 거임. 거 시발 지도 먹어보니까 존내 맛있는데 전에 먹던 게 눈에 들어오겠냐고ㅋㅋㅋ 당연히 소수파로 전락했지.



하여간 쓰다 보니 어처구니 없이 길어졌는데 그냥 개인적인 느낌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 꺼무위키 등등 적당히 돌면서 새로 배웠던 것들이 하나하나 유레카라 기억에 존내 잘 남았었거든.


그래서 대충 이런 생각이고,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이렇게 억울했다 하소연 뱉은 활자 뭉탱이니까 오류가 있다던가 이상하다 싶으면 아무튼 님이 맞는 거임. 난 몰?루ㅇㅇ



아 씹 그래서 그거.

국내에서도 '술', '주류'라는 것이 지닌 역사와 깊이, 그 가치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중해주는 때가 올 수 있으면 좋겠음.

저기 위에서 예시로 담배를 끌고 오긴 했지만 그 흡연조차 강박증 있나 싶을 정도로 흡연 매너에 진심인 사람은 분명히 존재함. 담배의 역사와 흡연의 효과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와는 별개로 나조차 흡연에서 간지를 찾는 순간이 있음.


흡연도 그런 실정인데 술에 진심인 애주가들이 그거 보다 무조건 못하리라고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어야 함. 매너만 지킨다면 충분히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안 주고 술 홀짝이면서 즐길 수 있으니까.


이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깜박해서 어따 끼워넣을지 몰?루겠어서 그냥 여따 적음. 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