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문이 열렸습니다.'

오늘도 늦은 저녁 집에 온 나를 반기는 것은 끝없이 깊은 어둠과 고요함, 

그리고 사람의 것이 아닌 불쾌한 시선 뿐이다.


개의치 않는 듯이 거실의 불을 켜고 들어간 내 방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액자 속 카메라.


마치 누구보고 들어달라는 듯이 한숨을 크게 쉬고,

옷을 벗으며 혼자 듣는게 아닌 독백을 시작한다.



오늘 너 만나고 왔어.

난 점점 늙어가는데 넌 변함이 없더라.

불공평한 세상..아, 불공평하진 않으려나.

어쨌든 근 몇년간은 많이 못봤었지?

1년에 한번..?정도밖에 못 봤으니까.

그래도 예전에는 몇달에 한번씩은 만났는데.

자주 보자. 내가 더 많이 찾아갈게.

얼굴 좀 보자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게 고등학교 2학년때였나?

낯선 학교에 전학와 친구도 없고, 숫기도 없어 친구 만들기도 쉽지 않았던 내게

먼저 다가와 줬었지.

그땐 네가 마냥 착하고 순수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 예쁜 얼굴 속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근데 사실

나 네 성격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요즘 말로는..뭐더라...얀데레?

얀데레라고 하더라고.

너랑 친하게 지내고 나서부터


그나마 인사는 해주던 여자애들이 나를 피하고


2학기때 내게 고백했던 1학년 여자애가

학기말이 되니까 흔적도 없이 전학가버렸고


네가 우리집에 올때마다

본적없는 연필, 인형이 하나씩 늘어나고.


사실 처음엔 좀 무서웠어.

그런데...시간이 지나고, 너라는 사람을 좀 더 알고 나니까 이해가 되더라.

어렸을 때부터 빈번했던 아버지의 외도, 그를 참다못한 어머니의 가출.

어느것 하나 온전한 자신의 것이 없던 너에게

나라는 존재는..놓치고 싶지 않았겠지.

어우, 이런말을 내 입으로 하니까 좀 오글거리네. 크크.

어쨌든! 아마 그때부터였을거야.

나도 너를 좋아하게 된게.

그래도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 제약과 함께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서로 티는 안 내고.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갔지.

나 너랑 같은 대학교 가려고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지 알아?

이미 굳어버린 머리에 욱여넣느라 고생좀 했다, 야.

내가 졸업식 끝나자마자 너한테 고백한거 기억나?

넌 고백멘트 끝나기도 전에 수락했고.

뭐가 서로 그렇게 바빴던 건지.

너랑 사귀었었던 3년은 정말 행복했어.

비록 내 고등학교, 대학교 남자 동기들은 네가 집착을 심하게 한다고 싫어했지만 말이야.

처음에는 그저 걔들이 어린거라고, 네 사정을 몰라서 그런거라고 치부하며 무시했었지.

그런데..낙숫물이 벽돌을 뚫는다고 했었나?

주변에서 그런 말들이 계속되니까 나도 의심을 시작하게 되더라.

아무리 네가 사정이 있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라고.

그래서 네게 일방적으로 끝이라는 문자를 보냈던 거야.

그땐 내가 미쳤었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내쳤을까.

어쨌던 헤어지고 나니까 너랑 사귈때는 마냥 좋던것들이

그렇게 역겹고 무서울수가 없더라.

끊임없는 집착과 몰래카메라.

범죄에나 나올 법한 거지.

이별하고 며칠 정도는 안 다니던 길로 다니고, 스케줄을 이상하게 잡고.

너랑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지.

잠도 제대로 못잤어.

자는 동안 납치해갈까봐.

그래도 며칠 있으니까 괜찮아지더라.

잊혀지기도 하고. 네가 안 보였기도 하고.

그래서 편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네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어.

사람이 이별 한번 했다고 자살을?

그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책임 회피를 하더라.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닐 거라고.

그래도 부족해서,

술만 마셨어.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까 30대를 바라보고 있더라.

근데 웃긴게, 내가 뭘 보고 정신차렸는지 알아?

네가 액자에 설치해둔 몰래카메라.

버린다고 다 찾아내서 버린 줄 알았는데,

하나가 숨어있던거야.

그거 보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

그 자리에서 한참 울었었어.

그리고...정신차리고 열심히 살기 시작해서 지금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항상 네 덕분에 인생을 큰 탈선없이 살아왔다.

고마워.정말.


"그러니까, 그러니까...한번만 다시 보고싶다"

이 말을 끝으로,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괜찮다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모든 생각들이 조각 조각 부서져 이미 피폐해진 심장을 찌른다.

"흡, 커흑...! 진짜, 진짜...흐윽, 너무..보고싶다…

제발...한번이라도…"

그녀가 준 연필

그녀가 준 인형

그녀가 숨긴 카메라

모든것이 여전한데

그녀만 없다.

이 사실이 불러온 괴리감이

나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그리움이

끊임없는 눈물의 기폭제가 되어,

눈 앞을 가린다.


"내가 뭐라고...너를…"

이제는 돌이킬수 없는,

이미 완결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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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랜만에 글써오느라 진땀뺐다

다음에는 솔피눈나 가지고 돌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