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불이 들어오고 양팔이 사슬에 묶인 흑발의 기사의 안대가 벗겨졌다. 눈앞의 여성은 매우 아름다웠다, 백금발의 긴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와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고운 손과 팔의 선 그리고 얇고 고운 선의 몸매까지. 눈 한쪽을 잃고  전신이 흉터 투성이인 그와는 달랐다. 그녀는 현재 무장상태가 아니라 이름다운 검은 드레스를 입고있었다.


"죽이시오."


흑발의 기사는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난전속에 부하들을 먼저 퇴각시키고 후방에 남아 끝까지 싸웠으나 눈앞의 여인에게 패해 지금 여기 잡혀있었다. 본래 그 때 죽었어야 했으나 겨우 며칠 명줄이 길어졌을 뿐이다. 


"이런 부상으로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드렸는데 재미없는 말투네요."


"이미 패배한 몸 목숨에 미련은 없소 깔끔하게 죽여주시오."


"뭐 그런점이 마음에 들어서 살려둔거지만요."


금발의 여기사는 흑발의 기사의 얼굴을 부채로 툭툭치며 해맑게 웃었다.


"생색내긴 싫지만 당신에게 아들을 잃은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려는걸 제가 필사적으로 막아드린거라구요~  조금은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게 어때요~"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업으로서 삼은 이로서 복수를 두려워 한적은 없소 그대에게 부탁한 적도 없고 말이오."


"정말 고지식하시네요 뭐 그점도 마음에 들지만."


금발의 여기사는 부채를 거두고 실크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아 이 얼굴이에요... 그립고 그리워서 꿈에서도 그릴 정도로 그리웠어요."


"난 그대를 모르오."


"당연하죠 제가 당신을 본건 제가 9살때 우리 아버지의 목을 떨군 견습기사 시절의 당신이거든요."


"복수를 원하시오?"


"아뇨 그런 쓰레기 같은 자의 복수 따위를 원할리가요. 하지만 그 쓰레기도 나름 강한 편인데 그 자의 목을 떨군 당신에게 소녀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여기사는 옅은 금빛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아버지가 자신에게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행한 학대를 떠올렸다. 흑발의 기사가 그 역겨운 목을 떨궜을때 다시 한번 그와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수련을 시작했다. 주변에선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효녀로 취급했지만 전부 착각이었다. 그건 복수가 아닌 사랑에 불타는 소녀였다.


"소녀는 쭈욱 기사님을 찾아 검을 휘둘렀답니다. 마침내 기사님과 마주했을 때 홀로남아 저희 측 기사들 대부분을 참살하시고 반 송장이 된 상태여서 소녀는 무척이나 슬펐답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런 당신과 검으로 대회를 나눌 수 있어서 소녀는 무척이나 무척이나 무우우~~~척이나 행복했답니다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나왔답니다 아아."


쉴새없이 말하는 그녀였지만 여전히 기품이 넘치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대 제정신이 아니군."


"예에 9살때부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을 향한 이 감정을 유지해왔으니까요. 제정신이 아닌건 알고있답니다 인지하고 있답니다. 그래도 인지하는것과 느끼는건 다르답니다."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려놓은 그녀가 이윽고 남자의 품 안쪽으로 들어왔다.


"아아 이런 향기군요 당신의 체향은... 이런 소리군요 당신의 심장박동은..."


"그만하시오."


"왜 소녀의 사랑을 거부하시는 건가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소녀는 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신부감이랍니다? 매일 매일 구혼 편지가 날아와서 땔감 대신 구혼 편지를 써도 무방할 정도랍니다."


"그럼 그들과 어울리시오. 나는 그대와 적대하는 나라의 기사요. 그리고 난 이미 서른셋의 나이에 한쪽눈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대는 스물 한살의 미녀 아니오?"


금발의 여기사는 슬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원망이라도 하듯 입을 삐죽 내밀고 볼을 부풀렸다.


"소녀 그런 자들과 아울리기 위한 인생을 보낸적이 없답니다. 그리고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제 사랑에 나이 따위나 신체의 결손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답니다."


"적어도 내 의견은 중히 여겨주시오."


질렸다는 표정의 흑발의 기사를 본 금발 여기사는 한숨를 가볍게 내쉬며 부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부하가 밖으로 나가더니 흑발의 기사가 데리고 다니는 종자 그의 조카가 하고 다니는 목걸이를 들고왔다.


"그 아이를 죽인것이오?"


"아니요 기사님의 미움만큼은 사고싶지 않으니까요. 소녀는 사랑에 미쳤어도 다른 부분만큼은 미치지 않았답니다? 이래뵈도 나름 교양이 풍부한 소녀랍니다."


"그럼 그 아이를 어찌하셨소?"


"어머 샘이 나에요~ 저도 기사님한테 그렇게 이쁨 받았으면 좋으련만... 기사님이 사랑하는 누이의 유일한 아들이라 그러시는건 알고있답니다? 가문에서 학대당한 기사님을 유일하게 돌봐준 누님이 남긴 유일한 아이이기에 아끼시는건 잘 알고있답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기에 지금 비교적 좋은 별실에 감금했을 뿐이랍니다?"


"그대는 내 뒷조사까지 한것이오?"


여기사는 손뼉을 치며 눈웃음을 치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그대는?"


"제가 원하는것의 절반은 이미 손에 넣었답니다. 기사님의 몸을 얻었으니 이제 소녀에게 마음을 주세요 그 사랑을 저에게 주세요."


흑발의 기사는 한숨을 쉬며 제 인생이 꼬였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미안하지만 한 평생을 칼밥을 먹고살아 그대의 고상한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여기사는  손가락으로 제 입술울 톡톡 치며 고민하더니 좋은 생각이 난듯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우선 소녀를 그대라는 딱딱한 호칭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주시겠어요?"





남자기사 이름을 넣을까 말까 고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