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ovelove/36396238




울새가 말했다. 네가 죽였어.




그럼 장례식을 시작하자.




그 아이는 바느질이 삐뚤빼뚤한 천을 들고 작은 바늘을 놀리고 있었다. 가정 교과 과제를 아직 못 끝냈다며 아침 일찍 나와 딱정벌레처럼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는 그 아이의 곁에서 나도 딱정벌레처럼 책상에 엎드려 그것을 훔쳐보았다.


"앗, 따가!"


익숙지 않은 바느질에 그만 실수했는지 손끝에서 피가 흘러 새하얀 연습용 천에 빨간 물방울무늬가 수놓아졌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안절부절 못하던 네게 나는 무엇을 했더라.

휴지를 주었던가, 반창고를 건네주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것을 몰래 훔쳐만 보고 있었던가.


내가 기억하던 것은 그 순간 내 심장이 크게 맥동 치면서도 가슴이 차갑게 식어갔다는 사실뿐이다.


어쩌면 그 때 네가 바느질하고 있던 것은 죽어가는 내게 입힐 수의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수의를 짓겠나?

딱정벌레가 말했다. 내가 짓겠어.




문득 밤중에 옛날 생각이 났다. 오던 잠은 당연하게도 멀리 날아가버렸다. 젠장. 흑역사는 왜 이럴 때만 생각나는지.

부엉이 족이 되지 말라고 어머니가 자주 말씀하셨지만 흑역사란 건 가만히 있으면 고구마처럼 줄줄이 딸려오는 법이다. 어쩔 수 없지. 가벼운 한숨을 쉬고 책상에 있던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우우웅, 쿨링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니터가 밝아졌다. 나는 익숙하게 화면에 떠있는 아이콘을 더블클릭한다.

모니터는 금방 검은 화면이 되었다 중세판타지 풍의 로그인 화면으로 바뀌었다.


Robin헛쨔

서버 SSS


익숙하게 로그인하자 내 캐릭터가 광장 안에 구현되었다. 평일 심야 무렵이라 있는 사람은 피아노 치고있는 익숙한 석상유저를 포함해서 얼마 없다. 이 인원이면 매칭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일단 매칭을 시작하고 기다렸다. 익숙한 브금의 피아노 소리와 분수소리를 감상한 게 몇 분이 지났을까. 매칭이잡혀 스텐바이 창으로 전환되었다.


좋았어!


소리없는 기합을 넣으며 헤드셋을 고쳐쓰고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3, 2, 1. 곧이어 전장으로 맵이 바뀌었고 나는 캐릭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윤활유를 잔뜩먹여 소리가 적은 키보드의 타이핑 소리가 내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한발, 두발, 세발. 맞닥뜨린 적은 조준사격으로 피가 깎여나가거나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래, 이거다. 좀더, 좀더!

나는 화살과 더불어 폭탄을 던지면서 적을 착실히 줄여나갔다.

그렇게 생존인원이 얼마 안남은 상태에서 트랩을 설치하고 움직이던 중,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개구리를 투척했다.

개굴! 짧은 울음 소리와 함께 곧바로 달팽이 마크가 디버프창에 뜬다. 슬로우!!! 적이 있는 것같은 쪽을 향해서 시야를 돌리자 그곳에는 쌍칼을 든 캐릭터가 다가와 칼을 연이어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까 피아노치는 석상유저였던 하얀 놈이다. 또 석상이 아니었어?

순식간에 빨개지는 피통을 지키기 위해 나도 활을 쏘았으나 칼보다 공격력이 낮은 활은 그 녀석의 피를 나보다 적게 깎을 뿐이었다. 무빙으로 피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같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하려 했다는 게 올바른 말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펑하고 캐릭터가 날아가버렸으니까.

내가 설치한 폭탄 트랩에 내가 당했다.

샷건을 치고 싶었지만 밤이라는 것을 겨우 떠올려내고 주먹을 꾹 쥐는 것으로 끝냈다.


>Robin헛쨔: 멍멍

>Robin헛쨔: 님 또 타이밍 기가 막히네

>Robin헛쨔: 무슨 내 스토커임?

>질럿ang젤: ㅋㅋㅋㅋㅋㅋㅋ

>질럿ang젤: 안알려줌

>질럿ang젤: GG


욕대신 개짖는 소리가 적힌 채팅창과 최후의 1인이 된 석상이 웃는 메시지를 뒤로하고 게임을 껐다. 흑역사로 괴로운 마음은 사라졌으나 내가 판 내 무덤때문에 잠이 안오기 시작했다.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




누가 무덤을 파겠나?

부엉이가 말했다. 내가 파겠어.




>fly: 오늘은 게임 안하더니 졸아서 이름 불렸네?

>나: 비웃을거면 보내지마


결국엔 한숨도 못잔 채로 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또 올라온 채팅창을 노려보곤 책상에 엎어졌다. 한여름인데도 책상이 이마보다 차갑다.

바보같은 놈, 바보같은 놈, 이럴 줄 알면서도 왜 그랬냐 진짜.

어제 까마귀 고기로 양념갈비해 먹었나.

쿵쿵 이마를 책상에 부딪혔다.


>fly: 비웃는 거 아닌데?

>fly: 그래도 놀라서 깨는 표정은 웃겼어.

>나: 잊어

>fly: 내가 왜?


밑에 동동 뜨는 '싫은데? 새' 스티커가 나를 보며 비웃었다. 쟤는 꼭 자기랑 똑같은 걸 쓴다. 얄미운 녀석.


>나: 두고봐 내가 언젠가 흑역사 찾아낸다.

>fly: 내 장례식에서도 못찾을걸.

>fly: 네가 죽어서도 못하니 포기해.

>나: 장례식에서 두고보자.


곧이어 '까악까악 웃는 까마귀' 스티커가 화면을 메꾸었다.




누가 목사가 되겠나?

까마귀가 말했다. 내가 되겠어.




남자 아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나

개구리와 달팽이,

그리고 강아지의 꼬리로 이루어져있지.


여자 아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나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이루어져있지.



어렸을 때 동화에서 본 그 시는 그렇게 노래했다.

허나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한두명쯤 있다고 울새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울새가 본 그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