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하다 못해 투명하게 눈부시던 눈은 어디가고, 마리아나 해구같은 심연의 탁한 빛만 남은걸까.


"제가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알겠다고 말해요...어서"


그녀는 지금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만큼 만큼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바로 5 cm 정도면 서로 닿을 정도로 얼굴을 내미는 그녀.


원래 이런 상황이라면 로맨스적으로 다가오는게 정상일텐데.. 그녀의 공허한 눈을 보자니 그저 맹수에게 이빨로 숨통이

끊어지기 바로 직전의 사냥감같은 기분만 들었다. 무섭다고.


"아..알겠어, 알겠다고! 그래도, 나중에 도시락만들다 힘에 부치게되면...그때부터는 무리하지말고 관둬도 돼."


"관둘 일은 없어요. 제가 그렇게 정했으니깐..앞으로도 계속 할겁니다"


그녀의 눈빛은 무엇인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광신도- 와도 같았다. 아무런 빛도 보이지않고, 오직 무엇 하나에만

집착하는...그런 눈빛.


이러는 순간에도 그녀는 아직까지 그 고운손으로 내 어깨를 그대로 쥐어 뭉개버릴 기세로 붙잡고있었다.

아니, 이젠 아예 손톱으로 살갗을 찢을 기세로.


존나 아파 뒤질 것 같으니깐 그만둬줬으면 좋겠는데...



"야, 이제 잘 알았으니 그 손좀 때주면 안될까? 아파죽을것같다고 지금.."


"......"


"...저기요?"


"............"


...바로 면전 앞에서 말하는건데 안들리는걸까?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라도 뿌리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게 안된다.

여자애가 뭐 이리 악력이 쎄?!


"수연아..마음은 고마운데 진정좀 해봐!! 너 지금 엄청 이상하다고!!"



"하앗..?"


"...아..아 죄송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손을 놓는 그녀.

광채를 되찾은 눈은 이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아..아프셨죠? 죄송해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더니....죄송해요"



"아니..그렇게까지 미안해할필요야 없어. 근데 너 방금전까지 딴 사람인줄 알았다니까? 얼굴도 그렇게 가깝게 붙이고...

솔직히 얼마나 무서ㅇ... 앗 따가 시발!"


갑작스럽게 밀려온 고통의 정체는. 그녀가 힘을줬던..어깨 바로 곁에있는 팔목쪽이였다. 

...양 쪽 모두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네. 아예 살이 음푹 파들어간것 같기도하고.


"죄송해요..죄송해요 상처 입힐 생각은 정말 하나도 없었는데..! 제가 멋대로 이상해진 바람에 어깨가 그렇게 피가 잔뜩..잘못했어요..!"


"...잘못을 한게 맞기는... 한데 뭐 그렇게 큰 대죄라도 지었냐? 그리 울상지을 정도는 아니지않나?"


사실 내심 기뻤다. 그녀가 돌발행동한 이유는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까지 연거푸 미안하다고, 곧 있으면 울어버릴것같이

날 위하고 걱정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짐작해보면 내가 그녀에게 있어 대체 무슨 존재이길래 그럴까 -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정확한 이유야 모르지만 뭐 어때?



"이 정도면 양호실가면 그만이야. 그러니 그만 신경써....지금 뭐하냐?"


그녀는 자신의 교복, 소매부분을 손에 반쯤 쥐더니 내 피가 나오는 곳을 갖다대고 있었다.


"야! 교복 더러워지게 뭐하는...아니, 니 지금 우냐?"


"그치마안..피가, 피가아..."


이게 그렇게 울 정도인가? 조금 오바하는것 같은데.. 

그래도 그녀가 우는 귀한 모습을 보니, 다친것도 꼭 나쁜것만은 아닐것같단 생각이 들었다.


평소가  ㅡ▽ㅡ 라면, 지금은  ㅠ^ㅠ 라고 해야하나?  씹덕들이 맨날 체육시간마다 지들끼리 갭모애니 뭐니 뭐라뭐라 지껄이던데.

그게 이런뜻이였나.. 꽤 신선한 느낌이다.


"니 교복 소매부분에 피가 다묻었잖아 멍청아..그러게 그냥 양호실가면 된다니깐 굳이"


"..아니, 병원, 병원에 가야하는 거겠죠? 그렇죠? 그런거죠? 어서 119에 전화를, 구급차를 불러서 - "


혼비백산해하는 그녀에게 할 말을 잃었고..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과다출혈로 뒤지는것도 아닌데 오바하기는."


휴대폰을 키려는걸 다급히 제지했다.


"그보다, 곧 있으면 애들도 슬슬 등교할시간인데 이러는걸 들키기라도 하면 다들 뭐라 생각하겠냐? 그리고...아직 국남았잖아.

입도 못대면 가면 억울하다고."


"정말 고맙지만, 그래도.."


 바닥에 고이는 피를 무시하고 국을 마셔보는데..뭐라할까? 깔끔하니 중독성있는 그런맛이였다. 계속 마시고 싶을정도로.


"이 연한 갈색 국물은 뭘로 만든거야? 고소하니 시원한게 딱 내 취향인데"


"...가다랑어포랑..멸치육수,다시마로 우린 가쓰오부시 국이요..."


가쓰오..부시? 뭔진 잘 모르겠지만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뭐


"내일도 국들고 올거면  이걸로 해줘. 감칠맛나는게 중독성있네"


"..칭찬 고마워요. 내일도, 해올테니깐..근데 지금은 빨리 병원에 가시는게"


"호들갑떨기는. 양호실에서 밴드붙이면 그만이라니까 그러네"


그 순간.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복도로부터 들려왔다


..누구지? 아무리 그래도 아직 누군가가 오기에는 이른 시간인데,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


지금 들키면 서로 사이좋게 도시락 먹고 호호하하 잘 지내고있다는 소문이 퍼지는게 문제가 아니라,  피가 고인 웅덩이, 그리고

어깨에 수없이 흐르는 피...이걸 들키면 그야말로 난감해진다.


"지금..사람오는 소리죠 이거...?"


빠르면 15초 정도안에 올 시간에, 모든 흔적을 치우기는 무리였다. 고로 우선순위로 핏자국이라도 다 치우는게 최선이겠지.



"..휴지 여기있으니깐 이걸로 바닥에 있는 피좀 닦아줘. "


"아..! 넵"


그동안 나는 다급히 가방에 넣어놨었던 후드집업을 꺼냈다. 등교때 입고나갈려했는데 예상외로 11월 초치고는 날이 따뜻해서

안입고 가방에 구겨넣어논건데, 이렇게 도움이 될줄이야...


이걸 입으면 상처도 안보이겠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학생도, 다른 누구도 아닌 담임선생님이였다.


보통 조회시간 시작때 들어오지않나?


"어머, 수연이랑 순붕이가 먼저 교실에 들어와 있었구나? 그것도 딱 너희 둘만.. 서로 잘 지내는것같아서 선생님은 안심이 돼요.

근데 저 자리에 있는건... 세상에, 도시락아니니? 둘중 누가 누구에게 싸준거야? 응?"


다행이 혈흔의 흔적은 완전히 지우는데 성공했나보다. 도시락 건은 들켰지만.. 뭐, 원래 선생님이나 애들이나 대부분

나와 그녀가 서로 연인이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니 큰 탈 없겠지. 그것도 선생님이라면 더 더욱.


"..수연이가 저한테 싸준거에요"


"저기. 그건..!"


"들키면 좀 어때, 이미 너랑 나랑 친한거 애들이 다 알더만, 심지어 연인아니냐고 하는 애들도 있던데?"


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얼굴만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머머, 서로 좋아죽고 못산다는건 알고있었는데 이렇게 도시락까지 싸주고...커플이란 소문도 너무 멀리간거 아닌가

싶었는데 진짜였나보네? 순붕아, 넌 아주 복받은거야!다른 애들은 보니깐 수연이와 친해지고 싶어도 못 친해지던데, 너만 수연이가

그렇게 살갑게 대해주지..수연이도 너하고만 친해지려 하는것같고. 혼자서 특별취급을 받으니 수연이한테 평생 엎드려 절해도 모자르다니깐?"


선생님의 말은 커플이란 말만 빼고  틀린거 하나 없었지만....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듣는 이쪽도 부끄러워진다



"걱정마~ 선생님은 입 무거우니깐, 그렇게 잉꼬부부마냥 지내도 뭐라뭐라 말 안해. 그런데 항상 궁금했던건데 수연이 너는...

순붕이의 뭐가 좋은거니? 대답하기 부끄러우면,,안해도 괜찮아"


아, 돌발질문이네. 뭐라 대답할지 조금은 예상이 가기는 하지만 다른사람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진 나도 궁금하긴하다.

본인이 부끄러워서 아예 입을 안열것 같긴 하다만.


"....항상 무심한척 하지만 남을 배려해주는게 좋고, 부탁하면 짜증내는것같으면서도 곧이 곧대로 다 해주는 상냥함이 좋고...

은근 사나운 눈매를 가져서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은 알고보면 애같이 귀여운 면이 많은게 좋고,  

입으론 귀찮다니 뭐니해도

필요할땐 망설임없이 힘써주는게 든든해서 좋고, 강인한 척하면서 정작 속은 여린게 미칠도록 가여워보여서 좋고.. 그리고 또...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게 가끔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책임감있는것 같아서 좋고... 불의를 못본척하고 지나갈것같지만

사실은 신경쓰여서 도와주려 나서는 모습이 좋고  실수로 나쁜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속으로 그거에 대해 신경쓰고있다가 나중에 사과하는

그런 신사적인 모습도, 일이 생기면 나 때문이 아니냐는등 자책하듯이 절 신경써주는 그런 섬세함도..항상 정돈되지않아서 한두군데 튀어나온 반곱슬머리도, 세상만사 무심한듯한 목소리면서도 당황할땐 꼬여 비틀어지는 그런 목소리와, 겉모습으론 전혀 고마움을 모를것같은 

사람이지만 실은 스스로도 고마운걸 잘알고있어서 어떻게든 보답해주려는 모습도, 제가 없으면 대체 어떻게 살까 싶을정도로 상처입어서,

새끼고양이보다 불쌍하고 깨물어 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 - 그래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  좋아..해요. 전부..."



...?


........?!?


.................????????










-



5일만에 돌아왔다. 챙겨보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1일1연재 안해서, 5일동안 잠수탔다고 연중생각했었다면 

그런거 아니니 걱정안해도 된다고 말하고싶음.


 여기서 올린걸 노피아에서도 조금씩 가다듬어서 올리고있고(주인공 이름은 당연히 다른걸로 수정)

다른 소설도 하나 같이 쓰고있는중임. 근데 글쓴게 뜸해진건 사실 이런 상술한 이유들 뿐만이 아니라 글쓰는 전개자체가 막히는게 은근 많아서

머릿속으로 짱돌 조온나게 굴리는게 제일 크다 ㅋㅋㅅㅂ


아무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