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 되었다

"반가워? 난 미하라야."

"유니야!"

"안녕하세요. 저는 마리안이에요."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이동을 시작했다. 마리안이 선두, 유니와 미하라가 좌우측 후방에서 경계하는 식의 진형. 입장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지켜지다보니 뭐랄까... 니케들을 함부로 대하는 지휘관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지 못하니까 자존감이 떨어지고, 만만한 니케를 도구라고 깎아내리며 어떻게든 자신을 추켜세우려 했던 거겠지.

몇 차례의 교전 끝에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심지어는 교전 중 트롤까지. 씨발, 당장 눈 앞으로 소형 미사일이 날아드는 상황에 전투 인원 이름을 불러서 부상을 입게 할 뻔 하다니. 아무리 위험을 경고하려 했다지만 지휘관으로서 그래선 안 됐다.

사실, 다른 지휘관들이 왜 그렇게 혐성인지, 지휘관으로서의 나는 존재의의가 있기는 한 건지 같은 것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문제인 건.

...버스트에 대한 감을 못 잡겠다는 거다.

진짜 게임이라 가능한 거였나?

뭔가 느낌이 오긴 한다. 추상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뭐랄까. 좀 더 확실한? 그러니까 어떤 게이지가 차올라서, 뭔가 준비되었다는 생각이 교전 중간에 떠오르긴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버스트를 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총은 쥐었는데 뭐가 방아쇠인지를 모른다니.


"지휘관?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세요?"


걱정을 가득 담은 푸른 눈이 나를 마주본다. 나는 마리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고민을 많이 했다.

버스트라도 켜지면 이길 방법이라도 찾아볼텐데. 이대로 가다가는 사이좋게 블랙 스미스의 촉수에 붙들려 그 놈 등딱지에 붙은 뻘건 여드름 행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마리안을 쏴재끼고, 다른 루트로 방주로 향하자니 여러가지가 걸린다.

첫 째로는 미하라와 유니가 나의 명령을 제대로 이해해서, 마리안 속의 침식 인자가 전면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마리안을 무력화 할 수 있는가.

두번째로는... 모더니아. 기존의 스토리를 벗어난다는건 심각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당장에 내가 이끌게 된 스쿼드가 카운터스가 아니라는 것만 해도 떠오르는 위기가 한 둘이 아니다.

잘못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 모든게 틀어질 수 있다.


"....지휘관?"

"음..."

"지휘관!"


앗, 깜짝이야.

놀라서 앞을 보자 미하라의 아름다운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안. 잠깐 생각좀 하느라고."

"이거, 먹어둬. 지휘관은 니케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먹어야 살지 않겠어?"


뭔가 하고 봤더니 군용 퍼펙트였다.

맛따위 개나 줘버렸지만 그 대신이라는 듯 천하장사 소세지만한 양으로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는 영양분을 가지고 있다.

맛은 뭐, 곤약이다. 곤약은 곤약인데, 뻑뻑하고 찝찝한 곤약.

미하라가 건네준 걸 입에 넣고 구역질을 참으며 씹고 있자니 유니와 마리안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꽤나 짧은 시간이었는데, 많이 친해졌구나.


"좋은 사람이야. 유니가 몇 번이나 찔러봤는데, 잘 받아주더라고. 지휘관은 마리안을 어떻게 생각해?"

"...일단, 추락한 수송기에서 날 깨워준게 마리안이었어."

"생명의 은인?"


나는 어깨를 으쓱, 했다.

애매하기도 하지. 침식을 당해 수송기를 추락시켰지만, 본인의 인격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자 나를 구출했다.

그리고 침식 인자에게 유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동료와 지휘관을 사지로 이끌고 있다.


"미하라, 잘 들어."

"지휘관?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네. 뭔데~?"

"마리안은 지금 침식되어있어."

"...뭐?"


철컥, 미하라가 반사적인 속도로 총을 집어들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그녀가 들어올린 총을 내리누르며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마리안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총 내려.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교전 중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몇 가지 있었지."

"5인 스쿼드도 아니고 3인 스쿼드가. 랩쳐들이 드글거리는 고위험군 작전지역에서. 은엄폐 후 야영도 아니고 적극적 이동을 지속하며 생존. 말이 안 돼."

"그게 아니라... 아니, 아냐. 그래서, 지휘관은 확신하는거야? 저 니케가 침식된 상태라는거."


나는 미하라의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

"그런데 문제는, 마리안을 배제할 수도 없다는거야. 랩쳐가 왜 떼거지로 몰려들지 않을까? 미끼에 꼬여 유인되어가는 물고기를 굳이 찢어발길 이유가 없으니까.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로는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지휘관은."

"....모르겠어."


나는 미하라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유인된 끝에는 최소 로드 급이야. 잡으려는 고기가 3인 스쿼드니, 그정도는 나오겠지. 그리고 로드 급 랩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냐."

"그렇다고 마리안을 쏘고 도망가? 그럼 지금 우릴 포위하고 있는 랩쳐들이 좋아라고 달려들겠지. 저번 작전이랑은 달라. 여긴 고위험군이야. 방주로 복귀하려면 니케의 기동력이 필수적이란 소리지. 저번처럼 머리만 들고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지휘관?"

"유인된 곳을 뚫고 지나가려면 최소한 수십 마리의 랩쳐를 한 번에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화력이 필요한데, 없어, 없잖아. 없다고!"

"...이건 내 취미가 아니긴 한데, 뭐. 유니가 바쁘니까 어쩔 수 없네. 지휘관? 따끔할거야~"

"끄! ....압..."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허리가 퉁겨올라갔다. 그 탓에 나는 쪼그려앉은채 내 허벅지를 꼬집던 미하라 위로 균형을 잃고 넘어졌고, 어떻게든 손을 짚으려고 급하게 팔을 휘두르다 그만.

찰싹!

둥그런 곡선 위로 짝 달라붙는 손맛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가죽의 쫄깃한 질감 아래로 둔부 특유의 몰캉함이 가감없이 느껴졌다.

아니, 전쟁 병기가 이렇게 부드러워도 돼?


"흐으읏... 지휘관은~ 은근히.. 아니. 그냥 대담하구나?"

"....미안."

"사과 안 해도 돼. 내 즐거움인걸?"


미하라에 기대어 반쯤 물구나무를 선 채로 유니 쪽을 힐끔 보자 마리안이 유니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내게 흥분 반 책망 반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마리안을 따라하는게 재밌는지 유니도 마리안의 귀를 막고있었다.

...잘했어 유니. 마리안도 고맙다.


"아, 아까도 이랬어."

"뭐?"


간신히 자세를 바로 하자, 미하라가 말했다.

아까? 아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지휘관이 내 이름 불렀을 때, 기억나?"

"어.. 기억하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

"그 때 교전 끝나고, 지휘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아서 고개를 돌렸다고 내가 얘기했었지?"

"그랬지."

"두 번째 겪어보니까 알 것 같아. 뭔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어. 차오르고, 차오르다가 이름을 불린 순간 뻥하고 터져야 할 것 같았는데, 뭔가에 가로막힌 듯한... 지휘관은 내가 왜 이런지 알아?"


안다.

알고말고, 당연히 알지!!

트리거가 이름을 부르는 거였구나.

이제 교전 좀 더 겪으면서, 연습도 하고, 버스트라는 개념이 그녀들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도 알아보면 되겠....


....


아, 씨발.

설마....

봤다. 분명히 봤다. 마리안의 눈이 잠복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붉은 안광을 내뿜는 걸 똑똑히 보고 말았다.

마리안이 움직이자는대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일단 눌러앉으면 시간이라도 벌리겠지 싶었는데, 그게 실수였다. 우리는 땅구덩이 함정 같은 고전적인 함정에 유인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함정은 랩쳐 그 자체. 그리고 랩쳐로 된 함정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마리안?"

"어..? 왜 이러지. 유니, 유니?"


마리안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유니를 떨쳐내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하라!!!

"....!"


내 절규에 미하라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총을 손에 들었다.


"마리안, 왜 그래?"

"총. 마리안이 떨어뜨린 총 회수해. 그리고 진형 갖춰!!"

"알겠어! 유니, 이리 와!"

"응...? 응. 알았어."


나는 필사적으로 달려 최대한 엄폐물이 많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유니와 미하라도 금방 뒤따라 왔다.

1번 버스트가 없다.

풀버스트는 커녕 유니의 버스트도 못 켜게 되어버렸다.

최대한 느리게 마리안을 따라가며 낙오된 양산형 니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전부 망했다.


".....마리안 총 좀 줘봐."

"뭐?"

"지휘관님?"


이대로는 못 이긴다.

여태까지의 방주에서 타일런트 급 랩쳐의 토벌 기록이 존재하지 않듯이, 워드리스 스쿼드만으로는 블랙 스미스를 잡을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버스트를 어떻게 켜는지는 어느 정도 알아냈다.


"유니? 유니? 유니? 유니?"

"마리안...?"

"...유니, 엄폐해. 마히라? 그 총좀 가죽끈에 엮어서 엄폐물에 매달아주라."

"지휘관. 무슨 생각인거야? 그리고 지금 이 진동..."


미하라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면서도 능숙한 솜씨로 마리안의 총을 엄폐물에 매달았다. 그동안에도 땅을 울리는 진동은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대충 총을 쥐고 요술봉 견착하듯 어깨 위에 올려놓자, 정말 지랄맞게 무거웠다. 제대로 견착해서 쏘면 어깨에서 안 끝나고 갈비뼈에 척추까지 부서질게 뻔하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smg니까 괜찮지 않을까?

리타도 쥐고 쏘는데!


"지휘관님.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어쩌려고 그러는거야?"

"지휘관. 그런다고 쏠 수 있는 총이 아냐. 차라리 뒤로 가서 전황을 파악해주는게...!"

"전방 주시해!!!"


더 이상 단순한 진동이라고 볼 수 없는, 명백한 흔들림이 발 밑을 무섭게 두드렸다. 어쩌다 생긴 거라고 생각했던 아스팔트의 균열이 점차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하는, 거대한 생물이 발을 구르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니? 유  니? 유, 니? 유니? 유니? 유니? 유. 니? 유     니? 유니? 유니? 유니? 유유유유니니니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마리안의 노이즈.

도로 밑에서 느껴지는, 점차로 거대해지는 진동.

어깨 위에서 느껴지는 총기의 무게감.

그 모든 것들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


박살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잔해를 바스라뜨며, 블랙 스미스가 몸체를 드러냈다.

블랙 스미스는 정말, 지랄맞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몸체에 넓은 등딱지 위로 뻘건 여드름 같은 것들이 나있다. 양 옆에 라이플을 장착했고, 다리는 게랑 사마귀를 섞어놓은 것 같이 생겼다.

얇고 긴 다리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발 밑이 흔들린다. 라이플이 돌아가는 소리가 소름끼친다. 크기에 압도당해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유니는 엄폐한 채 마리안의 부름이 두려운지 양쪽 귀를 막고 있었다.


"유니! 정신차려, 유니!!!"

"으으으...!"

"안 쏘고 뭐해?!!"


간신히 패닉에서 벗어난 유니가 황급히 총을 고쳐 쥔 순간.

타일런트 급 랩쳐와의 첫 교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