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 되었다

프롤로그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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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빡셌다.


정말로, 빡셌다.


그도 그럴 것이, 방주에서 유일한 크로캣 가게가 이곳 뿐이었으니.


앤이 이곳만 오는 이유가 있었다.


지끈거리는 허리를 피자 우드득! 하는 소리가 골을 울렸다. 하필 또 비가 오는 날이라 바닥이 발자국으로 엉망이었다.


반복된 대걸레질에 새빨게져 쓰라린 양손을 비비고 있자니 안쪽의 사무실에 있던 사장님이 다가왔다.



"월급 넣었으니까 확인하세요~"


"넵."



먹고 살려고 일하다보니 시간 흐르는 줄 몰랐다. 시민권에 연동되는 계좌를 확인해보자, 원래 받기로 했던 월급의 30% 정도 더 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청일점이시라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좀 더 드렸어요."


"감사합니다!"



뒷정리까지 마친 저녁.


마침내 퇴근길에 오른 몸이 평소와 달리 가뿐했다. 아니꼬워보이던 공원이 괜히 싱그럽게 느껴지고, 에피넬을 따라하는 꼬맹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도 지어본다.


월급이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그게 첫 월급이라면 더더욱.



"음~ 흠~"



콧노래도 절로 나왔다.


그래서, 뭘 사가는게 좋을까...


로열 로드의 가게와 방주의 일반 가게 사이에서 고민하다 방주의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격이야 일단 둘째치고 처음부터 선물의 수준이 높아버리면 앞으로의 기대 수준이 하늘을 뚫는 법이니까.


방주의 으슥한 뒷골목.


누가 봐도 수상해보이는 허름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회원권을 제시해주십시오."


"미하라와 유니의 지휘관입니다. 여기, 시민권으로 확인해보십쇼. 대리구매를 위해 왔습니다."


"...맞군요. 뭘 찾으십니까?"


"돈이 없어서 회원가입만 했다고 들었는데, 뭘 제일 사고싶어 하덥니까?"



내 질문에 상인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상인답게 금방 표정을 숨기고 상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미하라 회원님께선 이쪽의 가죽끈을, 유니 회원님께선 이 목줄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최하급 제품이지만 품질은 다른 어떤 가게에도 뒤지지 않지요."


"이걸 못 사서, 보고만 있었다구요..."



최하급 가죽끈과 목줄은 합쳐서 500 크레딧 남짓이었다. 5만원 가량 되는 돈.


이 씹새는 강간만 안 했다 뿐이지 도대체 뭘 한걸까. 아니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이게 평균이고, 당연한 일이다. 나와 주인공 같은 놈들이 별종인 세상이었지. 잊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라와 유니를 꼬박꼬박 '회원님'이라 부르는 이 상인 또한 평범한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최하급 말고, 하급으로 하나씩 선물용으로 포장 부탁드립니다."


"....꽤 별나신 지휘관님이시군요."


"죽을 뻔 했던 걸 살려줬거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무리 니케라지만, 기름칠도 해주고 그래야 잘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기름도 기름 나름이기도 하고요. 잘 맞는 기름을 찾으실 줄 아시니 손님께서는 참 현명하십니다."


"별 말씀을요. 하하."


"그런 의미에서 이건 어떻습니까?"



........



상인의 혀는 대단했다.


예정에 없던 양초에, 서비스로 웬 집게까지 떠넘겨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쓰다간 부업을 얼마나 돌려도 금방 거지가 되겠는데...?


가랑비에 옷 젖듯 빠져나가는 크레딧을 걱정하면서도, 퇴근길 치킨 냄새는 못 참았다.


유사 음식인 주제에 냄새까지 똑같은게 말이 되나 싶지만, 좋은게 좋은 거지.



"...치킨? 이게 얼마만이야~?"


"와아, 유니도 치킨 좋아!"



도착하자마자 포장을 뜯고 다함께 치킨....이라기엔 위화감이 있는 퍼펙트를 즐겼다. 뼈는 구현하기 어려웠는지 순살 치킨의 모양새였는데, 진짜 튀긴 닭의 쫄깃한 식감을 아는 나로선 이 퍼펙트는 갈은 닭고기를 뭉쳐 튀긴 것 같은 맛이었다.



"흐으... 흣, 하아아..... 지휘관, 너무 우리한테 잘 해주는거 아냐~?"


"암냠냠, 지휘관님. 유니 지금 너무 행복해!"



치킨집에서 함께 사온 미사일맛 소스(불닭보다 정확히 두 배 매웠다)를 듬뿍 찍어먹는 미하라는 보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야했다. 매운맛은 미뢰로 느끼는 맛 아니라 통증이라는 상식이 생각나 사와본 건데, 역시나 좋아한다.



"...?"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유니에게 무심코 손이 나갔다. 순간 후회했지만 이미 나의 손은 유니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헤헤, 헤헤헤!"



유니가 웃었다.


거부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지도, 미하라의 눈초리가 가늘어지지도 않았다.


나의 옹졸한 가슴은 그것만으로도 행복에 벅차올라 눈물이 찔끔, 밀려나왔다.



"다 먹었어?"


"으응~ 배불러어.. 신경써줘서 고마워 지휘관. 유니?"


"지휘관님. 고마워. 근데 미하라... 아하암... 유니, 이제 졸려... "



아, 자기 전에 이거 선물해야 하는데. 양초까지 있어서 은근 들고오기 힘들었는데.


하지만 퇴근 뒤가 늘 그렇듯 너무 피곤했다.


그래. 자고 나서 준다고 큰 문제 생기는 거 아니니까.


서로를 기대고 잠든 미하라와 유니를 바라보며 온 몸에 힘을 빼고 좁은 바닥에 쪼그려 누웠다.


이 순간만큼은 로열 로드에서 판다는 1000K 크레딧짜리 침대도 부럽지 않았다.


생활에 절어 뻑뻑한 나의 눈을 촉촉한 어둠이 끌어안았다.


배부른 졸리움이란 잠의 절벽이었기에, 나는 떨어지듯 잠에 들었다.



***



"BA-01 다운!! BA-01 다운!!!"



뭐이 씨발?


리세마라에서 지겹도록 들은 대사가, 목소리가 귀를 울리고 있었다.



"응답해 주세요! 추, 추락했다고요! BA-01 다운!! BA-01...! 먹통이야..!"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온 몸이 욱신거렸다.


몸의 고통을 따라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작전 출격 명령이 들어왔었지.


잠에 취한 나를 위해 수송기까지 업어다준 미하라는 유니와 함께 니케용 수납고에 들어갔고.



"지휘관! 방주와 연락이 닿지 않....! ...지휘관?"



아니야,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씨발, 그럴 수는 없어...!!



"아니야아아아악!!!!"


"히약...! 아, 지휘관님! 일어나셨군요! 됐어...!"



냉정하자. 씨발, 냉정해져 보자고.


아냐 개씨발 냉정해질 수가 없어.


왜 지금이지? 왜? 어째서 하필 지금이야. 왜 나냐고.


새하얘진 머리에 수 천개의 연필이 낙서를 해대는 것만 같았다.


정신차리자.


.....이러다 뒤지면.


선물, 못 줬잖아. 슈엔 그 씨발년 죽탱이도 못 후려봤어.



"마리안."


"ㄴ, 네? 네! 마리안입니다. 아니, 이게 아니라. 괜찮으신건가요?!"


"내 뺨 한 대만 쳐... 아니다. 내가 직접 할게."



순간 니케의 완력을 잊고 있었다.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양 볼이 터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멀쩡해. 작전 구역으로 이동 중 대공화기에 당해 수송기가 추락한거 맞나?"


"...네, 그렇습니다. 다 기억하시는군요...?"



그럼, 씨발. 네가 이 수송기를 터뜨린 것도 알고 있지.


아직, 아직이다.


머리만 있으면 돼. 침식만 안 당했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마리안을 지금 당장부터 좆같아하진 말자. 지금은 저 년, 아니. 마리안이 내 목숨줄이니까.



"그 폭발음 때문에 랩쳐들이 몰려오고 있고."


"맞아요."



마리안의 눈을 마주보자, 바다같이 파란 눈동자 밑바닥에 핏빛 웅덩이가 보였다.


그래, 복선이었지. 이렇게 보니 한층 더 좆같. 안타깝게 느껴진다.


미치겠네. 난 주인공이 아니다. 니케라면 모두에게 친절하고 뭐든 해결해주는 만능맨이 아니라고. 이것들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고, 구원자 노릇을 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 상황에 놓인 내가 뭐라도 해내지 못한다면, 미래가 있나?


일단 애들을 찾고나서 생각하자.



"바로 가자."


"라져! 지금부터 교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절대, 머리를 들지 말아주세요. 걱정 마세요. 저는 당신을 지키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리안의 말은 듣고 있으면 현실감각이 자꾸만 사라져 눈 앞이 아득해졌다.


입을 닫게 하고 싶었지만, 혀를 깨물어 참아냈다.


좋아하려고 노력해보자. 게임에서 봤을 때도 나름 애정캐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



"마리안. 전투 모드로 이행."



아. 잠깐, 잠깐만. 야. 저기 그... 마리안?



"....인카운터!"



버스트는 어떻게 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