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 되었다

프롤로그


1화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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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비전투 상태로 전환합니다."



튜토리얼 따위는 없었다.


갑자기 인터페이스나 상태창이 튀어나오지도 않았고.


그냥, 마리안이 전부 정리했다.


이러면 진짜 지휘관이 하는게 뭐가 있지?


설마 진짜 생체 딜도?


고개를 흔들어 헛소리를 털어냈다. 다시 생각해보니 방금의 전투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정말 튜토리얼이라도 하듯 랩쳐들은 조금씩 교전해왔고, 녹색 빛이 나는 소형 미사일은 마리안에게 닿지도 않았다.


마리안이 침식 상태인 걸 알고 자기네들 작전을 이해해서 손대중을 했다고? 랩쳐가?


아니, 아니지. 마리안에게 심어진 침식 인자가 명령을 하달한 탓일 것이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그정도로 똑똑하다면 더 이상 랩쳐가 인간을 노릴 이유가 없을테니까. 다 부숴버리고 끝장을 냈어도 진작에 냈겠지.


잠깐 동안 랩쳐의 지능에 대해 고심하고 있자니, 언제 다쳤는지 꽤 심한 부상을 입은 마리안의 다리가 보였다.



"아... 다리가..."



주인공은, '지휘관'은 여기서 마리안에게 붕대를 감아줬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아니고, 따라서 감아줄 붕대 또한 없다.


대신, 가죽끈이 있었다. 허름한 가게의 상인이 서비스라며 밀어붙였던 가죽끈 다발. 미하라가 내 호주머니에 챙겨주던 기억이 난다.


'나'라면 할만한 일을 하자.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겠지만, 주인공의 방식은 내게 있어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후후, 지휘관은 의외로 준비성이 철저한걸?'



문득, 미하라가 이 가죽끈을 보면 뭐라고 말할지 떠올랐다.


미하라랑 유니는 괜찮을까.



"다리 줘 봐."


"네? 아, 아뇨. 그래도 이동에는 문제 없어요."


"한시가 급해. 넌 날 업을 순 있지만 난 널 업을 수 없잖아. 지금에야 괜찮다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말 들어."



막무가내로 마리안을 땅바닥에 앉혀놓고 근처에 굴러다니는 쇠봉 몇 개를 가져다가 다리에 덧댄 뒷, 가죽끈으로 꽉 묶자 제법 그럴듯한 부목이 되었다.



"지탱이.... 되네요?"


"나무 부목은 걷자마자 부러질게 뻔하고. 이정도는 되야 지탱이 되겠지. 끈도 니케용이거든."


"네...? 니케용 끈이라뇨?"



순간 마리안의 파란 눈망울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나중에 알려줄게. 나중에."



먼지 투성이 소매로 이마에 난 식은땀을 훔쳤다.


마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나를 부축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에요'로 가려는 거겠지.


카운터스는 또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자꾸만 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신기하네요. 이런 거. 니케가 되고 나서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마리안은 걸으면서도 부목이 신기한지 자꾸만 부목을 힐끗거렸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어깨 너머로 본 수준밖에 안 되는데."


"후후. 상냥한 사람이네요. 지휘관은."



총성에 지친 귀에 따듯한 목소리가 물처럼 스몄다. 이미 한 번은 들었던, 튜토리얼에서의 대사임에도 체온이 더해지니 조금은 현실감있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그녀에게 기대어 그저 걷기만 했다.


잠시나마 두려움이 조금 가시는 것만 같았다.



"저쪽이 랑데부 포인트 방향인가?"


"네, 맞아요. ...몸은 좀 어떠세요?"


"이제 혼자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아, 잠시만요. 지금은 체력을 온존하셔야 되요. 계속 부축해드릴게요."



반쯤 들려가던 발에 힘을 주고, 어깨에 걸쳐진 팔을 들어올리려하자 마리안은 그대로 내 팔을 끌어당겨 팔짱을 꼈다. 그 탓에 ....닿는다. 하지만 그저 그것 뿐. 옛날 같으면 이 감촉을 즐겨보련만, 지금만큼은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전방, 랩쳐 발견. 우회해서 지나갈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래, 전투가 몇 번 더 있었지.



"지휘관. 몸을 숙이고 잠시만 계셔주세요. 금방 끝낼게요."


"...그래."



총성이 울린다.


고개를 숙인 채, 엄폐물 사이로 전황을 살피자 익숙한 위치에 익숙한 랩쳐들이 움직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 전투가 많이 귀찮았지. 스킵도 안 되고 여러모로 짜증이 났었다.



"고생했어."


"아... 후후. 감사합니다. .....역시, 상냥하신 것 같아요."



그녀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니케를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희귀해진 세상이니까.



"이상하네.. 여기가 맞는데...? 왜 랩쳐들 밖에..."


"..지휘관님. 어디로 간 거야. ....에잇!"


"총성이에요! 지휘관, 제 뒤에 계세.. 어?"



유니와 미하라의 지휘관이기에, 익숙하게 느껴지는 총성.


그 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아파왔다.



"마리안, 따라와."


"네? 어, 지금 뛰시면 안 되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 고양감에 머리가 하얗게 치달았다. 걷지 못할 정도로 욱신거려 짐짝처럼 느껴지던 팔 다리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점차 총성이 가까워지고, 마침내...!


나는 숨을 삼켰다.



"....!"



지상에서 지휘관은 랩쳐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게끔 교육받는다.


몸에 박힌 기억 덕에, 망신창이가 된 그녀들을 보고 간신히 소리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마리안은 이미 비교적 부상이 심한 미하라를 엄호하고 있었다.



"어?! 지휘관님!"


"지휘관...?! 지휘관이 왔다고?"



엄폐물에 숨은 채 정황을 살피자, 아까와는 정 반대의 전황임을 알 수 있었다.


랩쳐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미사일과 총알은 살벌하게 엄폐물을 두들기다 못해 구멍을 뚫고 그 너머로까지 뿌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마리안이 있지.



"어? 랩쳐들이..."


"미하라! 방금, 지휘관님을 봤어!"


"지휘관. 거기 있어?"



나는 엄폐물 바깥으로 나오며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애 잘 보고 있었어?"


"푸후흣..!"


"...?"



가볍게 너스레를 떨어주자 미하라의 웃음보가 터졌다. 유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입을 우물거리다 소외된 것 같은지 볼을 부풀렸고, 마리안은 어색한지 멋쩍게 웃고 있었다.



"어우, 너무 반가워."


"지휘관님!!"



후다닥 달려온 유니를 멈춰세우고 쓰다듬자 온기가 전해져왔다.



"안아."


"안아?"


"지휘관님. 유니 꼭 안아줘."



양 팔을 활짝 펼친 작은 품을 조심스레 끌어안아주자,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이 순간.


유니를 끌어안은 이 순간만큼은 떡밥으로 떡칠된 주인공이 아닌 나 따위가, 카운터스의 니케들도 없이 앞으로의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걱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원래의 주인공인 '지휘관'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내가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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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봤으면 콘이라도 놓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