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 되었다

주마등이 스쳐지나간다.

본디 이 몸의 주인이었던, 무능한 지휘관의 일대기.

그 끝에, 한 소년이 있었다.


"으아악! 아긋, 악!!"


소년은 쓰레기장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냉장고에 깔린 채, 서서히 커지는 피웅덩이 한 가운데에서 바르작거렸다.

손에는 새까만 박스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이것을 빼내다가 냉장고에 깔렸나 싶다.

인간의 생명이란 질겨서, 소년은 꽤나 오래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온다.

서서히 숨이 느려지고 눈꺼풀이 내려간다.

그리고 마지막 단말마로, 상자를 쥔 손이 꿈틀거렸다.

원망인지, 미련인지 모를 손짓. 우연히도 그 손짓이 상자의 개봉 버튼을 눌렀다.

상자가 열렸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년은 텅 빈 상자 속을 보고 허망함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야, 너. 지휘관 한 번 안 해볼래?"


얄미운 미소가 눈 앞에 있었다.


***


머리가 멍하다.

분명, 끔찍한 고통이 온 몸을 뒤덮고 뼈 마디마디를 깨뜨릴 것처럼 조여오고 있었는데.

겪어선 안 될 고통을 머릿속의 멍함으로 덮어놓은 듯 했다. 당장이라도 자살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경험이 이어지지 않아 너무나 다행이었다.

대신 한 가지. 강렬한 감각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피로.

움직이질 못하겠다.

볼 수가 없어. 눈동자조차 못 옮기겠다고. 아주 작고 하찮은 움직임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

멍함 속에 숨은 끔찍한 기억, 도사리는 두통, 내리누르는 피로, 침잠시키는 향수.

이 모든걸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마음속 깊이 몸서리가 쳐졌다.

이런 시간이 일 초라도 더 이어진다면.

차라리.


"나..."


죽여줘...


"우으..."


유...니?

마지막 한 마디를 잇으려는 순간, 마침내 눈이 뜨이며 내게 시야를 들이밀었다.

얼마나 운건지 새빨개진 눈가와 잔뜩 찡그려진 이마. 마주친 그렁거리는 핑크색 눈동자.

그리고, 커튼처럼 주위에 내려진 분홍색 머리카락 사이로 배어드는 햇빛.

온기가 서린 눈물을 맞은 순간.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나... Nano machine son."


***


"지휘관...님?"

"어, 왜?"

"혹시, 지휘관님도 니케야?"

"맞아. 사실 니케야."

"!! 그럼 꽉 안아줘도 되지?!"

"사실장난이야유니야잠깐만기다려!!"


정말로 믿었는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유니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홀로그램 화면 속 시프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스템 상으로 분명한 인간...이세요. 솔직히 이제와서는 모르겠지만요.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미하라."

"으, 응?!"


꼭 귀신 보듯이 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 싶다. 변사체 직전의 사람이 갑자기 멀쩡하게 걸어다니면 무섭겠지.


"권총. 줘."

"...여기."


미하라가 건네준 권총을 부여잡고 앞으로 걸어나가자, 마리안이 보였다.


"유니? 유니? 유니? 유니? ...."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나는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다.

지휘관이 총을 쏴재끼고, 버스트까지 썼다.

마리안은 '여기에요'가 아니라 '유니?'를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장난처럼 말했지만, 아마 주마등에서 보았던 그건.....

아니, 됐다. 제껴두자. 일단 지금은 방주로 돌아가는게 중요해.


"...."


아마, 이 부분이 애니메이션이었지.

갑자기 작화가 달라져서 좀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지휘관.."

"...그래."

"유니..."

"...."


마리안은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벌벌 떨고 있는 유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안...했어요..."

"마리안...!"


그 짧은 새에 정이 들었을까. 하긴, 마냥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함께 전투도 하고, 먹고, 자고... 꽤 많은 것들을 함께 했었다.


"지휘관..."

"말 해."

"가죽끈.... 고마웠, 어요..."


마리안은 모더니아가 되어서 다시 돌아온다.

그 사실을 아는 나로선, 온갖 가능성이 떠올라 쉽사리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내가 그 '모더니아'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무리 다른 3대 기업 니케들과 방주의 총전력이 돕는다지만, 주인공도 아닌 내가?


"...지휘관."


상념에 너무 깊이 빠져있던 탓일까. 마리안이 손을 뻗어 내가 들고 있는 권총에 손을 대기 전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심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리안을 보았을 때, 난 할 말을 잃었다.


"...쏴, 윽! ...주세, ...요.."


평온한 줄 알았던 눈동자가 붉으락 푸르락 뒤섞이고 있었다. 마치 영역 다툼을 벌이듯 색이 섞을 때마다, 마리안의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마리안의 침식 수치가 치솟고 있습니다! 지휘관!! 시간이 없어요!

"..."


미하라와 유니는 나를 믿는다는 듯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

등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워드리스.

눈 앞에서 침식에 저항하느라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리안.

손에 든 권총과 어깨가 동시에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또 보자."

"....?"

-타아앙!


눈동자의 모든 부분이 붉은 색으로 물들기 직전, 방아쇠를 당겼다.


"돌아가자. 시프티, 안내해줘."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안 아파..?"


유니의 조심스런 물음에 그제야 찢어진 입술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나조차도 모르게 얼마나 짓씹었는지 너덜거리는 입술. 턱 아래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괜찮아."

"지휘관..."

"미하라. 나 좀 부축해줄래?"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걷기만 해도 현기증이 올라왔다. 미하라는 말 없이 옆에 서서 나를 부축해주었다.

마리안의 죽음 탓인지, 지독한 피로가 몰려와서인지. 아무 말 없이 시프티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던 도중, 시프티가 말했다.


-그런데, 지휘관.

"왜?"

-그, 가죽끈...은 뭔가요?


아.

아차 싶어서 미하라와 유니 쪽을 보자, 둘은 어느새인가 내 호주머니에 있었을 가죽끈 다발을 손에 들고 유심히 보다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흐응~?"

"지휘관님, 돌아가면 유니랑 미하라랑 같이 놀까?"


아, 아니야.

난 결백해!


-....걱정마세요. 작전 도중 드러난 지휘관의 페티쉬 같은 건 보고해야 할 부분이 아니니까요.

"그게 아니야!"


결국, 방주에 돌아가는 내내 가죽끈에 시달려야 했다.

묶고 묶이면서, 놀림받고 놀리면서.


"그런데 지휘관. 나노머신이 뭐야?"

"상원의원님의 필살기야."

-...망상병까지.

"넌 방주에서 얼굴 좀 보자?"

-오퍼레이터를 사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도 블랙 스미스 토벌 보고서에 이름 올려줄게."

-이 중에서 원하시는 사복 스타일이 있으실까요?

"음... 아, 그래. 방금 지나간 그거."

-알겠습니다!


희희낙락하는 시프티를 보며 나는 조용히 웃었다.

언체인드 관련해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대비할 수 있는 건 대비해놔야겠지.

셋 다 묻고싶은게 많은 눈치였지만, 헛소리로 일관하며 흘려내었다. 거짓말을 하게될까봐 눈치보던 것도 잠시. 우리는 타일런트급 랩쳐를 잡은 보상으로 무얼 할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믿어줘서 고마워. 미하라, 유니.


***


"빡세다..."


방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밤이었다.

미하라와 유니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작전 수행 보고서를 제출해야만 수당이 들어오는데, 보고서 접수가 선착순이다보니 경쟁률이 보통 빡빡한 것이 아니다.

느긋하게 쉬면서 보고서 작성을 하다간 성과금은 커녕 작전 투입 수당조차 다른 놈들 수당에 편성되어 결재가 미뤄질지 모르는 상황.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그도 그럴게, 블랙 스미스다. 타일런트 급 개체! 교전했다는 기록만 있고 토벌 기록은 없는 가장 높은 급의 랩쳐!!

전무후무한 전공이요, 성과다. 그렇다면, 포상이 따르겠지.

흐, 흐흐흐...

그날 밤.

나는 이세계물 클리셰를 직접 경험하는 꿈을 꾸었다.

길드 접수대에 드래곤 대가리를 올려놓자, 접수처의 여자가 화들짝 놀라 길드 마스터를 불러야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뭐, 그런 꿈.

아침까지도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을 때.


"좆됐다."


크로캣집 사장님께서 보내신 블라블라가 막 99+개에 도달하고 있었다.


"좆됐다 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