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씨부림 모음집

안녕. 


 편지를 쓰는 건 생각보다 나에게 훨씬 어려운 일이었어. 내게 글쓰는 재주가 없다는걸 새삼 체감하게 돼. 그래도 글은 좋은거구나. 얼굴보고 할 수 없었던 말, 내 마음속에 숨겨왔던 말. 전부 적어서 보낼 수 있으니까. 

 갑작스러운 편지에 당황하겠지만 이 편지는 그냥 내 개인적인 고민을 너에게 말하는 편지야. 너가 이 편지의 대답을 준비할 수 있도록 편지가 시간맞춰서 도착했길 바라.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 일때문에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사람도 나한테 마음있다고 생각했어.

 아쉽게도 그 사람한테는 여자가 많아. 어쩌면 그 스스로가  체감하는 정도보다 더. 사소한 불만은 있었지만 나는 성격 상 티를 내지 않았고, 어쩌면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내가 그 수많은 여자들 중 한명인 것만으로 만족했던걸지도 몰라. 모두에게 친절한 그를 좋아했고, 가끔은 고결하다고까지 생각했었어.


 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둔감해. 

 최근에 일을 하나 같이 했어. 나는 이번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이 일이 그와 관계를 좁히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거야. 왜냐하면 이번 업무공간이 부부만 출입 가능한 곳이었거든.

 망설일 필요도 없었어. 그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당연히 수락했지. 애초에 그가 거절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는 누구의 부탁이든 거절하지 않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래.

누구든 말이야.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일의 복장으로 과감한 드레스를 선택했어. 놀랍게도 그는 내 옷을 보고 크게 당황한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놀랐어, 내 몸매가 그에게 자극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거든.

 이 기회를 더 확실히 잡기 위해 부부연기를 핑계로 한 방에 들어갔어. 중간중간 방해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함께 밤을 맞이하는데 성공했지. 이때 나는 평소보다 더 격양되어 있었던 것 같아. 사실 그와 한방에 있었던 적은 많지만, 이렇게 나의 많은 부분을 노출한 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누워있는 그의 옆에 일부러 등을 보이며 앉았어. 입고 있던 드레스가 등이 깊게 파여있는 형태였으니까 그게 그의 자제력을 잃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였는데, 그는 조용히 눈을 감은체 잠에 들어버렸어. 아마 많이 피곤했을거야. 갑자기 불려나와 내 일에 이리저리 끌려다녔으니까. 내가 편히 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난 조용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정말 잘생긴 얼굴이야. 나처럼 사람의 외면보다 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조차 한눈에 반할 만큼. 그렇다면 사람의 외모만을 중시하는 그 단순한 여자들은 더 했겠지.

 이불 위로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어. 이불의 촉감. 그 사이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굵은 손의 형태. 이 손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옥같던 삶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바뀌어버린 니케들은 얼마나 많을까?

 ...만약 사이에 이불같은 것 없이 직접 맞잡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손을 영원히 놓치않을 수 있다면.

 

 내 손이 그의 손을 타고 점점 올라가 손목, 팔, 어깨를 거쳐 가슴으로 올라갔어. 호흡에 따라 팽창되고 수축되는 잘 단련된 가슴을 지나 쇄골, 목, 턱, 그리고 입술로...

 이 입술엔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흔적이 지나갔을까. 그런데 과연 입술만일까? 다른 여자들의 개인적인 곳으로 향하진 않았을까? 몇명이나? 몇번이나? 

 ‘내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기도 하는구나’ 난 이때 처음 알았어. 일을 할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참혹한 현장에서도 나만큼은 항상 냉정했는데. 

 내가 이토록 그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그래. 분명 나는 격양돼 있었어. 게다가 그의 몸을 만지고, 내 연심까지 자각해버리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그냥 지금 해버릴까?

 그는 반항 한번 못할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몇시간이든, 몇일이든. 어쩌면 평생까지도.

 너는 어때? 해선 안될 짓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내 마음을 이해해? 


 나는 당장에라도 그를 끌어앉고 싶었어. 이불같은건 집어던지고 직접 살과 살을 맞대고 그의 체온을 느끼며 내 몸을 비빌 수만 있다면. 그의 손이 내 몸을 어루만지고, 나도 그의 온몸을 미친듯이 쓰다듬는거야. 손끝이 살결에 스칠때마다 호흡은 가빠지고, 어느새 이성을 잃어버린 체 서로의 땀과 체액으로 얼룩져 마치 짐승처럼 민감한 곳을 희롱하고, 목을 깨물고, 서로의 것을 탐하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계속해서...


 이 모든게 제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그때 나에게 그럴 용기가 있었더라면.



 너가 그딴 여자들에게 관심가질 일도 없었겠지.




 나도 알아. 난 무슨수를 써도 너의 처음이 될 수는 없다는걸. 너의 외모와 능력을 생각한다면 수십, 어쩌면 수백의 여자가 있었겠지. 가깝게 지내는 여자들과도 이미 그런 관계일지도. 아니, 분명 그럴거야.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아?

 얼마전에 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거든.

 길에서 하얀색 바니걸 복장을 한 여자가 너에게 키스를 했었지. 너희들은 아마 아무도 모를거라 생각했을거야. 그게 아니면 알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을지도. 이해해. 너정도의 남자라면 그정도 권리는 가질 수 있는거니까. 

 그런데 그거알아? 

 난 그 자리에 버젓이 서있었는데.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 너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걸레같은 년이 내껄 뺏어갔어.


 내가 상상만 할 수 있는 행위를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 여자를 생각하니 아직도 감정의 주체가 안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여자가 너를 노리는 유일한 여자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어. 순진한 너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들은 너의 아무것도 몰라.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신경쓰는 더러운 것들. 시도때도없이 달라붙어서 은혜도 모르고 떼만 쓰는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

 그거 알아? 넌 이미 내꺼야. 너의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오로지 나만 너와 대화할 수 있어. 나만 만질 수 있고, 나만 느낄 수 있고, 나만 함께 할 수 있어.

 너의 머릿속에 나만 있었으면 좋겠어.

 내 머릿속에는 이미 너만 있는 것처럼.

 이런 내 마음을 너가 알아 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이미 알고있으려나? 어쩌면 아는데도 모르는 척 하는 걸지도. 그래도 괜찮아. 이제부터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번 안주게 만들어 줄테니까. 

 지휘관 일도 그만두게 할거야. 넌 아무것도 안해도 돼. 그저 우리집에서 기다렸다가 내가 돌아오면 조용히 날 꽉 끌어안아줘. 더럽혀진 날 다시 너와 나만이 있는 세상으로 끌어들여줘. 

 앞으로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해. 널 위해서라면 하루에 천 건씩. 만 건씩. 그래도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이 일은 내 의무니까. 내가 짊어질 왕관의 무게니까. 


 그리고 이제 너가 내 왕관이니까.


 그렇게 일을 하다가 방주에 우리 두사람만 남게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 방주가 두 사람만을 위한 커다란 도시가 되는거야.

 하나하나 생각하다보니 부부연기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우린 어쩌면 그때 이미 부부가 된걸지도 몰라. 그래, 분명 그랬던거야 여보. 

 지금 난 얼굴이 불타는것 같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어. 이미 내가 뭐라고 쓰고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도저히 내 마음을 표현하는걸 멈출 수가 없어.

 우리 미래 계획을 먼저 말해줄까? 중앙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로얄로드로 데이트를 갈 거야. 아무도 없으니 방주 어디서든 사랑을 나눌 수 있어. 그러다 집에 들어오면 우리가 찍힌 CCTV들을 돌려보며 다시 사랑을 속삭이는 거야. 방주 전체의 치안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오로지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것이 된다는 게 참 로맨틱하지 않아?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할게.

 당신만을 사랑할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해야 돼.

 거절한다면. 물론 상냥한 당신은 그럴리 없겠지만 정말 만약 거절한다면.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릴거야.

 그렇게라도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면 난 만족해.

 사랑해.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해.









 지금 만나러 갈게.








동D없찐인게 서러워서 동D랑 결혼한 니붕이들 오체분시되는 스토리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다음편은 예전에 쓴 글들을 좀 더 확장해서 니미니스트에게 시달린 방주시민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군요.


사족으로 지휘관 방에 찾아간 동D는 편지를 우연히 보게된 마리안에게 반으로 접혀서 무사히 사출되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만 동D없어 ㅅㅂ